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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언어로 현실의 상처·절망 치유하다_서화성 시집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9. 19.

서화성 (사진)시인은 200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모더니즘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난해한 시를 쓰기보다 일상에서 떨어져 나온 언어의 조각들로 시 세계를 만든다. 그가 3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당신은 지니라고 부른다〉(산지니)에는 곰탕, 리어카, 바셀린 로션 등 일상의 언어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어가 많다. 그는 이번 시집을 현실의 상처와 절망을 희열과 기쁨으로 승화하는 시어들로 수놓았다.


서화성 시인, 세 번째 시집

‘당신은 지니라고 부른다’ 출간

‘슬픔을 가늠하다’란 시에는 신산한 저녁 풍경에 비친 현대인의 슬픔과 고뇌를 담았다. ‘그러나 당신을 리어카라고 부른다/당신을 언덕 위의 달동네라고 부른다/(중략)/두 개의 동전을 굴리며/손잡은 부부가 되어 달동네를 넘는다/한쪽은 당신의 얼굴/한쪽은 당신의 거울/당신을 두 얼굴의 저녁이라 부른다/당신을 늦은 저녁의 밥상이라 부른다’(‘슬픔을 가늠하다’ 중).

하지만 시인은 모성애를 떠올리는 시편을 통해 현대인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시인은 자식에게 고기를 다 주고 뼈다귀만 먹는 어머니를 회상한다. ‘부엌에 쪼그리고 앉은 당신은 부드러워질 때까지 날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항상 뒷자리가 편안하다고 앉아 있던 당신은/뼈다귀에서 맛있는 것은 뼈 사이라며 부드러워질 때까지 먹은 적이 있었다/밑바닥부터 걸쭉해지는 것이 당신을 많이 닮아서일까/몇 시간 지나 푹 잤다는 당신은 벚꽃 눈물을 흘리는 사월,/뜨거운 김에 눈물을 훔친 적이 있었다’(‘곰탕’ 중).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바세린 로션’이란 시에 촉촉히 묻어난다. ‘다시 겨울이 오면 갈라진 틈으로 엄마가 들어온다. 그러면 발뒤꿈치가 아프기 시작하고 마루 귀퉁이에 엄마가 앉아 있다. 엄마가 그리울수록 빨리 트는 이유일까. 그런 날이면 엄마가 발바닥에서 나온다’(‘바세린 로션’ 중).

누구나 한 번쯤 삶이 힘겨울 때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길 바란 적이 있을 터. 시인은 ‘우울한 시계방’이란 시에서 ‘질리도록 들은 FM 89.9에서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올까’라고 노래하며 희망 찾기를 시도한다.

시인은 모더니즘 색채가 짙은 시 ‘알리바이’에서 고뇌와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밝은 세상으로 향하는 희망을 전한다. ‘대낮에 숨어 있던 모음과 자음이 촛불을 켜자 어둠에서 나온다. 시집 하나와 먼지 둘과 목소리 셋이 숨죽이며 스멀스멀 나온다. 의지 밑의 그림자 다섯과 책상 일곱 사이에서 그리고는 그리고와 그러나 사이에서 숨었다 나온다. 방바닥은 온통 불빛 투성이다.’(‘알리바이’ 전문).

김상훈 기자 neato@

<부산일보> 2019-09-18, 기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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