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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79

[서평] 명성황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_『물의 시간』 (정영선 장편소설) 명성황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물의 시간』 -정영선 장편소설 온갖 문물이 혼재된 개항기 조선에서 밤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물시계가 멈췄다. 왕후가 죽은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물의 시간』은, 조선의 마지막 국모이자 일제의 손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시간’이라는 하나의 키워드이자 사건을 중심으로, 물과 같이 흘러가 버린 옛 역사를 새롭게 그려 낸다. 『물의 시간』이라는 제목처럼, 흐르기에 유연할 수 있었고 흐르기에 때로는 정해진 수로를 통해 갈 수밖에 없었던 유약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간’ 속에서 여리지만 단단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여자’라는 이유로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남길 수 있는 것이라곤 누각의 소금뿐이었던 한 여.. 2024. 4. 3.
얽혀 있는 것과 변하는 사람들_ 정영선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 서평 흔히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거나, 무관심으로 인해 인상조차 흐릿한 경우가 많다. 탈북민 인권에 대해 논의할 것을 외치는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정보나 자료의 차원이 아닌, 여러 이야기와 상황이 겹친 존재로서의 북한이탈주민을 말한다. 또한, 이들과 사건이나 관계로 엮인 남한 출신 인물들을 통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결코 기존 남한 주민과 무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도 남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어쩐지 그물에 걸린 물고기 같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새 같기도 했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주홍글.. 2024. 4. 1.
희생자의 존엄성 회복을 향한 과정_『그림 슬리퍼』 서평 사우스 센트럴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흑인 거주 지역이다. 의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은 우연히 1980년대에 발생한 미해결 연쇄살인사건의 정보를 입수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가 얻은 피해자 리스트 속 사람들은 흑인 여성이었고 매춘과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펠리섹은 이들의 삶을 깊이 조사하고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묻는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펠리섹의 추적이 흡인력 있는 문체와 함께 전달된다. 처음으로 발견된 희생자는 1985년 가슴에 총을 맞은 채 발견된 29살의 데브라 잭슨이다. 뒤이어 다섯 아이의 엄마인 헨리에타 라이트, 20대 초반의 바바라, 유일한 생존자 에니트라 워싱턴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피해와 죽음은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2023. 3. 7.
그럼에도 세상은 변한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서평 변화의 바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변화의 현장에 있음을 체감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인지하든 하지 않든 세상은 꾸준히 변한다. 그 조용하지만 큰 변화를 위해 여기, 중국 공산당의 압제에 맞서 젠더 평등을 외치는 이들이 모였다. 다섯 명의 페미니스트, 이른바 ‘페미니스트 파이브’. 사실 중국 정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마오쩌둥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표방했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 경제개혁을 거치면서 ‘국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의 권리를 탄압해 왔다. 때문에 여성들은 교육, 고용, 퇴직 등의 사회생활 전반에서 불평등을 겪는다. 오랜 기간 중국 사회를 연구해 온 저널리스트 겸 학자인 저자 리타 홍 핀처는 페미니스트 파이브를 만나 그들의 활.. 2023. 3. 7.
우리의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나요_『유토피아로 가는 네 번째 방법』 여러분들은 꿈을 많이 꾸시나요? 어떤 꿈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반면, 어떤 꿈은 이어서 꾸길 간절히 바랄 만큼 황홀하기도 합니다. 내가 꿈을 꾸긴 했는데.. 하고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꿈도 있지요. 그런데 꿈을 우리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꿈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고, 또 이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유토피아로 가는 네 번째 방법』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유토피아로 가는 네 번째 방법』의 핵심소재는 깨어있는 꿈, 자각몽입니다. “꿈의 유토피아에선 뭐든 해도 되는 건가요?” 무득이 묻자 탁우는 호탕하게 웃었다. “뭘 하고 싶어?” 무득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떠올려보았다. 하늘을 날고 싶은 바람과 언젠가 장난처럼 범죄자를 .. 2022. 7. 12.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 에바 틴드 <뿌리> 서평 『뿌리』는 한국계 덴마크 소설가 에바 틴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에바 틴드는 한국의 부산에서 태어나 1살에 덴마크로 입양되었고, 20년 후 그녀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아 홀로 한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한국은 너무나도 낯선 나라였다. 한국어 이름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한국어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의 혈통적 기원은 깊은 심연 속으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나의 존재적 근원은 무작위로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에바 틴드는 이후 작품을 통해 기원의 개념을 탐구하고, 각 사람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에 대해 파고들어간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본성 혹은 근원을 이야기할 때 나의 ‘뿌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때 대개 사람들이 .. 2022.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