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동은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동네입니다. 하지만 반송동을 찾아가려고 해운대 바닷가나 신시가지 쪽에서 택시를 잡아타면 요금이 10,000원도 더 나옵니다. 같은 해운대구 내에 있지만 반송은 그만큼 해운대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반송 전경. 장산을 중심으로 윗반송과 아랫반송으로 나뉜다


충렬사가 있는 동래 안락로타리를 돌아 명장동, 서동을 거쳐 꽃시장으로 유명한 석대를 지나면 갑자기 창밖 풍경이 달라집니다. 왼쪽은 산, 오른쪽은 논밭이 펼쳐지고 이제 부산을 벗어나 한적한 시외로 향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얼마간 가다보면 반송 마을이 짠~ 하고 나타납니다. 반송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어 189번, 112번 등 시내버스의 종점이고 그 너머는 기장, 울산으로 이어집니다. 반송은 부산에서도 끄트머리 변두리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 들었고, 산이 많은 부산의 지형상 평지가 모자라니 사람들은 산으로 산으로 판잣집을 지어 올라갔습니다. 자연히 산동네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부산에는 유난히 산복도로가 많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부산시는 도심재정비사업을 위해 이런 판자촌을 없앨 계획을 세우고 부산의 변두리 지역인 반송동, 반여동, 서동 등에 집단이주촌을 만들어 철거민들을 이주시켰습니다.

1970년대 반송천에서 머리 감고 빨래하는 아이들


반송은 1968년부터 1975년까지 수정동 산동네, 조선방직 부지, 경부선 철도변에 살고 있던 철거민들이 집단으로 옮겨오면서 마을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부산에서도 반송하면 ‘못사는 동네’, ‘교통도 안 좋고,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동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그런 반송이 20여년 설움의 세월 끝에 지난 2005년 10월 진주에서 열린 제5회 전국 주민자치센터 박람회에서 당당하게 최우수상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현, 희망세상)이라는 지역 공동체와 반송 주민들이 흘린 땀, 눈물, 노력이 있었습니다.

희망세상 :
1998년 생긴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7년동안 반송 지역에서 지역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지역공동체. 행복한 나눔가게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느티나무 도서관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 돕기나 농촌 자원 봉사 활동, 좋은 아버지 모임 등을 꾸려 나가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http://www.sesang.or.kr/hope/main.html


스스로 놀라버린 어린이날 행사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것이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이었습니다. 1999년 운봉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회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은 제2회부터 반송에 있는 동부산대학 캠퍼스에서 10년째 열리고 있습니다. 행사는 해마다 커지고 내용은 더 풍성해졌고 주민들은 이런 너른 공간을 제공해준 대학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날 놀이공원이나 북적대는 인파 속에서 시달리고 지친 경험이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습니다. 이제 어린이날 놀이한마당은 ‘희망세상’의 가장 중요한 행사이면서 반송 지역의 축제로 자리잡았습니다. 지금은 소문이 나서 반송뿐만 아니라 부산의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들 찾아온다고 합니다.

반송에서 지역축제로 자리잡은 어린이날 놀이한마당



또 하나의 날개, 좋은 아버지 모임


초기 ‘희망세상’의 회원은 대부분 주부들이었습니다. 다양한 소모임이 꾸려지고 저녁 회의도 잦아지면서 주부 회원의 남편들은 퇴근해 집에 오면 저녁에 아내가 없다고 불평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마을'이란 지역공동체의 주체가 낮에 집에 있는 주부들만의 몫은 아니지요. 아버지이자 남편인 남성들도 당연히 마을의 주체입니다. 고창권 샘은 밤마다 술병을 들고 가정방문에 나섰습니다. 회원들의 집을 찾아가 남편들을 설득하기 시작한 거죠.

