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일기
『지리산둘레길 그림편지』를 기다리며
무술년, 산지니는 '좋은 책'과 '독자와의 소통'이라는 새해 목표를 양 날개에 짊어지고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특히 곧 시작 될 <북투어 - 타이베이 어둠여행>은 산지니와 독자가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책을 통해 모인 이들과 책을 따라 여행해보는 낯설지만 재미있는 프로젝트입니다. 타이베이 북투어를 앞두고 산지니 멤버들은 설렘과 기대감을 한껏 끌어안고서 상반기에 출간될 책을 꾸리는 작업 또한 열심히 진행 중입니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지리산'과 관련된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리하여 1박 2일, 지리산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평일 오전 지리산으로 향하는 떠들썩한 시외버스에 앉아 있자니 어김없이 떠오르는 가벼운 여행길의 추억. 그 추억과는 사뭇 다른 출장길이라는 현실. 추억과 현실 사이의 늪에 빠지려던 찰나 앞좌석에 앉은 단디 sj 편집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독자의 특권이 좋은 책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한 권의 책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에서 완성된다면, 그 특권의 시작과 끝에 함께 하고자 하는 바램은 책을 만드는 구성원이 품을 수 있는 당연한 의무일 것입니다. 함께 출장길에 올랐기 때문일까요. 그 '의무'에 짓눌리지 않고 조금은 씩씩하게 받아들이며 첫 행선지인 함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출장길의 가장 큰 목적은 출간될 책의 원고를 써주신 저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만남은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목적의 출발점에 불과했지요.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문장과 그림, 사진들은 독자에게 도달하자마자 그것을 쓰고 그리고 찍은 저자의 의도를 힘차게 벗어납니다. 독자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력과 가치관에 기대어 글과 그림,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 행간을 자유롭게 유영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산지니 편집자로서 떠난 이번 지리산행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저자의 의도를 마음껏 벗어나는 독자의 특권을 앞서 떠올리고 그것에 동참해보는 일이었습니다.
원고에 담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던 원천인 지리산이라는 장소를 마음껏 바라보고 느끼는 일에 충실할 것. 함양상림, 산청의 남사예담촌, 실상사, 용유담, 와룡대, 남원 운봉 황산대첩비, 동편제 마을. 그리고 구례 읍내, 운조루 타인능해, 정각에서 내려다 본 햇빛에 반짝이던 섬진강 줄기. 지리산이 품은 마을과 고장들, 그 사이로 난 둘레길과 강줄기들을 눈에 담았습니다. 지리산과 나란히 뻗어 나가는 도로 위를 달리며 바라본 자연의 풍경만큼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능선을 가로지르고 구획하는 고압선의 모습이었습니다. 산의 푸른 감흥만큼 시선을 사로잡았던 철저한 인공의 위세.
지리산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이라는 화두는 책을 짓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중요한 물음일 것입니다. 산자락과 고압선의 조화에 넋을 잃다가 의례 지리산을 비롯한 국립공원이 자리한 장소를 다룬 책들에 관한 단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절경의 대상인 산과 자연을 다루는 책들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이 강력하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관광지의 대상으로서의 산을 비롯한 자연은 인간의 여흥과 안식의 장소로써 어떻게든 착취당하고 이용당합니다.
능선을 구획하는 고압선과도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능선과 고압선의 불가피한 조화에 관해 생각하도록 하는 책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책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올해 상반기 산지니에서 만들어 낼 '지리산'책 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부디 인공이 가려진 자연 만을 무방비하게 예찬하는 책이 되지 않기를, 인공과 자연의 불가피한 조화에 정직하게 대면하는 책들이 될 수 있기를.
산지니 멤버들 모두 같은 마음이리라 여기며 함께 출장길에 오른 멤버들과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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