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턴일기

답답증과 조급증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 정태규 선생님 <길 위에서> 인터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17.

 

 

정태규 선생님, <길위에서> 인터뷰

..................................................

 

답답증과 조급증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최근에 목 디스크 수술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 지 궁금합니다.

수술 받고, 팔하고 영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 가가지고, 손목에도 힘이 손가락에도 힘이 없어서 쓰지를 못하고 있어. 차차 낫겠지 만은, 이게 금방 낫는 게 아니고, 몇 개월 걸리겠지. 지금 당장 못하는 게, 컴퓨터 자판을 못 치니까 그게 많이 갑갑하지. 이게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억지로 움직이면 안 되죠.ㅜㅠ

많이 연습해야지, 악력기 가지고. 그래 해야 서서히 낫는 거지.

, 그럼 다음 작품집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다음 작품집은 글쎄요.길 위에서를 낸 게 2007년 이니까, 벌써 5년이나 됐네. 내년이나 내후년에 장편을 낼까 싶어요. 앞에 작품집 두 권 냈으니까, 장편을 써보자고 준비를 좀 하고 있지요. 내년이나, 내 후년 쯤에는 안되겠는가 목표로 쓰고 있고, 올해 안에 산문집, 산지니에서 내는 산문집이 있지요.

커피가 나왔습니다. 선생님 커피 마시는 모습이 멋지신데, 사진 찍어도 될까요?

그래요, 그럼. 

 

01

02

03

 

 

         

그는 갑자기 두려워진다. 우리의 삶이 저 자동차들처럼 누군가의 시선 속에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 갇혀 있는 삶, 그 무엇에 갇혀 있는 삶. 그래 산다는 건 누군가의 손바닥 속에서 놀아나는 그 무엇인지도 몰라.구글어스78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가끔씩 스스로 자폐되어 있다는 답답증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히말라야의 산 속으로 가고 싶었다.                          솔베이지의 노래30

 

선생님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갇힌 삶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고 또 그러한 생활에 대해서 굉장한 갑갑증을 호소하는 것이었어요.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 선생님께서 느끼신 부분들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옛날에 공황장애라는 걸 앓은 적이 있어요. 공황장애를 8개월 동안 앓았는데, 공황장애에 대해서 못 들어봤죠? 그게 특징이 좁은 데를 견디지 못해. 여러 증상이 많은 데, 좁은 데 들어가면 불안증을 느껴 뛰쳐나와요. 이런 자리에도 못 있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도 불안감이 생겨가지고 내려. 목적지에 가는데 그걸 몇 번을 타야 되는 거야. 그런 경우도 있고. 또 삶에 대한 굉장한 불안 심리가 나중에 심해지니까 사는 게 지옥 같은 그런 느낌. 그게 너무하면 자살을 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그걸 치료를 받아야 돼. 병원에 가서. 약물을 먹고. 약물을 먹으면 잘 낫는데, 당시에는 그런 약이 있는 줄 모르고. 그게 뭔가가 삶이 갇혀있다는 느낌이야. 불안해.

근데 나중에 그 약을 먹고 나았어. 나았는데도 가만 생각해 보니까 우리 삶이라는 것은 결국 어디 갇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공황장애가 아니다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은 다 어디에 갇혀 있어. 내 삶이라는 것은 직장하고 학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그것 밖에 없는 거. 그 똑같은 소리를 해대고. 삶 자체가 어떤 그 거대한 감옥살이 같다. 삶이란, 감옥에서. 그런 생각들. <구글어스>의 아내 같은 경우도 그러한 자기의 불안증을 거식증이나, 폭식증으로 나타내는 거야. 그것도 어딘가 갇혀있다고 보는 거야. 우리 삶은 누구나 다 보면 어딘가 갇혀있다. 그런 인식에서 나온 소설. 주인공이나 아내나 아들이나 다 어딘가에 갇혀있다. 우리의 삶이란 자체가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삶이란 거대한 감옥 같은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삶에 그런 이면들 그걸 이야기 한거지.

