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 모든 시대, 모든 낮과 밤에 그가 오고 있다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
인턴 이승은
유구한 풍요의 시대에 우리의 삶은 메말라간다. 부족함 없는 자원 틈에서 외로이 파묻힌 탓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던가. 개인의 삶이 두드러지면서 자아는 타자와 이별한 채 굶주린 존재가 되어간다. 마치 정착하지 못해 바다를 떠돌던 아스테리아처럼.
우연히 그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의 꽃을 보았다. 그것은 고독과 슬픔을 마시고 자라났음에도 고상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그 모습은 어린 왕자가 그리워하던 장미와 같기도 하고, 싱클레어가 꿈꾸던 알을 깨고 나온 새와 같기도 하다. 혀가 윗니와 부딪히며 터트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그 이름, 타고르. 나는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일생을 접하게 되었다.
박정선 비평집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의 여운에서 빠져나오기란, 많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의 조용한 발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모든 순간, 모든 시대, 모든 낮과 밤에 그가 오고 있다.
(…)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햇빛 가득한 사월의 향기로운 낮에 숲의 오솔길을
밟고서 그가 오고 있다. (…)
비에 젖은 칠월의 울적한 밤에 천둥치는 구름의 수레를
타고서 그가 오고 있다.
언제나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슬픔 다음에 또 슬픔이
이어질 때 내 가슴을 밝고 오는 것은 그의 발소리,
그리고 내 기쁨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 발의 황금빛 감촉
―『기탄잘리』 45편 중에서
명예와 명성의 껍데기를 벗겨낸 타고르는 섬세하고 죽음으로 점철된 고독과 자유로운 영혼 사이의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 대신 하인들이 어린 그를 돌보는 동안 그는 인생을 지배할 고독이 싹 틔우게 된다. 그것은 타고르에게 갑작스럽고 연속적으로 다가왔는데, 아내, 자식 그리고 친우의 죽음, 같은 민족의 불신과 비방 등이 그를 짙은 슬픔과 고독에 갇히게 했다. 슬픔을 견디던 타고르는 고독을 펜 끝으로 섬세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어린 타고르가 하인들이 그려놓은 동그라미 안에서 몸을 웅크리며 반얀나무를 떠올리던 기억은 그의 작품의 양식이 되었다. 타고르에게 고독은 문학적 산통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기탄잘리』 등 다양한 작품을 잉태하게 된다.
그는 고독을 사랑으로 종결시켰다. 그의 사랑은 범인류적이었기에 성별도, 인종도, 심지어는 국경도 가리지 않았다. 그는 비록 자신의 조국을 억압했지만 문학적 소양이 있는 영국인들과 어울릴 줄 알았으며, 제국주의에 취해 식민지를 양산하는 이들 또한 포용할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타고르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어린아이 토라지듯 타고르를 외면하는 이들도 존재했지만, 그는 그들조차 품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같은 민족인 인도인부터 일본인, 영국인 등, 심지어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까지도 연민하고 동정했다. 혹자는 연민과 동정이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연민과 동정이 없으면 타자를 사랑할 수 없기에.
이 부서지기 쉬운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워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채웁니다.
이 작은 갈대 피리를 언덕과 골짜기로 가지고 다니며
당신은 그것에 끝없이 새로운 곡조를 불어넣습니다.
―『기탄잘리』1편 중에서
그렇기에 『기탄잘리』는 타고르의 영혼의 정수를 듬뿍 머금은 작품이다. 종교시로써 신에게 헌사한 이 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 종교적 교리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단순히 한 종교에 머문 것이 아닌 다양한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 속에는 예수의 말씀도, 부처의 말씀도 들어있다. 시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 줄 안다. 『기탄잘리』에 등장하는 신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초월자이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나에게는 뜨거운 즐거움이 흘러 넘쳐 마치 맑고 신선한 샘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그의 온갖 감정과 사상에 스며있는 저 뜨겁고 사랑스러운 경건성, 마음의 순수성, 그의 스타일의 고상하고 자연스런 장엄함― 이런 것들이 모두 배합되어 깊고 희귀한 정신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있다.
―베르네르 폰 헤이덴스탐(당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박정선 비평집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은 타고르의 섬세하고 복합적인 사상과 작품을 날카롭게 해체하여 독자가 타고르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준다. ‘시성’ 타고르를 ‘인간’ 타고르의 위치로 끌어내린 뒤, 독자와 함께 ‘시성’ 자리를 되찾아가도록 타고르의 삶은 조명해나가는 것이다. 단순히 타자의 평가로 인해 신격화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타고르에 대한 인식을 그의 고뇌와 아픔의 간접 체험을 통해 복합적 존재로서의 타고르로 변모 시켜 독자에게 선물한다.
1부와 2부로 나뉜 책은, 먼저 타고르의 문학 세계의 중심을 파고든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문학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그 근원을 때론 그의 어린 시절에서, 때로는 타고르 가문의 역사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근원을 탐색하는 과정은 미궁을 탐색하는 과정과 동일한데, 다른 것 하나 있다면 도착지에서 출발지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 속에서 또 다른 도착지를 찾기도 한다. 그만큼 타고르의 포용과 영향력이 넓은 범위로 뻗어있다.
1부에서 문학 세계를 빠져나오면, 2부에서 ‘인간’ 타고르가 독자를 반긴다. 1부가 흩뿌려진 수염뿌리라면 2부는 곧은 원뿌리와 같다. 저자, 독자, 타고르 모두 하나의 지점을 보고 곧게 달려 나간다. 타고르의 죽음이다. 그 죽음 직전까지 타고르는 전 세계를 돌며 세계, 지구촌이 나아가야 할 길을 거듭 설파한다. 다시금 그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일은, 독자들에게 거대한 슬픔으로 다가갈 테다. 책과 타고르에게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났을 때, 독자는 타고르의 마력에 온몸을 적셨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은 내게 있어 ‘동행’이었다. 그저 타고르의 뒤를 따라 그의 업적을 재현해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타고르의 고민을 독자인 내 영역으로 끌어와 함께 그 해답을 마련해보는 작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독을 사랑으로 변모하여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나 또한 그의 그러한 모습에 많은 사유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고 혐오하기가 더 쉬운 오늘, 그의 작품과 사상을 다시금 되짚어봐야 하지 않은가 하다. 노래도 있지 않은가.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백만송이 장미> 가사 중에서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 - 박정선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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