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산지니 인턴 하혜민입니다지난번에 올린 데린쿠유의 서평에 이어 저자 인터뷰까지 맡게 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원래라면 직접 찾아뵙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만안지숙 작가님이 계신 곳과의 거리가 멀어 직접 찾아뵙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그래서 너무 아쉽게도 서면 인터뷰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고 제가 궁금했던 점이나 알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드렸는데작가님께서 아주 상세히 답변해 주셨습니다다 같이 한번 보실까요?

 

 

 



▲ 안지숙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Q. 안지숙 작가님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됐습니다장편이니만큼 오랜 시간 공을 들이셨을 것 같아요데린쿠유가 출간된 기분이 어떠세요?

 

A. 되게 막 좋을 것 같았는데. 책을 처음 받아 대면하는 순간 스스로 대견한 마음 반, 허전한 마음 반이랄까. 첫 장편이니만큼 문학상 공모에 당선돼 화려하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내서 이런가, 싶어요.

 




Q. 데린쿠유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낯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어떻게 이런 단어를 발견하시고작품의 주요 소재로 끌어오실 수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터키에 놀러 갔을 때 가이드 해 주신 분이 지하 우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우물을 같이 찾아서 들어갔죠.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이고 아주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갔는데, 한참 가다 보니 마을 형태의 구조를 이룬 빈 공간들이 나오더군요. 무수히 많은 작은 방들, 방과 방 사이의 통로, 끝없이 이어지는 통로 어디쯤에서 비밀스럽게 뚫린 방공호, 회의 장소로 썼음직 한 너른 방, 화장실로 썼지 싶은 공간. 그곳이 아랍인들로부터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현실의 공포를 피해 이곳 지하 공간으로 숨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나 역시 현실의 고통, 현실의 어려움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현실적 공간이 없을 때 우리는 마음속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피해 숨어들잖아요. 데린쿠유는 실재하는 구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고통을 피해 숨어드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생각을 하는 동시에 데린쿠유를 제목으로 내세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지요.

 





Q.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 한 명한 명마다 캐릭터 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누구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지요현수다솜경술복임세라찬우를 비롯해 안 감독이나은주정숙과 같은 인물들까지도요작가님께서 인물에 굉장히 공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인물 설정은 대개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A. 소설 시놉시스를 쓸 때 서사에 알맞은 역할을 배분하고 성격을 구체적으로 스케치했습니다. 성격이 잡히면 거기에 맞는 말투나 얼굴, 몸집이나 버릇 같은 게 자연스럽게 따라붙더군요. 그리고 사실 이 소설이 친부모 찾기라는 신파 라인을 타고 가잖아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소설을 접어놓고 며칠간 완결된 드라마를 통으로 다운받아서 보기도 했고요. 여러 인물의 성격과 대사를 유념해서 봤는데 그게 도움이 된 것도 같습니다.

 

 




▲ 안지숙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Q. 다솜이 순우리말로 ‘사랑이라는 의미가 있잖아요저는 세라와 찬우의 사랑(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지만)으로 태어난 현수가 자신의 데린쿠유를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다솜에 대한 사랑이 그 방식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혹시 다솜이의 이름을 그런 의도로 지으신 건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A. , 맞아요. 맑고 따뜻하고 한없이 건강하고 밝은 여자아이를 현수의 여자 친구로 만들어주자고 생각했고, 우리말에서 찾았어요. ‘양명’(亮明)시라는 환하게 밝은도시에 사는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밝은 양지의 사람이에요, 다솜은.

 



 

Q. 저는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복임'이란 인물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친아들을 사고로 잃고현수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어쨌든 너도 내 아들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고요작가님께서는 데린쿠유의 인물 중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A. 현수죠. 다른 인물 하나하나가 다 애착이 가지만 그 많은 인물 사이에서 약간 뚱한 표정으로 느리게 오가는 인물 현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손을 잡고 갔으니까요. 복임의 경우, 사실 제가 아이를 낳아 기른 적이 없어 자식 잃은 감정을 그대로 살려내는 게 좀 힘이 들었어요. 복임이란 인물을 제대로 살려냈나 싶기도 하고. 제 손안에 쥐기가 버거운 인물이었습니다.


 



Q. 우리 사회 내에 신체적 질병을 참아 내는 세라나 정신적 질병을 참아내는 현수와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요그에 따라서 그들만의 데린쿠유도 분명히 다양하게 존재할 것 같고요작가님께서는 이렇게 고통을 참고 버텨야 하는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사회의 방향성에 따르면 세라와 같은 미련함을 지녀야 할 것 같은데내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 자리를 벗어난 현수와 같은 삶도 필요한 것 같거든요.

 

A.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하던데요.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자기 방식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세라의 경우가 그렇죠. 그게 성격의 한계이든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체적 한계에서 오는 것이든 간에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여지가 있다면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벗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을 극복하면서 다른 인생에 도전하는 게 더 나은 삶을 이루지 않을까요. 인생, 한 번뿐인데 할 수만 있다면 밝고 긍정적으로 사는 편이 좋겠죠.






▲ 안지숙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Q. 작가의 말에 '용서와 화해로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있는데원래 그리시던 데린쿠유의 결말이 궁금해요저는 서로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있었기에 이 소설이 성장소설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요만일 작가님이 그리신 결말대로 갔더라면 현수의 운명은 어떻게 뒤바뀌었을까요?

