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턴일기

[서평]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황경란의 『사람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7. 22.

우리는 살아있습니다,『사람들』서평

인턴 김소민

 

뉴스 한 토막, 길 한복판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과 손짓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함께 모인 책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바로 옆에 혹은 멀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책의 시작이자 표제작인 「사람들」에서 륜은 신문 한 쪽에 ‘사람들’을 연재했다. ‘사람들’에 실렸고 또 실릴 사람들은 다양했다. 외국인 노동자,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인권단체, 강제전향 장기수, 환경미화원, 연변 합창단, 시각 장애인,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있다는 학생들의 모임 등 ‘사람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쏟아져 나왔다. 이런 「사람들」에서 스치듯 언급했던 사람들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 명 한 명 찾을 수 있었다. 분명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왔는데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사람들」에서 봤던 이름이었다. 「사람들」의 문장은 끝이 났지만, 사람들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러한 구성은 『사람들』의 사람들이, 가상 인물이 연재하는 가상 신문 속의 평면적 인물이 아닌, 어딘가에 살고 있을 사람들로 느껴지게 했다. 마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사람들』이 우리에게 얘기하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사람에 의한 시련'과 함께 '외부 충격에 의한 시련'을 모두 가할 수 있다." - p.29

부장이 륜의 파일에서 발견한 문장은 일종의 경고 같았다.

륜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놓치기 쉬울 만큼 넘쳐나는 사람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볼 줄 알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고 있었다. 그런 륜이 말하는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륜이 구분한 두 개의 시련을 함께 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륜의 입장에선 굉장히 잔인한 사람들일 것이다. 과거를 잊었다는 게 무엇이길래?

시련을 받았던 기억, 시련을 가했던 기억 혹은 그런 장면을 봤던 모든 기억이 없는 사람들. 그렇기에 시련을 주는 데 망설임과 죄책감이 없는 사람들. 그게 륜이 말한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또 다른 사람들이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륜이 필사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작가가 던지는 말일지도 모른다.

 

"가난보다 추할까."

누가 누구를 향해 쓴 말인지 리켈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리켈은 아버지의 가난을 보았고, 아버지가 보았다는 할아버지의 가난을 보았다. 할아버지의 가난이 배를 사지 못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가난은 배를 정박할 곳을 찾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안타나나리보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고, 아버지가 컨테이너 부두에 간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 p.114

 

그날을 생각하면 소년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가 되면, 아버지를 닮아 밥상도 잘 던지고, 아버지를 닮아 젓가락도 멀리 던지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다 가끔씩 칼도 휘두르는 무서운 사람이 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힘이 세지면 지금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161

「킹덤」의 리켈은 가난의 원인인 '킹덤'에 라이터와 경유통을 들고 갔다. 「소년은 알지 못했다」의 날개는 아버지의 폭력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동시에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는 '세습'과 '답습'이다. 가난과 폭력은 쉽게 세습되고 답습된다. 그걸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들은 어느새 똑같은 어른으로 자라거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야 할 것이다. 세습과 답습은 받는 사람이 피하긴 힘들다. 실을 끊는 건 넘겨주는 사람 손에 달렸다. 하지만 넘겨주는 사람 역시 손에 든 실을 끊어내기 힘들다.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새로운 변화를 맞기 위해선 그만큼 감수하고 이겨내야 하는 게 많다. 이 책은 이러한 가난, 폭력 혹은 다른 것들의 세습과 답습이 되는 과정과 그로 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계속 의식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책이 말하는 듯했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사람들」에서 륜은 연재 기사 '사람들'을 통해 륜만의 방식으로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렸다. 「그날 이후로」에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이 위안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던 시민들이 있었고 당사자인 금령은 그 모습을 보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런 금령에겐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리엔이 있었다.

『사람들』에선 이렇게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이 보듬어주기도 했다. 그것 역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상처를 주는 걸 사람이 했다면,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역시 사람의 몫이다. 륜, 집회하던 시민, 금령과 리엔처럼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 역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신문은 말이다, 일기장이 아니야."

부장의 말에 륜이 돌아섰다.

 "그게 문제죠. 신문에는 선과 악,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밖에 없잖아요." - p.12

책을 끝까지 읽고나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륜의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연재되는 날이 올까? 책 속의 이야기 말고도 륜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을 것이다. 륜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소개될 것이라 생각한다. 륜이 해낼 일이자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사람들』 속 사람들을 읽지 말고 느껴야 한다. 사람들은 종이에 인쇄된 존재가 아닌 숨 쉬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직접 만나고, 느껴야 한다. 살아있다고 외치는 사람에게 시선을 던져야 하고 그들의 손짓을 알아차려야 한다. 안부를 묻는 소설이 되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시국이라 사람 한 명 만날 때도 미묘한 껄끄러움이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기 시작하며 점차 사람 사이의 몸과 마음의 거리가 더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때론 보이지 않아 잊혀져 가는 사람들도 있다. 접촉을 지양하는 사회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사이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라는 책 한 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잊지 않길 바란다.

 

 

사람들 - 10점
황경란 지음/산지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