안녕하세요. 인턴 밀키입니다. 지난 8월 23일, 산지니 출판사에서 오영이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핑크색을 좋아하고 키티가 가진 유치한 분홍색을 좋아해서 키티매니아라고 소개하시며 수줍게 웃으셨습니다. 작가님과 함께 진지하고 유쾌하게 진행했던 인터뷰였습니다. 질문지를 보시고는 마음에 든다고 보내달라고까지 하셔서 인터뷰하는 저도 기분이 업 되었답니다.

 

 

 

2011년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소설집에 이어서 올해 칠월에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출간되었는데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된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황혼의 엘레지」, 「마왕」, 「핑크로드」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세대를 아우르며 소외된 약자들과 사회의 현실을 특유의 문체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주로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의 소설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되었습니다.

 

 

Q1.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서는 프라이팬은 한국에 와서 세 가지 사건을 겪게 되고 공터에 버려지게 됩니다.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잡은 사람들은 불화가 생기고, 다리를 잃고, 동반자살을 하는 등 비극적인 상황을 겪습니다. 프라이팬은 ‘내 손잡이를 잡으며 온화한 미소를 짓던 사람들 중에 행복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고 회상하는데요. 작품 속 주인공인 프라이팬에게 불행한 운명을 안겨준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독일이라는 공간을 염두에 둔 이유는 우리나라가 개발 붐이 일기 전, 60년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대거 파견 보냈죠. 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차관을 끌어오기 위한 인적 담보였어요. 독일 입장에서도 자국민들이 하기 힘든 열악한 일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맡기기 위함이었어요.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간 이유는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한강의 기적을 이룬 그들, 그러나 그들은 과연 행복한가? 라는 생각에서 이 소설이 출발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한국사회는 행복해요?

 

(행복하다고 딱 집어 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자면 빈약한 정신성, 영혼. 이것에서 오는 괴리감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광산 출신의 후라이팬이, 이후에 한국에 가서 과연 행복한가를 보고 싶었죠. 답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청년층도, 중년층도, 노년층도 후라이팬 눈엔 행복하지 않았어요.

 

Q2. 「마왕」에서는 모차르트의 곡 <마왕>이, 「핑크로드」에서는 비더버그 감독의 영화이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인 <엘비라 마디간>이 나오는데요. 작가님은 소설을 쓰실 때 영화, 음악, 역사 등에서 영감을 받으신 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저도 음악도, 미술도 몰라요. 단지 지금까지 해온 건 읽거나 쓰는 것 외엔 없어요. 음악에 대한 상식도, 지식도 없지만 제 나름의 벼리어진 감성이 있달까, 음악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원초적인 감성으로 제가 작품으로 연결하는 거에요. 예를 들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같은 경우도 영화의 서사에 집중해서 봤지만 갑자기 음악이 들리더라구요. 제가 멜로디에 매료가 된 거겠죠. 그리고 늘 따라다니며 이것을 소설로 쓰고싶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 <출처: 구글 이미지>)

 

「마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워낙 좋아해요. 한때는 제가 자식만 아니었으면 충무로에 가서 조명드는 것부터 시작해볼까 생각할 만큼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할 때도 영화를 텍스트로 많이 사용해요. <엘비라 마디간>은 집에서 비디오로 봤습니다. 애들 재워놓고 봤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에요.

역사와 서사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장르가 제게는 영감을 주는 거죠.

 

Q3. 작가님의 소설을 보면 제도적 억압, 사회적 통념, 강자의 폭력 등 벽에 부딪힌 사람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시는데요. 그리고 인물들은 견디고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끝을 맺게 됩니다. 때론 갈등이 풀리지 못한 채로 소설이 끝나기도 하고요. 이렇게 갈등의 해결을 보여주기보다 인물이 처한 현실과 갈등상황을 보여주시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소설가의 역할이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소설가의 역할은 내 일이 아니니까 넘어가버리기 쉬운, 하지만 직시해야 할 사건을 표면화시키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내 일이 아니지만 사회의 사각지대에 숨겨지거나 누군가가 은폐한 일을 드러내려고 하죠.

