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10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특별히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삼일절의 의미가 더 뜻깊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106주년 삼일절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세 분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잊혔던 독립운동가들의 생애와 활동이 하나둘 드러나고 알려지고 있어 무척 반갑습니다.
한두 명의 뛰어난 독립운동가만으로 우리의 광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 무명의 독립운동가의 삶이 앞으로 더 많이 세상에 알려지길 기대합니다.
1. 임시정부의 막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파리로 가다 | 독립운동가 서영해
1902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의 나이로 3.1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일제의 수배를 피해 상하이로 건너갑니다. 상하이 망명 이후 '임정의 막내'가 되어 상하이에 1년 6개월간 머뭅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의 실상을 유럽에 알릴 통신원이 필요했던 임시정부는 1920년 서영해를 프랑스로 유학을 보냅니다. 유학 초기에는 부친이 부쳐준 생활비로 근근이 공부를 하였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끊겨 재정적 지원 없이 어렵게 유학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영해는 12년 교육과정을 6년 만에 이수할 정도로 학업에 큰 열의를 보였습니다.
서영해는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합니다. 서영해는 고려통신사를 통해 일제의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고 왜곡된 한국의 이미지를 바로잡는 데 주력했습니다. 한편 서영해는 프랑스에서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불어로 쓴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을 집필하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프랑스 언론의 높은 관심으로 1년 만에 5쇄를 인쇄할 만큼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해방 이후 서영해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상하이에서 두 번째 부인 황순조와 생이별을 하게 된 서영해는 당시 북으로 납북된 임시정부 인사들과 연락이 닿아 북한으로 넘어 갔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기록에도 서영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어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입니다.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그의 삶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정상천 저자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프랑스 경제관계 연구를 위해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을 매일 같이 드나들다가 ‘Seu Ring-Hai’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국내와 프랑스에 남아 있는 서영해의 자료를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지인들을 직접 취재하여 서영해의 삶과 독립운동기를 정리한 책이 바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입니다. 이 책에는 서영해가 고려통신사에서 활동하며 임시정부에 보낸 서한과 보고서, 유럽에서 발간한 홍보물 등 쉽게 만나기 어려운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 조선의 백마 탄 여장군 | 독립운동가 김명시
김명시는 경상남도 마산 출신의 항일독립운동가로, 소련과 중국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김명시는 조선의용군에서 유일하게 ‘장군’으로 불린 여성 지휘관임에도, 오랜 시간 역사에 묻혀 있었습니다.
김명시는 3.1만세운동의 열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족과 동포에게 총칼을 휘두르는 일본 경찰과 군대, 나라를 빼앗긴 민중을 보며 자란 김명시에게 3.1운동은 학교나 다름없었습니다. 고려공산청년회 소속으로 모스크바 유학을 떠난 김명시는 일찍 상해로 파견되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김명시의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30년 5월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 사건’입니다. 기념비적인 만주 항일무장투쟁 선봉대의 유일한 여성이 바로 김명시였습니다.
김명시는 1932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7년 동안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고, 출소 후에는 일본군과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는 중국 팔로군에 종군했습니다. 1942년에는 무정과 함께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만드는 데 참여했습니다. 적지에서 첩보활동과 선전공작을 펼치며 김명시는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확성기를 들고 싸웠습니다. 조선독립동맹 천진 북경 책임자로서 일본군 점령지인 천진, 제남, 북경 등에서 조직을 만들고 투쟁한다는 것은 생명을 내건 모험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용군에는 수많은 여성이 참여했지만, 그들 중 ‘장군’으로 불린 여성 지휘관은 김명시가 유일합니다.
치열했던 그의 삶과는 달리 김명시의 죽음에는 많은 의혹이 뒤따릅니다. 조선공산당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1949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10월 유치장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전부입니다. 김명시가 어떻게 검거됐는지,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 왜 서울 경찰청에서 부평경찰서로 넘겨졌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누가 김명시의 시신을 수습하고 인수했는지 또 어디에 묻혔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김명시의 삶을 기억하고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책 <김명시>에는 김명시의 생애와 함께 마산의 시민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김명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희망연대는 김명시의 독립유공 포상 신청을 진행했고, 두 번의 심사 탈락과 국가보훈처와의 간담회 끝에 2022년 김명시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3. 음악과 연극으로 조국 광복을 노래하다 | 독립운동가 한형석
부산 문예인의 아지트인 부산포식당의 편액에는 ‘그냥 갈 수 없잖아’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편액이 걸린 장소를 생각하면 한잔 술을 나누자는 직접적인 표현같지만, 그 안에는 나라를 찾아야 가지 그냥 못 간다, 빼앗긴 조국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독립군의 기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귀는 중국 관내에서 예술구국활동으로 한국 독립 운동의 사기를 드높였던 한형석(韓亨錫, 1910~1996)이 직접 쓴 것입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예술부장, 한국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을 지내고 한미합동 OSS 특수공작훈련을 받기도 한 독립유공자, 음악가 겸 문화운동가인 부산 동래 출생의 한형석. 그는 중국에서 일본 제국주의 감시를 피해 항일예술활동을 할 당시 ‘한국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다’라는 뜻의 한유한(韓悠韓)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여, 한동안 그의 업적은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한흥교의 뒤를 따라 항일운동에 투신할 방법을 고민하던 한형석은 1929년 노하고급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아버지의 친구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인 조성환의 조언으로 상하이 신화예술대학에 진학합니다. 한형석은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예술적 재능을 조국 광복을 위한 민족적 단결에 쓰겠다는 자신의 투쟁 노선을 정합니다. 이것이 예술구국운동가 한유한의 탄생 배경입니다.
한형석은 당시 한국광복군 제2지대 선전대장으로 한인무장역량을 집중·고취시키기 위해 중국 관내에서 적극적인 항일예술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런 활동들로 '신혁명군가', '승리무곡', '광복군 제2지대가', '압록강행진곡', '조국행진곡'을 창작하여 궁핍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사기를 드높여서 한인무장의 결속력을 강화시켰습니다. 1940년 5월 15일 중국 시안에서 초연한 삼천만 조선민족의 염원을 담은 항일가극 '아리랑'은 한국민족의 전통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신선한 극 구성으로 작품성뿐만 아니라 한·중연대의 모범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형석은 광복군으로 활동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책 <한형석 평전>은 한국독립군 창설 80주년이자 한형석 탄생 110주년을 맞는 2020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부산박물관, 부산근대역사관 등에서 학예연구사를 장경준 저자가 2006년 부산근대역사관에서 전시 <대륙에 울려 퍼진 항일정신-먼구름 한형석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기획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방식에는 총과 칼로써 일제와 싸우는 무력투쟁뿐 아니라 한형석과 같이 노래로, 음악극으로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방식도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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