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신문에서 '오늘은 곡우입니다'라거나 '여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농사를 짓지 않는 대부분의 현대인들도 멈춰 서서 계절에 대해 떠올리게 됩니다. 똑같은 날씨에도 누군가는 긴팔을, 누군가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는 것처럼 저마다 느끼는 계절감은 다르지만, 24 절기에 속하는 낱말 하나가 우리에게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다는 공통감각을 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기가 아주 칼같은 것만은 아니고, 계절을 느끼는 누군가의 말을 통해 또 각자만의 것이 되기도 합니다. 살아나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있으며, 여전히 이름이 같은 명절의 의식도 변하고, 나이가 들수록 장례식장에서 먹는 국물의 감회가 달라집니다. 김영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는 절기와 시간의 흐름을 빌려와, 시인의 눈으로 감각한 계절을 담아낸 시들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시인은 계절 속에서, 계절을 보내는 사람의 눈을 통해 끝없이 변화하는 사물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저리타임>에서 김영화 시인을 만나 두 번째 시집에 담긴 이야기들과 시인의 시 쓰기에 관해 인터뷰했습니다.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제2시집 낸 김영화 시인, "이별은 끝이 아니라 무사히 건너가는 삶의 연장"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 … "이별의 미학과 존재의 틈새 - 가장 낮은 곳에서 건진 언어들"
【프롤로그】
부산 수영구 망미동, 옛 와이어 공장이 문화의 숲으로 탈바꿈한 F1963 테라로사에서 김영화 시인을 만났다. 2026년 4월 27일 오후 2시, 마산에서 부산까지 먼 길을 기꺼이 달려온 그는 자신이 쓴 시편들처럼 과묵하되 단단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저희들이 좀 대부분 과묵해가지고 인사하는 것도 다들 쑥스러워하고"라며 겸손하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경남 의령 자갈밭이 길러낸 '밥 심줄'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공장이 전시장으로 '건너온' 이 장소는, 상실을 소멸이 아닌 '건너가는 과정'으로 정의한 그의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공원묘원에서 건진 '이별의 미학'과, 〈갑오징어〉와 〈초란〉 같은 비루한 일상에서 날카롭게 포착한 '존재의 틈새' - 두 개의 시선이 빚어낸 그의 언어들은 인터뷰 내내 뜨겁게 가슴에 와닿았다.

【인터뷰 요약】
공원묘원에서 건진 '이별의 미학', 삶의 현장에서 포착한 '존재의 틈새'
1966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김영화 시인은 경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를 받고, 2021년 공동시집 《양파집》과 계간 《여기》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2022년 첫 시집 《코뚜레 이사》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를 펴냈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첫 시집의 '자화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 새로운 매듭을 짓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첫 시집은 제 자신을 쓰다 보니 가족 이야기와 의령 지역이 많이 들어갔다"며 "이번엔 거기서 벗어나야겠다 싶었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2집을 묶음으로써 이제 달라질 준비는 좀 됐다"며 홀가분해했다.
박태일 교수의 가르침 아래 '나의 구체적인 삶'을 시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해 온 그는, 특히 표제작인 〈의령 장날〉에서 "이별이 무사히 건너가고 있다 / 오늘도"라는 구절을 통해 죽음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상실을 대하는 성숙한 관조를 보여준다. "처음엔 '무사히'라는 부사가 중요했다"며 "장날에 팔려나갈 몸들이지만 다행이다 싶었는데, 사실 제 마음 바닥엔 늘 삶과 죽음이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공원묘원을 운영하며 매일 마주하는 죽음의 현장을 그는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제가 원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문학소녀였고 죽음에 대해 연민을 갖고 있었기에 어쩌면 운명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이별은 그에게 단호한 작별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채 끊임없이 이동하는 에너지다. "과연 죽음이 끝인가? 알 수 없는 영역이고, 그렇게 단호하게 맺고 싶지 않았다"며 "모든 게 관계이기 때문에 부모가 돌아가신다고 영영 이별이라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시인은 마트 매대의 계란(〈초란〉)이나 손질하는 갑오징어(〈갑오징어〉) 같은 평범한 사물의 이면에서 '존재의 틈새'를 발견한다. 정훈 평론가는 그의 시를 ‘언어의 질감’, ‘오늘의 실감’으로 평했는데, 시인은 "단어 하나하나의 연결과 의미를 몰입해서 생각하는데, 그걸 미세하게 봐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화답했다.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소한 균열에 몰입하여 뽑아낸 그의 시어들은 관념이 아닌 '손에 잡히는 질감'을 지닌다.
