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저녁, 부산 해운대 산지니X공간에서 정우련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 『정말 외로운 그 말』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김대성 평론가와 함께한 이날 자리에서는 6편의 소설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작가의 창작 여정을 찬찬히 짚어가는 대화가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정우련 작가는 거짓과 위선이 만연한 세상에서 정말 외로운 그 말, 정직을 붙들고 소설을 써온 작가입니다. 6년 만에 펴낸 이번 소설집에는 국가 폭력의 기억을 안고 재심을 결심하는 아버지, 양심을 지키려는 조각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거문고를 켜는 화랑 물계자까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자기 걸음을 잃지 않는 인물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래에 그날 나눈 대화를 옮겨 싣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안녕하세요. 문학 평론하는 김대성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정말 외로운 그 말』을 놓고 이 소설집 가지는 의미랑 선생님 어떤 마음으로 쓰시고 어떤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소설에 대한 내용들도 조금씩 짚어가는 대화를 1시간 정도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먼저 6년 만에 출간된, 오랜만에 나온 소설집에 대한 선생님의 소회나 느낌, 바람 같은 게 있으시면 짧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우련 소설가: 오늘 바람 많이 불더라고요. 이렇게 마주 볼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반갑습니다. 이게 나온 지가 오래됐고 또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지도 엄청 오래돼서 전생의 일처럼 뭐가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책이 나오고 나서 다시 한번 이렇게 읽어보니까 쓰는 동안 참 행복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생은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런 걸음으로 끝까지 걷다가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이렇게 6편을 보이게 되어서 저는 즐겁고 기쁘고 또 행복합니다.
김대성 평론가: 6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중에 두 번째 수록된 소설이 「정말 외로운 그 말」이잖아요. 이 소설을 이번 세 번째 소설집의 제목으로 잡아야겠다 이렇게 마음먹으신 까닭을 들려주세요.
정우련 소설가: 이번에 제가 쓴 6편을 다시 보니까… ‘정말 외로운 그 말’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정직성인데 빌리 조엘의 노래 <honesty>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2002년인가 부산 비엔날레 할 때 박이소 작가 전시전에 갔습니다. 부산 사람이거든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로 홍익대 미대에 들어가서 미국으로 유학 간 화가입니다. 처음에는 화가로 출발했다가 설치 미술, 개념 미술 이런 작가로 활동을 했습니다. 박이소 작가의 미술이 문학하고 참 많이 닿아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을 굉장히 문학적인 언어로 많이 달고 글을 쓰는 작업들을 합니다. 개념 미술가, 설치 미술가 분들이 작업에 달아놓은 문장이 제 가슴을 치는 일들이 많았는데요, 박이소 작가 유작전에 갔더니 작품 제목 하나가 ‘정말 외로운 그 말’이더라고요. 작품 제목은 저작권이 없잖아요. ‘정말 외로운 그 말’ 그 제목을 보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정말 외로운 그 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직성’을 주제로 글을 써서 제 책에 실었습니다. 박이소 작가 작품은 본인이 녹음을 해서, 그러니까 옛날 카세트 테이프 있잖아요. 그 테이프에다가 녹음을 해가지고 박이소 작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섬뜩하면서도 절절하더라고요, “정말 외로운 그 말 더러운 세상에서 너희에게 듣고 싶은 말” 이렇게 표현을 했더라고요. 세상에 너무 정직함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거짓으로 빠져나가려고 하고 그래서 거짓, 위선, 정말이 아닌 것, 이런 것들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이걸로 칼럼을 쓰기는 참 너무 웃기잖아요. 제가 뭐 그렇게 정직하게 살았던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서 ‘아 그러면 그 정말 외로운 그 말이 느껴지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사회를 이야기하면 참 재밌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직성이라는 그 말에 꽂혀서 정말 정직하지 못한 인간을 하나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이어서 이 소설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더 해보면 이 율산이라고 하는 경남권 지역을 배경으로(정우련 소설가: 부산을 상징합니다.) 대학 교수에 자꾸 낙방했던 조각가 출신 사람이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천종만이라는, 장사꾼에 가까운 이 사람과 얽히는 이야기를 얼개로 하고 있는데요. 