 

A. 바로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 연관되는 건데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거든요. 현수가 처한 삶, 현수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밝고 건강한 다솜의 삶으로 뻗친 손을 거둔다면 현수는 자신의 지하도시에 머물게 되겠죠. 복임과의 거리, 세라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고 자신의 지하도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현수의 모습, 이게 결말이 되었을 것 같네요. 아마도.

 



Q. 우연히 작가님 블로그를 통해 출간 소식을 알리는 글을 보게 됐습니다해당 포스트에는 '궁극적으로 고통을 치르는 방식'에 대해 쓴 글이라고 언급하셨더라고요그 글을 읽고 나니 단순히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성장했다는 지점에만 초점을 맞출 수가 없게 되었어요작가님은 성장에 반드시 성장통처럼 고통이 잇따른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A. 현수뿐만 아니라 세라도, 복임도, 경술도, 심지어는 송찬우도 자신만의 고통을 견디면서 살잖아요.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삶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죠. 성장하고 변화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고 봅니다. 사는 꼴이 어떻든 자신의 삶에 안주하고 자포자기해버린 인물에게 성장통이란 건 따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자포자기한 삶, 본인은 편하잖아요. 하하.

 

 



 Q. 이전에 내신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도 그렇고 이번에 나온 데린쿠유도 그렇고 작가님께서 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저 자신이 사회에서 배제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배제당하고 소외당하고 몸이 아픈 경험이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 소설 속에서 움직이게 하고, 현실의 고통과 두려움, 공포를 이겨내게 함으로써 소설 속에서 구원을 받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제 인생을 견디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견디는 저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 안지숙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Q. 두 번째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시다고 들었는데장편의 경우에는 한 번의 호흡이 길게 이어져야 하잖아요작가님께서 긴 호흡을 가지고 계속해서 글을 쓰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A. 30대 때 몸이 좋지 않아 6, 7년 정도 아무것도 못 하고 허송세월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장편소설을 무지하게 읽었습니다. 그때 사들인 책의 80%가 장편소설이었어요. 엎드려서 읽고 누워서 읽고 앉아서 읽고 서서도 읽었죠. 읽었다기보다 읽어치웠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독서질풍의 시대였죠. 그때의 독서가 알게 모르게 장편의 서사를 떠올리고 장편의 호흡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단편을 쓰는 것보다 장편 작업을 하는 게 일단 재미가 있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공자로서 문학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이론이 도출하지 못하는 지점에 선 문학이 우리가 실천하게끔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A. 이건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각 한 권밖에 못 낸 작가에게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질문 같은데요. 하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고 해야겠네요. 문학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과 그 삶 속에서의 선택들, 어려움을 이기고 고통과 슬픔, 아픔을 겪어내는 모습들을 통해 자기성찰을 끌어내는 힘이 있죠. 자기성찰 속에서 위안도 얻고 반성적 자아를 만나기도 하면서 행동에도 변화가 오게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 지금 제가 생각하는 건 그 정도입니다.

 

 






▲ 안지숙 작가님의 환한 미소.


 








 

 

데린쿠유 - 10점
안지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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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19.07.16 1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의 제목 '데린쿠유'를 처음 들었을 때 궁금했었는데, 터키에 있는 곳이군요.
    실재하는 공간을 작가님이 소설 속 상징적 공간으로 잘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그곳에 저도 가보고 싶네요.

    • BlogIcon hyemineeee 2019.07.16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에 서술된 데린쿠유가 자세해서 직접 다녀오신 적 있으신가 여쭤보려다가 다른 질문이랑 중첩될 것 같아 말았는데, 자세히 다녀온 소감을 써서 보내주셨더라고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네요. :-)

 

방마다 문이 열리고

 

 

최시은 소설집

 

 

 

▶ “그건 꽃이라기보다 상처 같다” 
    거칠고 복잡다단한 세계를 구현하다

 

최시은 작가의 첫 소설집.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세상의 문들이 열린다. 이번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에서는 폭력, 상처, 가난, 아픔 등 저마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말 못할 고통의 시간들을 들여다본다. 냉동창고, 토막살인, 강간범, 개장수, 탈북 여성, 누에, 복어 등 날것의 소재들이 현장감 있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데, 그만큼 작품 세계가 단조롭지 않다. 딸을 강간한 두 번째 남편을 고소하지만, 막상 생계를 위해 그의 항소를 도울 수밖에 없는 여자나 토막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그의 앞에 스스로 걸어들어 가는 여자와 같이 복잡하게 얽힌 삶의 비릿한 냄새를 쫓아간다. 섬세한 묘사로 완성한 최시은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는 삶의 거친 숨결을 느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 누에고치의 고요한 웅크림과
    냉동된 분노가 살아나는 활낙지의 발작

 

총 7편의 소설에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성범죄자 아들과 함께 사는 엄마(「누에」), 남자 하나를 두고 싸우다 임신한 상대 여자를 만나자 말없이 돌아서는 여자(「3미 활낙지 3/500」),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뒤, 소설을 쓰는 여자(「환불」), 노부모와 함께 살며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자(「그곳」) 등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모든 소설에서 현장을 취재한 듯 꼼꼼하게 서술된 배경들과 각 인물의 상황들은 마치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작가 최시은은 긴장감 있게 작품을 끌고 가다 특정 부분에서는 숨 고르기를 하는데, 이는 소설 「환불」과 「그곳」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서사와 서사 사이에 사유의 공간을 적절히 배치해 작품의 배경과 상황, 인물에 대한 이입을 돕는다. 더불어 「가까운 곳」에서는 소설 초반, 동네에 풍기는 이상한 냄새와 이것이 강씨의 살인 때문임을 빠른 전개로 풀어나가다 중후반, 선생님인 정희의 이야기로 옮겨오면서 소설은 속도를 조절한다. 마치 떨리고 초조한 정희의 발걸음을 따라가듯 말이다. 이렇듯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작품의 속도와 긴장감을 조절하며 독자들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그리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품들 속에는 행복해 보이는 표면 아래에 자리한 삶이 보인다.