비록 소설을 꿈꾸던 문학소녀가 늦깎이 시인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의 시에는 억지로 꾸미지 않은 서정의 힘이 있다. "한자어를 안 쓰려 하고 우리말로 풀어쓰려 노력한다"며 "박태일 교수님께서 한 작품을 100번은 고치라고 하신다. 그걸 교과서처럼 명심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멀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가장 가깝고 낮고 작은 것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3년에서 5년 뒤, 또 다른 정거장으로 건너가 있을 그의 세 번째 시집이 벌써 기다려진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1: 두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용이 참 깊더군요. 출간 소회와 요즘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김영화 시인: 첫 시집은 제 자신을 쓰다 보니 어떻게 생각하면 저의 자화상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가족 이야기나 의령 지역이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이 시집도 거기서 벗어나야겠다 생각하고 썼는데 뜻대로 잘 되지는 않더라고요. 1집 낼 때 손질이 안 돼서 떨어진 작품들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고, 그걸 묶다 보니 어느 정도 한 권 분량이 만들어졌습니다. 1집 하고 많이 달라진 점이 없어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2집을 묶음으로 해서 이제 달라질 준비는 좀 됐겠다 싶어서 정말 홀가분했습니다. 하나 매듭을 짓는다는 느낌이었고, 선생님들과 같이 낼 수 있어서 저한테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Q2: 표제가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보통 표제시가 있는데 찾아도 없더라고요. 〈의령 장날〉을 보니 그 구절이 있더군요. 절창 같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영화 시인: 사실 처음엔 '이별이 무사히 건너가고 있다'를 쓰고 싶었거든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사히 건너가는 게 중요했습니다. 처음 쓸 때는 특별한 뜻 없이 〈의령 장날〉에서 제가 본 모습을 그대로 제 눈길 따라서 간 마음을 쓴 시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정리하면서 제가 짚어보니, 토끼 등 아이들이 결국 이 장날에 팔려나갈 몸들로서 '아 다행이다' 라는 단순한 의미로 생각했어요. 근데 사실 제 마음 바닥에는 늘 삶과 죽음이 좀 연결돼 있었나 봅니다. 제 직업이 그렇다 보니 자주 접하게 되잖아요. 가장 마지막에 안착하는 곳이 사실 공원묘원이라는 장소인데, 그런 부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원한 직업은 사실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문학소녀였고 죽음에 대해서도 연민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면 제가 그런 직업을 갖게 된 게 운명 같다는 생각도 좀 한 적 있었거든요.
Q3: 고향 의령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시인에게 고향은 문학적으로 어떤 역할을 합니까?
김영화 시인: 사실 어쩌다 보니 제가 의령을 쓰게 됐는데, 처음 시를 쓰고자 할 때는 고향에 대한 시를 쓸 거라고 생각을 못 했거든요. 저는 문학을 하려고 갔었죠. 지금 생각하면 관념적인 문학이었죠. 시를 써보자 했는데, 막상 가니까 교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도 늘 말씀하시지만 '나를 써라, 구체적인 내 삶을 써라'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를 써려고 해도 안 써지는데,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하다 보니 나를 쓰게 되고, 과연 나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됐는가 생각하니 내 태어난 곳이다. 결국 내 주변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이 불쑥 저한테 들어오게 된 겁니다.
Q4: 정훈 평론가는 시인님의 시를 ‘존재의 틈새’를 파고든다고 평했습니다. 본인은 이 용어가 어떻게 다가옵니까?
김영화 시인: 해설을 읽으며 제 문장보다 수려해서 과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제가 쓸 때 단어 하나하나의 연결과 질감에 극도로 몰입하는 편인데, 그걸 ‘언어의 질감’으로 알아봐 주셔서 반가웠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틈을 눈길로 따라가는 것이 저에게는 곧 시선이고 시인 것 같습니다.

Q5: 시 〈초란〉이나 〈갑오징어〉를 읽으면, 현상 이면의 본질을 보려는 치열함이 느껴집니다.
김영화 시인: 가능하면 관념적인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로 풀어쓰려 노력합니다. 박용수 선생의 사전을 보며 살아있는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죠. 박태일 교수님께서도 한 작품을 100번은 고치라고 하십니다. 그 가르침을 교과서처럼 명심하고 치열하게 다듬으려 합니다.
Q6: 〈초란〉에서 존재의 틈새를 잘 드러냈다고 평론가도 얘기하잖아요. 현상 이면의 본질을 보려는 공부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거 아닌가 싶던데요.
