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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산, 시인 김신용 :: 유고 시집 『등꽃 아래』 북토크 후기

by jh5169455 2026. 5. 7.

지난 4월 30일, 산지니X공간에서 구모룡 평론가와 함께 김신용 시인의 유고 시집 『등꽃 아래』 북토크가 있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는 김신용 시인에 대하여 ‘한국의 장 주네’라는 수사를 경계할 필요를 말씀하셨는데요. 날카로운 해석으로 서글픈 현실에서도 생명과 인간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김신용 시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병환 중 마지막 시집은 부산에서 내고 싶다던 시인의 말씀을 구모룡 평론가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구모룡 평론가는 김신용 시인을 '흐르는 산'으로 설명합니다. 텅 빈 중심, 그래서 더욱 중심을 다시 고민하게 했던 북토크 현장 이야기를 옮겨 담았습니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북토크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김신용 시인의 유고시집 『등꽃 아래』로 북토크를 하려고 합니다. 시집의 해설을 쓰신 문학/사상 편집인 구모룡 문학평론가께서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실 겁니다. 

구모룡 평론가

사회자가 이야기한 대로 1945년 부산에서 출생을 해서 올해 1월에 별세를 했습니다. 이분이 문단에 나타난 시기가 1988년입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 문단에 등장을 하셨는데, 그때 "양동시편"이라는 자기 경험적인 시 6편을 가지고 우리 문학계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이분이 시인으로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장 주네가 나타났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장 주네와 김신용 시인은 참 다릅니다. 장 주네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기는 최악의 행위를 선택한다는 각오로 산 사람이고 감옥에서 사형수라는 시를 쓰며 악을 추종한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소설가입니다. 도둑, 강도, 심지어 머릿속에는 살인까지 꿈꾸는 이런 사람이 장 주네라면, 김신용 시인은 14살 때 중학교 3학년 때 집안이 완전히 망해서 최악의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삶을 살죠. 그래서 집도 없고 노숙, 매혈, 피를 팔아서 생활을 유지하는 삶을 살다가, 청계천의 지게꾼, 온갖 노동력을 팔아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용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시인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희망, 이걸 놓치지 않았습니다.

장 주네가 이 세상에 대한 재앙으로 악을 선택했다면, 김신용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시인입니다. 김신용 시인이 한국 문단에 등장을 한 건 굉장한 문학사적인 사건입니다.

구모룡 평론가

이분의 고향이 초량입니다. 초량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옵니다.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어서 80년 초반에 칼을 하나 가지고 파출소에 가서 자수를 합니다. 장 주네처럼 강도질을 한 게 아니에요. 그냥 자수를 하고 교도소로 들어간 거예요. 교도소가 더 편한 그런 생활까지 했는데, 교도소 안에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많은 문인들이 감옥이 학교라고 이야기를 하듯이, 김신용 시인도 교도소에서 책을 읽으면서 활자와 지식에 대한 열망을 갖고 글을 쓰려는 의욕을 가지게 됩니다.

김신용 시인의 첫 시집이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버려진 사람들 이 1988년에 나오고 그 이후  개같은 날들의 기록이 1990년에 나옵니다. 이 시집들을 살펴보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음’, 바우만이 이야기하는 ‘쓰레기가 되는 삶’, 바디우가 말하는 ‘새로운 사랑’, 기존과 다른 높은 차원의 인간에 대한 사랑 같은 중요한 테마들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바우만은 거리의 청소부를 거리의 성자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김신용 시인이야말로 바우만이 말하는 거리의 성자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신용 시인은 평생 무소유를 실천했습니다. 김신용 시인은 시도 있고, 소설도 있습니다.『고백』이라는 장편 두 권이 있고, 『기계 앵무새』, 그다음 『새를 아세요』라는 장편이 있습니다. 전부 다 자기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롤랑 바르트는 파울 첼란의 시를 특별히 체험시라고 이야기했는데, 김신용 시인이야말로 한국 문학사에서 그 개념에 적합한 시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구모룡 평론가

