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변화의 현장에 있음을 체감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인지하든 하지 않든 세상은 꾸준히 변한다.
그 조용하지만 큰 변화를 위해 여기, 중국 공산당의 압제에 맞서 젠더 평등을 외치는 이들이 모였다. 다섯 명의 페미니스트, 이른바 ‘페미니스트 파이브’.
사실 중국 정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마오쩌둥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표방했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 경제개혁을 거치면서 ‘국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의 권리를 탄압해 왔다. 때문에 여성들은 교육, 고용, 퇴직 등의 사회생활 전반에서 불평등을 겪는다.
오랜 기간 중국 사회를 연구해 온 저널리스트 겸 학자인 저자 리타 홍 핀처는 페미니스트 파이브를 만나 그들의 활동을 기록, 이 책에 담았다. 나아가 중국의 현 주석 시진핑 집권하 심화되는 권위주의 체제를 변호사, 노동운동가 등 사회 여러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폭로한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중국 페미니스트 활동 행적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의 활동 배경에는 중국 사회의 전통적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여성혐오가 초래하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중국뿐만 아니라 이란, 튀르키예, 필리핀 등 여러 나라에서 여성 혐오적 독재자들이 21세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음을 짚어준다.
앞서 소개한 페미니스트 파이브는 2015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하루 앞두고 버스와 지하철에서 성희롱 방지 스티커를 배부하려다 공안에 체포되었다. 이들의 비윤리적인 구금 실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세계 곳곳의 주목과 지지를 얻으며 중국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모바일화’된 공동체를 구축하여 이미 국경을 넘나들며 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도 중국 내 대학 입시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고, 입사 후 여성은 남성보다 이른 나이에 퇴직해야 한다. 가정에서 여성은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후 노인을 돌보는 것 역시 그들의 몫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여성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소위 ‘조화로운 가족’을 이루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차별적 분위기가 시진핑 집권 이후 한층 심화된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기초한다고 본다.
… 나는 여성을 예속시키는 것이 공산당 독재와 ‘체제 안정성’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시진핑도 세계의 다른 철권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공산당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본다. -p.237
이처럼 사회 곳곳에는 젠더 차별과 폭력이 만연해 있고 그것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성들은 더 이상 이에 군말 없이 수긍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결혼, 임신과 출산, 양육의 굴레로만 내몰리게 되는 여성 권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전 세계적으로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맞선다.
한 번이라도 페미니즘적인 각성을 경험하고 공산당의 선전을 의심하게 된 여성은
그 경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p.79
물론 개인이나 소수의 단체가 국가에 대항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처럼 중국 정부는 여성 인권 운동가들의 활동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한다. 페미니스트 관련 소셜 미디어 계정을 검열하고 그들의 가족을 찾아가 위협하는 등 정부의 통제는 날이 갈수록 삼엄해진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깨어난’ 여성들은 이것이 부당함을, 부당한 대우가 여성의 몫이 아님을 역설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던 점은, 혹시 내가 그 빅브라더에 길들여져 있지는 않은가였다. 잊힐 만할 때쯤 번번이 나타나는 성차별과 혐오범죄가 뒤범벅된 뉴스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있는 대로 치민다. 하지만 그 뉴스 이후엔? 또 잊는다. 브라운관을 향해, 세상을 향해 화를 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에이, 내가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러나 저자는 그 당연시됨을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줄 모르고 당연시 여겼던 것들을 하나하나 타파해 나가야 한다고.
그야말로 우리의 몸은 전장(戰場)이다.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도 우리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수치스러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은 그들이 ‘하필 그 장소에 가서’, ‘잘못된 방식으로 옷을 입었기에’, 혹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피해를 입은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직장 내 성희롱은 “농담이니 감내해야” 하며 인구의 고령화와 노동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를 낳으라면서 아이를 낳으니 해고되는 지경에 이른다. 여성은 살아남기 위하여 이 전쟁터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세계 여성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다. 이 여성들이 기존의 가부장적 체제를 거부하고, 조직적으로 공산당의 탄압에 맞선다면 이것은 필히 중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경제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사회 변혁을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세상은 변할 것이다. 페미니스트 파이브는 더 이상 다섯 명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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