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인문학

국가가 커진 만큼 시민사회는 멀어졌다

중국, 코로나19 봉쇄 여세 몰아 홍콩과의 접경 지우고 국가주의 강화

 

2021년 1월 홍콩의 조던 주택가의 한 진입로에서 경찰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로를 봉쇄하고 있다. REUTERS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⑧ 중국-홍콩 체제의 변화

“나와 같은 종족이 아니면, 그 마음이 반드시 다르다.”(유교 경전 <좌전>)

홍콩은 중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동서양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접경 포인트로서 다양하게 연구됐다. 1997년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며 ‘일국양제’라는 유일무이한 접경이 생성됐고, 중국 정부와 ‘본토 홍콩’은 ‘일국’과 ‘양제’의 우선순위를 두고 경쟁해왔다. 과거 홍콩이 중국과 세계의 소통을 위한 유일한 접경이었다면, 이제 중국은 상하이 등 새로운 접경을 마련하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중국 국가주의가 힘을 얻는 배경의 하나다. 그럼에도 ‘중국-홍콩 체제’가 국가와 지역, 문화와 문화, 제도와 제도가 만나는 접경이라는 가치는 여전하다. 나는 양쪽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중국-홍콩 체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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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홍콩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서 열린 국기 게양식에서 경찰관이 중국 국기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 깃발을 올리는 의식을 하고 있다. REUTERS

코로나19가 드러낸 ‘분리’의 미덕

2020년 2월 코로나19 발생 초기 홍콩 의료계는 중국과의 접경을 봉쇄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데 99%가 동의했다. 코로나19가 퍼지면 의료진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진다는 이유였다. 2020년 1월부터 중국 우한은 76일 동안 외부와 단절됐고, 2021년 2월에는 허베이성 주민 2200만 명이 봉쇄됐다. 2020년 3월 홍콩에선 4명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2021년 3월에는 주룽 일부 지역 봉쇄가 시행됐다. 200개 건물을 봉쇄하고 코로나19를 검사하는 초강력 방역이었다. 그 지역은 닭장집, 관짝집(coffin house)이라 부르는 쪽방이 밀집한 곳으로 홍콩의 최저소득층이 거주한다. 2021년 4월에는 인도·파키스탄·필리핀에서의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그쪽에서 출발해 홍콩에 도착하는 모든 여객기가 14일간 금지됐다.결과적으로 2021년 5월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홍콩에선 한 자릿수, 중국에선 0명으로 집계된다. 국가와 지역, 지역과 지역의 봉쇄가 코로나19 확산을 막아준 경험은 접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통합보다는 분리가 코로나19 통제에 효과적이었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로 국가와 지역, 그리고 접경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한다. 물론 국가 내에서 지역을 구분하는 접경의 의미도 새삼 주목받았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에서 통합되고 어떻게 분리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시시각각 대답해야 한다.중국 정부는 국가 차원의 방역 성공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초기에 코로나19 사태를 숨겨서 키운 것도 국가권력이고, 도시와 지역 간 접경을 통제해 코로나19 확산을 막은 것도 국가권력이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는 ‘중국의 방역 성공 경험, 왜 전세계가 배워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많다. 글의 요지는 일관되게 첫째, 공산당의 집중 지도, 둘째, 국가 제도의 우수성, 셋째, 전 국민 참여, 넷째, 과학 방역 등이다. 국가가 블랙홀처럼 모든 논의를 삼켜버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토머스 홉스는 국가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구성원들이 합의한 괴물 같은 절대 권력’이라 했고, 프란츠 오펜하이머는 ‘국가란 폭력을 동반한 강자의 지배 체계’라고 했다. 국가주의자들의 논리 속에는 통합의 장점만이 상정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반대로 분리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제국 건설은 우선 지역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 내 지역 사이나 중국-홍콩 체제에서나 접경의 긍정적 측면이 도드라졌다.

