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우뚱
▶ 사랑-슬픔-사랑의 시적 변증
이지윤 시인의 첫 시집 『나는 기우뚱』이 산지니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04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래로 <주변인과 시>, <주변인과 문학> 편집위원을 지내며 시작(詩作) 활동을 이어왔다.
1부 ‘자벌레로 걷다’에는 사랑과 슬픔을 깊은 사유로써 노래한 열일곱 편의 시가, 2부 ‘절반의 얼굴’에는 담담한 시선으로 삶의 서정을 읊은 스무 편의 시가 담겨 있다. 3부 ‘그리움의 거처’에서는 그리움의 궁극적 대상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열여덟 편의 시로 펼쳐지고, 4부 ‘지극한 사랑’은 섬세한 감수성이 녹아든 열여덟 편의 시로 구성된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에서 이지윤 시인의 서정을 일컬어 “사랑-슬픔-사랑의 시적 변증”을 너머 “진여(眞如)의 푸른 눈빛”을 찾아가는 “금빛 환희의 비상(飛翔)”이라 말한다.
▶ 사랑과 슬픔의 궁극, 진여의 푸른 눈빛
“이지윤의 시인됨은 존재의 슬픔을 이야기한다는 데서 비롯한다.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게 삶이다. 슬픔은 모두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시는 자기의 슬픔을 말하면서 ‘나와 너’를 묻고 대상과 사물을 더 깊이 이해하려 한다. 슬픔은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지윤의 시는 사랑을 사유한다. 복수초의 꽃말처럼 ‘슬픈 추억’을 환기하는 데서 비롯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고서 좌절과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자아의 외로운 투쟁이 만든 사랑의 궁극적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아닌가 한다. 이는 실존적인 생존의 과정이며 이 과정이 빚어내는 노래가 시가 된다. 그의 시는 사랑과 슬픔의 변증법이다. 금빛 환희를 기억하면서 희망 없는 실존적 생존을 견뎌내고 푸른 기억의 에너지로 다시 비상을 꿈꾼다.”(구모룡 문학평론가)
시로 사유하지 않는 날 선 생존의 시대에 이지윤 시인은 삶의 나날들을 시로써 씨줄과 날줄을 엮어낸다. 자연을 낙(樂)하며 사람과 화(和)하는 그의 깊은 눈에는 시어가 가득하며, 시를 읊는 그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투명하고 순후하다. 부박하게 떠도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는, 시인의 곧은 서정은 쉼표와 마침표 하나에까지 유동하고 또 유랑한다.
▶ 화해의 지평을 여는 유년의 기억
시인은 시집에서 세상을 향하여 서정을 잉태한, 마음의 탯줄을 더듬어 찾아간다. 일렁이는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나 강물처럼 변함없이 흐르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 돌담 옆 작은 꽃 피었던 산 아래 고향 마을은 모두 상처의 기억을 넘어 흘러간 슬픔을 더 큰 사랑으로 잇는 화해의 지평을 연다.
“유년의 추억은 지금의 자아를 되비추는 거울로서 순수한 얼굴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며 그 어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면서 ‘더 큰 사랑’을 발명하는 데 계기로 작용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유년은 지금의 상처를 회피하기 위하여 향수를 선택하는 도피 의식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유년을 불러 세움으로써 현재의 자아를 반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적 기획이다. 그때의 기억은 나르시시즘이나 노스탤지어에 그치지 않는다.”(구모룡 문학평론가)
▶ 감당하기 쉽지 않은 사연을 품고, 그리움으로 기울어진 삶
이번 시집의 표제작은 「나는 기우뚱」이다. 얼핏 가벼워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니, 이지윤의 시는 삶의 무게로 아득히 기울어져 있다. 부재한 어떤 그리움에 몸 기울이는 시인의 궁극의 서정이 한 편의 시에 무겁게 쌓여있다.
