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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중국 여성들, 빅브라더에 맞서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5. 8.

깨어난 중국 여성들, 빅브라더에 맞서다

중국 페미니스트 체포하자 ‘#다섯명을 석방하라’ 청원 세계 2백만명 서명
권위주의적 통제사회로 변한 중국 차별과 성폭력에 맞서는 여성들 ‘분투중’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리타 홍 핀처 지음, 윤승리 옮김/산지니·2만원

2012년 밸런타인데이에 리마이즈(맨 왼쪽) 등이 가짜 피를 묻힌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랑은 폭력의 핑계가 아니다’ 등의 내용을 쓴 팻말을 든 채 베이징의 거리에서 가정폭력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산지니 제공

세계여성의 날을 앞둔 2015년 3월6일과 7일, 버스와 지하철에서 성희롱 예방 스티커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준비하던 다섯명의 중국 여성이 체포됐다. 리마이즈, 웨이팅팅, 정추란, 우룽룽, 왕만 등 페미니스트 활동가 5명은 베이징의 공안국 심문실로 압송됐다. 공안은 이들의 캠페인을 ‘해외 불온세력과 연결된 반체제 활동’이라고 윽박지르며 거칠게 심문했다.

이들이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이 ‘페미니스트 파이브’에 연대를 표하는 세계적 물결이 일어났다. ‘#다섯명을 석방하라’(#FreetheFive) 청원에는 전세계 2백만명이 서명했다. 37일 만에, 이들은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이들은 억압적 현실에 도전하는 중국 여성들의 상징이 되었다.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은 첨단기술을 이용한 권위주의적 통제사회로 변하고 있는 중국에서 차별과 성폭력, 성역할 강요에 맞서 싸우고 있는 중국 여성들의 분투를 생생하게 전한다. 오랫동안 중국을 취재해온 저널리스트이자 학자인 지은이 리타 홍 핀처는 ‘페미니스트 파이브’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페미니스트 활동가와 여성 변호사들, 노동운동가들을 만났고, 이들의 활동에서 중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한다.

‘페미니스트 파이브’가 공안에 체포됐을 당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온라인 캠페인 포스터. <차이나디지털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남녀평등’은 중국공산당이 1921년 창당 시기부터 공식적으로 내건 구호였다. 봉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많은 여성들은 이 구호에 이끌려 혁명에 참여했다. 1949년 공산당의 승리 이후 헌법에는 남녀평등이 명시됐고, ‘여성은 세상의 절반’이라는 마오쩌둥의 명언에 힘입어 중국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1976년 개혁개방 이후 계획경제가 해체되고 시장의 힘이 강해지자, 여성들에게는 고용과 임금, 퇴직연령 등에서 확대되는 불평등, 일터에서의 공공연한 성폭력이 닥쳤다.

이 책은 특히 시진핑 시대 들어 점점 강화되는 권위주의 체제의 가부장적 토대에 주목한다. 시 주석은 집권 초기 시 아저씨 또는 아버지라는 의미의 ‘시 다다’로 불리며 ‘중국의 아버지’ 이미지를 구축했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지면서 경제 성장에만 의존해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진 공산당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안정적인 정부의 토대라는 관념을 강화하면서 유교의 성차별적 요소를 부활시켰다. 게다가 한자녀 정책의 부작용으로 노동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국가는 결혼하지 않은 이십대 후반 여성들에게는 ‘잉여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으면서 출산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 여성들은 국가의 이런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 2012년 밸런타인데이에 당시 대학생이던 리마이즈 등은 가짜 피를 묻힌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랑은 폭력의 핑계가 아니다’ 등의 내용을 쓴 팻말을 든 채 베이징 한복판에서 가정폭력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페미니스트들은 대학 입시에서 여성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제도에 반대하고, 여성 공중 화장실을 늘릴 것을 요구하는 ‘남자 화장실을 점령하라’ 시위 등을 이어갔다.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저자 리타 홍 핀처. 산지니 제공

2018년에는 미투 운동도 확산됐다. 중국 12개 대학에서 수천명의 학생과 졸업생들이 성추행에 대한 법적 조치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베이징대에서는 1998년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이 자살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벌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중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노동자, 변호사 들과 연대해 노동, 인권 운동에도 적극 나선다. 광둥성 광저우 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함께했다. 2018년 베이징대 미투 운동의 중심에 섰던 위에신은 그해 여름 광둥성 선전의 기계 제조 공장 제이식(자스커지)에서 독립 노조를 세우려 했던 노동자들과 연대했다가 체포됐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지금까지 중국의 어떤 사회운동도 가지지 못한 대중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도 더이상 차별과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세대 여성들의 ‘깨어남’을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온한 도전’에 민감해진 중국 당국은 이들이 온라인에 올리는 글과 영상을 검열해 삭제하고, 가족을 동원해 활동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며, ‘서구 사상에 오염된’ ‘반중국적’인 반역자로 몰아세운다. 깨어난 여성들이 당장 중국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요구하는 순종적 역할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페미니즘은 비바람 속에서도 가장 ‘변혁적인 운동’의 싹을 키워갈 것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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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홍 핀처 지음, 윤승리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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