 

 

▶ 아픔 속으로 한없이 들어가,
    사회의 구조와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는 삶의 어둠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소설집의 첫 포문을 여는 「그곳」은 제대로 된 직장 없이, 나이 많은 부모와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자전적 경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고, 사회가 매달 던져주는 생활비를 받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녀에게 삶은 희망이라는 빛보다 견뎌내야 하는 하루의 무게에 더 가깝다. 작가 최시은은 현실적 묘사와 상황 설정들을 통해 가난과 삶의 무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잔자바르의 아이들」은 사회적 낙인에 직면한 개인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두 번째 남편이자 함께 사는 남자가 딸 소희를 성폭행한다. 아동성폭행범으로 체포된 남자, 하지만 그녀는 그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변호에 나선다. ‘악’마저도 무너지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가난’에 따른 범죄의 되물림, 처벌과 해결 과정에 내재된 사회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 소설 「누에」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 아들과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일상을 담담한 고백체로 전하는 작품이다.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소재를 통해 범죄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고, 더 이상 행복이란 단어를 끌어 올 수 없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 「가까운 곳」은 산에서부터 마을로 내려오는 이상한 냄새로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가 죽어서 나는 냄새라는 강씨의 말을 믿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한편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힌 지은이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자 담임인 정희는 지은의 학적을 정리한다. 그날 이후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꾸는 정희. 그러던 어느 날 퇴근 무렵 아이들의 체험활동수업 결과물을 실고 온 강씨와 마주친다. 외진 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과 실종. 소설은 자극적 소재와 스릴러적 분위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폭력성에 집중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게 들여다본다.

 

 

 ▶ 여성과 여성, 그리고 여성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의 작품들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이 서술자로 등장한다.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여성(「환불」), 아이를 잃은 여성(「3미 활낙지 3/500」),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의 비위를 맞추는 여성(「요리」) 등 각기 다른 사정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환불」은 자궁을 들어낸 이후 소설 쓰기에 매달리기 시작한 중년 여성의 특별한 여름을 묘사한 작품.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여성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중년 여성이 소설을 통해 자신을 다듬어 가기 위한 작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3미 활낙지 3/500」의 정옥은 선천성 폐쇄부전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낳는다. 3년 후 아이를 잃은 정옥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고, 이후 지금의 사장을 만난다. 하지만 사장의 여자라고 자신을 밝히는 사람이 임신한 배를 안고 걸어 들어온다. 정옥은 그 여자를 보자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마구 솟구친다. 이 작품에서는 아픔을 제대로 달래지 못한 채 생을 이어가야 했던 여자의 힘겨운 몸부림이 느껴진다. 「요리」는 성적으로 착취되는 동시에 그 착취를 일삼는 남성의 권력을 비꼬는 여성의 자조적인 고발이다. 요리, 분위기, 음악, 여자.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의 말투에서 가공된 우아함이 떨어진다. 남자는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지는 요리처럼 여자와의 잠자리 또한 자신의 고상한 취향에 맞춰져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요리와 잠자리에 감탄사를 내뱉지만 사실 한 번도 배가 부른 적이 없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저자 소개                                                        

 

최시은

1970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곳 어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내가 태어난 곳도 농업과 어업을 함께했다. 그랬으므로 바다와 산은 자연스레 나의 성장 배경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으로 이주, 영도 산동네에서 지독히 가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 어렴풋 작가를 꿈꾸었으나 포기. 대학에서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 잡다하게 책을 읽었다. 마흔에 소설 공부를 다시 시작. 2010년 진주가을문예로 등단. 그러나 여전히 소설은 어렵다. 부산작가회의, 부산소설가협회 회원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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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야, 정식아, 수진아, 자,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

 

비정한 지구에 내던져진 유기된 생명체
그들이 찾아 헤맨 인생의 어떤 단서

황은덕 소설집 『우리들, 킴

 

 

 

이 세상의 습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걸까?
한국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다

 

제10회 부산작가상, 제17회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한 황은덕 작가의 소설집 『우리들, 킴』이 출간됐다. 황은덕 작가는 2009년에 출간된 『한국어 수업』을 통해 입양, 이민자, 소수자의 이야기를 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입양의 상처를 초점화한 전작과는 달리 입양을 결과하는 사회구조와 남성권력을 겨냥하는 동시에 당사자들의 능동성과 연대성을 부각시킨다. 


인구가 줄어든다며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입양은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소설집 『우리들, 킴』은 총 일곱 편의 작품 중 네 편이 입양에 할애되어 있고 나머지 세 편은 불륜과 미혼모 등의 치정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또한 입양서사와 포함관계를 이룬다. 표제작 「우리들, 킴」을 비롯해 「엄마들」, 「해변의 여인」 등의 작품을 통해서 입양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끊어진 관계를 둘러싼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2006년 미 플로리다 주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로리아」, 흐트러져 버린 가족 관계의 조각들을 수습하는 덕순의 이야기 「열한 번째 아이」, 불안한 사회적 위치와 불완전한 관계를 통해 오늘날의 고독을 엿볼 수 있는 「불안은 영혼을,」, 사는 게 힘들었던 어느 청춘의 아픈 고백 「환대」 등 여성과 사회, 불안과 고독, 삶과 고통에 대한 가녀린 이야기들이 자리한다.

