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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소설 새 지평 열고, 루게릭병 투병한 소설가 정태규 타계

by euk 2021. 10. 15.

부산소설 새 지평 열고, 루게릭병 투병한 소설가 정태규 타계

 

| 빼어난 소설가로 부산소설문학상, 향파문학상 수상 “글과 투병하는 불굴의 삶으로 존재의 품격 보여줘”

 

빼어난 문장의 소설가로 10년간 루게릭병 투병을 해오다가 14일 타계한 정태규 소설가. 부산일보DB

 

부산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10년간 루게릭병 투병을 해오던 정태규 소설가가 14일 오후 1시께 타계했다. 향년 63세.

 

그는 무엇보다 빼어난 소설가였다. 휴머니스트이자 인문주의자였으며 삶을 남김없이 살고자 했으며 ‘인간은 실패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병마 속에서도 불굴의 숭고한 삶을 살다가 떠났다.

 

1958년 경남 합천 출생인 그는 부산대 국어교육과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국어교사를 지냈으며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1990년대 이후 부산 문단에서 이복구, 조갑상 등과 함께 요산 김정한 이후의 지역문학의 지평을 섬세하고도 힘차게 열어나갔다.

 

그의 소설 문장은 빛나는 것이었다. 1994년 출간한 첫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은 2014년 <청학에서 세석까지>란 이름으로 재출간됐는데 거기에 실린 문장들은 고통스런 울부짖음과 빛나는 희열이 온전히 느껴지는 아찔하고 서늘한 것들이었다. 그가 쓴 것처럼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써늘하고 안타깝고 거의 감동에 가까운 어떤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문장들이었다. 1996년 많은 선후배들을 뒤로하고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을 받은 것은 그런 문학적 아우라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에 시를 쓰기도 했다는 그는 “자연을 묘사하면 저절로 신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고향인 경남 합천의 산천이 아마도 눈 시린 그의 문장의 산실이었을 것이다. 탁마한 그의 문장들은 이데올로기와 광주, 삶과 역사의 문제에 깊이 스며들면서 작품 세계를 직조했는데 2007년 출간한 두 번째 소설집 <길 위에서>는 이듬해 향파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심사를 하는 모습. 오른쪽이 정태규 소설가, 왼쪽은 박명호 소설가. 부산일보DB

 

그는 인문주의자였으나 책상을 벗어나 꿈틀거리는 삶 속으로 육박하고자 했다. ‘머리로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우리 인생의 기미를 알아채려는 원시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삶과 작품을 지향했다. 그는 많은 공부를 했으나 앉아서 고담준론을 논하지 않았다. 한 번도 같지 않은 삶을 온전히 살고자 했고, 그 삶의 비밀을 캐기 위해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그는 한 작품에서 ‘신은 있지만 이제 신은 더 이상 인간에게 관심이 없소. 신은 인간을 만들어놓고 버렸소’라고 썼는데 그 허무맹랑하고 텅 빈 자리 위에 그의 문학을 뜨겁게 세우려 했다. 그것이 그가 붙잡았던 ‘소설가’라는 이름이었다.

 

2012년 그는 청천벽력 같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부산에서 지팡이를 들고 나들이를 하다가 이윽고 침대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아들 둘이 대학을 다니던 서울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2012년 산문집 <꿈을 굽다>, 2014년에는 세 번째 창작집 <편지>와 평론집 <시간의 향기>를 잇달아 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의 하나가 ‘출간’이라고 했는데 병마의 절벽 앞에 서서 세 권의 책을 새로 출간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작가의 증명이었다. 그는 누워서 안구 마우스로 컴퓨터를 조작해 사지 멀쩡한 지인들에게 영화 파일을 보내주었고, 많은 ‘페친’들을 만났으며, 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6년 문우 최영철 시인의 권유에 따라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7년에는 소설과 산문이 들어 있는 <당신은 모를 것이다>를 출간했다.

 

2014년 루게릭병 투병 때 모습. 이때는 휠체어에 앉을 수 있는 상태였다. 부산일보DB

 

그는 “흙의 영혼이 풀과 나무와 꽃의 영혼이 되고, 그러다가 또 다른 동물의 영혼도 되었다가 하면서 지구의 영혼은 끝없이 순환하고 있다”며 “그런 끝없는 순환 속에서 지구의 영혼들은 스스로 맑아지고 스스로 숭엄해지고 있다”고 했었다. 그는 그런 톱니바퀴 같은 회전을 ‘숭엄한 순환’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는 그 순환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부인 백경옥 씨는 “지난해 1월 담석 수술을 한 이후 기력이 많이 쇠해져 점차 건강이 나빠졌다”며 “힘들게 투병하면서 육체와 정신의 경계도 넘어선 아이들 아빠는 이제 편안해진 것 같다”며 슬퍼했다. 그의 친우이자 문우인 구모룡 평론가는 “그의 때 이른 육체적 죽음이 너무 아깝다”며 “그는 글과 삶으로써 존재의 품격과 숭고한 인간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실(지하 2층)에 차려졌다. 발인 16일 오전 9시 40분. 장지 서울 추모공원 화장장-분당메모리얼파크.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 산지니에서 퍼낸 정태규 소설가 작품 목록

 

*2008 이주홍문학상 수상도서

정태규 소설집

정태규 지음 ∣ 336쪽 ∣ 10,000원 ∣ 2007년 11월 ∣ 978-89-92235-25-9

 

정태규 작가의 두 번째 창작소설집. 돌아오지 않는 아내와 인터넷 사이트만을 배회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린 「정글게임」, 아내의 죽음을 아내와 함께 여행한 공간을 여행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시간의 향기」 등 다소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인간과 시대,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했다. 

 

 

 

 

 

 

 

정태규 산문집

정태규 지음 ∣ 259쪽 ∣ 15,000원 ∣ 2012년 12월 ∣ 978-89-6545-208-9

 

교직을 겸하고 있는 작가의 교단일기와 부산일보에 연재되기도 했던 독서일기를 담은 책이다. 편지글과 일상글을 퐘한 60여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을 창작하게 된 계기와 함께 소설 쓰기의 원동력, 글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일상의 시간을 탐문하는 소설쓰기의 미학

정태규 지음 ∣ 224쪽 ∣ 20,000원 ∣ 2014년 10월 ∣ 978-89-6545-268-3

 

저자의 비평은 대부분 부산 지역 작가들의 다양한 소설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데, 이는 지역작가에 대한 정태규의 애정을 엿볼 수 있어 평론집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정태규 소설집

정태규 지음 ∣ 348쪽 ∣ 2014년 10월 ∣ 978-89-6545-269-0

 

중견소설가 정태규의 작품세계의 원형을 이룬 첫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의 개정판. 표제작인 「청학에서 세석까지」를 비롯하여 열세 편의 소설들에서 작가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인간됨의 문제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2015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정태규 창작집

정태규 지음 ∣ 208쪽 ∣ 13,000원 ∣ 2014년 12월 ∣ 978-89-6545-278-2

 

주소 없는 마음에 띄우는 애잔한 편지 한 장

단편소설 8편과 콩트 6편을 묶었다. 작품 한편 한편이 지닌 개성과 싱싱한 생명력을 통해 고통에 굴하지 않는 작가의 뜨거운 창작혼을 드러내고 있다.

 

 

 

 

 

 

 

 

 

▶ 기사 출처 : 부산일보

 

부산소설 새 지평 열고, 루게릭병 투병한 소설가 정태규 타계

빼어난 문장의 소설가로 10년간 루게릭병 투병을 해오다가 14일 타계한 정태규 소설가. 부산일보DB 부산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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