저는 나이를 물으면 스물아홉이라고 대답하죠. (웃음) 20년 전에 스물아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물아홉이라고 하면서 청년은 아니지만 청년의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같이 느끼려고 하고 노년은 아니지만 단지 늙음으로부터 오는 박탈감이 아닌, 경제력과 건강의 상실, 정서적인 위기감을 드러내고 싶었고요. 그 다음에 위기청소년문제, 원조교제라던지 벼랑으로 몰려있는 학교 밖 아이들 얘기를 표면화시키면서 같이 공감하고자 하는 것이 제 소설의 주된 목표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회적인 공범의식이에요. 벼랑으로 몰려있는 아이들의 문제가 과연 이 아이들만의 문제인가. 그것을 방관하거나 벼랑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공범이 아닌가 이런 걸 좀 강하게 묻고 싶었죠.

해결점을 제시하기보다는 문제를 표면화시키는 면에서 그치는 것이 소설적인 완성도를 높이면서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결말을 보였습니다..

 

Q4.「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의 성여사와 아들간의 에피소드를 보면 오늘날의 교육현실이 생각 나 안타까웠습니다. 학벌사회,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시대에 성여사는 아들의 교육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고 아들은 자신의 개성도 잃은 채 기계적으로 공부를 합니다. 작가님의 이전 소설집의「잉글리시 존」에서는 ‘지섭’이라는 인물을 통해 철저히 위계화 되어 있는 교육현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런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입장,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위기감과 회의감을 느끼고 있어요. 말하자면 저는 위기청소년의 엄마에요. 큰아이는 전과 4범이고, 작은아이는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셋이 모이면 그런 얘기를 해요. 큰아이는 문제아, 작은아이는 장애아, 엄마는 이혼녀. 우리 셋이 모이면 진짜 잘 놀고 있다 이런 말을 해요.

개인적으로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회적인 잣대로 볼 때 커다란 결함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게 우리 가족사이다 보니 그 가족사는 교육현실과 결부돼요.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한 편견, 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위기로 몰리는 교육 현실. 이런 것들을 강하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저수지에 사는 고래」,「잉글리시존」「터널」에서 나왔듯이 한번 발을 잘못 디뎠더니 돌아올 수 없는 위기로 가고 있는 청소년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걸 기성세대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범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현실, 사회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누구나 그런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죠..

 

Q5.「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을 읽으면서 프라이팬의 관점에서 관조적으로 볼 수도 있었고, 주인공과 감정이입이 된 프라이팬의 슬픔을 보면서 같이 동화될 수도 있었습니다. ‘프라이팬’이라는 사물의 관점으로 글을 쓰게 되신 계기와 프라이팬의 수많은 종류 중 독일 베른데스사의 삼중바닥 프라이팬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일 처음 염두에 둔 것은 테팔이었어요. 그 제품이 되게 비싼 걸로 차별화됩니다. 굳이 비싼 걸 하게 된 건 거품, 허영 이런 것들을 프라이팬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허영을 드러내고 싶었고요. 싼 프라이팬과 비싼 프라이팬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가격이 그만큼 차이날 만큼 성능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비싼 것을 구매하는 이유는 허영 때문이겠죠. 주부로서의 정체감을 상실한 사람들은 주방기구에 돈을 많이 들이는 것으로 허영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고요.

비싼 프라이팬에 대한 자료수집을 하다보니 베른데스사의 베른데스라는 이름이 눈에 포착됐어요. 나치즘과 2차대전과 관련있는 사람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었지만 소설이므로 성씨에서 집안 내력을 가져오면 상징성을 부여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작가가 자료를 찾아서 쓸 때는 기본적으로 정확해야 하고,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되는 이야기를 가져와야 합니다. 비싸다는 이유로 테팔을 쓰기보다는 베른데스는 비하인드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프라이팬이라는 사물의 관점에서 쓴 이유는 일단은 차별화 되고 싶었어요. 사물의 눈을 통해 서사를 전개해 가는 방법도 낯선 방법도 아닐 거예요. 익숙한 방법도 아니지만 전혀 새로운 방법도 아닐 거에요. 사물의 입장을 쓸 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인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정확하게 보기에는 사물이 적합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의 표지)

 

Q6. 작가님께서는 블로그에서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제목으로 김용대, 신홍직, 구명본, 류승선, 네 화가들의 소소한 일상을 연재하셨는데요. 소설가이신 작가님이 화가 분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작가님은 여러 분야에 폭넓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계시는 만큼 작가님의 행보를 기대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예상됩니다. 연재나 작품 등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으신가요?

 

-우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작가로서의 계획은 작품을 열심히 쓰는 거지요. 좀 두루뭉수리하게 말하자면, 밥벌이에 투자하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작품 쓰는 시간을 벌겠다는 거지만 현실이 그걸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고... 저는 장편을 쓰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작품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편은 누구나 평생 한 편은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이 소설 아닌 사람이 없으니 말이죠.