 

 

“이 세상에는 킴이 너무 많아.”
전 세계로 흩어진 '킴'들에 대하여

 

‘우리는 브뤼셀 외곽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들, 킴」의 도입부는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황은덕 작가는 실제로 벨기에 입양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아닌 벨기에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일 터. 황 작가는 소설 속 내용처럼 벨기에 입양인들의 ‘친부모찾기’를 도와주며 입양인들이 겪어야 하는 소수자로서의 삶과 버려진 기억에 대한 상처 등을 더듬어나갔다. 2016년 기준 880명의 아이들이 국내외로 입양됐고, 입양 아동의 발생 유형의 약 90%(국내-88.1%, 국외-97.9%)가 미혼모 아동이다. 전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킴’들과 그들의 엄마인 미혼모들의 이야기. 그들은 왜 입양인,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속에 새겨야만 했을까.

 

표제작이기도 한 소설 「우리들, 킴」은 벨기에 입양인 킴이 한국에 있는 엄마를 찾는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벨기에 한인 입양인회에서 만난 스물세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과 문화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쿨하다. 버려진 기억에 대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1970년대, 한국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거추장스러웠다는 것쯤은 그들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버림받았다는 상처에 고착되지 않고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친부모의 상황과 맥락을 짐직하고 수용함으로써 입양아라는 낙인을 넘어 자신의 서사를 구성해나간다.

 

소설 「우리들, 킴」이 현재 성인된 입양아들의 이야기라면, 소설 「엄마들」은 2017년 현재, 입양을 보내야 하는 어린 엄마들의 이야기들 담고 있다. 미혼모는 많지만, 왜 미혼부는 없을까? 미혼모는 왜 아이를 보내야 할까? 미혼모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가? 소설 「엄마들」에 나오는 미혼모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통해 아이를 버리기 전, 남자와 사회, 그리고 그 외 모든 환경으로부터 버림받은 엄마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근거림을 견딜 수 없어 미혼모가 된 딸의 엄마가 가출해버린 경우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남자로부터 외면당한 여성은 자신과 남자의 가족으로부터 한 번 더 외면당한다. 또한 미혼모 가정이 사회의 문제처럼 치부되는 오늘날, 이 소설은 뾰족한 답이 없는 사회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불완전한 관계, 불안한 상황, 흐트러진 일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사회의 기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소설집 『우리들, 킴』은 이 말에 몇 가지 딴지를 건다. 가정을 이뤄야만 사회에 기반이 되는가, 여기서 말하는 가정이란 무엇인가, 혹 제단되어진 정상이라는 범주 속의 가정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황은덕 작가는 소설집 『우리들, 킴』을 통해 남성권력과 가족주의로 짙게 물든 사회적 통념에 개인의 삶과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글로리아」는 입양여성 글로리아를 주인공으로 한다. 입양아 개인의 자격으로 세상과 맞서다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 서사의 이 소설은 입양제도의 대한 고발로도 읽힐 수 있다.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중 갑자기 아들이 사라지고, 글로리아는 세상의 편견 속에서 혐의를 뒤집어쓴다. 계속되는 언론의 공격과 사람들의 시선에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데…. 글로리아가 죽은 뒤, 그녀를 향한 모든 오해는 풀릴 수 있을까?
소설 「해변의 여인」과 「열한 번째 아이」는 흔들리고 불안한 상황 속에 놓인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남편의 외도로 생긴 아이를 입양 보낸 적 있는 노점상 할머니, 사라진 손자며느리 대신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를 등장시켜 그들의 고단한 일상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가정 밖으로 나온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비정규직 시간강사와 삶에 염증을 느끼는 대학교수 간의 불안한 관계와 집착을 그린 「불안을 영혼을,」,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세상의 습속을 힘겹게 걸어 나가야 하는 청춘의 이야기 「환대」까지, 힘들고 지친 삶이 책 곳곳에 베여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입양은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가정이 있는 남자와의 사랑이 에피소드로 제시되며 이들의 불륜이 정확하게 일부이처제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은 남성지배의 사회구조, 가부장적 가족구조에서 보여주는 입양의 문제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여성의 취약함과 불안은 미혼모의 서사와도 겹친다.

 

 

여성과 소수자의 삶, 보다 깊어지고 유연해진 황은덕 소설

 

소설집 『우리들, 킴』에 수록된 7편의 작품은 모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타자화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아졌지만, 황은덕 작가는 그보다 먼저 여성과 소수자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2000년, 그녀는 문단에 얼굴을 알리며 여성의 시각으로 소외되고 상처 입은 타자들의 삶을 전했다. 이러한 작품 세계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한층 깊어지고 유연해졌다. 그동안 모든 희생을 강요하는 모성의 허구성과 그로 인해 분열하는 여성적 주체에 집중했다면, 이번 소설집에서는 이를 강요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접근, 취재를 통해 완성된 입양인들의 현실적인 삶, 음울한 상황과 고독 속에서도 이어지는 행복에 대한 옅은 희망 등을 만날 수 있다. 입양의 서사를 미혼모 그리고 사랑의 서사와 연속시킴으로써 모성을 분할하는 제도 권력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남성권력을 심문하고 이에 대한 입양아‘들’의 연대와 가능성을 드러낸다.