김신용 시인은 1998년에 『몽유 속을 걷다』라는 세 번째 시집을 내는데 40대 중반인 이 시기에  결혼을 합니다. 결혼을 하고 가족을 구성을 하게 되는데도 자본주의적인 소유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시집  『몽유 속을 걷다』와  『환상통 』에서 시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환상통이 뭡니까? 우리가 전쟁이 일어나서 팔이 잘렸다. 그런데 마치 팔이 있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거죠. 『환상통』시기까지도 시인은 거의 40대 후반까지 살아온 인생을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김신용 시인은  『환상통』이후 완도에서 2년간 생활을 하고, 그 다음 충주 도장골에 가서 생활합니다. 그러다가 폐염전이 있는 섬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았어요.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등 많은 시집들을 써냅니다. 그런 과정에 김신용 시인을 보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왔잖아요. 20세기 문학이 있고 21세기 문학이 있는데, 세계의 전환하고도 김신용 시인은 상당히 맞물려 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죽을 때 입는 수의를 만들어 파는 일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완도라든지, 충주의 도장골이라든지, 섬마을을 이렇게 전전을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자기 소유의 집이 아닙니다. 빈집입니다. 누군가가 빈집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옮겨 가서 살고, 그렇게 했습니다. 열 권의 시집을 내고, 돌아가신 뒤에 나온 시집이 『등꽃 아래』라는 유고 시집입니다. 

구모룡 평론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그룹에서 계간지를 내고 있어요.  『포이트리 러버즈』라는 계간지 봄호에 김신용 특집을 했습니다. 특집을 하면서 제가 김신용론을 쓰게 되었죠. 부산 출신의 김신용 시인하고 아주 가까운 김상미 시인의 글이 또 실려 있는데, 이런 특집으로 김신용 문학을 조금 더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김신용 시인을 생각하면, 김신용 시인은 철저하게 자기가 살아온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시인을 이야기할 때는 한 편 한 편도 중요합니다. 어떤 시인은 평생에 사람들이 널리 읽는 시 6편만 건져내도 시인으로 성공한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시인 한 사람이 수백 편을 쓰잖아요. 시인을 이야기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됩니다. 그 전 과정이 시인의 생애와 맞물려 있습니다. 모든 시인이 그렇습니다.

김신용 시인이야말로 그런 생애의 전 과정을 통해서 시적인 경지에 이른 한국 문학사의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가 각인해야 될 위치에 있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김신용에 대한 충분한 조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등단도 시인이 되겠다 하고 등단을 한 게 아니고, 우연하게 시를 전달해서 시가 발표된 거거든요. 그리고 바로 시집이 나온 겁니다.

우연하게 시인이 된 겁니다. 그래서 나온 첫 시집이 이제 『버려진 사람들』인데 자세히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나는 모든 버려진 것들을 사랑해야 했다 자, 그리고 모든 버려진 것들을 사랑해야 했던 나의 사랑법이 시다." 저는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죽어가는 것은 생명을 가진 거죠. 생명을 가진 인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겠다는 이 말이 윤동주를 단순한 민족 시인이 아닌 인류애를 가진 그런 시인으로 비약시킵니다.

윤동주와 다른 맥락에서, 우리가 20세기 후반의 자본주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가 1990년대 아닙니까? 그 이후에 오늘날의 시대에 버려진 것들을 사랑하겠다 하는 맥락에서 보면 공통점은 생명이 된 사랑입니다. 김신용 시인은 그야말로 비참하고 버려진, 소외된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야만 되는 삶 속에서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또 속에 버려진 사람들을 자기가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인식을 한 거죠. 

구모룡 평론가

김신용 시인의 삶을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면 14살 중3 시절에 집안이 파산합니다. 그 집안은 토목 일을 해서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폭싹 망한 거예요. 그 뒤로부터 소년원, 갱생원, 교도소, 감옥, 부랑, 노숙, 그야말로 도시 빈민으로 살아간 겁니다. 매혈을 했습니다. 80년대까지도 피를 팔았다는 거예요. 먹을 게 없으면 피를 판매하는데 피를 하도 파니까 피가 묽어져서 팔 수 없는 지경까지 됩니다.

80년대 부산에도 매혈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부근에서 군대 생활을 했는데 지나가다 보면 얼굴이 노랗게 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요. 피를 팔기 위해서 매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김신용 시인도 80년대까지 매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이 말을 커덕 커덕 새겼다고 합니다. 

우리가 80년대 보면 후반에 80년대 서정시가 있어요. 서정시가 있는데 80년대 서정시의 특징은 미래에 희망이 있다 이런 거거든요. 그걸 신서정이라고 해요. 80년대 신서정은 뭔가 하면 희망이 미래에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80년대적인 상황에서 가장 혁명적인 어떤 정서로 발현하고 이랬는데, 김신용은 다릅니다.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미래에도 희망이 없고 자기가 놀던 초량 부산역 주변도 희망이 없었다는 거예요. 과거든 미래든 삶의 현실이라는 게 상당히 폐허에 가깝다. 고향이든 근대든 다 타락해 있고 훼손돼 있고 폐허와 같고 사막과 같다. 이게 김신용 시인의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정조입니다.