그러나 단편의 압축과 절제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는 작업은 작가가 아니면 못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장편을 절대 쓰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로서의 장기계획이고 3년 안에 또 한 권의 소설집을 내겠다는 것이 단기계획입니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사실 돈을 벌려고 시작했지만, 돈보다는 그림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유럽에 3주 동안 가 있었는데 한 거라고는 베를린 한국문화원 원장 만나서 책을 주는 것과 보훔대학 교수 만나는 것 뿐이었어요. 독일어도 서툴렀고, 하우스 매니저도 영어도 못했어요. 원하면 돌아다닐 수도 있었지만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단 하루 파리 루브르에 가서 하루종일 있었어요. 또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하루종일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게 된 계기를 생각해보니까 ‘아가씨와 건달들’을 연재하면서 그림과 화집을 보게 되었더라구요. 그러면서 모네 작가에 빨려드는 계기가 되었고 얼른 미술관에 가서 모네를 봐야지 하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수련이 있는 풍경속에 있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그린 그림이 주는 위압감과 함께 직접 보고 있는 느낌 때문에 그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보다 오히려 오르세 미술관의 모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보냈네요.

 

Q7.「황혼의 엘레지」에서는 사회적 빈민 계층 문제, 노인들의 성 문제, 노인 복지의 취약성 문제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인데요. 노인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쓰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노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원에서예요. 저는 17년동안 살림만 살다가 마흔 한 살에 대학원 국문과에 갔어요. 이혼을 하고 나니 나에게 가족도, 직장도, 연금도, 돈도 없고 나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내 딴엔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내가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구나, 객관적인 스펙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학위를 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위를 받으면 객관적 인정을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남들이 가지 않는 선구적 입장을 좋아하는데, 그때 노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노년은 사회적으로 힘있는 노년이 될 텐데 그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헀어요.

그러다보니 논문 뿐만 아니라 소설로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존재이유는 아픈 사람들, 발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하고 기쁜 이야기는 굳이 소설로 안 써도 공유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건강하고 힘 가진 노인이 아닌 변방으로 몰려 있는 노인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 박카스 아줌마가 가장 절박한 노인이 아닐까 생각해서 썼습니다. 그것이 노인복지에 반영됐으면 하는 차원도 있었구요.

 

Q8. 매일 대부업자의 협박과 대출금 독촉 전화에 쫓기고, 자신을 위해 돈을 마련하다 혼수상태에 빠진 애인을 보면서도 신상치마와 가방을 사는 것을 멈추지 않는데요. 저는「마왕」에서 그런 여자의 행동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정이 갔습니다. 화려함을 원하고 주위의 집중을 받고 싶으면서도 칙칙한 색을 고르면서 그것을 거부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제 자신과 닮아있다고 느껴져서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작가님과 닮아있거나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제일 잘 썼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마왕」입니다. 가장 자기화한 인물도 마왕의 여자주인공이구요. 사실 전 명품에 대한 욕구는 없어요. 선물받은 것이 있지만 밖에 들고 나가지도 않고요. 하지만 전 강한 면을 내세우려고 노력하는데 그 기저에 허약한 게 있어요. 학위로 저를 치장하려는 것이 자신을 명품으로 치장하려는 여자의 마음과 똑같았을 거예요.

마왕에 등장하는 여자가 갖고 있는 결핍감은 제가 바로 투영이 된 것입니다. 저는 「마왕」의 여주인공처럼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강한 억압을 받으며 자랐어요. 엄마가 너무 강한 모성을 지녀 내 의지를 발현하지 못했어요. 고3때까지 젓가락질도 못해서 포크만 쓸 정도였어요. 엄마가 젓가락질을 다 해줬거든요.

그래서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됐을 때는 억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바라는 엄마가 어쩌면 간섭하지 않는 엄마였을 것이고, 또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심리기저에는 남편이 없으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사실은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모성으로부터 받는 억압, 그게 「마왕」에서 버리고 간 엄마로 묘사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유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이 동시에 저이기도 할 거예요.

 

(이 여자가 저랑도 좀 닮은 것 같았어요.)

 

그랬나요? 누구나에게 이런 부분이 있을 거예요. 저는 가끔 화려함이나 허세를 내세우면서도 정말 많이 슬퍼요. “나는 자신이 있어요.”, “나는 당당해요.”라고 말하지만 내 결핍을 덮기 위해서가 아닐까 느껴요. 내 빈 곳을, 더 강하게 느끼죠.

