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를 맞이한 <문학/사상>의 표제는 '대양적 전환'입니다. 대양적 전환은 칼 슈미트의 개념으로, 인류가 하천에서 연안, 그리고 대양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표제 아래 <문학/사상> 10호는 한국문학을 대양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사유하고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14일, 10호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직접 원고를 쓰신 구모룡, 김만석 문학평론가를 통해 특집 원고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재미나고 유익했던 그 현장을 지금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구모룡 평론가: 이번 호 주제는 '대양적 전환'입니다. 대양적 전환은 칼 슈미트의 개념입니다. 서구의 대양적 전환은 16세기인데, 우리는 일제 시대로 인해 전혀 가능하지 않았고, 해방된 뒤에도 한참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미군정 시절에도 맥아더 라인 이상 나갈 수 없었지요. 한국 전쟁 당시에도 부산항으로 오가는 배들은 일본 배들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UN군이 들어오고 우리가 대양으로 나가며 대양적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런 후, 1960년대 이후에 대양적 경험을 글로 쓴 작가들이 등장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해양을 다룬 문학을 '해양문학'이라 해왔지만, 이제는 해양문학이라는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한국문학 일반으로 심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대양적 전환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한 사람은 육당 최남선입니다. 육당이 자유 대양을 이야기했지만, 일본에 병합이 되면서 육당의 기획은 좌절됩니다. 육당은 해방 이후에 그런 생각을 또다시 펼칩니다. 이런 과정에 일제시대에 일본이 발명한 북방, 동양, 남양, 남방 같은 일본 제국의 구도 속에 우리가 있었습니다. 육당의 생각을 이어받은 작가 중에는 이석훈이라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김만석 선생님께서 글을 쓰셨는데요, 글을 쓰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김만석 평론가: 선생님이 아까 대양적 전환이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를 1953년, 한국전쟁을 경유하고 난 다음에야 경험적인 차원에서 가능해졌다고 하셨는데 제가 쓴 글은 한국전쟁 직전까지를 다룹니다. 전쟁 직전까지 한반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 해양에 대한 인식 체계와 상상력이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부분들을 한번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화는 이석환이라는 분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이 증폭된 담론 중 하나를 보통 대동아공영권 담론으로 보는데, 그 담론 가운데서도 남방 담론이 1937년 이후 폭증합니다. 당대 잡지, 신문, 작가 할 것 없이 조선에 살고 있던 지식인들 대부분 한 번씩은 이 남방 경험에 대해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잡지들의 독자 투고란에서도 일종의 해양시 형태가 폭증합니다.
따라서 저의 관심사는 1937년부터 1945년까지 해양에 대한 상상력과 인식이 폭증했는데 해방 이후로는 어떻게 됐을까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부분적으로만 해양에 대한 상상이 나타나고, 45년 이후부터 적어도 53년 이전까지는 담론 안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고 해방 이후에 문학가들이 쓴 시들은 대부분 강의 시로 변환됩니다. 그래서 제국의 바다를 상상했던 것에서 한반도라고 부르는 영토적 경계선으로 상상력이 축소되며, 문학적 형태도 폐쇄적인 방식으로 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폭증되던 담론들이 해방되고 딱 축소되는데 이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 에너지는 어떻게 해소되었는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 메이지 이후에 일본은 해양 국가로 갑니다. 1910년대부터 일본은 남방 정책을 펼쳤습니다. 중일 전쟁을 계기로 해서 일본은 더 적극적으로 남방 또는 남양으로 내려가야 했고 이 과정에서 남방, 남양이 실질적인 점령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속에 우리 조선의 문인들이 남방을 찬양하고 남방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대동아공영권 국책에 따르는 것인데 오늘날 그런 행위를 친일이라고 부르죠. 그러나 그 대단했던 열기는 해방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방 이전에 남방이 열기를 뿜으며 이미지로, 작품에 등장하지만 이게 대양적 측면인 건 아닙니다. 동중국해까지가 동아시아 지중해이기 때문에 제국의 바다 속에 있는, 아시아 지중해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만석 선생님 글은 대양적전환까지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양에 대한 열기가 해방이 되고 나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과정이 있어야 또 대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시죠.
김만석 평론가: 1920년대 일본은 남양청이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그 지역에 대한 관할 정책들을 수행하게 됩니다. 남양청을 세울 때 독일과 섬을 하나 두고 전투를 벌이는데 거기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남양 담론이 조선의 언론에 집적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시기가 1920년대 중반부터로 1937년이 되면 폭증하게 되고 열기가 일어나는 형태로 갑니다. 이런 남양과 남방에 대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체화해서 문학적 활동의 계기로 삼으신 분이 이석훈이라는 분인데, 이 분은 소설도 쓰시고 시도 쓰시고, 언론사에서도 일하시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합니다. 이분의 텍스트를 가로지르는 핵심 소재는 사실은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이지 대양은 아닙니다.