가장 아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사회의 문제와 개인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황은덕 소설집 『우리들, 킴』, 삶의 모난 부분까지 따뜻하게 끌어안는 이야기를 통해 나와 내 주변의 누군가의 삶을 생각해본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저자 소개

 

황은덕 소설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서울과 미국에서 각각 방송작가와 시간강사로 일하며 생활했다.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한국어 수업』, 역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펴냈다. 제10회 부산작가상, 제17회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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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엄마들
우리들, 킴
글로리아
해변의 여인
열한 번째 아이
불안은 영혼을,
환대

해설: 입양서사와 젠더의 복화술_이경(한국국제대 교수)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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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소설집 『우리들, 킴』

황은덕 지음 | 240쪽| 13,000

제10회 부산작가상, 제17회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한 황은덕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황은덕 작가는 2009년에 출간된 『한국어 수업』을 통해 입양, 이민자, 소수자의 이야기를 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입양의 상처를 초점화한 전작과는 달리 입양을 결과하는 사회구조와 남성권력을 겨냥하는 동시에 당사자들의 능동성과 연대성을 부각시킨다.    

 

우리들, 킴 - 10점
황은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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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정난주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7월 16일 목요일에 있었던, 『다시 시작하는 끝』의 조갑상 작가님 인터뷰를 가지고 왔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의 작가님을 만나 뵙고 온다니 정말 신기하고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저와 함께 그 두근두근한 현장으로 가보실까요.

인터뷰가 진행된 경성대학교 인문관. 오후 두시 작가님의 연구실로 찾아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첫 소설집을 재출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재출간의 감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발표했던 단편 27편 중에 17편을 선정해서 첫 작품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산지니에서 재출간을 할 때 그중에 한편을 빼고 ‘방화’를 넣어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방화’를 독자분들과 함께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에서, 또 지난 작품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6월에 발매가 되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언젠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산지니에서 재출간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 후에 편집자분들이 1990년에 나온 세계일보사 판을 도서관에서 빌려 일일이 컴퓨터로 입력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원본이 원고지 형태라 문서 파일이 없었기에 그런 작업까지 하느라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습니다.

또 제목이 '다시 시작하는 끝'이라니, 책의 제목이 자기 운명을 결정한 것인지 묘하게 상황과 맞아떨어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부산에 정착하게 되셨는지, 부산이 작품의 배경으로도 등장할 정도로, 부산에 이렇게나 큰 애착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버지 고향이 의령이셨고, 그 뒤에 마산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부산이라는 도시는 유년기를 보내고, 성장하고, 직장생활도 한 곳입니다.

그래서 의식은 하지 않지만, 부산이 작품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소재에 따라서 특정한 배경을 선택할 수 있지만 대개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 도시, 장소가 저절로 작품의 배경이 되니까요. 부산이 작품적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특별히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동생의 3년」,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 「방화」, 「바다로 가는 시간」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조금 우유부단한 면도 보이고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고 살아갑니다. 특별한 인물보다 보통 혹은 보통보다 더 나약한 인물을 이야기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의도는 없지만, 소설은 한 편 한 편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쓸 때는 그런 걸 생각하지는 않지만, 뒤에 읽어보니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이런 인물이 나온 이유는 강하고 단단한 인물보다는 평범하면서도 나약한, ‘소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로 지난 1960~1980년대의 세상살이를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취향의 문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이런 모습에는 작가님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 어떤 모습의 흔적, 글의 소재, 변형되고 허구화된 주인공 모두 작가의 여러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많이 이입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작품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 속에서 저의 모습을 많이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바다로 가는 시간」에서는 퇴직한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를 연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감정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셨다고 느꼈는데요. 그런 서술의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놔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보다 작가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감정을 많이 이입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 소설집에는 불안 증세를 보이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에서 '남편'은 특히 그 문제가 심각한데요. 남편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내는 남편이 시가 안 써져서, 혹은 승진 때문에 등의 이유로 남편의 불안을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끝내 남편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힌트를 줍니다. 이 소설에서의 힌트는 남편이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 중에 있습니다. 광주 비행장을 필리핀 기술자들이 와서 닦았다, 하는 이야기.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고 난 후의 광주의 모습,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남편은 괴로움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 소설을 읽으면 그 당시를 사진으로 찍어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처럼 최근의 사회상을 나타낼 수 있는 사건이 작가님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거로 이야기하자면, 지금은 선거가 완전히 달라져서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 작품 속 그때와 같은 장면 볼 수는 없지요. 예전의 유세장은 폭력이 존재하고, 격동적이었던 반면 요즘은 별스럽지 않죠. 그 고요함이 뭔가 다 완벽한 것 같지만 사실 허술하고.

이것은 비단 유세장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메르스 사태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대처를 못 해 많은 사람이 불안에 떨기도 하고. 그런 것도 어찌 보면 하창기 씨가 겪은 그런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습만 달리한 폭력에 여전히 어수선하고,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폭력적인 모습은 여전히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텍스트의 영향을 받아오셨을 텐데 특히 어떤 작가, 작품의 영향을 받으셨나요?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습작 시절을 보냈는데 그중 토마스 만, 헤세, 포크너, 도스토옙스키가 기억나네요. 현대작품은 김동리, 염상섭, 이청준의 작품도 즐겨 읽었습니다.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계시면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시는데, 방학 기간인 학생들에게 개강 전에 이 책은 꼭 읽어 봐라, 하시는있으신가요?

