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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서평] 위선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 『실금 하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 9.

 

 

위선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

정정화의 실금 하나를 읽고


정정화 작가의 소설집 실금 하나에는 총 8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의 제목으로 묶인 단편 소설집이라고 하더라도 소설 하나하나에서 일관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정정화 작가의 실금 하나는 어렵지 않게 8편의 소설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건 곧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201호 병실은 가족관계의 불화, 돌탑 쌓는 남자실금 하나는 부부 관계의 불화, 가면,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학교와 회사에서의 불화, 빈집은 친구 관계의 불화를 내세운다. 불화와 갈등은 소설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세상과 불화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갈등이며 그러한 갈등 속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불화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화나 갈등은 소설에서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정정화 작가의 소설에서 인물은 대부분 순수하고 정직한 주인공과 그와 대립하여 위선적인 세계와 영합한 이들의 대립구조로 볼 수 있다. 이는 너무나 선명한 선악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이 현실 세계에 너무나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쉽게 읽고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와 그의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인 201호 병실에서 역시 아픈 노인들이 가득한 201호 병실의 침대를 의인화해 서술하고 있다. 그는 병실에 입원한 노인들의 이야기와 욕망, 그리고 한때 자신의 위에서 입원 생활을 했던 설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돌탑 쌓는 남자실금 하나는 모두 부부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는데 이 두 편의 소설에서는 모두 가부장적인 남편이 등장한다는데서 인상적이었다. 특히 실금 하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를 만큼 강렬한 부분이 있었다. 가면은 보험사에 취직한 정민 씨의 이야기이다. 그런 정민 씨의 팀장인 가희는 자신이 지점에서 가장 실적이 높은 명인이 되면 같은 조인 정민에게도 보상이 있을 것.”이라며 정민의 실적을 가로채지만 정작 정민은 실적이 가장 낮아 회사에서 무시를 당하기 일쑤이다. 반대로 가희는 지점장과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고객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점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잡게 된다. 그런 가희를 축하하기 위해 연 가면무도회에서 정민과 가희에게 피해를 입은 동료들은 가면을 벗으며 진실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가면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 소설집에서는 흔치 않은 소설이다. 이와 비슷한 유의 소설인 , 괜찮니?크로스 드레서는 마찬가지로 학교’라고 하는 직장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괜찮니?는 학부모들에게 부당한 선물을 받고 미술 대회 성적을 조작하려는 염 선생과 그에 동조하는 선생님들에 대해 반기를 들고 상장을 찢어버리지만 결국 물의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해고를 당한다. 크로스 드레서에 등장하는 기간제 교사 역시 기간제 교사로 학교 업무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던 찰나 그녀를 살갑게 도와주는 사회 선생과 점점 친해져,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기간제 교사의 업무를 끝내자마자 연락이 소원해지더니 결국에는 같은 학교의 염 선생과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그들이 자주 가던 카페의 바리스타처럼 반대 성별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는 옷을 입는 행위인 크로스 드레싱을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처럼 가면을 제외한 정정화의 소설은 모두 순수한 삶은 지향하는 사람들의 패배로 그려진다. 빈집은 이러한 비극성이 절정에 달하는 소설이다. 외딴 섬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있는 현수는 얼른 돈을 벌고 장가를 가라는 어머니의 독촉에 섬 밖으로 나와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간판 사업을 하던 기태와 만나 같이 사업을 시작한다. 현수와 기태, 그리고 기태의 경리인 미영까지 3명이 일을 하면서 현수와 미영은 사랑에 빠지고 둘은 멀리 가서 같이 살 계획을 짜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기태와 미영이 현수에게 줄 돈과 계약서를 가지고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현수는 절망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방마저 빼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자 현수는 어머니를 두고 온 외딴 섬을 떠올린다. 그는 결국 외딴 섬으로 돌아가지만, 거기에는 이미 썩어버린 어머니의 시신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불편하게 하고, 분노케 한다. 이러한 불편함과 분노는 부조리한 세상과 그것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에게서 기인한다. 주인공들은 영악한 인물들에게 속절없이 당하지만, 그런 인물들 역시 구조의 피해자이며 구조에 영합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이 소설이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더욱 서늘하다. 하지만 비뚤어진 세상에서는 똑바로 서 있는 자가 비뚤어진 것.’이라는 말처럼 그들은 똑바로 서 있기에 비뚤어져 있다. 그런 이들의 순박함과 올바름에 대한 감각은 작가가 반드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던지는 정의와 올바름에 대한 지향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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