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
산지니시인선 031
김영화 시집
짧은 언어 형식에 담은 생생한 고향의 기억
2021년 『계간 여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한 김영화 시인이 2022년 첫 시집 『코뚜레 이사』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를 출간한다. 김영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에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땅 위의 풍경을 그린 75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김영화 시인의 시 세계는 정통 서정시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시인만의 독특한 체험을 담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골에서의 유년 시절은 가난하지만 정겹던 가족의 모습과 자연 풍경으로 생생히 되살아난다. 이러한 기억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 이전 가족 공동체 중심의 전통적 삶에서 비롯된 공통된 정서이다. 성인이 되어 도시의 삶에 편입된 이후에는 이러한 경험들이 개인의 오래된 서사로 남아, 되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어린 날의 감정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시인 또한 고향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체험을 선연하게 그린다.
생명의 기운이 솟구치는 계절, 봄의 풍경
삼월 끝날 버들강아지 실눈 껌뻑이고/대곡천 도랑도랑 양 갈래로 머리 풀고/제비꽃 민들레는 땅따먹기 놀이/복사꽃 오므린 입 삐죽/보리밭 마늘밭 가장자리 고사리 기지개 켜는데/언덕 비알 외늙은이 가랑가랑 쇠스랑 긁는다/퇴각하던 인민군 서넛 묻어줬다던/적포나루 쪽 밭고랑에도/양수기로 퍼 올린 논물 찰랑거리고/해마다 큰물 들면 옥수수대 하나 못 건지던 들/경지정리로 멀끔한 사각 도형 씨 받을 태세다 (「저마다 봄」 중)
시인은 절기와 계절을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봄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생명’이 가진 존재의 기운과 의지, 겨우내 숨죽이던 존재가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 땅 위를 변화시키는 풍경은 시인에게 특별한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저마다 봄」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온갖 꽃과 식물과 동물, 그리고 마을의 숨겨진 역사를 간직한 장소이다. 시 속에서 드러난 생명의 형상은 시인이 개성 있게 표현한 언어의 질감으로 비롯된다.
또한 절기를 보내는 고향 마을의 사람과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시인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해온 세계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속에 담긴 표정과 감정을 시어로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아련한 감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메마르고 딱딱한 소통 관계가 점령하고 있는 요즘, 시인은 잃어버린 공동체의 따뜻하고 정겨운 모습을 다시 불러오며 우리가 어떤 세계를 꿈꿔야 하는지 일러준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시선이 만들어낸 시적 깊이
시인은 시의 주된 소재가 무엇이건 그것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불러오기 위해 눈에 보이는 현상과 정황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세밀하게 꾸민다. 이는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시인은 사물과 사물 사이, 존재와 존재 틈새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는 시법을 구사한다.
김영화 시인은 사소한 표정 하나, 풍경 속 작은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고 언어로 포착해 평범한 장면을 신비롭고 깊이 있는 이미지로 환기한다. 또한 자음과 모음, 단어와 구절의 미묘한 결을 섬세하게 다듬어 배치함으로써 존재의 틈새를 파고드는 고유한 시적 감각을 보여준다. 이번 시집은 그런 치밀한 관찰과 언어적 탐구가 빚어낸 결실로, 독자에게 시만이 줄 수 있는 집중과 울림을 전한다.
추천사
김영화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수은의 높낮이처럼, 철 따라 겹겹이 넓어지고 좁아지는 이 세계의 틈새에 닿으려는 언어를 생각해 내고 그 언어에 기능과 배치를 부여하려는 궁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시가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독자에게 전해주는 특징이며 의미라고 할 때 김영화의 시가 이에 해당한다. 존재의 틈새, 그 희뿌염하고 빵빵한 공기의 응축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시인의 펜촉 끝에 매달린 모음이 파르르 떨 때 시인은 비로소 글자를 쓴다. 이는 시가 향하려는 존재의 맨 꼭지에 닿으려는 시인의 눈빛이요, 시인이 불러온 말이 향하는 눈동자다. 이번 시집은 그런 노력의 열매다.