 

주인공들은 답답증을 호소하면서도 또다시 갇힌 공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깜깜한 자신의 방으로부터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진우는 히말라야 산속을 꿈꾸고, <구글어스>의 나는 '구글어스'를 통해 몽골의 초원, 칸느, 킬리만라로로 떠납니다. 심지어 <정글게임>에서 '그'는 게임 속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이 있는 좁고 어두운 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기 인자, 구글 어스를 통해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 일종의 노마디즘을 그걸을 통해서 경험하는 거지. 실제 갈 수 없으니까, 구글 어스를 통한 대리체험을 하는 건데. 그게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삶이라는 것이 대리 체험으로 밖에는 못하는 그런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구글어스가 닫히고 지구도 동전 만해 지제, 우리 삶도 동전만한 지구속에 갇혀있다. 결국 그것은 아프리카 초원도 가고 킬리만자로도 가고 칸느도 가고 하는 것들이 자유로운 노마디즘을 그런 식으로나마 체험하는 거지. 실제로는 못하고.

 

실제로는 떠날 수 없을까요?

 

여행을 떠날 수 있겠지.  직장과 집 사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생활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훌훌 다 털어버리고 거지가 되어서라도 세계를 떠돌면서 자유롭게 히피처럼 살아야지, 여행 갔다온다고 해서는 안되지. 그게 쉬우냐 하면 쉽지 않지. 모든 것을 내버리고 떠나는 것이.

주인공들이 그런 것을 왜 시도하지 않느냐, 그건 또 다른 주제로 가지고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지. 실제로 그런 것을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또 시도하고 하는 그런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킬리만자로로 떠난다고 해도, 비자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고럼, 고렇지.

 

『길 위에서』를 읽으면서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한 사내, <구글어스>의 아내, <육교를 건너서> 추영감 등이 인상깊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브루스 리를 추억하며>의 이충일이라는 인물이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육사를 갔다가 중위를 달고 전방에서 근무 하다가 사고로 죽은 친구가 있어. 참 아까운 친군데. 참 정의감에 불타고 훤칠하니 멋있게 생기고 키도 크고. 그 친구가 <브루스 리를 추억하며>의 기본적인 모티프가 되었고. 그 친구 집이 악양이었어. 하동 악양.

 

악양이요?

 

악양, 악양! 최참판 댁 있는데, 거기가 악양이거든. 거기 사는 친구였고, 또 고등학교때 진주에서 학교다니다가 방학되면 기차를 타고 하동까지 가서 하동 송림의 모래밭에 텐트 쳐놓고 놀고, 강물에서 수영하고 그랬다고. 그걸 모티프로 했는데. 1212사태에 대해서 소설화된 적이 한 번도 된게 없었어. 1212사태에 대해서 소설을 써봐야겠다. 이 중편이 그때 국제신문에 연재되었는가 그랬어.

 

그렇군요. 다른 작품에 비해 분량이 많더라구요.

 

응. 그게 250매 쯤 되었지.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1212사태를 보면 전두환이 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일어났어. 총격전이 일어나서 그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그때 죽은 김오랑이라는 소령도 있고 몇몇이 죽었거든. 그 사람들은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그 친구를 하고, 1212사태를 겪는 것으로 하자. 그래 이야기가 된 거지. 정말 그 친구는 옳은 군인이었어. 실제 내 친구를 생각해도, 참 장군이 되었더라면 옳은 장군이 되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이 그 정치의 역류에 희생된거야.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하게 된거야.

 

<용쟁호투>는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구나. 악달의 괴수는 거울의 미로에 숨어서 브루스 리를 기습하고 있어. 거울에 비치는 악당의 여러 허상들, 그 중에 어느 것이 적의 실체일까? 어느 것이 우리의 진정한 적일까. (중략) 브루스 리가 거울 속의 여러 허상 속에서 실체를 찾아내 처치하였듯이 우리의 적은 처치된 것일까. 아니면 거울 뒤에 숨어서 여전히 우리를 향해 늑대의 발톱을 세우고 있을까. 그걸 너는 이제 알아내었냐? 정말 훌륭한 장군이 되고 싶어했던 너의 꿈은 어찌되었냐? 그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섬진강 송림의 그 아름다운 밤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그 날개 하얀 물새들은 여전히 거기에 살고 있을까.「브루스 리를 추억하며」291-293쪽

 

소설집『길위에서』를 집필하시면서 가장 애착을 가졌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요?

 

<시간의 향기>라는 작품.

 

아빠하고 딸하고 나왔던 이야기 말이지요?