누가 추천하니 읽어라, 가 아니라 어쨌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읽든 에세이를 읽든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자신이 스스로 찾아서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독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현대소설강독 시간에 읽어야 하니까 읽는 교과서적인 책 읽기보다는 자신이 관심 가는 작품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방학 동안 열흘 정도 파묻혀 전집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가님의 연구실에 있는 난에 꽃이 피었다고 하셨습니다. 난에 꽃 피기 쉽지 않은데,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네, 우선 저부터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기 중에는 학생분들을 매일 만난다 할 정도로 20대와의 접촉(?)이 많은 환경에 계시는 작가님께 더욱 여쭤보고 싶은데요,

아, 그러고 보니 제 소설에는 20대 주인공이 별로 없군요. 병들의 공화국 빼고는. 다 어른들이 나오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닌 그런 애매한 존재인 20대들을 위한 메시지가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TV 프로그램이나 강연 등을 보면 유행이 됐다 싶을 정도인데요. 작가님은 그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별로 탐탁지는 않은데요. 청춘은 원래 괴로운 존재이어 왔는데 그게 요즘 화제의 대상이 되어서 유독 그런 것 같습니다. 세대라는 것은 늘 있어 왔고 반복되며 누구나 20대를 통과하는데, 그것을 지나온 기성세대들이 위로해주는 척. 단순히 흐름, 조류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몇 년 전부터 유독 그 호들갑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듯이, 20대라는 세대가 많은 고민과 불안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찬란한 젊음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그런 입장에서 그들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어쨌든 삶이라는 게 마냥 무난하고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것, 힘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좀 더 잘까? 아니면 바로 일어날까?’하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갈등부터 큰 갈등까지 매일 겪으면서 삽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산다는 것은 갈등의 연속이고 마냥 편안한 것이 아니니,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 시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자신의 쪽으로 당겨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여러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20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대나 20대는 힘들어 왔으니, 그 시기를 지나온 20대 선배로서, 본질적으로 답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독자분들은 어디서 작가님을 만날 뵐 수 있나요?

7월 27일 월요일 저녁 7시에 자유바다소극장에서 작가회의에서 진행하는 ‘문학 톡톡’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때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겠네요.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한 안내를 볼 수 있습니다.

(부산 작가회의 홈페이지 : http://www.busanwriters.co.kr/)

 

 

인터뷰가 끝나고 저는 작가님의 싸인도 받았습니다. 히히. 이렇게나 장문의 글을 남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조갑상 작가님은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두서없는 질문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친절히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저의 조갑상 작가님과의 만남이 부러우신 분들은 다가오는 27일 월요일 저녁 7시에 자유바다소극장에서 작가님을 찾아 뵙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요!

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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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 자유바다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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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5.07.21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뷰하느라 수고하셨네요.

    꽃이 활짝 핀 교수님 연구실의 난 화분을 보니
    저희 출판사 난이 너무 애처롭네요.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수님께서 정말 반갑게 맞아주셔서 저도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난에 꽃 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그만큼 더 기분 좋은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자랑하실 만한 예쁜 꽃이죠ㅎㅎ

  2. BlogIcon 단디SJ 2015.07.21 1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청춘은 원래 괴로운 존재'라는 말이 되게 와닿네요.
    인터뷰 준비부터 블로그 포스팅까지, 정말 열심히 하신 것 같아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제가 무사히 인터뷰를 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ㅠㅠ 한번씩 게을러질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읽어야 겠어요.ㅋㅋㅋ

  3. BlogIcon 엘뤼에르 2015.07.21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갑상 선생님의 조언 한 말씀 한 말씀이 정말 인상 깊게 다가오네요. 잔잔한 감동이 묻어 나오는 글,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ㅎㅎ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제가 포스팅에 잘 담아냈는지 모르겠네요.ㅠㅠ 매번 응원해주시고 친절하게 피드백 해 주셔서 감사해요!

  4. BlogIcon 찜디 2015.07.22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주씨 수고많으셨어요^^ 인터뷰, 포스팅 너무 잘하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5. BlogIcon 잠홍 2015.07.22 1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게 책 읽으시고 20대 입장에서 궁금한 점들을 여쭤보셔서 재미있었어요. 더운데 취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포스팅 편집도 예쁘네요.

    • BlogIcon 정난주 2015.07.27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교수님께서 차려주신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인데요ㅠㅠ다음 도서관 취재기도 힘내서 쓰겠습니다!

'이상한 과일'



서정아 지음|산지니






 관계를 화두로 한다고 소개되었던 글을 읽은 후 이 소설집이 궁금해졌다.

줄곧 디자인하게 되는 원고가 아닌 이상 산지니의 책을 따로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노력없이는 계속 그럴것 같아 표지에 끌려 궁금했던 소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과일>은,


풍뎅이가 지나간 자리

이상한 과일

내 방에는 달팽이가 산다

나를, 알아?