김영화 시인: 교수님께서도 저의 시선에 대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런 쪽으로 돌려보려 하냐고,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싶냐고. 씨 없는 포도라든지 그런 거는 결국 조작으로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설프게 다가가지 마라,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다고 제가 받아들였거든요. 결국 저는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연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7: 시어 중에 그동안 시집 작품들 중에 정성 들여서 치열하게 좀 밀고 간 단어 중에 좀 대표적으로 '이 시어는 정말 내가 고민을 많이 한 거다' 하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영화 시인: 사실은 서정이라는 게, 서정시의 서정은 굉장히 참 폭이 넓으면서도 쉽지를 않잖아요. 시집 첫 작품 〈서정시〉에 나와 있듯이, 제 오빠가 첫 시집 받고 "잘 읽었다. 그런데 이젠 서정시를 쓰려무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오빠, 이게 서정시인데요"라고 했더니, "무슨 서정시가 이렇게 우울하냐. 시는 부드러워야 시답지. 이젠 아프지 않은 시를 써봐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반인이 알고 있는 서정과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서정이 좀 다르다는 걸 느낀 거죠. 저는 예전부터 독자로서 읽을 때는 서정시를 많이 읽진 않았거든요. 대중들이 다 좋아하는 인기 있는 시보다는 사실 치밀하게 쓴 시들을 좋아하거든요. 〈서정시〉라는 작품을 제일 앞에 배치한 게 제가 그 시어를 깊게 생각했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Q8: 본격적으로 등단을 생각한 계기는 언제였습니까?
김영화 시인: 소설은 집 한 채를 짓는 것 같아 다가가기 힘들었어요. 제가 20대부터 신문을 봤는데, 해마다 신춘문예 때가 되면 가슴이 뛰었죠. 막연하게 '나도 신춘문예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도전할 엄두는 못 냈어요.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들어가 수업을 받으면서 '이제 묶어보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Q9: 박태일 교수님과는 언제 인연이 시작됐습니까?
김영화 시인: 2012년 방송통신대학 국문과 출석 수업에서 처음 뵀어요. 교수님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꼭 저한테만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어요(웃음). '저 선생님 밑에서 공부해야겠다' 싶었죠. 평생교육원에서 한 학기 수업 듣고 답사 가면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원서를 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Q10: 전공은 소설로 하셨다면서요?
김영화 시인: 논문은 부산 작가 윤진상 선생님의 단편소설에 관해 썼어요. 처음엔 이청준을 쓰려 했는데 교수님께서 "이청준 논문은 500편이 넘는다. 지역 작가를 하라"고 하셨죠. 윤진상 선생님 1970~80년대 단편들은 장소가 살아있어 참 와닿았어요. 대학원을 졸업하면 당연히 글 잘 쓰는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서 그게 얼마나 허황된 생각인지 알았습니다.

Q11: 시의 미학적 기준 같은 게 있습니까?
김영화 시인: 어려운 질문이네요. 가능하면 한자어를 안 쓰려 하고요, 교수님께 '산문적이다'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한자를 쓰게 되면 풀어 쓰려 노력합니다. 서울 헌책방에서 산 큰 사전, 박용수 선생 편찬으로 북한 언어까지 수록된 사전을 보며 살아있는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죠. 그 사전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Q12: 시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입니까?
김영화 시인: 그런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3집은 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 제가 보는 시선에 어떤 주제가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14: 박태일 교수님께 가장 배우고 싶은 점은 무엇입니까?
김영화 시인: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니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지만, 이번 시집에 실린 선생님들 작품을 보면 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각자 자신의 삶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별력이 생기는 거죠. 문체는 끊임없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본받고 싶은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지 않으시는 거예요. 관념적인 걸 끌어오지 않고 장소를 통해 구체적으로 쓰시는 점이죠. 시집마다 뚜렷한 주제가 있어요. 그런 걸 배우고 싶습니다.
Q15: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는 무엇입니까?
김영화 시인: 의령 시 〈남산〉입니다. 경상대에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던 남자 동기가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어요. 친구들이 남산에 화장해서 묻어줬는데, 이 시는 한 호흡에 쓴 글이에요. 꾸미지 않고 쓴 글이다 보니 마음이 많이 갔습니다.
Q16: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는요?
김영화 시인: 〈경운기와 자전거〉도 좋지만, 제가 지향하는 시는 〈저동항〉입니다. 울릉도를 여행으로들 가지만, 제가 본 저동항은 달랐어요. 땅이 좁아 한 겹이 아닌 여러 겹으로 매장을 하더라고요. 새벽 달리기를 하며 직접 본 풍경을 관념 없이 쓴 작품입니다.
Q17: 독자들에게 이 시집을 통해 어떤 위로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김영화 시인: 우리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에 시선을 한 번 더 주고 공감하는 것, 그것이 곧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18: 앞으로의 계획은 소개해주시죠.
김영화 시인: 세 번째 시집은 3년에서 5년 걸릴 것 같아요.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리긴 어렵고, 지금도 찾고 있는 입장입니다. 시집을 내고 나니 텅 빈 느낌이에요. 젊은 작가들은 히말라야 크레바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렇게 먼 걸 보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 가깝고 작고 낮은 것들을 보려 합니다. 그 속에서도 할 이야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집을 두 번 냈다고 힘을 주기보다, 편안하게 읽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요.