 

그것도 인제 인간의 조건이 시간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건이야.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인정사정없이 흘러가는 거지, 무자비하게. 그러한 시간 앞에서 인간이 대처하는 자세. 무자비한 시간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 요즘 말로 하면은(웃음). 그렇게 인자 그 죽은 사람은 잊혀져가고 새로운 사람이 와서 아내가 되고, 그 시간이 <시간의 향기>의 제일 끝에 보면 그 사람이 죽으면 어디에 가느냐 다 잊혀져 버리고 마느냐, 아빠가 그러죠. 그런건 아닐꺼다. 엄마 마음이 우리 마음에 쌓여가지고, 또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하고 그것 또 아들에게 내려가고 그렇게 마음에 쌓여져가지고 그렇게 내려온 것이 현재의 우리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지층처럼 쌓여 내려온 것이다. 그기 인자 시간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자기위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자기위안.

 

 세월히 한참 흐르고 나면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망자의 기억은 마멸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망자는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망자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에 지층처럼 쌓여 산 자의 마음을 이루고 그 산 자의 마음은 그 다음 사람의 마음에 다시 쌓여질 것이다. 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렇게 쌓여 온 마음들이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네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이나 아닐는지.「시간의 향기」120쪽

 

부처는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도 하지 말라고 해. 그래야 모든 괴로움을 떠난다고 하지, 그렇게 살 바에야 우리가 말라 사노. 보통 인자 불교에서 그렇게 말하지. 그럼으로 해서 시간을 극복할 수 있다. 영원을 살 수가 있다고 하지. 인간의 입장에서는 시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 되거든. 인간의 삶을 제한하고 조건지우는 하나의 불행일 수 도 있단 말이야. 시간의 향기라는 것이 썩어가는 꽃향기 같다고 하지 제일 끝에 보면은. 어딘가 꽃이 썩어가는 듯한 향기가 난다. 꽃이 썩어간다는 것은, 꽃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엔 화려한 인생일 수고 있지만, 꽃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결국엔 부패되어 가는 거야 우리의 화려한 꽃같 은 인생도 언젠가 시간을 통해서 썩어 부패해 가는 거지. 거기에 대체하는 부처에 기대지 않고 우리 스스로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가 뭐냐, 마음이 쌓이고 다음 마음에 쌓여간다. 엄마마음이든, 아빠마음이든 네 마음이든 쌓여갈 것이다. 일종의 자기 위안이지.

그 작품을 사흘 만에 쓴 것 같은데, 구성은 오랫동안 많이 했는데,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굉장히 잘 써지더라고. 그게 애착이 많이 가요, 그 작품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나와 있는 정글게임. 실험적으로 써봤는데, 컴퓨터문화에 대해서현대 문화에 대해서. 현대문화가 가지고 있는 뿌리 없는 이미지화. 모든 것이 본질보다 이미지 중심으로 되어가는 문화. 그런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썼는데, 내가 잘못 썼는지, 그렇게 읽어준 사람이 거의 별로 없어(웃음).

 

선생님을 소설로 이끄는 원천이 무엇인가요?

 

글쎄요(하하하). 그거는 결국 뭐, 모든 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그 가지고 있는 충동인데. 자기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요. 내가 말을 잘한다거나 또 사회상에 있어서 뚜렷하게 자기를 주장한던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 글로 쓰는 것, 나는 말하는 것 보다 글로 쓰는 게 훨씬 조리있게 하거든(웃음).

 

지금도 재미있게 잘 말씀해주시는 걸요.

 

밖에 나서서 말하는 건 잘 못해. 글로 쓰는기 내 자신을 잘 표현하는 기라. 그래서 뭐 글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시로 표현하는 것 하고. 나는 이야기로 표현하는 게 훨씬 더 편하지. 거짓말도 할 수 있고(웃음). 나를 표현하는 게 소설이 더 편하단 말이지.

또 하나는 글을 쓰다 보면은 내 글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겠는가 이런 회의가 생길 때도 있고, 또 주위에 사람들이 주로 집안 사람들이 '밤새워서 애터지게 써샀노,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데, 치아라.' 하면 글쓰기에 회의가 온단 말이야. 한동한 글도 안읽고, 글도 안쓰고, 글쟁이들도 안만나고 그때는 일반 친구들은 만나는거야 대학의 동기들이나. 그 친구들과 같이 술마시고 그래 어울려 다니는 거야.

그런데 한참 어울려다니다 보면 그 친구들이 말하는게 견디지 못할 때가 있어.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다 성공한 친구들인데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게 너무 속물적이야 말하는 게, 사고방식도 그렇고. 그걸 견디지 못해서 싸우면 또 한동안 안나가고, 글을 쓰는 이 세계로 오지.