 

 

 (△열심히 인터뷰에 응해주시는 오영이 작가님.)

 

Q9.「황혼 엘레지」의 안동댁 을 보면서 이전 소설집의「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의 ‘나’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에게 노트북을 사주기 위해 모르는 섬의 티켓다방으로 떠나게 됩니다. 「황혼 엘레지」의 안동댁 또한 자식의 빈 자리를 대신해 손자 태주의 도시락을 싸주기 위해 노인들에게 손을 타며 박카스를 팝니다. 가족해체의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눈물겹고 안타깝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특별히 이러한 캐릭터를 그리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황혼의 엘레지는 노년의 부박함을 써봐야지 그런 철저한 기획하에 썼구요. 제가 취재는 치열하게 했죠. 작품을 쓰기 위해서 취재는 정말 열심히 합니다.「마왕」을 쓸때도 저는 백화점 좋아하지도 않고 물건을 사지도 않지만 눈만 뜨면 열흘 정도 신세계 백화점 하루종일 살았었고요. 문 열때와 문 닫을 때 냄새나 소리가 달라요. 조그만 거 하나 탁 떨어트렸을 때 그 반향이 돌아오는 소리도 다르구요. 사람들이 막 휘젓고 지나간 다음과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을 때의 백화점 직원의 표정도 달라요. 전 그런 걸 관찰하면서 하루종일 백화점에 있었구요. 거기서 묘사되는 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저는 취재를 열심히 합니다.

 

(「황혼의 엘레지」도 인터뷰 하셨어요?)

 

「황혼의 엘레지」도 성지공원에 가서 노인들을 계속 취재를 했어요. 할머니들이 거기 나온 목적이 돈이 궁해서 왔으니까 박카스 한 병 마시면서 아줌마도, 여사님도 한 병 드세요 하면서 2만원 주면서 하니까 저와 이야기를 피하지는 않죠. 그래서 이런저런 박카스 아줌마를 암남 공원에 있을 때, 용두산 공원에 있을 때 만난 아저씨들 얘기, 할아버지들 얘기도 듣으면서 제가 취재를 했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 사실 다 가족이에요. 아마 여러분도 가족을 떠나서 본인을 생각하기가 힘들거에요. 가족을 이끌어가야할 가장의 위치가 아니더라도 1인 가족도 가족이니까 내 스스로 나를 돌보는 건 또 달라지죠. 그랬을 때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모든 소설이 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작가론적인 차원에서 결부시켜 이야기를 하자면 전과 4범과 장애 가진 아이를 혼자서 키우면서 부부가 나누어서 맡아서야 할 일을 혼자서 했으니까 자연히 이게 작품으로 드러났을 것이고 피해갈 수 없었겠죠. 이렇게 그리는 이유는 제가 희생을 통해 오십년을 살았으니 이런 걸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Q10.「핑크 로드」를 보면, 주인공과 외사촌 사이의 금기시되는 격정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주인공은 사촌의 사기행각으로 인해 회사의 뇌물 수수에 배임, 횡령사건에 휘말리지만 끝까지 그녀를 변호합니다. 그러나 사촌은 그의 사랑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라고 하면서 거리를 보이는데요. 이러한 인물 간의 관계와 상황을 어떻게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까 가장 닮아있는 인물이 마왕에서의 여주인공이었다면, 가장 애착이 가는 주인공이 「핑크 로드」의 ‘나’에요. 계속 나이자랑이지만, 오십 년을 살면서 사랑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겠어요? 스무 살부터 그 이후의 인생에 있어서는 사랑이라는 건 피해갈 수 없는 가장 빈번한 사건 중 하나일 거예요.

주위에서 "네 소설은 너무 읽기가 힘들고 불편해. 너도 연애소설 한 번 써보지?"라는 말을 들었어요. '나라고 못 쓸 일이 있나. 내가 한 두 번 연애해 본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순수한 연애에 관한 소설을 써봐야지 하고 시작한게 「핑크 로드」에요.