꿀벌의 비행

해산

빙하로 가는 날엔

잎이 삼킨 것들



이렇게 총 여덟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묘하게 닮은 분위기였다.  각 소설속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관계로 인해 생기는 문제, 갈등 속에서 그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모른 척 흘려보내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었으며, 배경도 가정과 직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가끔 들려왔었던 이야기들 같았으며 그래서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책은 빠르게 읽혀나갔고, 순간순간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였다. '내상황이 이랬다면'이란 상상도 가끔 되었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다.많은 소설들에 고양이, 민달팽이, 개미, 벌, 풍뎅이와 같은 동물,곤충이 등장하며, 그 요소들은 마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세밀히 연관되어져있는 듯 했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었고, 인간관계는 더이상의 안전장치가 아니었다.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 빗대어 충분한 공감을 하기는 어려운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메마르고 각박한, 상처도 많고 불안한 상황속에서 덤덤히 살아가는 20-30대 여성들의 이야기였기에 충분히 감동으로 와닿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상한 과일 - 10점
서정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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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남자의 얘기는 대부분 거짓이지만 그중에는 진실도 섞여 있죠.

  그래서 긴장해서 들어야 해요.”





정광모 소설집 

작화증 사내













독특한 신예작가가 한국 문단계에 등장했다. 일상의 내부를 비집고 들어온 치밀한 상상력으로 점철된 소설가 정광모의 세계는 담담하면서도 드라이한 개성을 지녔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알싸한 맥주거품이 솟아오르듯 현대인이 품고 있는 절망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현실을 끄집어 올리는 작가 정광모의 첫 소설집 『작화증 사내』는 그래서 더욱 독특하다. 왜곡되고 비틀린 현실 속, 정신병원에 감금된 한 사내의 거짓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과 소설적 진실의 자리를 되묻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치열하게 현실을 비틀다

‘첫 문장을 쓰고, 이어서 차근차근 인물의 스토리와 운명을 결정하노라면 (…) 나는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면서 느낀 기쁨에 조금이라도 접근했다는 쾌감에 젖는다.’_정광모, 「작가의 말」


2010년 월간지 「한국소설」로 등단한 작가 정광모는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을 뒤로하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치열하게 현대 문명을 탐구함과 동시에 문학의 존재 이유를 성찰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소설집 『작화증 사내』에 담겨 있다. 현대인의 일상을 일곱 가지 단편으로 무덤덤하게 짚고 넘어간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체제 순응적 삶을 강요당하는 인간 군상을 포착해냈다. 그것은 별일 없는 무료한 일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 정광모의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과 허구 속에 놓인 작화 행위를 묻다


정광모의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끌고 가는 힘이며, 이를 통해 우리 생의 의지를 북돋고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 정직함에 있다. _박형준(문학평론가)

주인공들은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면서, 또는 탈출하려 몸부림치면서 궁극적인 삶의 신비를 체험한다. _윤후명(소설가)

정광모 소설은 모든 것이 갖춰진 현대 문명 속에서, 구원이 없는 인간의 실존을 그린다. 개성이 예술의 중요 덕목이라면 정광모 작가는 드라이한 현대적 개성을 지녔다. _이복구(소설가)


7편의 단편 가운데 표제작은 「작화증 사내」이다. 작화증(confabulation)이란, “공상을 실제 일처럼 말하면서 허위라고 깨닫지 못하는 병”을 의미하는 정신병리학적 증세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화증 환자의 작화 행위를 ‘박’이라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보면서 ‘이야기’의 본질을 묻고 있다. 스토리텔링 기법이 각광받고 상상력이 주목받는 시대이나, 소설 속에 그려지듯 ‘작화증 사내’의 행위들은 모두 미치광이 ‘작화증 환자’의 행동으로 치부될 뿐이다. 임상심리사의 발화를 통해 사내의 말들은 단순한 허위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사회적 ‘질병’으로까지 위험시된다. 이처럼 작가 정광모는 감정적인 수사를 배제하고 담담한 필치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와 은폐된 사실을 그려냈다. 이로써 작가는 문학적 사유와 함께 진실과 허위로 얼룩진 ‘이야기’의 구조 자체에 대한 탐구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비순응적 삶의 양식을 조명하다

정광모 소설가가 드러내는 현실인식은 여타 작품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역사적 외상을 ‘용두산공원’이라는 역사적 장소를 통해 드러내는 한편(「기억 금지구역」),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손쉽게 강요당하는 우리 사회의 순응주의를 꼬집기도(「답안지가 없다」) 한다. 직장의 회식 자리마저도 업무능률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구조화되는 현실(「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이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늘 새로운 과업을 창출해 낼 것을 주문받는 현대인의 쓸쓸한 단면(「시시포스 묻히다」)을 묘파해 내기도 한다. 

이처럼, 소설집 『작화증 사내』는 기존의 개인적 서사와 감정을 위시한 주류문단의 서사 방식과는 달리, 정광모 작가만의 독특하고도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현대인의 실존과 함께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낸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추리적 전개, 새로운 스타일의 발견

한편, 소설 「밤, 마주치다」는 ‘박관수 시장’이 도모하고자 하는 수많은 일이 좌절되고 그로 인해 어긋나는 일상 속에 느끼는 ‘박관수 시장’의 무력감과 피로감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 정치의 비정함과 살인의 유사성’을 그려 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정치적 협잡과 뒷거래가 오가는 가운데 느끼는 주인공의 염세적 삶의 태도는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시체의 검은 봉투에서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텔레비전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아주 일상적인 사건을 두고 ‘검은 봉투’라는 소설적 매개를 통해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실에 끈끈이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구성지게 어울리는 정광모 작가만의 상상의 조미료를 첨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덤덤하기에 오히려 매력적인 정광모의 세계는 그러나 절망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통증의 시작과 끝」에서 이 시대의 우울과 직접 대면하라고 작가는 종용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가 보다 주목되는 작가 정광모. 그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미로를 일곱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포착해 내는 뛰어난 묘사력과 상상력을 동시에 지녔다.