천종만은 어떤 열등감과 욕심이 많았던 사람이어서 얼렁뚱땅 뭔가를 하죠.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이뤄내고자 하는데요. 인맥이 촘촘하게 엮여 있는 지역이라는 조건 안에서 몇몇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죠. 반면 이 곽진수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람은 조각가이기도 하고 건실하게 교육을 받고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교수에 계속 낙방이 됩니다. 그러다 천종만의 추천으로 서울이 아니라 고향에서 교수직을 얻게 되죠. 교수가 된 뒤에는 유년 시절의 친구였지만 올바르지 못한 행동들, 위작전이나 범죄에 연루된 천종만과 거리를 둡니다. 그런데 천종만에게 겸임 교수라는 이름표를 하나 더 달아주자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곽진수가 ‘이것만은 안 된다’라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얽힌 이야기들이 쫙 풀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술 예술에 대한 가치는 앞선 소설에도 계속 언급이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런 이야기 얼개를 잡은 까닭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지역이라고 하는 바탕 구조가 가지고 있는, 물론 지역이 아니라 어느 문화예술계나 이런 식의 아름아름, 얼렁뚱땅,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지 않는 이런 것들이 만연해 있지만 지역 안에서는 감시망이 너무 없고 자정 시스템 자체가 없죠. 몇몇 사람들의 입김으로 뭔가가 계속 결정이 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염증이거나 그 문제 제기로도 읽혔는데 그 어니스티(honesty)라고 하는 가치를 소설로 푸신 까닭도 한번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우련 소설가: 사실 정직하지 못한 사회는 어느 직업군에서나 있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부산일보> 김효정 기자가 질문지를 보내면서 자기도 ‘그거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정말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던 그런 경험이 참 많다. 정말 공감이 된다고 말해주셨어요. 그러면서 그런 걸 참 얘기하기 힘든데 이 무거운 이야기를 왜 하셨고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까에 대한 걱정을 질문지에 보냈더라고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꼭 미술계의 문제만은 아니고 우리 사회도 거짓으로 뭔가 자기 욕망을 달성하는 인물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상징적으로 미술계를 선택했습니다. 또 제가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그냥 술술술 나오더라고요. 누가 책을 받고 곽 교수가 스승의 위작을 발견하는 그 순간의 이야기 그게 너무… 꼭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그렇게 딱 집더라고요. 저는 또 정직하게 대답해야지 그래 그거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다 짐작하시겠지만 스승의 위작을 발견하고 스승에게 전화를 거는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죠. 그래서 더 실감나게, 사실감 있게 그 부분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다른 거는 창작이다 보니까 조금 떠듬거리기도 한 것 같은데 어쨌든… 위작을 발견하는 순간의 그 모티브를 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 생생했고 그걸 안 쓸 수가 없었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네 그러면 6편 소설이 있으니까 맨 앞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조금씩 짚어가면서 얘기 나눠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재심」은 어찌 보면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죠. 국가 폭력이라고도 볼 수 있고 월북하려고 마음먹었던 어떤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죠. 잠깐 후기를 보면 월북을 하려고 했던 주인공의 이유가 진짜 북한을 체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도 있고 이게 반반이라고 말씀을 해 주셔서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에 연루되어서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위반이겠죠. 오랫동안… 양심수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 (정우련 소설가: 양심수들하고 통방을 하면서)

김대성 평론가: 네, 통일 운동을 이어간 거죠. 그때 국가의 폭력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던 한 남자의 아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남자는 아들을 만나러 뉴욕엘 가고, 뉴욕에서 아주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아들의 하숙집에 기거합니다. 아들과의 갈등 그리고 기거하면서 재심을 신청해야겠다라고 마음먹는 얼개를 가지고 있는 소설로 읽혔는데요. 보니까 저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작은 축으로 있고 큰 축은 제목처럼 국가에 대한 피해 보상이라든지 자기 죄의 피해 보상에 있는 것 같아요.
