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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 :: 박정선 장편소설『가을의 유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2. 17.

EDITOR'S NOTE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 "

 

박정선 장편소설  『가을의 유머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참 길었다. 지난여름은 선풍기 몇 대를 틀어도 지나갈 줄 몰랐고, 연일 성난 온도가 아스팔트를 데웠다. ‘이 여름에도 끝이 있을까?’ 하던 찰나, 지난한 여름 위로 찬바람이 불었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슬며시 찾아왔다. 마치 소녀가 여인이 되고, 여인이 부인이 되는 것처럼.

 

『가을의 유머』의 주인공 승연은 하루하루 삶에 치여 살아오다 ‘40대’를 맞이하게 된 ‘기혼’여성이다. (그녀도 한때 꿈 많은 소녀였고, 수줍은 여인이었겠지) 나이와 결혼의 여부는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쩌면 자신의 이름보다 더. 승연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가 달아준 그녀의 여러 이름표들 중 ‘40대’와 ‘기혼’이라는 이름은 진짜 그녀의 모습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다. 머리로 내리는 결정보다 가슴이 떨리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40대 기혼여성 승연에게 설렘의 바람이 불고, 사랑의 싹이 움튼다.

 

사실 처음 이 원고와 마주했을 때는 겁이 났다. 단 한 번도 삶에서 마주하게 될 가을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가라앉은 일상 속에 놓이게 될 그때, 우리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만 변해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계속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원고 밖으로 많은 물음들이 오갔다.

 

“떨림은 정말 그런 것이었다. 떨림은 지금까지 고장 나고 비뚤어진 나의 뼈를 다시 맞추게 만들었다.” (p.72)

 

사회적 금지 영역에 속해 있는 기혼 남녀의 사랑을 통해 한 여인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 『가을의 유머』. 이 소설은 남녀 간의 관계와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에 집중한다. 보통의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게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감춰뒀던 욕망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가을의 유머』가 불륜을 다룬 여느 드라마,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모든 게 욕망이다”라고 전하며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욕망이 낳은 이상과 동경을 찾아 헤맬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감추며 살아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욕망. 그 아이러니 속에 소설 『가을의 유머』가 자리하고 있다.

 

소설 『가을의 유머』를 편집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서 있는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겨울로 건너갔고,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소설 속 승연에게서 나의 시간을 비춰보고 있었다. 특히 승연이 다시금 거울을 보게 되는 부분에서는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 그녀는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잊고 지낸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까….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한편으론 쓸쓸한 계절이다. 그 찬란했던 녹음들이 사라지고, 길거리를 뒹구는 낙엽만이 발끝에 머문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삶의 가을 역시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눈부셨던 청춘의 시간을 뒤로하고 현실을 버티며 차곡차곡 쌓아온 의무와 책임들이 명치끝에 머무는. 답답하지만 소리치기엔 남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내 속에 숨어 있는 진짜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가을도 여름만큼 눈부신 계절이니까.

 

 

 

『출판저널』 2017년 2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가을의 유머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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