내가 홀로 길을 걷거나 차를 마실 때
그대 지척인 듯 아득한 거리
처음부터 또는 내 죽고 난 후에라도
끊어지지 않을 영원의 거리
나는 기우뚱, 그대 향해 기울어져 있으니
세상의 저울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무게
어쩌다 얼굴을 마주할 찰나를 영원 삼아
무거운 그리움의 배후가 되어
이 안타까운 궤적을 돌고 있는 것이다
― 「나는 기우뚱」 부분
“시인은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지구의 기울어진 순환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사연들’을 품고서 ‘그리움’으로 ‘기우뚱’ 기울어진 삶을 사는 시적 화자의 생과 포갠다. 한편으로 불가능한 사랑의 표백이고 다른 한편으로 근원을 향한 존재론적 갈망이다. ‘아득한’ 거리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하지만 ‘지척인 듯’ 마음을 이끄는 역설의 긴장이 있다. ‘어쩌다 얼굴을 마주할 찰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대’야말로 영원에 가까운 궁극이다. 어디에도 없는 당신을 향한 시적 자아의 기울어짐은 상처와 고통을 동반한 ‘무거운 그리움’이다. 그 순수한 대상의 인력으로 비록 기울어진 마음이지만 그의 존재로 인하여 생은 부서지지 않는다.”(구모룡 문학평론가)
시인은 새로운 그리움을 갈망하며 날마다 시작(詩作)한다.
저자 소개
이지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하여, <주변인과 시>, <주변인과 문학> 편집위원을 지냈다. 2018년 ‘시와 소리’ 전국문학낭송가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유튜브 계정 ‘이지윤의 시와 함께’를 통해 직접 시를 낭송하고 있기도 하다. 시저녁작가회를 거쳐 현재 부산시인협회,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목요시선동인 대표를 맡고 있다.
차례
시인의 말 하나
1부 자벌레로 걷다
애인 | 자벌레로 걷다 | 비탈에 선 나무에게 | 동백, 지다 | 지상의 길이 막히면 | 귀를 여니 | 달안에서 추억을 본다 | 청동물고기 | 사랑 1 | 사랑 2 | 은하수 | 청사포 | 부재중 | 인드라망 | 가을숲에 들다 | 사랑은 | 노란 신호등
2부 절반의 얼굴
복수초 피다 | 절반의 얼굴 | 바람 부는 날 | 그 집 | 길 위에서 | 수련 | 찔레꽃 | 귀걸이 | 신발 | 기척 | COVID-19 | 선상에서 | 꽃을 줍다 | 밀물이 썰물에게 | 리젠시빌라 | 병실 | 1302 | 이별 앞에서도 담담한 | 꽃과 별 사이 | 젖은 아침 그리고 | 그대
3부 그리움의 거처
그리움의 거처 | 아버지의 달 —센베이 과자 | 열두 살 송편 | 달개비꽃 | 새벽강 —어머니 | 푸른 기억 | 엄마는 색맹이다 | 하늘바닥 | 물의 지문 | 아나, 차비 보태라 | 정지된 테레비 | 달의 노래 | 산굼부리 | 그네 | 몸살 | 붉은 저녁의 강 | 담쟁이 1 | 담쟁이 2
4부 지극한 사랑
지극한 사랑 | 나는 기우뚱 | 아젤리아, 사랑의 기쁨 | 깡통 | 등꽃 | 가을 립스틱 | 안드로메다의 기억 | 붉은 새 | 드라이플라워 | 풍경 | 한실 저수지 | 빈 바다 | 강의 무게 | 겨울 여행 | 떠도는 섬 | 유리창을 닦으며 | 석양 | 시인에게
해설 사랑과 슬픔의 궁극-구모룡(문학평론가)
나는 기우뚱
이지윤 지음 | 144쪽 | 127*188 양장 | 978-89-6545-717-6 |
12,000원 | 2021년 5월 6일 출간
이지윤 시인의 첫 시집이 산지니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04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래로 <주변인과 시>, <주변인과 문학> 편집위원을 지내며 시작(詩作) 활동을 이어왔다. 1부 ‘자벌레로 걷다’에는 사랑과 슬픔을 깊은 사유로써 노래한 열일곱 편의 시가, 2부 ‘절반의 얼굴’에는 담담한 시선으로 삶의 서정을 읊은 스무 편의 시가 담겨 있다. 3부 ‘그리움의 거처’에서는 그리움의 궁극적 대상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열여덟 편의 시로 펼쳐지고, 4부 ‘지극한 사랑’은 섬세한 감수성이 녹아든 열여덟 편의 시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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