정우련 소설가: 두 개가 다 맞물려 있죠. 왜냐하면 무죄를 받고 싶은… 그러니까 제가 이 글을 쓸 때 그때 누굽니까? 영화 〈살인의 추억〉의 실제 사건에 대해 이춘재가 자기가 범인이다 하고 고백하는 바람에 30년 결백을 인정받고, 보상도 받은 분이 있었잖아요. 그런 걸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누구나 자기 인생을 한번 돌아보면 다시 산다면 이렇게 안 했을 걸 아니면 어떤 후회, 이런 게 누구에게나 다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한 인물… 그러니까 제가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남자가 복역한 15년은 제 등단 기간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14년을 하려다가 껄끄러워서 15년으로 1년을 올렸는데… 14년 동안 장기수로 있었던 제 친구 남편이 있습니다. 이십칠팔 년 전에 제 친구가 제가 막 등단을 했다는 그 기사를 보고 연락을 줬어요. 그 친구 결혼할 때 제가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사법 경찰들이 앞뒤로 막 포진하고 있고 부모님도 안 오시고. 이게 뭐지 하여튼 뭐 어쨌든 축하를 해줘야 되는데, 참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그런 결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를 거의 납치하다시피 해가지고 결혼한 거예요. 그래서 결혼하고 저와는 헤어졌습니다. 참 친했던, 얘기가 잘 통하고 그 친구였는데요. 음악을 참 좋아하고 저도 음악을 좋아해서 옛날 남포동 전원이니 뭐 백조니 하는 그런 음악 다방을 같이 전전했던 그런 친구거든요. 결혼 뒤에는 그 친구를 잊고 살았죠. 뭔가 이상하다 이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저도 정신없이 살고 그러다 보니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온 거예요. 신문 봤다 이러면서.
친구가 자기 남편을 취재를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게 너무나 엄청난 사건들을 이더라고요. 많이. 막 울면서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저희 집에 오셔 가지고 얘기하고 저는 녹음하고 원고지에 옮기고. 또 본인이 감옥에서 가지고 있었던 그런 자료들, 어머니한테 보낸 편지 이런 것들을 막 한 보따리 제가 받아와가지고 저는 ‘끝났다’ 이러면서 법무사 내원암에 한 3개월 하숙을 했습니다. 새벽에 내려가서 애들 도시락 싸서 보내고. 그때 한참 또 강의도 많이 하고 이럴 때인데. 제 바로 옆방에 하숙하던 역학 공부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이 저를 보더니 아주 이름을 얻을 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쓰고 있는 거 잘 써봐라 대박 날 거라고. 어쨌든 정신없이 막 이렇게 썼는데 근데 이게 아무리 욕심이 나는 떡이라고 해도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떡이라야지 웬 떡이냐고 달려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거예요.
한참 쓰고 있는데 황석영 선생님은 『오래된 정원』을 딱 내신 거예요. 얼른 서점에 가서 두 권을 사서 봤는데 감옥 이야기는 다 똑같은 거예요. 뻔하잖아요. 황석영 선생님은 5년인가 살았지만 제 친구 남편은 두 번을, 14년을 살았기 때문에 저는 더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역학하는 그분이 완전 반대로 얘기를 해줬다. 그래서 제가 한 풀 다 꺾였죠. 한동안 그 친구를 원망하기도 했어요. 하필이면 왜 이 초짜한테, 신출내기 작가한테 그런 어마무시한 재료를 갖다 줘서 몇 년을 제가 거기 허비를 했으니까요. 그러면서 앞날이 아주 암울했던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전에 남송우 선생님 소개로 대필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뭐가 잘 안 됐었는데 제가 자책하고 있으니까 남송우 선생님이 그걸 그냥 소설 쓰는 연습한다고 생각해라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소설집 맨 뒤에 나오는 물계자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쓰는 그런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예감을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재심」은 더 가볍게 쓰려고 했어요. 작가의 말에 있는 아버지하고 아들이 한 이야기가 초고거든요. 아버지가 “그 반은 유죄고 반은 무죄다.” 그러니까 아들이 “뭐 통닭도 아니고 프라이드 반 양념 반입니까?” 뭐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한번 썼는데 그것도 조금 뭔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내 스타일대로 그냥 쓰자.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그런 마음으로 「재심」을 조금 그렇게 무겁게 썼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오랫동안 장편으로 집필하고 계시다가 어떻게 보면 엎어진 거잖아요. 그런 작품을 다시 이렇게 살려 쓰는데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대단히 신념에 차 있는 인물이 아니게 그리는 것도 저는 되게 어렵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썼다는 게 새삼 다시 보이기도 하네요. 또 하나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 어떤 심리적인 문제일 거고 극심한 스트레스의 문제일 거고 어찌 보면 그 돌봄을 받지 못한 긴 시간에 대한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이런 아들의 유학과 타국에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고백. 지금 재심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건네는 고백을 그 앞에 배치하는 방식도 저는 말씀을 들으니까 더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숙집 식탁에 앉아가지고 아들한테 진지하게 사과를 하거든요. 그게 되게 초점화되어 있지는 않은데 현실에서 참 보기가 쉽지가 않죠. 이 장면도 저는 아주 눈이 많이 갔어요.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눈길로 인간관계를 바라보고 있고 국가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당했지만 자기를 원망하는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미안하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꺼내는 그 장면도 인상적이었거든요.
