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일의『상황적 사고』
불 끄고 생각 좀 해볼까
중국에 가 있는 저자 윤여일 선생에게서 메일이 왔다. 중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졌고 사쿠라이 다이조 씨에게도 책을 전달하고 싶으니 중국에 『상황적 사고』를 보내줄 수 없냐고. 저자는 책 작업 마지막까지 한국에 있었고 제작에 들어갔을 때 중국에 갔기 때문에 책을 받아볼 수 없었다. 원고가 오가는 동안 일찌감치 중국에 간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상황이 마치 소설의 발단처럼 느껴졌다.
저가 윤여일이 말한 사쿠라이 다이조는 텐트연극을 하는 극작가이자 배우다. 단 한 편의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한 장소에 텐트를 세우고 한 차례의 공연이 끝나면 텐트를 걷고 떠난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3·11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1년 후에 팔레스타인, 광주 그리고 후쿠시마에 관한 연극을 했다. 저자는 이번 책에 사쿠라이와 텐트연극에 대해 아주 흥미롭게 썼다.
이처럼 이 책은 꼭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글만 모은 건 아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주어진 자신의 상황 속에서 쓴 글들을 묶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사상은 가능한지 묻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사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익숙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사고는 주체적인 자신의 사고가 아닌 타인에게 주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자신의 사상의 가능성을 찾고 개성을 회복하길 원한다고. 그건 우리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에 함께 살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다. 무력한 현실 정치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삶의 무기. 저자는 그것을 사상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내 삶의 무기는 무엇일까. 나 역시 조심스럽게 사유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자기 전 불 꺼진 방에서 오늘 하루를 생각하는 시간,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희망,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내 인생이 비루하다고 비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밤에도 컴퓨터를 끄지 않고 시간에 쫓겨 겨우 잠들 때가 많았다. 나는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는 힘, 어느새 바쁜 일상 속에 사라진 사유의 시간을 되찾게 하는 동력.
저자에게 한 통의 메일이 더 왔다. 멀리까지 책을 보내줘서 고맙다며 사쿠라이의 텐트 연극 사진을 보내왔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과 열정. 매일 똑같은 근육만 쓰는 내 근육이 부끄러워졌다. 드디어 소설의 발단이 시작된 걸까.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은 밤 같은 책이에요, 그러나 저자와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그 밤을 잘 걸어 나간다면, 지금의 무기력한 현실에서 우리만의 무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자신만의 발단을 이 책에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윤은미 산지니 편집부
위에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기획회의』350호의 출판사 서평 코너에 실린 내용입니다. 『상황적 사고』에 대한 편집자 서평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도자료 형식에서 벗어나 편집자가 편집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일화, 개인적인 서평 등을 진솔하게 쓰는 코너입니다. 글에도 나오고 블로그에도 공개하려고 했던 사진이기에 이렇게 공유합니다. 다만 저자가 사쿠라이 다이조 선생 외에 얼굴 공개는 자제해달라고 부탁하셨기에 그때의 상황을 전하고자 합니다. 아쉽게도 눈물과 땀이 범벅된 배우들의 얼굴과 뜨거운 텐트 안에 연극은 저 혼자 봐야겠네요. 사진도 글처럼 아주 멋지게 찍으셨네요. 사진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저자 윤여일의 텐트연극 기록입니다.
상황적 사고 - 윤여일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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