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남쪽 끝, 감천만과 다대만 사이에 바다로 쭉 뻗은 두송반도가 있다. 기지개 켜는 고양이 등허리를 닮았다. 부산에 몇십년을 살았지만 처음 가본 곳. 주말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걷고 있는 갈맷길 4-2 코스가 여기를 지난다.
부산에서 한두 시간 거리의 조용한 산책길을 찾는다면 딱 좋은 곳이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오후 햇살이 드문드문 비치는 숲길은 고요하고 서늘했다. '해진 뒤 혼자 걷지 마세요'라는 표지판도 군데군데 보였다.
반도를 경계로 구평동과 다대동이 나뉜다. 이쪽저쪽을 오가려면 걸어서 산을 넘거나 버스로 두송터널을 지나야 한다. 이곳을 오가는 유일한 버스 96-1번의 배차 시간은 40분이 넘는다.
두송반도 숲길을 돌아 산을 넘어가니 다대동의 익숙한 도시 풍경이 보였다. 아파트와 상가, 편의점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멸치쌈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돌아가는 길은 두송터널 쪽을 선택했다. 구평 공단으로 향하는 버스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승객이 거의 없었다. 우리 뒤를 따라 러시아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치킨 두 마리를 들고 탔다.
자리에 앉고 버스가 출발하자 기사님의 다급한 안내 방송이 들렸다. 우리 뒤에 탄 사람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기사가 승객을 부르는 이유는 요금 결제가 제대로 안 되었을 때인데... 러시아 남자는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내가 바디랭귀지로 기사님의 외침을 그에게 통역해주었다. 영문 모르고 쭈뼛쭈뼛 기사에게 불려간 남자는 동전 벼락을 맞았다. 챙챙챙챙챙... 백원짜리 동전 열 다섯 개 떨어지는 소리가 꽤 컸다. 왜 이 많은 동전을 나한테 주지. 러시아 남자의 표정은 알쏭달쏭.
모바일로 결제한 우리 둘 버스 요금이 뒤따라 탄 그의 카드에서 결제가 된 것. 모바일 결제와 카드 결제의 미묘한 시간차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러시아 승객은 부당하게 더 낸 한명분 요금을 동전으로 돌려받았다.
이 모든 일이 버스가 달리는 동안 일어났다.
2026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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