정우련 소설가: 「재심」을 쓰고 나서 왜 하필이면 미국이냐 그냥 우리 한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로 쓰고 미국 이야기 꼭 하고 싶으면, 잘난 척하고 싶으면, 뉴욕을 아는 걸 자랑하고 싶으면 미국 이야기는 따로 쓰라고 이렇게 누가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쓴 이유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통일 운동을 하는 사람의 눈에는 우리나라를 분단하게 만든 나라잖아요. 그래서 통일 운동하는 사람들은 반미 감정이 있기도 하죠. 그런데 아들은 기어이 거기 가서 그것도 한국 노래도 아닌 재즈를 공부하겠다고, 한국에 재즈를 배울 만한 선생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을 꼭 가겠다 하죠. 그 아들이 참 못마땅하겠죠. 게다가 아버지는 여유가 있어서 유학비를 줄 수 있는 상황도 전혀 못 되고.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심리적인 거리를 저는 뚝 떨어지게 이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장 자본주의가 선한 나라, 미국 중에서도 뉴욕. 뉴욕에 멋이 있긴 있죠. 그렇지만 그 양극화가 끔찍하잖아요. 거리를 저는 띄우기 위해서 꼭 미국이어야 했거든요.
아버지 때문에 받은 아들의 상처는 너무나 큽니다. ‘한국에서 간첩의 아들’로 사는 건요. 사실 아버지는 간첩도 아니죠. 그냥 따라가다가 그것도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해주 사람이기 때문에 맨날 노래를 불렀을 거 아닙니까? 죽기 전에도 꼭 해주 땅을 밟아보고 싶다. 맨날 노래를 불렀으니 귀에 못이 박혔을 거 아닙니까? 우연히 <부산일보>에서, 책에 담긴 건 실제 <부산일보> 기사거든요. 간첩들이 포섭 대상으로 삼아서 올라가다가 발각이 된 것이기 때문에 간첩도 아닙니다. 그런데 간첩의 자식이라고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했던 그 상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먼 나라로 가고 싶은 거죠. 그래서 선택한 게 뉴욕이었어요. 저는 그랬는데 아마 제가 생각한 어떤 의미가 제가 소설을 쓰는 재주가 부족해서 이게 잘 안 드러난 것 같아요.