글쓰는 사람은 그렇게 속물적이지 않아, 글을 씀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걸 배제하고. 그때 되면 인자 글을 써야지 하는 그런 욕망으로 뒤바뀌게 되지. 이런게 내 왔다갔다하지. 글을 쓰자하는 예술적인 욕구 하고 또 시민으로서의 건강한 삶 사이에서. 그기 또 예술적 세계 사람들은 대체로 다 병들어 있어요. 술을 맨날 퍼마시거나, 줄담배를 피워대거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삐딱하니 해가지고. 뭘 먹으면 몸에 좋니, 골프치는 이야기, 돈버는 이야기 등 평상적인 시민들의 생활하고 이런 욕구가 왔다갔다 한단 말이지.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작품이 나오는거지요?

 

그렇게 늘 그 사이에서의 자기 괴리라던지 회의를 쌓아가는 과정, 거기에서 글 쓰는 모티프나 욕구가 생기는 것이지.

 

그럼 선생님께서 요즘 책읽고 싶은 계절인지,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옛날에는 김승옥의 무진기행, 생명연습이라든지, 1964년 겨울 같은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했지요. 이청준 작품하고.

 

특히, 이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승옥의 경우는 그 당시 새로운 감수성의 작가였고, 이청준은 굉장히 관념적이면서도 깊이가 있고. 깊이있는 관념성 나는 관념적인 것은 안좋아하는 데, 이청준 작가처럼 워낙 깊이가 있다 보니까. 주현미의 노래를 들어보면 제일 끝에 노래를 들어보면, 노래를 끌어가면서 한번 다시 뒤집었다가 땡겨서 끝나는 듯하다가 다시 한번 뒤집거든. 주현미 창법이 그래요. 그때 말이야. 보통 사람들은 뒤집어가 노래가 끝날 줄 아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뒤집어서 끝낸단 말이지. 이청준 소설이 그래. 완전 반전이라서 여기서 끝났나 보면 다시 반전이 나오는 거야. 그런게 참 좋아. 참 깊이가 있어. 관념적인 것을 안 좋아하는데도. 반전의 반전이 참 좋아.

김승옥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한참 문학에 빠져들고 할때의 새로운 도시 감수성, 그게 최인호나 김승옥, 김승옥이 먼저고 그 뒤가 최인호. 요즘 사람들은 누군지 잘 모를 거야.

 

마지막으로 문청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게 요즘 청년들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좀 그 뭐랄까 진중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진득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너무 조바심을 내는게,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를 금방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세계를 진득하게 지켜나가는게 중요할 것 같아. 자기 세계를 가지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필요하고, 그기 금방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그걸 향해 진득허니 다가가고 끈기있게 물고 늘어지는 이런거 자체가 중요하지. 금방 성과를 볼 것이라는 조급증을 버려야해. 앞서 그런 물음을 캐가는 과정-문학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본질이 뭐냐하는 것을 충실히 갈고 닦는 것, 그게 내공 백점이란 말이야. 본질을 충실하고 갈고 닦는 것, 그 본질을 닦는 걸 잘해놓으면 시류에 따라하는 건 금방하거든. 시류에 따르는 글쓰기를 잘하려고 하지말고, 본질에 충실한 글쓰기! 이 기본을 잘 닦아 놓으면, 나중에 뭐 시류에 따라 재밌게 글을 쓴다는 것은 조금만 닦아주면 되니까. 시류에 영합하는 글쓰기부터 해놓으면 거기서 끝나는 거야.

그래 요즘 사람들이 지금 소설을 쓴다는 인구도 줄어들었고, 정말 소설을 쓰겠다는 인구가 많이 줄고, 젊은 사람이, 젊은 사람이 신춘문예에 등단하는 사람이 줄고, 전부 등단하면 다 나이가 많이 들었어. 젊은 사람들이 투고도 잘 안하고 글도 잘 안쓰고, 쓰는 사람이 점점 전문화되고 고령화되고 있어. 문학이 왜 젊은 사람에게 인기가 없느냐,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니까 어려운거야. 그러니까 금방 바라는 성과가 안나지. 신춘문예가 1501 3001 하니까 잘 안나가는 거야. 이걸 극복하겠다는 마음가짐. 시는 아예 마 젊은 사람은 씨가 말랐어. 사십대도 보기가 힘들고 30대는 거의 없고. 시집도 많이 안 읽으니까.

 

저도 시집을 참 어려워하는데, 많이 반성하겠습니다. ㅜㅜ

 

그래? (웃음)

 

 

 

 

길 위에서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