국가보안법, 홍콩 ‘시민’을 중국 ‘국민’으로

우한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상황을 경고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돼 숨졌다.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국가 통제를 넘어 외부에 알린 건 시민 기자들의 활약이었다. 의사의 희생, 지식인의 용기, 일반 시민의 협조 등이 중국 시민사회의 존재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은 곧 사라졌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정부는 은폐하고 왜곡하고 억압하는 국가주의로 대응했다. 시민은 그렇게 은폐되고 왜곡되고 억압당해 국민으로 포장됐다.앞서 의료계 투표는 홍콩에도 ‘시민’이 존재한다는 외침이었다. 홍콩 시민사회와 본토 홍콩의 존재감을 보여준 이벤트였다. 하지만 2020년 6월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발효된 뒤 거리시위가 중단되고 사실상 홍콩의 모든 정치 활동이 어려워졌다.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홍콩 시민사회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홍콩 입법의원 선거를 1년 뒤로 연기하는 초법적인 조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내세웠다.2020년 7월부터 홍콩기본법과 홍콩 정부에 충성 서약을 해야 공무원으로 채용되고, 2021년 1월부터는 전체 공무원에게 충성 서약이 강요되고 있다. 이를 거부한 129명에 대한 해고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2020년 8월 중국 국가주의에 비판적인 <핑궈일보> 사주 지미 라이(73)가 체포되던 날, 평소 발행부수가 7만 부이던 신문은 55만 부나 팔렸다. 이제 홍콩 시민은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홍콩 힘내라’라는 문구는 물론 아무 내용도 없는 빈 메모지조차 저항의 상징으로 간주돼 금지되고 있다.2021년 3월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의 행정장관, 입법의원, 구의원 등을 뽑는 홍콩의 선거법이 개정됐다. 이른바 ‘홍콩 특색의 민주화 선거 제도’는 선거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뼈대다. 애국심이 첫 번째 기준이다.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은 덩샤오핑이 처음 언급한 이래 지금까지 중국 국가주의의 상징적인 구호다.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 즉 중화인민공화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홍콩특별행정구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홍콩의 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이나 천안문(톈안먼) 사건 같은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내용이 홍콩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역 정체성이 신속하게 국가로 통합되고 있다. 홍콩 ‘시민’은 코로나19 사태를 기다렸다는 듯한 중국 정부에 의해 중국 ‘국민’으로 포섭됐다. 나는 국가보안법 발효가 실질적으로 홍콩 시민이 국민으로 편입된 분기점으로 본다. 주권 반환 이후 상징적으로나마 가능하던 일국양제는 종식됐고, 중국-홍콩 체제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또다시 새로운 관계를 도모해야 하는 시점이다.

 

2020년 12월 홍콩의 대표적 반중 매체로 꼽히는 <핑궈일보>의 창업주이자 발행인 지미 라이가 중국 중앙정부가 강행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기 위해 호송차로 걸어가고 있다. REUTERS

 

“구국 신념이 국민 계몽을 압도한 시간”

코로나19는 사회를 약화한 대신 국가가 강화된 가장 전형적인 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공간’(Public Sphere)을 크게 축소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도 홍콩에서도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유럽에서처럼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해 행동하는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 인문학자 류짜이푸는 중국에서 1949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건립됐는데 국가만 있고 시민사회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은 개혁·개방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시민사회 형성은 중국-홍콩 체제에서 양쪽 공히 걸음마 단계다.또 다른 사상가 리쩌허우는 중국 현대를 ‘구망’이 ‘계몽’을 압도한 시간이라고 했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이 국민 계몽을 방해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계몽은 유보됐는데 ‘일대일로’ 등 중국의 국가 우선주의에 밀리고 있다. 현대 중국에선 시종일관 국민을 소환하고 동원했을 뿐 시민의 성장은 유보돼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특히 시진핑 등장 이후 국가주의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제는 ‘구망’보다 ‘국가’가 ‘계몽’을 압도하는 형국이다.신자유주의와 주권 반환이라는 이중의 충격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는 홍콩의 정체성, 나아가 중국-홍콩 체제를 재편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주의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선거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까지 숨 가쁘게 내달렸다. 국가보안법 발효와 선거 연기 등의 조처는 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본토 홍콩에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존재할 뿐이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중국이라는 국가권력이 홍콩이라는 지역성 앞에서 이 정도로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을까. 중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홍콩의 ‘대륙화’와 홍콩인의 ‘다시 국민 만들기’는 초보적으로 완성됐다.