김대성 평론가: 아뇨, 그게 잘 드러났습니다. 잘 이해가 됐고 제시도 그렇고요. 「정말 외로운 그 말」과 「은어가 사는 강물」, 「클레멘타인」까지 지난 시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이야기가 다 들어가 있잖아요. 「재심」에는 고무 공장 이야기가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정말 외로운 그 말」은 이발소, 아마 80년대 70년대 풍경들이죠. 이발소 아들과 이발소에서 놀던 아이들 그 모습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은어가 사는 강물」은 이게 대구 페놀 사건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개나리 맨션의 여성들이 한 달에 두 번 청소하고 모여서 수제비 만들어 먹는 그 장면이 기가 막히거든요. 디테일이라는 게 어떤 사료로 존재하거나 이야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려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레멘타인」은 연작으로 쓰고 있는 난민을 구한 이야기입니다. 「여왕의 향기」와 「물계자의 노래」는 역사 사료 한 줄을 바탕으로 선생님께서 창작한 내용이니까 이거는 열외로 하더라도 제가 읽기에는 이런 70~80년대의 이야기를 노스텔지어로, 옛날 아련한 추억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아주 사실적이고 자기가 겪었던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 안에 가지고 온 게 재미었어요. 조금 중요한 기록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그러니까 전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이라는 소설집에서는 그 전체가 어떤 사료처럼 느껴지는 소설들도 몇 편 있었어요. 이런 부분들은 담백하게 뭔가 끈적하거나 이런 나르시즘에 빠지기 쉬운 건데 아니면 아주 낭만화하거나요. 그런 것으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어떤 자기 위치라고 해야 될까요? 자기 위치에서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그 시대의 어떤 환경과 상황 같은 것들을 소설 안에 이렇게 버무려서 내어놓는 게, 저는 이게 단순히 과거 회상처럼 여겨지지 않고 귀한 이야기처럼 들려서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게 정우련 작가님이 소설 쓰는 아주 중요한 힘이구나 느꼈습니다. 또 새로운 이야기,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내어놓으시지만 그거를 구성해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가지고 오는 게 없구나 다 자기가 삶을 통해서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과 이어서 생소한 이야기도 늘 내어놓는다라는 점에서 이런 부분은 눈에 잘 띄지는 않겠지만 제가 이 두 편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냥 젖어들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정우련 소설가: 앞으로 작품이 더 발전할 수 있게 지적을 해 주셔야 제가 달라질 수 있는데…
김대성 평론가: 근데 저는 「재심」도 그렇고 「정말 외로운 그 말」도 그렇고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진행하는 방식을 더 믿고, 쥐고 있었던 기억들이 힘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특별한 부분이 많다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들을 더 편하고 자유롭게 쓰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거를 너무 가리지 마시고 더 많이 활용하고 또 풀어놓으시면 거기에서 선생님만이 가지는 힘 같은 게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면서 이 소설집을 읽었습니다. 「은어가 사는 강물」은 80년대 페놀 사건을 다루고 있죠. 저도 언뜻 기억이 나거든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여기서도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시고 싶은 것들이 궁금했어요. 그러니까 요즘 이재명 정부 들어서면서 조금 준 듯하지만 광화문이나 여러 1인 시위나 어떤 집단 소송이나 이런 목소리들을 내는 것들과 겹쳐 겹쳐서 보이는 면이 있었거든요. 이게 단순히 80년대에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 아니라 이런 미미한, 바로잡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을 극적으로 그리지도 않고. 일상적인 이야기 톤으로 그리면서 어떤 얘기를 더 내어놓고 싶었을까라는 작가님 이야기도 조금 궁금했었어요.

정우련 소설가: 네 「은어가 사는 강물」 하고 「여왕의 향기」 「물계자의 노래」 이 세 편은 한국작가회의 소설 분과위원회에서 청탁을 받아 썼습니다. 제가 잘 나서 한국작가회의에서 요청한 건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싣지 않은 게 두 편이 있는데 주제가 하나는 4.19이고 하나는 염상섭 이야기입니다. 하여튼 한국작가회의에서 요구하는 거는 문학적인, 미학적인 걸 떠나서 절대로 1인칭으로 쓰지 말고, 절대로 현재 과거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시간 순차적으로. 고전이 그렇죠. 영웅이 탄생하고 그다음에 고난을 겪고, 아주 엄청난 일을 해내서 영웅이 되는… 그런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이렇게 쓰잖아요. 이런 식으로 써달라고 했는데 제가 제일 그렇게 안 해서 야단도 맞았어요. 「물계자의 노래」는 칭찬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이건 시간 순서대로 쭉 이렇게 썼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욕심이 있었죠. 왜냐하면 거기 싣는 것도 물론 좋은 기회여서 감사했지만 『팔팔 끓고나서 4분간』이 16년 만에 나온 책이라서 이번에는 빨리 책을 내자 했습니다.
「여왕의 향기」 같은 경우는 월성의 별이 떨어졌다는 전언을 듣고 사람들이 여왕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이 27대 여왕이면서 15년 재위를 했거든요. 그런데 한국 최초의 여왕이다 보니까 남자들 시기가 이만저만이 아닌 거죠. 염종이니 비담이니 이런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가지고 월성 근처에서 진을 치고 여왕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월성에 별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돌면 이건 여왕의 죽음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소설 속에서는 김유신이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라고 또 소문을 퍼뜨려서 그쪽 반란 세력들을 제압하지만요. 저는 월성에 별이 떨어졌다는 것과 김유신이 별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다하는 그 모티브만 딱 붙들었어요. 그다음에 전혀 사실적인 걸 안 쓸 수는 없으니까 그 안에다가 제가 조금 집어넣었죠. 그랬더니 한국작가회의의 의도하고는 안 맞으니까 약간 싫어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되게 재미있게 썼습니다.