근데 별로 연애가 없었죠?(웃음) 흔히 하는 말로 '캐릭터를 창조해 놓으면 그 뒤를 밟아가는 게 작가의 역할이다.'라는 말이 있죠. 식상하게 들렸지만 「핑크 로드」를 쓰면서 제가 그랬어요. 처음에는 순수한 사랑, 사랑의 위대함을 쓰고 싶었어요. 사랑 때문에 목숨도 버릴 수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핑크녀(여주인공 별명)의 캐릭터가 너무 강하고, 그녀의 과거에 집착을 하다보니 '이 여자가 사랑으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사랑을 배신하고 이용해야 겠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남자가 더 부각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가장 강렬한 계기는 오페라 <카르멘>이에요. 한 여자를 사랑함으로서 현실적으로 끝없이 몰락해가는 호세를 보면서 '이런 사랑 이야기 한 번 써봐야지.' 했어요.

핑크녀는 사랑을 하지 못하고, 남자는 현실을 무시하고 이 여자를 사랑했지만 결국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구요. 한마디로 사랑이 얼마나 무능한가, 순수한 사랑이 얼마나 작용하지 못하는가, 인생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가 되어버리더라구요.

사실 저는 열 살 연하의 남자와도 연애를 해봤고, 저보다 스물 세 살 많은 남자와도 연애를 해봤어요. 그런 사랑에서도 엄청난 열정을 불태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내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그런 경험을 토대로 보건대 저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그런 건조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도 사랑은 무능한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웃음)

 

Q11.「마왕」에서 화사한 오렌지색 스커트가 오래 시선을 끈다는 이유로 검정색의 꽃무늬 스커트를 샀던 여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오렌지색 스커트를 움켜쥐고 계산대로 향하는데요. 이러한 변화는 여자를 둘러싼 상황이 극적으로 치달으면서 여자의 마음도 절박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요. 작가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자를 둘러싼 상황이 극적으로 치달으면서 여자의 마음도 절박해졌다기보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절박했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모른 척 하고 있었죠. 처음이나 끝이나 남자가 결국은 카드빚을 갚기 위해 쓰리잡을 해서 쓰러졌다는 게 소설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그런 상황은 처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변화라고 하기보다는 깨달음이라고 해야겠죠. 상황에 대한 정확한 깨달음.

여기서는 이런 걸 말하고 싶었어요. 마왕의 인물론적 차원이 아닌 마왕의 주제론적인 차원에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거품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 거품이 여러 사람을 불행하고 있게 하지 않는가. 제 경우는 그게 지적 허영으로 나타나서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는 안 줍니다. 학위 딴다고 해서 제가 다른 사람의 학위를 뺏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간혹 이런 거품이나 허영이 살인으로 이어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허영 때문에 이런 건 아닐까?’ 돌아보자는 차원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효용론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주제도 그런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여자의 마음이 변하고 더 절박해진 건 작가로서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

 

Q12.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소설가를 꿈꾸는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작가’ 이러면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꿨어요 하는데 막상 작가가 됐을 때 작가도 레벨 차가 많지만 작가가 됐을 때 작가로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좋은 작가가 되었을 때는 자기 자부심으로 살 수는 있겠죠.

어느 날. 저는 교도관으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날마다 교도소에서 살인한 사람들만 봤는데 그래도 희망을 느낍니다’ 라고요. 오년 전이라 잘 생각이 안 나는데 희망을 느낀다고 말을 하게 된 게 뭐냐면「오래된 삼층집」에서 ‘불을 켠다는 건 이런게 아니던가요’ 이런 비슷한 문장에 꽂혀서 희망을 갖게 돼었고,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등불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런 말을 해주던데 저한테도 엄청 고무되었죠. 한 명의 독자라도 이런 생각을 해준다면 소설가를 꿈꿀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되죠. 좋은 소설을 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소설가가 돼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좋은 소설을 쓴다는 건 단지 소설가가 된다는 것과도 다른 문제이고, 끝없이 누군가의 입이 대신 되어줘야겠다는 의식, 사회를 읽어내는 문제 의식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소설을 쓰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바쁘게 가시는 작가님을 배웅했습니다. 바쁘신데도 사진과 싸인 요청에도 웃으면서 응해주셨습니다. 언제 한 번 강의에 놀러오라고도 하셨구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가님과 함께 책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영이

*소설가

*경성대학교 . 동서대학교 외래교수

*문학치료사/문학심리상담사/동화구연가 /스토리텔러 / 칼럼리스트

*2009년 계간지 <문예운동> 소설신인상 수상 후 등단

*2010년 <토지문학제>토론자상 수상

*2013년 <한국소설>신인상 수상

*2015년 <동리목월>신인상 수상

*2016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11년 소설집 출간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 해성출판, 2011.

*2016년 소설집 출간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산지니, 2016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 10점
오영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