이분은 황해도 출신인데, 황해도 앞바다에 쑥섬이라고 애도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섬이 있습니다. 이분의 부친이 이곳에서 건새우 공장을 하셨고, 건새우 공장 이야기가 소설에 나옵니다. 그래서 이걸 해양문학의 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면서 자료를 계속 찾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석훈 씨가 쓴 소설 중에 10년 후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이 아주 특이합니다. 일종의 시간 SF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거기서도 남양을 갑니다. 10년 후가 무엇을 뜻하냐면, 소설을 쓰는 시점이 1944년인데 그 시점에서 10년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때는 대동아 전쟁을 일본이 승리한 것으로 썼는데 지금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지탄을 받을 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남양 지역으로 가서 환영을 받는 이야기인데, 이미 조선인들이 남양에 진출을 해 있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식민지 조선이 더 이상 아니고 대동아 공영권을 이룬 상태를 상상하고 남양으로 가는 이야기로 보는 독특한 설정의 소설입니다. 이처럼 남방 담론들로 쓰인 소설이 대부분 판타지입니다.
구모룡 평론가: 과거 우리의 남양 쪽 경험이 엄청나게 풍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조선인 가운데 그쪽으로 징용을 간 사람들이 글로서 자료를 남긴 게 거의 없다는 겁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태평양으로 군수문자를 실어 나르는 화물선에서 인부 역할을 하는 등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석훈 씨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큽니다.
김만석 문학평론가: 해방 이전에 남방 지역은 일종의 판타지로 구성되어어 있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이제 두 가지로 된다고 봐야 되는데 하나는 판타지가 일부 남아 있고, 다른 하나는 고통의 상황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합병으로 갔던 사람들 중 일부는 한편으로는 자발성을 가지고 있는 측면도 있거든요. 갈 때는 일본 군인이 되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패전하고 난 후에는 귀환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 과정에서 일본이었다는 정체성을 탈색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남양 경험에 대한 수기집이나 증언집에 귀국과정에 일종의 판타지 요소를 넣습니다. 물에 빠져 엄청 고생을 해 겨우겨우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같은. 회귀담이 해방 이후 이러한 회귀담이 주를 이루는데 그 편수도 얼마 안 됩니다. 책자에 실려 있는 건 한 4평 정도밖에 되지 않지요.
구모룡 평론가: 해방이 되면 오히려 일본이 가두어뒀던 바다가 해방이 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들여다보면 전혀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관부연락선>의 무대는 중국으로, 일본으로 관부연락선을 통해 펼쳐지다가 결국은 한반도 남쪽에서 유태림이 실종되는 형태로 귀착됩니다. 결국 관부연락선 이상을 넘어서질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김만석 선생님이 연구 중인 남양은 그보다는 훨씬, 이제 아시아 지중해까지 내려가는 형국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해운회사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만든 조선 주식회사를 우리가 받아들여 가지고 대한해운공사를 만드는데 그때 일본한테 배를 내놓아라 해서 받은 배가 몇 채 안 됩니다. 대한해운공사에서 처음 나간 배가 고려호인데 그게 1952년, 한국전쟁 기간에 대양으로 나갑니다. 대한해운공사 중 가장 큰 배가 남해호인데 박인환 시인이 이걸 타고 미국에 간 게 1955년입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대양적 전환은 한국전쟁 기간에 이루어집니다. 해방되고도 한동안 우리는 여전히 일제시대의 테두리 안에 갇혀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양적 전환이라는 것은 일본 열도를 넘어서고 동남아를 넘어서고 태평양, 인도양과 우리가 접속하는 걸 말합니다. 물론 한국전쟁 기간에 이것이 이루어지는데 대한해운공사가 일본, 미국 중고배를 사들이며 늘립니다. 1960년대에 오면 상선과 원양어선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의 대양적 전환이 확실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다음에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해양문학이 등장합니다. 그게 천금성, 김성식입니다. 결국 귀결이 해양 문학에 맞춰지는, 이런 구도의 이야기는 그동안 해왔습니다. 해양문학도 더 이야기해야겠지만 이제는 한국문학에서 어떻게 대양을 이야기할 것인가도 얘기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문학사는 너무 한반도에 갇혀 있는 문학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북토크를 위해 산지니를 찾아주신 많은 독자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가을과 겨울, 산지니에서는 더욱 풍성한 북토크를 준비 중입니다. 어떤 책과 저자가 독자분들을 찾아갈지, 산지니 블로그와 SNS를 지켜봐 주세요.
『문학/사상 10』 구매하기
'산지니 책 > 비평지 문학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문학의 대양적 전환, 『문학/사상』 10호_대양적 전환 :: 책소개 (9) | 2024.11.04 |
---|---|
✉ 『문학/사상』 10호 출간 기념 북토크 초대장 (4) | 2024.10.30 |
반딧불이와 같은 문학의 희망을 말하다 :: 『문학/사상』 9호 발간 기념 북토크 후기 (0) | 2024.05.28 |
<문학/사상> 9호 발간 기념 북토크, 함께해요! (0) | 2024.05.22 |
<문학/사상> 신인비평상 공모 안내 (0) | 2024.04.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