빈부격차, 만성불황이 국가 존속의 힘

중국 역대 왕조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평가받는 것은 당과 청 제국이지만, 뜻밖에도 전국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도 손꼽힌다. 제국 성립은 국가와 지역 간의 적당한 거리 두기, 즉 접경 두기가 관건이었다. 분리된 통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의 힘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구실이 됐다면, 뜻밖에도 접경의 중요성을 증명한 예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지역과 지역, 그리고 중국-홍콩 봉쇄는 역설적으로 접경의 의미를 부각했다. 코로나19는 국가와 지역의 ‘적당한’ 거리 두기를 요구했고 그것의 효과를 보여줬다. 코로나19는 통합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가라타니 고진은 국가주의를 통제하려면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가 강해져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가라타니는 네덜란드도 영국도 미국도 국외 경쟁에서 헤게모니를 잡은 뒤에야 비로소 국내 사회문제에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국도 확고한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설 때까지는 국내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즉, 시민사회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 사회의 성장이 중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된 이유다. 이 담론을 중국-홍콩 체제에 적용해보면 의미구조는 분명해진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면 홍콩특별행정구 사회의 성장도 기대할 만하다.가라타니는 자본, 네이션(국민), 스테이트(국가)라는 삼위일체가 사회구성체라고 말한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빈부격차나 만성불황 등의 부정적 결과 때문에 오히려 국가가 존속될 힘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 국민이 국가를 통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홍콩에서도 빈부격차를 확대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가라타니의 지적대로, 신자유주의가 계급격차와 사회불평등을 확대했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의 해법을 국가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면, 코로나19 사태 해법도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지금처럼 높은 때도 드물었다.

자본-국민-국가 삼위일체 전성시대

최근 중국 청년층에게 한 설문조사에서, 중국이 서방국가와 대등한 존재라고 느끼게 한 사례로 ‘중앙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을 꼽은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향후 중국의 국가주의가 더욱 강화되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국민을 위해 뭔가 한다는 이미지를 창출해야 하는 국가와 경제적으로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국민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국가가 쉽게 약화하거나 소멸할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가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했고 서민 일상을 더욱 곤궁하게 했다는 점에서 국가에 대한 국민 기대는 더욱 커졌다.다시 중국-홍콩 체제로 좁힌다면 코로나19 상황 또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자본-국민-국가의 연대가 강화됐다. 그 과정은 자본-국민-국가 체제의 견고함을 확인해주면서 이들 3자에 더욱 강한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 자신감은 중국과 홍콩이라는 각각의 시민사회가 크게 축소되고 무력화됐음을, 그리고 상호관계 측면이 강조되는 중국-홍콩 체제에서 그나마 유지돼온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은 중국-홍콩 체제에서 이미 블랙홀이 된 자본-국민-국가라는 연대를 더욱 강화하는 동력이 됐고, 중국에서 시민사회 형성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류영하 백석대 중국어학과 교수

 

참고 문헌

1. <방법으로서의 중국-홍콩 체제>, 류영하, 소명출판, 2020

2.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개정판)>, 류영하, 산지니, 2020

3.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b, 2017

 

 

출처: 한겨레21

 

알라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aladin.co.kr)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가 6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사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공간인 박물관에서 중국이 왜곡하고 있는 홍콩 정체성을 살펴보고, 과연

www.aladin.co.kr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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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이 한국영화 사상 아홉 번째로 관객 수 천만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산지니 식구들은 영화가 개봉했을 무렵 벌써 다 보았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생각나는 소설이 한 권 있었습니다.바로 1980년대 부산의 5월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장편소설  『1980』입니다.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저자 노재열 선생님은 국가보안법(부림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선생님의 20대에는 부마항쟁으로 인한 도피, 1980년 계엄포고령위반 1987년 노태우 반대시위 구속 등 역사의 사건들이 가득한데요.

두산백과 '부림사건' 항목.(사진을 클릭하시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잔인한 시대의 청춘을 공유한 「변호인」진우와 『1980』정우의 이야기 같이 들어보실까요?

(영화 스틸컷와 소설 대사는 작성자 임의로 발췌해 재구성한 것으로, 영화와 소설의 내용은 서로 무관합니다.)

 

 

 

변호인의 진우,
1980의 정우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모두 총살해야 한다. 하루 세끼 먹여주는 짬밥도 아깝다."

K 헌병은 자칭 국가관이 뚜렷한 애국자였다. … 영창 안을 구석구석 쏘아보는 K 헌병의 얼굴에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 1부 죽은 자의 울음소리

 

“별로 안 아프지?”
싱긋이 웃으며 가슴을 두드리는 수사관의 주먹이 멈추지를 않았다.
“인마, 이 주먹을 계속 맞으면 너는 폐병에 걸려 죽게 돼.”
수사관의 말에 정우는 두려움이 일어났다. 정우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러한 정우를 바라보는 수사관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일어났다.