아이들과 아버지만 참가하는 '좋은 아버지 캠프'에서 아이들이 그려준 옷을 입고 의기양양한 아빠들


드디어 희망세상에 가입한 아빠회원들이 10명을 넘어섰고 정식으로 ‘좋은 아버지 모임’(조아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장산 해맞이 행사나 어린이날 행사, 집회활동 등 지역현안문제에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거, 거의 머슴 돌쇠 수준으로 부려 먹는구만’ 푸념을 하기도 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힘도 좋은 아빠회원들은 여러 활동에서 유감없이 실력발휘를 했습니다.


'좋은 아버지 캠프'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도전 골든벨 - 아빠가 즐겨보는 TV프로는?



빈 벽에 그리는 희망, 벽화 그리기

벽화 2호는 반송1동 진입로 벽에 어린이동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인데, 주민들이 힘을 모아 벽화를 그린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다고 합니다. 마침 한 주민이 수고한다며 집에서 국수를 삶아왔는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며 스무 번은 넘게 사진을 찍더니 정작 방송에는 국수 가져오는 장면이 안나왔다네요. 사람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반송1동 입구에 그려진 벽화2호. 벽화를 직접 그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통일가족기행

희망세상 회원들이 여비를 조금씩 모아 통일가족기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체험활동이나 짧은 역사기행은 많이 했지만 3박4일 동안 아이들까지 데리고 통일을 주제로 하는 기행은 처음이었고, 33인승 버스를 빌려 타고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숙식은 야영으로 해결하는 만만치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한국전쟁때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진 경산의 폐코발트광산을 시작으로 천안 독립기념관, 광릉수목원, 오두산 통일전망대, 임진각을 거쳐 연세대에서 열린 통일대축전까지 참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습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통일을 염원하며...


교육, 복지, 문화가 함께하는 좋은 학교 만들기

2000년대 초 반송에는 네 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 한 학교는 학교 형편상 1,2학년에게는 급식을 안했습니다.

'오늘도 밥을 못 먹었다.  내일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당시 한 저학년 학생의 일기내용입니다. IMF 이후 가정은 붕괴단계에 있었고 저소득층이 많은 반송 지역에서 점심 한 끼 해결하기 힘든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이 일기내용은 결국 교육청에까지 전달되었고 저학년 급식을 위한 추가예산이 지원되었습니다.

희망세상에서 실천한 교육복지사업 중 가장 인기프로그램인 '청소년 농촌 활동'에서 땀흘리며 배우는 아이들


반송의 세 개 중학교와 희망세상이 연계해 실시하는 농촌봉사활동과 청소년 문화축제는 반송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사업으로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학부모들도 많은 호응을 보내고 있고, 학생들도 새로운 세상을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므로 참여율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반송동 주민자치센터와 희망세상을 방문한 일본 치바대학 나가사와 교수와 학생들


지금 반송은 한마디로 잘나가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땅값이 오르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이 행복한 동네가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도서관이 있는 마을이 얼마나 될까요. 반송에는 느티나무도서관이라는 마을도서관도 생겼습니다. 해운대구에서 지어준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십시일반하여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 내부 인테리어, 장서 등은 책사회(책읽는사회국민운동본부)와 기업체의 지원, 자체적인 조달, 또 이러저러한 도움의 손길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 주민자치활동과 자발적인 지역주민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으로 손꼽히며 견학도 많이들 온답니다. 멀리 일본에서도요.


고창권 지음

부산 해운대 반송 지역 주민들과 그곳에서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가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가는 소중한 실천적 삶의 이야기이다. 주요 지역 활동으로 마을신문 발간, 벽화 그리기, 다양한 소모임 활동, 어린이날 놀이 한마당, 좋은 아버지 모임,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운동이 소개되고 있다.



<반송사람들>의 저자 고창권은 어린 시절 부산 해운대 반송에서 자랐으며 의과대학 졸업 후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반송에 해인의원을 개원하면서 지역주민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1998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주민모임을 만들어 이끌면서 지역 활동에 전념하였다. 2005년 <반송사람들>이란 책을 써 주민들과 함께 문화공동체, 자치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과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5년간 지역주민모임을 이끌면서 창의적인 지역 활동의 여러 모범을 만들었으며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현재 해운대구 구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