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출판은 탈중심의 새로운 길이다

-변방에서 길을 찾는 부산 출판계 전망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 뢰메르는 "우리는 모두를 위한 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이다"('미완의 천국')라고 했다. 이 시구는 미국 독립출판사 그레이울프프레스의 총괄 에디터 제프 쇼츠의 책상 위에 걸려 있다. 뉴욕의 '빅 파이브'가 미국출판계의 80%를차지하는 현실에서 그의 출판사는 훌륭한 작가와 책을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출판사는 저자에게 봉사하며 출판사와 작가는 책에 봉사한다. 책은 사회 전체에 봉사한다. 모든 책은 사회 안에서 과정이자 사건이며 그리고 그 문을 계속해서 반쯤 열어 놓는 것이출판사의 역할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11일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년간우리나라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로 2017년에 비해 7.8% 줄었다. 17개 광역 지자체별 5대 독서지표를 분석한 결과, 2017년도에 5대 항목 모두 전국 평균을 상회한 지자체는 서울뿐이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인천, 제주가 모든 항목에서 평균치 이상을 보였다. 반면 부산은 연간 독서율 55.7%(서울 69.9%), 평일 독서시간26.1분(서울 47.2분)으로 서울과 큰 격차를 보였다. 도서관 인프라가 서울보다 떨어지는 부분도 크게 작용하겠지만, 고령화 속도가 빠른 것도 이유일 것이다.


오는 9월 부산도서관 개관에 기대

다행인 것은 올해 9월 부산대표도서관인 부산도서관이 사상구 덕포동에 개관한다는 점이다. 2014년 9월 부산도서관 건립 기본계획이 수립됐고 건립비 432억 원·개관구축비 149억 원이 투입된다. 부산도서관은 책 읽는 문화 확산과 생애주기별 독서 지원사업, 포용적 독서복지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새로운 정책 과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사람과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독서지원 정책'을 추진할 마중물 역할이기대된다.

어느 시대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입에서 입으로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이야기에 덮여 잊히기 일쑤다. 그러나 몇 사람만 아는 비밀스런 사연일지라도 글로 기록되고 책이 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그 이야기는 후대에 이어져 영원히 기억되는 역사가 된다. 말을 글로바꾸고 책을 만드는 일, 출판이란 참으로 경이롭다. 수많은 생각과 행위들이 오만 가지 책이 되어 차곡차곡 쌓이고, 또 많은 사람들은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영혼의 양식을 얻는다.

하지만 책이란 권력과 자본이 모여 있는 서울산(産)이기 십상이다. 지금은 대규모 자본과 독서인구가 밀집된 큰 시장이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울 밖 사람들은 아예 손을 놓고 있어야만 하는 걸까? 온 나라 곳곳에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살고 지역마다 이야기꽃이 피고 지는데 말이다.


자본·마케팅 열세 속 지역 출판사 분투

자본의 열세와 협소한 독서시장, 유통과 마케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직 씩씩하게 지역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지역출판은 살아 있다. 서울의 권력이나 자본은 전혀 관심을 두지않는 이야기, 돈벌이가 되기보다는 자칫하면 영영 사라질지 모를 소중한 지역의 이야기들을 역사로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자는 맹세로 뭉친'한국지역출판연대'(이하 '한지연')가 그들이다. 

한지연은 부산, 제주, 광주, 대구, 대전, 춘천,고창, 청주, 수원 등 전국 팔도 방방곡곡 구석진 동네에 퍼지르고 앉아, 자기 동네 이야기를뚝심 있게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온 책장이들의 연대이다.

'한지연'의 대표적 사업으로 '한국지역도서전'이 있다. 지역에서 만든 책을 알리고 지역민이 중심이 된 독서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책잔치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제주에서 시작된 이후 '한지연'에 참여하고 있는 각 지역 출판사들이 소재하고 있는 시도를 순회하며 개최해오고 있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출판을 살리기 위한 전국 책장이들의 연대와 함성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울과 경기 파주의 유력 출판사들이 국내 출판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속에서도 지역문화를 기록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지역출판사들이 모여 일으킨 새로운 문화운동/출판운동이라고 규정해도무방할 것이다. 첫 도서전이 열렸던 제주에 이어 2018년 경기도 수원시, 2019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는 5월 22일∼24일 대구시 수성구에서 열린다.

유네스코가 1997년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제도를 운영할 정도로 기록문화와 출판문화에는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가 담겨 있다. 특히 지역출판문화에는 해당 지역의 정체성이 오롯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출판사들의 출판물을 선보이는 것뿐만아니라, 해당 지역의 정신과 문화를 제대로 공유하고 소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 연대 통해 새로운 출판문화 개척

'2020 대구 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은 이번 축제를 통해 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은 한국지역출판대상(천인독자상 시상) 선정이다. 지역의 문화를 발굴,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역출판사들과 저자들의 활동을 응원하기 위해 천 명의 독자들이 직접 지역출판사와 저자에게 수여하는 뜻깊은 상이다. 이밖에 두 개의 특별전을 비롯해 홍보판매부스, 지역잡지 전시부스, 지역출판컨퍼런스 개최, 한중일3국 지역출판 비교부스 등을 계획하고 있다.

서 '한국지역도서전'이 열렸던 도시와 비교해볼 때 부산 출판계의 사정은 결코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열악하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이같은 지역적 특성 탓에 '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늘 변방에서 시작되듯이, 우리나라 출판계의 가장 험준한 변방이었던 부산에도 새로운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책'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분투해온 부산 출판인들과 독자들 덕분이다. 머지않은 시간에 부산에서도 '한국지역도서전'이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막 움을 틔운 부산의 출판문화가 활짝 피어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전국의 지역 출판인들과의 연대와 소통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하는 이유다. 

온 나라 지역책들의 한마당 '2020 대구 수성한국지역도서전'에 산지니는 적극 참여하여 부산의 책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지역에서 삶을일구어나가는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모여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김영주 funhermes@korea.kr

ⓒ다이내믹부산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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