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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서평]『그림 슬리퍼』: 사우스 센트럴의 사라진 여인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4. 17.

 『그림 슬리퍼』 

 : 사우스 센트럴의 사라진 여인들 




인턴_최예빈


N번방 사건 '박사'의 공범, '부따'가 신상공개 처분을 받아 뉴스를 타는 걸 보며 출근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남자애 얼굴. 유포자도, 소지자도, 관전자도 전원 신상공개 하라고 청원도 열심히 하고 시위도 나갔지만 정작 그들의 얼굴이 공개되고 내가 그 면상들을 확인하고 나면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다.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이 내 집 문따고 들어와 하루종일 안나가는 느낌.  

그러고보면 나는 어릴적부터 범죄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애였다.

열 네댓살 무렵, 내 또래들 사이에서는 일본 작가의 범죄추리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나도 유행에 동참하고자 몇 권 읽어봤지만 영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중도하차가 일반이었다. (미스터리를 읽어야 한다면 차라리 『오페라의 유령』을 읽지!) 작가는 이런걸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내나, 싶게 완벽한 범죄 수법과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잔인한 살인 사건들은 구태여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건 이미 TV만 켜도 쉬이 볼 수 있었으니까. 내게는 언제나 일상이 공상보다 무섭고 교묘했다. 

현실은 으레 상상을 뛰어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그림 슬리퍼』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범죄르포다. 

'그림 슬리퍼(Grim Sleeper)'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흑인여성연쇄살인을 저질러왔던 살인마,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의 닉네임이다. 사신을 뜻하는 Grim Reaper를 변용한 것으로 보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저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이 직접 만들었다. 

아젠다 세팅과 이슈몰이에는 언론이 의도하는 이미지가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별명을 사건에 부여하는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이름짓기'는 조주빈이 스스로를 악마라 여기며 자신을 캐릭터라이징했던 것('박사' 조주빈 "악마의 삶 멈춰주셔서 감사" ...검찰 송치)과 맞물리며 내게 어떤 의문을 던졌다. 

우리는 가해자의 삶과 피해자의 삶 중 어떤 것을 궁금해 해야 까. 스포트라이트는 어느 쪽을 비춰야 하는가. 



펠리섹은 책의 도입부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캐나다의 조용한 수도 오타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연쇄살인범에게 매료되었다고 밝힌다. 어려서부터 범죄 실화 관련 책들을 탐독하고 <형사 콜롬보>,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은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봤다고 하니, 나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장성한 펠리섹은 범죄전문기자가 되어 로스앤젤레스의 슬럼가, '사우스 센트럴'에서 벌어지는 흑인여성연쇄살인에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다. 그리고 10년에 가까운 취재기간을 거쳐, 20여년 동안 무려 10명 이상의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 프랭클린을 잡아내기에 이른다. 

저자는 범인 특정과 검거에 몇 십년에 걸친 오랜 세월이 소요된 이유가 피해자들이 전부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사건이 LA의 슬럼가가 아닌 베벌리힐즈에서 일어났고, 금발 백인 여성이 살인사건의 피해자였다면 언론의 관심과 수사가 이토록 지지부진했을리가 없다. 피해자들은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기에 범죄의 대상이 되었고, 가난한 흑인 여성이었기에 수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펠리섹은 이 책이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언한다. 그는 피해자 한 한명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소개하는 데에 지면을 아낌없이 할애한다. 납작한 '피해자'로만 존재했던 이들이 이름과 목소리를 얻어 각자 삶의 양감을 드러낸다. 



펠리섹의 이런 전략은 N번방을 보도하는 한국언론의 태도와 상당히 대비된다. 요즘 한국언론은 '박사'에게 서사를 부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실은 과거에 보육원 자원봉사를 다니는 모범생이었든, 대학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을 맡는 '인재'였든, 그런 정보들은 시민의 알권리에 전혀 봉사하지 않는다. (이런 보도행태야말로 황색언론의 요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담 범죄자 '신상공개'는 시민의 알권리냐?" 나는 그건 권리보단 의무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 실체를 확인하고 나면 자꾸 떠올라서 온종일 괴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내 문제'가 아니게 되니까. 사회범죄를 다른 사람들만의 문제로 여기는 것은 완곡한 형태의 방조이고, 결국 그들과 공범이 되겠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그림 슬리퍼,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는 펠리섹의 끈질긴 취재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 끝에 검거될 수 있었고 긴 재판 끝에 사형을 언도 받는다.  판사 캐슬린 케네디는 판결을 내리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당신이 저지른 이 모든 범죄가 끔찍하며, 말했다시피, 어떤 정당화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내릴 판결은 복수의 판결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이 범죄들처럼 끔찍한 짓을 저지르면 사회에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처벌이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호책으로 그 사람은 계속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사회에서 말할 권리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형법계에서 몇 년을 일하는 동안 만나본 모든 사람들 중 당신이 저지른 것처럼 무시무시한 죄를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많이 저지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젊은 여성들은 끔찍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워싱턴양의 살인미수건도 끔찍합니다. 그 영향으로 여기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아 왔고 여전히 고통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이 분들은 약간의 평화를 얻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도 약간의 평화를 얻어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건 복수가 아닙니다. 그건 정의입니다, 프랭클린씨." p.439



정말 그렇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반복되어온 페미사이드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회성의 복수가 아닌, 계속될 정의다. 










그림 슬리퍼 - 10점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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