 ─ 1부 죽은 자의 울음소리

 

 

 

김 여사는 아들의 소식이 끊긴 지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경찰의 집요한 감시를 받아왔다. … 처음에는 아들의 일을 무마하기 위해 아는 사람을 통해 선처를 부탁해 보기도 하고, 경찰서를 찾아가 사정을 해 보기도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 정철이가 저녁 늦게 집으로 오다가 집 앞 골목길에서 경찰에게 연행되어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복경찰이 집 주위에 잠복하고 있다가 김 여사의 집으로 들어가는 둘째 아들 정철을 정우로 잘못 알고 연행했던 것이다. 정철은 맏아들 정우와 한 해 터울로 태어난 연년생으로 정우와 얼굴이 많이 닮았다. 마침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정철을 어둠 속에서 발견한 사복경찰이 정우로 오인하면서 거칠게 연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철을 구타하고 옷이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경찰서로 달려간 김 여사의 앞에는 둘째 아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경찰서 안 구석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날 이후로 김 여사는 집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사복경찰만 보면 달려들어 쫓아내었다. 
 

─ 1부 죽은 자의 울음소리

 

 

 

 

 

그러나 정우는 다시 살아남아야만 했다. 정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시간들, 잊힌 이름들을 다시 되살려 내어야 했다. 그것은 정우 자신도 모르게 남은 숙제였다. 살아남은 자에게 남은 죽은 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만이 산 자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었다. 뼈대만 남아 있는 자에게 피와 살을 붙이고 해골 속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바로 이런 거였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은 자 역시 죽은 자였다.


─ 2부 살아남은 자

 

 

 

 

1980년, 무엇이 떠오르세요?(책소개) 

1980년의 동화,『1980』의 작가 노재열 선생님을 만나다.

부산 지하철 게시판에 붙은 『1980』포스터

젊은이들, 힘내세요!-노재열 저자와의 만남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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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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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과 1980년 부산의 학생투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1980』


1980년 부산의 학생투쟁을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 『1980』 출간

부마항쟁과 1980년 부산의 학생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1980』이 그 운동의 당사자였던 저자에 의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1980』은 제목 그대로 1980년 5월을 전후한 1년여 동안에 한정된 이야기로 1980년을 전후한 격랑의 시간에 대한 소묘이자 폭력과 굴종 속에서 고뇌하는 한 청춘의 여정에 대한 기록을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한 시대의 질곡을 담은 역사소설이자 표랑하는 청춘의 시간을 그린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5·18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저자 노재열은 전두환군사정권 8년 동안 3차례 구속 수감되며 20대 청춘을 다 보낸 이력의 소유자이다. 누구보다 그 시대를 뼛속 깊이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1979년 10월 부마항쟁으로 인한 도피생활을 시작으로 1980년 계엄포고령위반, 1981년 국가보안법 구속(일명 부림사건), 1987년 노태우 반대시위 구속 등으로 20대 청춘을 도피, 구속, 수감의 생활로 다 보내었다. 저자의 체험에 바탕을 둔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아픔에 누구보다 깊이 발을 담근 한 청춘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에 대한 기록이자 고뇌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1980년 5월이 5·18의 광주라는 한 지역에 국한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980』의 성취는 5·18을 부마항쟁과 그 이후 전국적인 학생운동의 흐름 속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1980년 당시의 운동사적 맥락을 그 핵심적인 당사자에 의해 문학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증언과 기록의 차원에서도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시대의 아픔에 고뇌하는 청춘의 이야기

1980년 오월의 봄은 처참하였다. 평온한 미래의 시간을 꿈꾸고 사랑에 몸 달았던 평범한 젊은이들은 자주통일, 독재타도와 같은 대의 앞에서 절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면서 결국은 부끄러워해야만 했다. 당연한 욕망을 타락한 탐욕으로 추궁받아야 했던 그 시절은 지금이라면 믿기 힘든 암흑의 시간이었다. 이제 폭도라 불리던 사람들은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고 통곡의 그날은 국가의 기념일이 되었다. 유인물 한 장을 쓰기 위해서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공포의 시대였다. 세속적 욕망들을 포기하면서까지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며 1980년대를 보낸 그들 청춘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와 시대정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구체성과 사실성이 생생하게 묘사

