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후기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 에바 틴드 <뿌리> 서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7. 7.

 

뿌리는 한국계 덴마크 소설가 에바 틴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에바 틴드는 한국의 부산에서 태어나 1살에 덴마크로 입양되었고, 20년 후 그녀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아 홀로 한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한국은 너무나도 낯선 나라였다. 한국어 이름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한국어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의 혈통적 기원은 깊은 심연 속으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나의 존재적 근원은 무작위로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에바 틴드는 이후 작품을 통해 기원의 개념을 탐구하고, 각 사람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에 대해 파고들어간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본성 혹은 근원을 이야기할 때 나의 ‘뿌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때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뿌리’는 자신의 민족, 조상 혹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선천적인 성향이나 기질, 자신을 구성하는 국가 정체성 등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혈통적 근원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대지의 기운을 받아 자라나는 생명도 있지만, 물속에서 부유하며 살아가는 생명도 있다. 『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좁은 의미로서의 뿌리를 넘어 인류 전체의 뿌리, 개개인이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막연하고 정의할 수 없는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여행을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는 한 공간에서 태어나지.
세월이 흘러 우리가 그 공간을 벗어나게 되면 그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어버릴 거야.
하지만 우리 집은 비록 네가 떠났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았단다.
심지어는 작은 못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집 안의 물건들이 하나하나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는구나.

 

이들의 여행은 딸 수이가 아버지인 카이에게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카이는 한국인과 덴마크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한국인인 아버지에게 버려졌다는 상처를 지니고 있다. 방랑자 기질이 가득하고 여행을 좋아하던 청년 카이는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되어 홀로 딸을 키우게 되고, 건축설계사로 자리를 잡고 코펜하겐에 뿌리를 내린다. 자신의 삶 대부분을 딸을 위해 살아온 카이는 수이의 독립 선언에 당황하면서도 그의 독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갑자기 찾아온 딸과의 이별에 상실감을 느끼는 카이. 그는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상기시키며 인도의 오로빌로 여행을 떠난다.

 

‘미리암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녀 자신조차도.’
나는 그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글을 써서 그녀를 내 몸 밖으로 내보내는 수밖에.
나는 그녀에 관한 갖가지 기사와 문서를 모아 가제를 붙였다.
‘어머니’. 그렇게 하자 글이 저절로 써졌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말과 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한편, 수이는 독립과 함께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남자친구의 바람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인도로 떠난 아버지에게 자신의 귀환을 알리지 않는다. 수이는 엄마 미리암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하고 이곳으로 한 번 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더부룩한 배를 감싸 안고 달라르나로 향한다.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미리암의 보금자리에 잠시 머물게 된 수이. 미리암은 자신의 예술 프로젝트 로디니아를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 수이에게 청한다.

 

“지금 아이를 낳는다면 저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모험은 하기 싫습니다.
반면, 운명을 거스르는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만약, 제가 부모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당신이 이 아이를 입양하시겠습니까?”

 

쉰하나의 나이에 아이를 임신하게 된 미리암.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기를 포기하고 예술가로서의 커리어를 선택한다. 그렇게 카이와 수이를 떠난 미리암은 자신의 예술가적 입지를 다져줄 수 있는 남편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고, 사별을 겪은 후 달라르나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곳에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공개될 천국, 로디니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미리암은 세상과 단절시킬 담장을 쌓기 시작한다. 달라르나에서 만난 이웃 마틸데와 갑자기 찾아온 딸 수이. 미리암이 새롭게 잉태할 로디니아는 어떤 모습일까.

세 사람은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존재의 근원에게 부정당했다는 상처를 품고 있다. 이런 그들이 또 한 번 각자의 상실을 안고 자신의 뿌리를 탐색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아픈 상처를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품고 한국으로 떠나는 카이, 자신의 근원을 글로 써내려가며 탐구하는 수이, 예술에 몸을 불사르며 자연의 근원 속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미리암. 어쩌면 평생을 탐구해도 알아낼 수 없을 자신의 심연을 향해 뛰어드는 이들의 여정은 세계의 풍경과 함께 바뀌어나가며 자신의 자아를 탐색하게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인물은 카이와 미리암의 아이인 수이에게 있다. 수이는 연인과의 이별 이후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 외딴 숲인 달라르나로 향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태어나게 한 근원인 미리암이, 자신이 돌아가고자 하는 근원은 아님을 깨닫고 달라르나를 떠난다. 하지만 수이는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기원을 찾아 그녀는 또다시 떠난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던 나라, 한국의 마라도로. 마라도의 해녀들과 함께 생명의 근원인 바다 속에 뛰어든 수이는 편안함을 느끼며 형용할 수 없던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파생했다고 해서 부모의 옆자리에 뿌리내리지는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직조해나가며, 스스로 뿌리내릴 자리를 찾는다. 가끔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충동적인 선택을 해가면서. 어쩌면 평생을 부유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뿌리, 근원을 탐색하는 것은 나를 알아가고 나의 삶의 방식을 정립하기 위한 끊임없는 과정이다.

세 사람은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있던 존재를 상실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탐색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비단 카이, 수이, 미리암이 겪는 특수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몇 번이고 상실을 경험할 것이고, 몇 번이고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뿌리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삶의 근원적 장소로 돌아가 자아를 탐구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심연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뿌리

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의 장편소설. 부산에서 태어나 1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그녀는 소속감에 대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과정에 대해서 탐구한다. 예술가 미리암,

www.aladin.co.kr

 

 

뿌리 - YES24

어떤 일은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기도 한다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별과 여행을 거듭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의 장편소설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1살 때 덴마크로 입

www.yes24.com

 

 

뿌리 - 교보문고

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 장편소설 | ▶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별과 여행을 거듭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세계적인 아티스트 미리암은 카이와의 만남으로 수이를 낳게 되었지만 성공적인 예

www.kyobobook.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