3박 4일 경주에 가기도 했는데 첫날은 워낙 자료가 없어서… 옛날에 드라마 <선덕여왕>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 드라마는 사실하고는 거의 10%도 같은 게 없거든요. 완전 허구거든요. 소설도 있지만 그것들이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제 욕심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참 어려웠어요. 그래서 경주 동국대 도서관에 가서 사서한테 이렇게 빵도 사주고 하면서… 책을 안 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옛날 자료들이고 이래가지고 거의 사정하다시피 해서 그 책을 빌려서 자료들 보고 그랬어요.
사실 우리 작가들이 대부분 다 그렇거든요. 김대성 평론가님도 오늘은 평론가지만은 책도 쓰셨잖아요. 『코로만 숨쉬기』. 달리기 할 때 그 공간 이야기를 쓴 책인데 표지가 달린 구간 그림이죠. 공간을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그 공간 안에서 문득 스친 바람이나 풍경 그리고 그 공간을 달리면서 떠오르는 어머니 이야기, 만났던 작가 이야기 이런 것들. 이야기가 더 나아가면 소설도 되겠다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묘사나…. 그래서 작가는, 글 쓰는 사람들은 공간을 이렇게 느끼지 않으면 글이 참 어렵구나 하는 거를 쓰면서 느꼈거든요.
어쨌든 첫날은 그냥 버스 타고 갔다가 오고 그다음 날은 버스 타고 하여튼 계속 걸었거든요. 그러면서 보니까 또 선덕여왕 왕릉은 물론이거니와 그 아버지의 무덤, 그 능들이며, 월성 그리고 또 비담과 염종이 대치하고 있던 공간, 그런 것들을 보고 싶더라고요. 작가 흉내를 엄청 내면서 3박 4일을 보냈던 그런 기억도 참 즐겁고 행복합니다.
김대성 평론가: 시간이 이렇게 넉넉지 않아가지고 저도 너무 차근차근했구나 반성하면서… 이거는 제가 잘못 짚은 것일 수도 있는데 이번 소설집에서 친구가 없더라고요. 천종만과 곽진수는 친구이고, 「은어가 사는 강물」에서도 두 친구가 나오긴 하지만 이번에는 동료가 없는 것 같아요. 앞선 소설집에는 곁에 여러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또 뭐가 보였냐면 친구는 없어도 모두가 스승의 영향을 받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재심」 같은 경우는 통일 운동하던 선생님들의 직접적인 얘기는 많이 안 나옵니다만 영향을 받고, 「정말 외로운 그 말」의 곽진수의 스승은 성실한 표상이고, 곽진수는 거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기도 하죠. 「물계자의 노래」에는 참시선인에게서 배움을 얻은 물계자가 다른 장수들과 다른 길을 가는 얼개로 그려져 있습니다. 곁에 친구는 조금 약해지고 하지만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이 인물들의 바탕에 되게 많이 깔려 있구나 그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게 그냥 확증 편향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앞선 소설집과 결이 많이 다릅니다. 이런 부분들을 의식하신 건지 여기에 대한 작가님 의견이 궁금합니다.