 

『작화증 사내

산지니소설선 17
정광모 지음
문학 | 국판 변형(140*205mm) | 244쪽 | 12,000원
2013년 3월 28일 출간 | ISBN : 978-89-6545-213-3 03810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현실을 끄집어 올리는 작가 정광모의 첫 소설집. 현대인의 일상을 일곱 가지 단편으로 무덤덤하게 짚고 넘어간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체제 순응적 삶을 강요당하는 인간 군상을 포착해냈다. 왜곡되고 비틀린 현실 속, 정신병원에 감금된 한 사내의 거짓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과 소설적 진실의 자리를 되묻고 있다.

 



글쓴이 : 정광모

부산 출생. 2010년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대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을 졸업했고 저서로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 있다.


차례

기억 금지구역

시시포스 묻히다

밤, 마주치다

답안지가 없다

작화증 사내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

통증의 시작과 끝


해설 : 비순응적 삶의 형식-박형준

작가의 말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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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라울리 2013.11.08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단편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책장 넘어가는 게 아깝더군요.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2. BlogIcon 솔바람 2015.05.21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동시에 작품 한편한편이 생각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산지니안 여러분 안녕하세요, 갑자기 자주 인사드리는 전복라면입니다. 26일 목요일 저녁, <34회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중앙동 백년어서원으로 갔습니다.

앉으면 발등이 덮이는 긴 치마를 입고 오신 선생님은 책날개의 프로필 사진에 안경만 씌운 딱 그 모습이시더군요. 사회자는 <댄싱맘>의 해설을 써주신 김경연 평론가님이십니다.

 

*아래 대담은 후에 대화의 주제와 흐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언 순서와 내용이 임의로 보충, 수정, 생략되었습니다. 또한 전작들보다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저자와의 만남에 꼭 방문해 주세요^^

화가의 방을 보다
선생님은 서울 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전에 전시된 ‘화가의 방’을 보고 흥미로우셨다고 합니다. 그즈음 글의 주제나 형식의 새로움을 찾고 계셨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림에 관심이 가셨고, 그러다 6년의 과정을 거쳐 댄싱맘이 탄생했습니다. 그림을 끌어온다는 건 작가에게 모험이었다고, 주제나 구성이 흐려지거나 그림에 글이 부속적으로 따라갈까 봐 많은 걱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림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림과 같이 읽든 별개로 읽든 독자에게 맡기시겠다 하셨습니다.

소설처럼 살다가 시처럼 죽는다
댄싱맘 속 인물들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그리고 글 속의 그 남루함을 윤리적으로 감싸 안아야 하는 책무나 성찰은 없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소설가는 그러한 문제적 인간을 그립니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상형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노숙자를 보고 느끼신 감상이라고 합니다.(^^) 그처럼 다 놓아버린 상태, 마음대로 살다가 안 되면 휙 죽고 싶은 욕망을 내비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그 말씀을 하신 선생님은 비롯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웃었습니다.


똑같은 걸 반복하기 싫다!
김경연 사회자께서는 조 선생님을 ‘유목민의 소설가’라 칭하셨습니다. 선생님의 50년 삶 중 글을 쓰며 보내신 시간은 20년입니다. 긴 시간동안 편안한 한 군데 정박하지 않은 선생님. 무엇이 좋은 소설가인가? 라는 질문에도 새로운 것을 성실하게 쓴다, 는 답을 내셨습니다. 그림과 소설을 엮은 형태를 시도한 이유에는 본격적인 소설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의 의도도 있었다고 하십니다. 항상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민하시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는 선생님.
 
<독자 질문>
Q: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이 낯설었습니다. 의도가 무엇인가요?
A: 사실 그건 우리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요. 동정을 드러내는 것은 제 소설과는 다릅니다.  19세기 소설처럼 어떤 공식이 생긴다면 편하겠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입니다. <까마득>의 마지막에서 버려진 흐엉의 치마를 바람이 흔들고 지나갑니다. 그 바람이 뭘까요? 독자들은 소설가에게 너무 많은 희망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Q: 단편 중에서 영감을 얻어 차기작이나 연작 소설을 쓰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없습니다. 산지니가 대박날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할 텐데요^^

Q: <비비>의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이마에 올리는 그 포즈는 어떤 포즈인가요?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어이구, 저는 못합니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해야죠.


<그냥투표>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리며 산지니 여섯 식구를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러고 싶어서 딱 골랐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1. 소설에 사용된 그림 중 좋았던 것은?
바람꽃 (3표)   버스 (2표)

2. 좋았던 단편은?
까마득 (4표)   댄싱맘 (1표)   거꾸로 가는 버스 (1표)

3. 그럼 별로였던 단편은?
바람꽃 (1표)   나쁜 취미 (1표)   댄싱맘 (1표)   없음 (1표)

4. 마음이 가는 인물은?
바람꽃의 상희 (1표)   비비의 그녀 (1표)   어깨의 발견의 케리 (1표)   댄싱 맘의 셋째 자식 (1표)
까마득의 흐엉 (1표)

 

5월 24일, <35회 저자와의 만남>에는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저자 윤여일 선생님과 함께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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