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된 노동, 변경된 계급> 새로운 계급형성 위해, 지나온 계급형성 돌아봐야
노동계급의 현재 모습에 비판적인 사람들, 새로운 노동계급 형성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생애와 노동운동>(유형근 지음, 산지니)을 추천한다. 이 책은 “1980년부터 오늘날까지 울산의 대공장에서 약 40년에 걸쳐 일해 온 1세대 산업노동자들의 생애와 생활 전반을 아우르면서 그들이 하나의 조직된 집단적 행위자로서 스스로를 만들어 간 역사적 과정을 탐구”한 책이다.
계급의 네 가지 차원
“노동계급 형성”은 “자본축적의 변화와 임노동관계의 변형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과 퇴보, 재형성과 변형의 과정을 겪는다.” 저자는 이러한 노동계급 형성을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과 생산관계의 구조적 위치, 작업장 안팎의 계급상황, 집단적 성향과 문화적 일체감, 조직과 집합행동이라는, 서로 분석적으로 구분되는 네 가지 계급 층위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파악”한다.
탐구의 요약 : 계급 형성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금속산업 대공장 노동자의 구조적 계급형성은 권위주의 국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과 더불어 나타난 1970년대 현대그룹의 자본투자에서 본격화됐다.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자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이 탄생함으로써 1987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조직’ 층위의 계급에서 단절적 변화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계급상황이 작업장 안팎에서 동질적이었기 때문에 연대주의적 잠재력이 강했으나, 자본에 의해 구조화된 노동시장 분절구조에 조응해 동일 기업을 기준으로 조직적 경계가 그어졌다.
1990년대에는 계급상황이 크게 변했다. 대기업에서는 내부노동시장이 제도화됐고, 고도성장과 제도화된 단체교섭으로 임금소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기업복지가 확대됐다. 대공장 노동자들이 소비 영역에서 중상층화 되고, 노동자들의 주거공동체들이 해체되면서 노동계급의 문화적 동질성이 희석되고, 노동운동과 지역사회가 융합될 수 있는 공간적 기반도 약화됐다. 그리고 1997~98년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범주·성향·집합행동 수준 모두에서 계급이 변형됐다.
이후 계속된 기업의 성장과 강력한 노동조합 교섭력의 결과로 2010년대에 오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는 ‘풍요로운 노동자’가 됐다.
한편 2000년대 이후 고용 불안정성이 일상화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의 노동 분절화 전략에 따라 출현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고용의 완충장치인 ‘내부의 타자’로 여겼고, 작업장 내 계급연대는 좌초했다.
널리 추천할 만한, 훌륭한 책
충분히 검증된 책도 잘 안 읽는 나도 읽지 않을 수 없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보기 드물게 잘 쓴 책이다. 학술 교재로는 물론이고 교양서로도, 활동가 학습용으로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주제 자체가 상당히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은데도 훼손이나 왜곡 없이 내용을 쉽게, 잘 전달한다. 저자가 스스로 충분히 소화한 내용을 짜임새 있게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서술하고 적확한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대중서라서’ ‘쉽게 쓰기 위해서’ ‘지면의 제한으로’ 내용을 훼손하거나 왜곡할 수밖에 없었다는 흔한 변명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이론(일반 지식)과 분석 대상에 대한 지식(영역 지식)이 높은 수준에서 잘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학자들의 경우 이론(일반 지식)에 기울어 영역 지식이 분석 대상 분야 사람들의 상식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세부 사실이 아니라 이론(일반 지식)이 중요하다고? ‘예제 풀이’도 똑바로 못하는 사람이 만든 ‘수학 공식’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반대로 특정 영역 전문가의 경우 이론(일반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때로는 너무 넘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론(일반 지식)에 대한 본질적 이해 없이 많은 이론(일반 지식)을 가져와 잡탕을 만드는 경우, 뭔가 그럴듯하고 있을 것 같지만 포장만 화려한 경우다.
굳이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들자면, 공장 생산직 노동자에게만 관심을 둔다. 비공장 노동자도, 사무직 노동자도 배제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산업구조도, 계급구성도 변했건만 관성은 계속된다. 이 책만의 한계라기보다는 우리 노동운동과 노동연구의 한계라 할 것이다.
구조 변동이 사상됐다. 계급의 네 차원 중 가장 심연이라 할 수 있는 구조 차원에서는 별다른 변동이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분석의 편의상 그럴 수 있으나, 실제 그러할까? 이 책의 주요 분석 대상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특히 울산공장은 지난 40년간 산업·가치사슬 내 위상이 변화해 왔다. 산업의 변동, 가치사슬의 변동, 그리고 이것이 미친 영향은 분석에서 제외됐다. 과거 분석에서는 사상될 수 있을지라도 앞으로 그럴 것인가?
산업전환의 시대, 새로운 희망을 꿈꾸자
바야흐로 산업전환의 시대다. 산업의 근본 구조부터 바뀔 것이고, 따라서 계급도 재형성될 것이다. 구조변화는 새로운 조건을 형성할 것이고, 이에 대한 주체의 대응과 상호작용해 현재와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다. 현재의 계급형성이 노동 분절에 적응한 결과인 것처럼.
현재의 계급형성에 비판적이라면 산업이, 구조가 유동적인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구조변화에 개입해야 한다. 현재 고용돼 있는 사람들, 현재 조합원의 고용보장에 머물러서는 더 퇴행할 것이다.
애써 담당하게 기록했지만, 1세대 노동자들의 계급형성에 대한 묘사가 슬픔이었다면, 다음 세대 계급형성에 대한 기록은 기쁨으로 가득 차길.
“함께 사는 세상, 그래서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든 중심 세력에 대한 찬미가 되길 소망한다.
박근태 webmaster@labortoday.co.kr
▶출처: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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