소설은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 즉 역사적 사건의 선후가 아닌 방황하는 청춘의 시간으로 이야기의 시간을 풀어나간다. 소설은 정우(주인공)가 수감된 15P 영창의 폭력적인 일상으로 시작된다.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과 박정희 저격 사망으로부터 시작된 비상계엄은 1980년 5월 17일을 기점으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이 같은 정국 속에서 부산 양정의 15P 헌병대는 계엄군에 의해 붙잡혀 들어온 수감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수감된 정우는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이 설치된 망미동의 삼일공사를 오가며 견디기 힘든 고문으로 취조당하고 있었다. 저자의 체험에 기반을 둔 감방의 구조라든가 내부의 자체 규율, 고문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그 체험의 구체성과 사실성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고문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꽁꽁 묶어야 해. (중략)
무릎 안쪽으로 끼인 경찰봉 때문에 다리 안쪽 근육이 밀리며 온몸의 하중을 받아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지. 거기다가 경찰봉 양끝을 책상 사이에 걸쳐 놓고 매달린 사람을 그네처럼 흔들거나 빙빙 돌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러는 중에 통닭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은 머리가 거꾸로 서면서 하늘로 향해 입과 코가 벌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얼굴에 젖은 수건을 덮어씌우고 물을 부으면 항우장사라고 해도 버티기가 힘들어.
젖은 물수건 때문에 공기가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물을 부으면 ‘꺽꺽’거리며 숨을 들이마시듯이 그 물은 고스란히 목구멍 기도로 들어가지. 그 고통은 죽음 그 자체야.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만 해도 죽을 고통인데 거기다가 공기 대신 물을 들이마시게 되면 급기야 폐가 난도질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토하게 되지. 차라리 토하면서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살아나는 방법이 되는 거야. -67~68p

소설은 이야기 속 시간으로는 가장 앞선 1979년 10월 16일을 이 소설의 결말로써 제시하며 이야기의 시간을 극적으로 배분한다. 절망과 도피, 저항과 극복이라는 뜨거운 정념의 시간들을 사유와 성찰의 시간으로 엮으며 고난의 순례를 서사화한다.

불온한 역사에서 배우는 성찰의 시간

세상의 모든 청춘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자기만의 알 속에서 부화를 기다린다. 불온한 역사는 미숙한 청춘을 고행 속에서 성숙하게 만든다. 정우는 책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고행의 길에서 배운다. 대학을 나와 적당히 먹고살 수 있던 특권의 시절에는 이념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보장된 미래 따위는 없고, 다만 그들은 고용과 실업 사이에서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살아갈 따름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의 기술이 공생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압도할 때 예민한 청춘의 감성은 타락한다. 여전히 가혹한 시련 속에서 우리들의 청춘은 오늘도 아프게 앓는 중이다. 여기 시대의 아픔에 누구보다 진지했던 한 청춘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저자 : 노재열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후 30년 넘게 부산시민으로 착하게 살고자 애쓰고 있는 사람이다. 전두환군사정권 8년 동안 3차례 구속 수감되며 20대 청춘을 다 보내었다. 감옥을 들락거리며 노동운동에 매달리다 세월을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잠시 잊혔던 옛일을 떠올리며 글들을 모아 본 것이 책으로 만들어졌다. 이 글은 그의 첫 소설책이다. 현재는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에서 노동 상담소 소장 일을 하고 있고 부인과 딸을 곁에 두고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목차

1부  죽은 자의 울음소리
15P 영창/망미동 삼일공사/5·19 성전(聖戰) 포고문/감시의 눈빛/조사가 끝나다/휴식/깊은 밤 울음소리/B 하사의 침묵/죽은 자와 산 자

2부  살아남은 자
이감/삼청교육/감방의 고민/동지들을 만나다/12제자의 예수/정 군이 꾸는 꿈/영호의 면회/살아남은 자

3부  도망자 2
도망을 시작하다/기차에서 잠을 자다/지리산/다시, 부산으로/정씨 아저씨와 정우

4부  도망자 1, 이야기의 끝이자 시작
10월의 함성/가두시위/유신독재의 종말/새로운 준비, 5월의 핏빛 함성으로

해설  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작가 약력

1980 - 10점
노재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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