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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얽혀 있는 것과 변하는 사람들_ 정영선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 서평

by 진진야 2024. 4. 1.

 

흔히 북한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거나, 무관심으로 인해 인상조차 흐릿한 경우가 많다. 탈북민 인권에 대해 논의할 것을 외치는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정보나 자료의 차원이 아닌, 여러 이야기와 상황이 겹친 존재로서의 북한이탈주민을 말한다. 또한, 이들과 사건이나 관계로 엮인 남한 출신 인물들을 통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결코 기존 남한 주민과 무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도 남한 사람도 아니었다그들은 단지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었다어쩐지 그물에 걸린 물고기 같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새 같기도 했지만북한에서 왔다는 주홍글씨를 평생 달아야 한다는 점에선 똑같았다그들 대부분은천국의 문 앞까지 온 듯 감격한 표정이었는데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를 하루에 몇 번씩 하는지 자신들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_35p

북한 사람이 아니면서 남한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표현하면 복수의 곤경에 처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 존재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하나의 위험에 놓인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 위험은 얼굴을 바꾸며 인물들을 쫓아다닌다. 얼굴의 이름은 목숨을 위협하는 국경의 감시일 때도 있고, 위해주는 척하는 차별의 언사나 사각지대를 살피지 못하는 제도일 때도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그들 중 누군가의 마음은 이미 안개에 젖어 있을 것이다눈 코 귀 입구멍구멍 파고든 안개가 그들이 건넜던 압록강과 두만강의 새벽안개와 밤안개를 불러낼 것이다이제 그곳은 지상에 존재하긴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진저리를 치며 떠나왔겠지만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지만그곳을 잊든 잊지 못하든 그들은 영원히 그 안개 속에 갇혀 버둥거릴 것이었다. _40p

작중 북한이탈주민의 초기 적응을 위한 시설로 제시되는 유니원의 모습을 나타낸 이 대목에서 안개라는 상황에 대해 떠올렸다. 안개는 지역을 달리해도 유사하게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강을 건넌 경험 이후로 안개는 그저 현상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감각,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마저 불러일으키는 매개가 된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곳과 영원히 따라다닐 시간이 함께 소환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소설은 수지라는 인물에 주변인들이 얽혀 들어가는 구조를 취한다. 막 탈북했던 시절 알게 된 안전부 관료와 북의 지시로 수지의 북한 귀국을 추진하려는 사람, 댓글공작 작업의 포상으로 새 일자리를 얻게 된 유니원 교사, 따지자면 그의 사촌인 역시 북에서 내려온 수지의 친구까지. 그러나 이 소설은 수지를 중심에 두되 이야기를 수지로 수렴시키지 않는다. 각 등장인물의 관점이 담긴 장들이 제시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언뜻 보면 모순적인 면들이 조명된다. 타인을 향한 이중적 태도뿐 아니라 북한이라는 공간을 향한 혼란,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대한 확신과 회의의 공존 같은 묘사를 통해 독자는 소설의 모든 일들이 그저 감상하고 말 이야기가 아님을 차츰 알게 된다. 말끔한 한 가지 동기로 한 종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북한이탈주민과의 관계 역시 초기의 의도처럼 돌아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예고 없이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그들을 대하는 일은 결코 계획과 예상에 맞춰 매끄럽게 진행될 수 없다. 앞의 문장은 소설에 대한 해석이지만 동시에 그들을 마주하는 실제 우리의 삶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을 마주하는 우리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소설 속 인물들은 탈북민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바라던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는가 하면 북한에서의 타인의 삶을 자신의 남한에서의 삶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긍정성을 품고 있지만 행복한 완결이라 할 수 없다. ‘소설은 끝난 걸까.’라며 질문하는 작가의 말 첫 문장처럼, 거리가 가까워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전에 없던 갈등과 고통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그 동기는 이타심이나 숭고함이 아닌 이미 모든 것에 연루된 사람으로서의 자기 책임에 있을 것이다.

 

가장 오랫동안 떠오른 사람은 선주 씨였다아파트 배정받고 좋다 했더니 곧 열이 나고 사지가 너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새벽에 남한에 먼저 와 있던 사촌한테 전화했더니 별일 아니니까 진통제 있으면 먹고 기다리라고 했단다기다리면서도 야속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촌은 자기가 의사라도 되는 듯 유니원 나오면 대부분 이유 없이 이렇게 한 번씩 아프다고 했다고내일 퇴원한다고 했다퇴소하면 다들 왜 그렇게 아프대요주영이 묻자 선주 씨는잘 모르겠다며다 잊었다는 듯이 웃었다순 엄살이라고 놀렸지만 그들이 왜 아픈지 알 것 같았다이식의 고통을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이다. _251-252p

선주의 병은 한 번 앓고 지나가는 것일까? 적응을 마치면 모든 고통은 과거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선주는 소설에서 글을 쓰려하고, 책을 읽고 결국 글을 써 내린 사람이다. 그런 행위들은 끊임없이 망각을 방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도록 힘을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선주는 변화하는 고통을 계속해서 겪어내려 하는 사람이며, 이 행동은 소설의 제목에 언급되는 생각하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선주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

정영선(지은이) / 산지니 / 2018-05-24 / 280쪽 / 14800원

 

정영선 소설가의 장편소설. 북한이탈주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활과 사건들을 담고 있다. 댓글 공작을 위한 출판사에서 일하던 주인공 주영이 선거 이후 탈북인들의 남한 정착을 위한 교육 기관인 유니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 내 청소년 학교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이런 경험에서 온 고민과 생각을 소설에 담았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이유는 다양하지만 남한에서의 고통은 비슷해보였다. 돌아갈 수도 없고 두고 온 가족을 다시 만날 수도 없다. 돌아보지 않는 것,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조차 하지 못한 일이 아니었던가.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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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들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봉생문화상을 수상한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 않은 유일한 곳, 북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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