정우련 소설가: 스승이라면 실제 실존하는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책 속에 있는 인물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정직성이라는 건 사실 우리의 근원적인 가치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건 결국은 스승에게서 전해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스승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원고를 보낼 때 한번 읽어보니까 제가 스승님 스승 이런 말을 엄청 많이 썼더라고요. 제 마음 안에 실존하는 선생님이 계시고 그러고 그 선생님의 발자취랄까 걸어가시는 길을 보면서 요만큼 뒷다리도 못 잡겠지만 이만큼 이렇게 왔습니다. 그래서 아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스승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근래 여러 소설들에서 인물이 뭔가를 깨닫고 변화가 되는 국면에 스승, 정직 이런 게 거의 없거든요. 오히려 낯선 타인으로부터 계산이 흐트러지거나 뭔가 부서지면서 인물이 전환이 되는 방식들에 익숙하다가 이렇게 누군가가 차분히 뭔가를 들려주고 그 아래서 온전히 무언가를 이렇게 습득한다고 할까요? 이런 인물 구도와 소설의 전체 얼개가 근래 소설과는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우련 소설가: 어쩌면 이 「물계자의 노래」에 제가 참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물계자는 삼국사기에 진짜 몇 줄 안 나오는 그런 인물입니다. 물계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건 없고 김범부 선생이 『화랑 외사』라는 얄팍한 책을 썼는데 그 안에 물계자 이야기가 조금 나와요. 『삼국사기』에는 한 다섯 줄밖에 안 되는데, 물계자가 전쟁에 나가서 공을 세웠는데 왕의 아들이 물계자의 공을 보고하면 자기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될 거니까 보고를 안 합니다. 그리고 물계자도 내세우지 않고요. 옆에 다른 장수는 물계자의 공이 어마어마하게 컸으니까 포상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왕의 아들이 안 하죠. 아주 정직하지 못한 인물이죠. 그래서 물계자는 공을 치하받지 못하고 끝나는데 다음 전쟁에서도, 또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난리가 났죠. 우리 물계자 스승이 세운 공인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런 포상도 하지 않고 넘어가느냐고 반발하니까 물계자가 그러죠. 자기가 할 수 있는 도리를 다 했고 그 공이라는 건 주면 고맙지만 안 주면 그만인 거 아니냐.
『삼국사기』에는 거문고 하나 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노래를 지었다 이렇게만 나오고 노래는 전하지 않아요. 그러면 제가 할 일이 뭡니까, 노래를 만들어야죠. 물계자는 자기 공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심심하면 심심한 대로 유유자적 거문고를 켜죠. 그래서 작품 속에 제가 노래를 넣었습니다. 근데 써놓은 거 보니까 제가 노래를 너무 잘 지은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물계자가 진짜 이런 걸 지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떨어지는 폭포를 보면서 전쟁에 나갔을 때 군사들이 ‘와’ 하면서 가던 걸 환청처럼 듣거든요. 시를 쓰면서 물계자가 이런 노래를 지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목을 처음에는 ‘물계자’로 했다가 너무 밋밋하기도 하고 포상이나 이런 데 연연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노래 짓고, 거문고를 켜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사는 모습은 제가 만들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대성 평론가: 저도 이 6편 소설 중에 「물계자의 노래」가 제일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 앞에 쓰셨던 「통증」이라는 단편 소설에서는 미술 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 사이에 있는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우련 선생님의 쓰기가 많이 담겨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이 물계자의 부드러움과 강함 그리고 변방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에 힘이 있더라고요. 제자들이 난리가 났을 때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노래를 부르거든요. 그 큰 스승이 화난 제자들을 위해서요.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말씀해 주시니까 ‘소설 쓴다’에 대한 정우련 선생님의 태도나 마음 같은 게 이 소설 안에 조금 배어 있구나 그런 생각도 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북토크 이야기는 마무리를 지어야 될 것 같은데 못 다한 이야기는 또 다른 자리에서 이어가도록 하고요. 선생님 향후 계획하고 있는 집필 계획 짧게 듣고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정우련 소설가: 제가 공수표를 하도 많이 떼서 뭐 쓰겠다 그런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제 나이에 맞더라고요. 「클레멘타인」 연작은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서 그거 하나는 마무리해야 안 되겠나 싶습니다. 그다음은 당근에서 낡은 피아노를 하나 샀습니다. 눈이 안 보일 때는 그거 치면 되겠다 싶어서요. 요새는 조금씩 모차르트도 조금 치고 막 그러고 있거든요. 옛날에 제 산문집 『쿠텐탁, 동백아가씨』 맨 앞에 보면 피아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쳤던 건 다 잊어먹고 다시 조금씩 하고 있는데 눈이 안 보이면 그때는 물계자처럼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더 나아가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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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련 소설가가 『팔팔 끓고나서 4분간』 이후 선보이는 신작 『정말 외로운 그 말』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정직과 정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숨겨진 부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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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라이브] 『정말 외로운 그 말』 출간 기념 정우련 작가와의 만남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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