구모룡 평론가

김신용 선생의 산문에서도 초량, 자갈치, 그리고 부산 바다는 자기 문학의 원천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 세계 자본주의 도시는 아무런 희망이 없지만 자기 밑바닥에 출렁이는 자갈치와 부산 바다 속에는 생명이 움틀거린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산의 산지니라는 출판사에서 유고 시집이 나왔다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김상미 시인을 통해서 꼭 마지막 시집은 부산에서 내고 싶다는 열망을 저한테 전달했는데, 1월 달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번 시집은 유고 시집이 되었습니다.

김신용 선생은 부산에 대한 기억, 그걸 굉장히 중요한 자기 문학적인 원천으로 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몽유 속을 걷다』라는 시가 앞선 두 시집의 밑바닥 체험하고는 좀 더 다른 그런 양상을 보입니다. 머리 위에 떨어진 벽돌을 꿈꾼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소설도 두 번째 소설 기계 앵무새가 바로 기억상실을 다루고 있거든요. 자기는 머리에 뭔가 벽돌이 하나 떨어져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자꾸 벗어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겁니다. 그러고 난 뒤 충주의 도장골에서 살며 시편을 쓰면서 시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무렵에 김신용 시인은 굉장히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자각을 합니다. 이제 자연 사물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는 지각을 합니다. 인식의 지평이 인간 중심에서 바깥 사물로 확장이 된 거죠. 김신용 시인은 자기 안에서 바깥으로 나옵니다. 발자크가 말하는 바깥 그런 개념이겠죠. 바깥으로 나와서 사물과 대화를 하는 거예요. 자기 안도 비우고 바깥도 투명해지는 그런 관계. 김신용 시인은 그런 데까지 이르렀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 『등꽃 아래』라는 시집을 통해서 그야말로 무의에 도달한 그런 시적 경계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의 해설의 제목을 '텅 빈 중심의 감옥, 텅 빈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주체잖아요. 우리는 동일성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과학기술 세계는 끊임없이 우리가 외적으로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성을 유지하고 외부와 끊임없이 교섭합니다. 이 와중에 자기 중심까지 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등꽃 아래』의 시집이 일어난 곳이 텅 빈 중심, 감흥이 다 같이 작용을 하는 거예요. 자기가 비워진 상태의 감흥이라는 것은 굉장히 높은 경지입니다.

이 시집에 특히 세 편의 시가 주목이 되는데, 「가시의 시」,  「둥지의 시」, 「양파의 시」입니다. 「가시의 시」는 탱자 나무가 탱자 가시를 만든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의미죠. 「둥지의 시」에서 둥지는 집과 다릅니다. 그런데 둥지는 집을 넘어서는 거죠. 김신용 시인은 빈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둥지의 감각을 느꼈습니다. 「양파의 시」는 양파를 계속 벗겨도 끝내 중심이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김신용 시인은 언어를 넘어섭니다. 문법은 처음부터 역설이에요. 패러독스가 지혜를 만들어내거든요. 김신용 시인은 천성적으로 시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

구모룡 평론가

장 주네는 악의 화신이지 성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한국의 장 주네, 김신용 이렇게 부르기보다는 장 주네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계 문학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성자 김신용 시인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김신용 시인을 흐르는 산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신용 시인은 흐르는 산이다. 흐르는 산이라는 말은 불교 선시에 나옵니다. 하지만 산이 흐를 수가 없죠. 김신용 시인은 산처럼 큰 사람입니다.

김신용 시인을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연탄불」 같은 시는 산동네 살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등꽃 아래」라는 표제시를 한번 읽어보면 '저 등꽃 환하다, 제 그늘 너무 짙어 등 하나 켜놓은 것 같다 빈자의 일등도 저와 같을까? 대낮에도 밝게 켜놓은 저 등 아래 서면, 그래 누군가 발 헛디딜 이 없겠다' 아주 단순한 그런 시 같아도 읽어볼수록 뭔가 의미가 새로 살아나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 김신용 시인께서 이렇게 웃고 계십니다. 유고 시집이 나온 걸 저 세상에서도 기뻐하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북토크가 궁금하시다면 유튜브 산지니 채널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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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아래 | 산지니시인선 25 | 김신용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한 김신용 시인의 유고 시집 『등꽃 아래』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생의 마지막 국면에서 길어 올린 사유와 감각이 응축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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