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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20.

'해피 투게더'

'열대병'

'브로크백 마운틴'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1997),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열대병>(2004) 그리고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그 사랑이 슬픈 이유는 그들의 정념이 어떤 완고한 장벽에 가로막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저 영화들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 영화, 이른바 퀴어 시네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처럼 서럽다.


모든 사람에게는 삶을 누릴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질서와 규율을 좋아하는 문명의 요구에 자주 제약되곤 한다. 문명은 야만의 퇴치를 빙자하면서 사람의 활력을 이런저런 제도적인 완력으로 제압한다. 그래서 야만으로 낙인찍힌 모든 비루한 것들은 문명 이전의 순수한 자연이라는 관념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해피 투게더>의 이과수 폭포, <열대병>의 정글, <브로크백 마운틴>의 브로크백 설산은 문명을 압도하는 대자연의 위엄을 드러낸다. 이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문명이란 그리고 그 유치한 분별지들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살결에서 느끼는 깊은 즐거움과 그리움 속에서 얻는 서로에 대한 행복한 끌림의 감각들은 삶이, 누려야 마땅한 무엇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운다. 그럼에도 현실은 지극히 부조리하다. 언제나 소수의 삶은 다수적인 것의 횡포로 피멍들어있다. 타인의 행복을 질시하는 옹졸한 마음들이 모여 다수적인 것을 구성할 때, 그 횡포는 소수에 대한 잔혹한 폭력으로 비약하기 쉽다. 슬픔을 끝장내고 피멍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행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행동으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올바른 인식의 훈련이 있어야 한다. 난삽하고 어렵지만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강제적 이성애 체계와, 성정체성 개념을 확립한 담론 범주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특별한 동맹은 무엇인가? 만일 ‘정체성’이 담론적 관행의 결과라면, 젠더 정체성은 어느 정도까지 섹스, 젠더, 성 습관, 욕망, 즉 강제적 이성애로 규명될 규제적 관행들 사이의 어떤 관계로 구성될 것인가? 이런 설명은 우리를 또 다른 총체화의 틀로 되돌아가게 하는가? 강제적 이성애가 젠더 억압의 획일적 원인인 남근로고스 중심주의로 야기된다는 또 다른 총체화의 틀 말이다.” <<젠더 트러블>>, 117쪽.


사실 이런 생각은 놀라운 통찰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의 기원을 ‘강제적 이성애 체계’와 ‘성정체성 개념’에서 찾아왔지만 버틀러는 그것이 결국은 또 다른 편견에 지나지 않다고 말해버린다. 다시 말해 그런 담론들은 미리 정해진 ‘총체화의 틀’ 속에서 그 편견의 부정성을 확고하게 증명해버리는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편견의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저 본질의 형이상학과 결별해야 한다. 잔혹한 문명의 폭력에 대항해 대자연을 맞세우는 따위의 방법은 결국 그 본질의 형이상학에 갇혀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문명을 피해 자연 속에서만 허용되는 동성의 사랑이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 자연이란 문명의 폭력에 지친 영혼에 짧은 위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은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관념의 자연 속에서만 살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동성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라도 문명의 대낮을 활보할 수 없다. 그렇게 될 때 이성애라는 다수적인 사랑의 형식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험한 존재로 남아야 한다. 인지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의 불온한 존재성은 다수적인 삶의 형식을 자극하는 위험한 도발이다. 그 도발이 언제나 위험한 것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동성애가 소수적인 것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정되고 다수의 삶 속에서 평온해질 때 그들의 사랑은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 애틋한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랑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세상에 기여한다. 다수적인 것이 될 수 없는 서글픈 운명으로 당신들의 사랑은 오랫동안 숭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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