_정훈(문학평론가)
연관 키워드
#서정시 #시인선 #계절 #절기 #생명 #공동체 #고향 #봄
저자 소개
김영화
경남 의령 출생. 경남대학교에서 문학석사를 받았다. 2021년 공동시집 『양파집』과 2021년 『계간 여기』 신인상으로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2022년 『코뚜레 이사』(시와시학)를 냈다. 경남시인회 회원. san5f@naver.com

책 속으로
삼월 끝날 버들강아지 실눈 껌뻑이고
대곡천 도랑도랑 양 갈래로 머리 풀고
제비꽃 민들레는 땅따먹기 놀이
복사꽃 오므린 입 삐죽
보리밭 마늘밭 가장자리 고사리 기지개 켜는데
언덕 비알 외늙은이 가랑가랑 쇠스랑 긁는다
퇴각하던 인민군 서넛 묻어줬다던
적포나루 쪽 밭고랑에도
양수기로 퍼 올린 논물 찰랑거리고
해마다 큰물 들면 옥수수대 하나 못 건지던 들
경지정리로 멀끔한 사각 도형 씨 받을 태세다
거뭇거뭇 살찐 독수리 열댓 마리
액비 뿌린 논 죽은 송아지 살점인지
식탐으로 해 넘는 줄 모르는데
성마른 고라니 한 마리
재빠르게 논 질러 둑방 차고 오른다
_「저마다 봄」 전문
법회 시간 이른데 모여드는 대중
부처께 엎드려 절부터 올린다
저마다 사십구일 짧고 또 긴 기도
이제 심심 회향 발원 날이다
우란분절
황망하게 보내드린 이에게
올리는 지극한 독경
법당 가득 채운다
일상에 묻혀 잊고 아로새겼던 반복의 날들
떠난 이와 남은 이가 만나
절절히 닿는 젓가락 부딪는 공양 소리가
엄숙하고 사뭇 떨린다
넉넉하지 않던 어린 시절
더위와 농한기가 함께 찾아오면
여느 때와 다르게 분주하던 어른들
해마다 팔이 웃자라 아래로 늘어지던
왕버들나무 아래 벌어지던 잔치
다리 건너 정암 들에서 손수레 가득
수박이 실려 오고 너내 없이
쪼개주시던 복숭아는 여지없이 벌레 한 마리쯤
들어있어 밤에 먹어야 제격이라셨는데
그이들은 이제 먼 기억 사그라졌다
그때 이날을 백중이라 들었다
같은 이름 다른 의식
사찰 마당
축문 소지하며 올리는 마지막 기도에
고요히 흐르는 땀
_「백중」 전문
팔 차선 횡단보도 앞 전봇대에
마음 바쁜 노인 쉬어가시라
붙은 의자
왜 장수일까 갸웃하는데
누군가 번뜩이듯 떠올렸을까 쓰임새
공경은 사전 속에서 바래가고
잊힌 지 오래
신호 바뀌자 점멸하는 깜박 등
졸아드는 숫자가 숨 가쁘다
유모차는 미는 지팡이
느린 두 발은 이내 깨금발을 뛴다
이웃했던 텃밭 동기도
새벽 목욕탕 나눠 마시던 우유도
이젠 뿔뿔이 그리운 엊그제
샛노란 장수의자
전봇대 다리 춤에 꽉 매여
물끄러미 본다
_「노란 장수의자」 전문
차례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서정시 | 한우산 | 저마다 봄 | 달밭 무 | 남산 | 서원 가는 길 | 유학사 | 회화나무 아래 | 백련사 | 미아 찾기 | 의령 장날 | 유월 | 요즘 어디 | 간장밥 | 논고동 | 연 | 수도사 부도탑 | 이 길은 어디로 | 동태국 | 경운기와 자전거
제2부
눌차 | 출렁이는 라면 | 갑오징어 | 저동항 | 스투키는 죄가 없다 | 우연이 아니라고 | 왈칵 들어오는 봄 | 발병 | 설악초 | 씨 없는 포도 | 입춘 | 시묘살이 | 은행 | 초란 | 기차만 보면 | 네 쪽 사진관 | 누수 | 비비추 친구 | 마창정비소 | 구름 훔치기 | 점
제3부
재회 | 변산에서 | 먼나무 | 지실 미륵불 | 백중 | 라오스 탁발승 | 합천호 근처 | 몽골 라일락 | 마두금 | 간단 사원 | 감포 | 가호동 아기 무덤 | 남촌식당에서 진목까지 | 이장
제4부
도움닫기 | 생활체육 | 어떤 서예가 | 부레옥잠 터진 | 노란 장수의자 | 무뎌지다 | 저장 목단꽃 | 코스모스 | 대영연립 | 울먹이는 성산 | 하지 평토제 | 요양병원에서 | 고부 | 곁가지 움 틔울 때 | 쇠똥구리 | 도너스 식당 | 놓친 손 | 겨울 가뭄 | 백두산 | 오작교 연애
해설: 철 따라 환해지는 분분한 틈새, 그 미세한 꼭지에 닿으려는 언어의 눈빛_정훈
![]() |
지은이 : 김영화 쪽 수 : 152쪽 판 형 : 125*210 / 무선 ISBN : 979-11-6861-552-6 03810 가 격 : 15,000원 발행일 : 2025년 12월 16일 분 류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 구매하기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 | 산지니시인선 31 | 김영화
2021년 『계간 여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한 김영화 시인이 2022년 첫 시집 『코뚜레 이사』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를 출간한다. 김영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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