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준 지음 | 산지니 펴냄
부산은 수용과 개방의 도시다. 문물 교류의 제1선인 항구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론 비극의 장소다. 조선시대에는 왜군과의 격전지였고, 한국전쟁 때는 전국의 피란민과 유엔 연합군이 모여든 곳이었다. 그 과정에서 동서(東西) 문물이 부산항으로 흘러들었다. 전후(戰後)의 애환과 미항(美港)의 낭만이 밀물, 썰물처럼 드나들었다.
그 회오리 속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멋과 맛이 태어났다. 전통을 지키려는 내력, 융합을 지향하는 정열이 어우러졌다. 쫀득한 곰장어, 고소한 돼지국밥, 담백한 밀면, 한입 베어 물고픈 부산어묵의 풍미가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이 맵고 싸늘한 겨울에 입맛 당기는 요리들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을 쓴 시인의 식도락(食道樂) 필법이자,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짭조름한 글맛이다.
목월(木月)이 창간한 정통 시지(詩誌) 《심상(心象)》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온 저자는 부산 향토음식의 역사와 뿌리와 배경을, 페이지에 한 상 가득 차려 놓는다. 재첩·방게·복국·장떡·고등어회·고래고기·산성막걸리 등 총 47가지 음식을 지역에 따라 ‘낙동강·기장·원도심·골목’으로 분류, 4부로 엮었다. 주 메뉴는 사람, 문화, 이야기다. 후식은 조리법 정도다. 인공감미료 같은 맛집 정보는 없다. 이 책은 생활정보지가 아닌 ‘인문학 서적’을 지향한다. 부산의 맛과 멋을 깊숙이 탐식(探食), 탐사(探査)하는 ‘미식 해저터널’이다.
저자는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 시대의 음식과 음식재료, 음식문화로 당시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과 생활습속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피폐했던 근현대사의 격변기 속 ‘부산’은, 늘 사람들에게 마음 따뜻하고 착한 음식을 제공해 주었다. 널리 함께 먹는 ‘공유의 음식’이고 넉넉하게 베푸는 ‘배려의 음식’이었다”고 썼다. ‘음식의 문화인류학’으로 부산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여행이 지금 시작된다.
월간조선 신승민 기자
부산 탐식 프로젝트 -
최원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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