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식사는 하셨어요?

 

한국에서  먹었어?, 하는 물음은 안부 인사나 다름없다. 적어도 끼니는 챙겨먹고 다녀야지 안녕하게 지낸다고 말할 수 있.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산다는 것은 식사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그렇게 죽고 못 사는 '밥'을 정녕 '잘' 먹고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만 하더라도 어제 저녁을 대충 햄버거로 떼웠다. 그나마 아보카도가 들어간 게 마지막 양심.) 밥은 먹었는지, 식사를 거르진 않았는지 그렇게 궁금해 하면서 왜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에 관해서는 신경써주지 않는 걸까!

구체적인 센스가 필요해졌. 식사는 '잘' 하셨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에서 요리는 나에게 정성을 쏟는 일이다. 우리는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잘 차려진 식사를 대접하지는 못할 망정 나에 대한 일이라면 뭐든 대충하고 치워버린다. 그러는 편이 훨씬 편하니까. 혜연 씨도 본래부터 매 식사에 성의를 쏟는 공손한 타입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던 그는 건강과 거리가 먼 생활을 유지했고, 이후 시들해진 몸과 마음을 가꾸기 위해 휴직서를 제출한 뒤 주방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내 마음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밥상을 차리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다.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놓아도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떠밀려서가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선택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6쪽)

우리를 위해 매번 두 가지 방법으로 조리하기 위해 준비하시는 선생님에게 '수고를 끼쳐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면, 선생님은 '수고를 쏟는 게 아니라 애정을 쏟고 있는거야'라고 대답하셨다. (21쪽)

 

혜연 씨는 몇 년에 걸쳐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채식을 단계적으로 실천해, 지금은 육류, 해산물은 물론, 유제품과 난류까지 배제한 비건 베저테리안(vegan vegetarian)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일명 '채식주의자'라고 한다면 식단을 엄격히 관리하는 다이어터를 먼저 떠올리기가 쉽다. 혜연 씨는 마크로비오틱은 그것과 다른 결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마크로비오틱은 엄격한 절제와 지독한 자기관리를 표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극진히 대접하는 상냥한 처우라고 볼 수 있다.

 

마크로비오틱이 생각하는 '건강'은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뜻한다. 몸이 편안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그것은 마크로비오틱이 생각하는 건강이 아니고, 반대로 마음이 편안해도 몸이 편안하지 않다면 그것 또한 마크로비오틱이 생각하는 건강이 아니다. (17쪽)

나 또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식사도 중요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채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함께 외식을 할 때에는 육류를 제외한 동물성 식품을 먹기도 한다. 나로 인해 그들에게 불편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마크로비오틱은 무슨 주의와 같은 절대적인 이념이나 신념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만드는 데 지침이 되는, 응용 가능한 하나의 기준이다. (27쪽)

 

다만 바쁘고 피로해서 나를 챙기지 못한다는 게 아주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일상은 단순히 밥 한 끼 잘 차려 먹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빠르게 굴러간다. 그렇다면 정녕 멋진 식탁 앞에 앉아 근사한 식사를 즐긴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걸까? 다행히 우리 삶이 그 정도로 비극적이지는 않다. 혜연 씨는 우리 일상의 속도에서 마크로비오틱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하지만 이런 삶이 '돌아가는' 또는 '시간이 더 걸리는' 삶일까. 밥을 찌는 대신 전자레인지를 쓰고, 수건을 삶지 않고 키친타월을 쓰던 시절,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아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지냈던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가끔 그 시간을 아끼는 대신 회사 일을 더 했을 뿐이다. 그 짧은 시간으로 일을 더 하겠다고 전자파를 맞으며 맛없게 데운 밥을 먹고, 나무를 베어가며 살았다. (68쪽)

 

혜연 씨는 글을 통해 마크로비오틱을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요리에 관한 에피소드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여유를 드러낼 뿐이다. 각자의 취향을 떠나 음식을 직접 요리하고 음미하는 그의 에피소드들은 없던 입맛도 돌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읽는 이의 식습관을 교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의 충만한 기쁨을 전달하고자 한다.

 

레몬 제스트(zest, 요리에 향미를 더하귀 위해 쓰는 과일 껍질)를 만들기 위해 과도로 정성스럽게 레몬 껍질의 노란 부분만 포를 뜨듯 벗겨내고, 행여나 식감에 방해가 될까 걱정되어 가늘게 다졌다. 전용 그레이터(grater, 강판)가 있으면 레몬 제스트를 만들기 편하겠지만, 손에 배는 레몬향을 음미하며 레몬 껍질을 다지는 시간이 나름 즐겁다. (44쪽)

 

바쁜 와중에도 나를 챙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바쁜 일상을 견딘 내게 맛있는 식사 한 끼정도는 대접해주고 싶어진다.

사는 데 영 입맛이 없다면, 스스로 물어보자.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 - 10점
  전혜연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