【시편들에 대한 대화】
Q: 〈갑오징어〉를 보면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던데요.
김영화 시인: 손질하다 요리하다 쓴 작품이에요. 20대 직장생활 할 때는 월급 받으면 서점에 가서 책 한두 권 사는 게 위안이고 낙이었어요. 지금은 하고 싶은 공부를 일부분 했지만, 그때는 대학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었죠. 그런 부분이 가슴 속에 깔려 있다 보니 이런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Q: "아이들 앞가림 등대 자주 흔들리는 등대"는 제 얘기 같기도 하더군요.
김영화 시인: 맞아요. 다 키워놨다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게 우리가 바라는 것과 빗나갈 때가 있잖아요. 자식의 앞길을 비춰주어야 할 등대조차 제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휘청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부모로서의 미안함과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이 동시에 밀려오곤 합니다. 실생활에서 우러나온 부분입니다.
Q: 〈점〉에는 어떤 사연이 있습니까?
김영화 시인: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이야기예요. 그 친구 어머니가 중학교 때 자살하셨어요. 어린 친구가 얼마나 상처받았겠어요. 우리끼리 그때 '가운데 점이 있으면 자살점'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가 입술 위 한가운데 점이 있었어요. 가슴도 아팠고, 이 친구한테 뭔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쓴 작품입니다. 장소시학에 먼저 발표했을 때 친구가 보고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Q: 〈무뎌지다〉에서 "미지근한 시락국에 무심코 밥 만다"는 구절에 격공했습니다.
김영화 시인: 저도 61세니까 장례식장을 자주 가게 돼요. 부모님도, 친구들도. 가다 보면 그런 것조차 의례처럼 느껴져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인데, 장례식장을 가다 보면 여기도 죽음, 저기도 죽음이라 너무 무뎌지는 거예요. "미지근한 시락국에 무심코 밥 만다"는 구절에 다들 자기 모습을 떠올릴 것 같아요.
Q: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는 이별의 연장 같은 의미로도 다가옵니다.
김영화 시인: 요즘 들어 '과연 죽음이 끝인가' 생각하게 돼요. 알 수 없는 영역이라 단호하게 맺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있겠지 하는 바람도 있고요. 사람 사는 게 다 관계니까, 부모가 돌아간다고 영영 끝이라 생각한 적 없어요. 그런 성격이 자연스럽게 그 단어에 담긴 것 같습니다. 제가 쓰고자 하는 걸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요. 그때의 마음과 지금 읽는 마음이 또 다르니까요.
【에필로그】
인터뷰를 마치고 F1963을 나서며 "이별이 무사히 건너가고 있다"는 구절을 곱씹었다. 어쩌면 이 말은 오늘 하루를 견뎌낸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가장 지극한 위로가 아닐까. 한 겹 한 겹 켜켜이 쌓인 울릉도 묘지처럼 삶과 죽음이 포개진 채 서로를 보듬으며 건너가는 것. 그것이 이별의 완성이 아니라 연장이라는 것. 61세 늦깎이 시인이 공원묘원과 고향 의령 자갈밭에서 길어 올린 언어의 질감이 독자들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길 기대한다.
〈갑오징어〉의 비린내를, 〈점〉의 상처를, 〈무뎌지다〉의 쓸쓸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따뜻한 서정의 품으로 안아 올릴 줄 아는 시인이었다. 가장 낮고 하찮은 곳에 시선을 두겠다는 그의 다짐은, 자극적인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가 왜 다시 시를 읽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깨우고 있었다.
◇ 김영화 시인
▶경남 의령 출생. 경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2020년 6인 공동시집 《양파집》(시와시학)과 2021년 계간 《여기》 신인상으로 문학사회에 나섬.
▶2022년 시집 《코뚜레 이사》(시와 시학). 2025년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산지니)를 냈다.
E-mail : san5f@naver.com
출처: 조송현 기자, 2026년 4월 28일,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제2시집 낸 김영화 시인, `이별은 끝이 아니라 무사히 건너가는 삶의
【프롤로그】부산 수영구 망미동, 옛 와이어 공장이 문화의 숲으로 탈바꿈한 F1963 테라로사에서 김영화 시인을 만났다. 2026년 4월 27일 오후 2시, 마산에서 부산까지 먼 길을 기꺼이 달려온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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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건너가고 있다 | 산지니시인선 31 | 김영화
2021년 『계간 여기』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사회 활동을 시작한 김영화 시인이 2022년 첫 시집 『코뚜레 이사』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이별이 건너가고 있다』를 출간한다. 김영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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