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8.06.08 [북투어후기] 11화. 에필로그 ① 북투어 참가자들의 목소리
  2. 2018.06.01 [북투어후기] 10화 대만 출판매체 <오픈북>이 주목한 북투어 인터뷰!
  3. 2018.05.18 [북투어후기] 8화 대만 유학생활을 말하다.
  4. 2018.05.11 [북투어후기] 7화 대만은 지방인가, 국가인가?
  5. 2018.05.04 [북투어후기] 6화 『반민성시』 저자 왕즈훙 교수와 북투어단의 차담회
  6. 2018.04.27 [북투어후기] 5화 책 속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새로운 여행
  7. 2018.04.13 [북투어후기] 3화 대만 현대사의 어둠을 따라가다
  8. 2018.04.05 [북투어후기] 2화 도시 곳곳에 남겨진 식민지의 잔재 (2)
  9. 2018.01.29 [여행준비] 타이베이 어둠여행,이곳은 어디? - 3일차
  10. 2018.01.29 [여행준비] 타이베이 어둠여행,이곳은 어디? - 2일차
  11. 2018.01.28 [여행준비] 타이베이 어둠여행,이곳은 어디? - 1일차
  12. 2018.01.27 [여행준비]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 관하여
  13. 2017.12.05 [산지니 북투어] 타이베이 어둠 여행단 모집
  14. 2017.11.10 화려한 관광지? 저항의 역사를 담은 현장!『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15. 2017.11.06 타이베이의 도시사를 따라가는 다크 투어리즘 ::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책 소개)
  16. 2016.12.19 <저항의 도시, 타이페이를 걷다>(출간예정) 대만 문화부 번역지원사업 선정!! (3)
  17. 2016.02.03 쯔위 사태로 바라본 대만-중국 양안 관계를 돌아보다 (3)
  18. 2015.07.15 아시아 개발 속 희생된 이들의 숨겨진 목소리-『빼앗긴 사람들』(책소개) (1)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1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참가자들의 목소리

 

 

 

 

 

일시 : 북투어 3일차 2018년 2월 10일(토) 저녁 7시 30분

장소 : 카페 명성 (1920년 상해에서 개업해 1949년 타이베이로 건너와 운영중)

참가자 : 정선재, 이제만, 곽규환, 김혜림, 강도희, 조세현, 공보름, 현정길, 이수현, 공병호, 권문경, 강수걸 (12명, 발언 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3박4일 북투어의 마지막 날 밤,

참가자들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정선재 : 역자 선생님들이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이하 북투어)를 위해 밤낮없이 준비를 해주셨고, 참가자들의 마음과 상태에 맞춰 매일 회의를 하며 일정을 조율했다. 날씨, 식사 등 불편함이 많았을 텐데 감수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선금까지 걸면서 북투어에 의지를 보여주신 참가자도 계신데, 이런 열정이 북투어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한 것 같다. 수고한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이제만 : 답사경험이 많아서인지 타이베이 북투어가 어렵지는 않았다. 기존 ‘참역사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눔의 집> 방문도 해봤고, 일본에선 14박도 해보았다. 이번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첫 책을 받아 보며 감개무량했다. 원고 번역하던 때의 생각도 나고 이번 북투어에서 여러 방면의 다양한 얘기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곽규환 : 산지니의 이번 북투어는 굉장히 유의미했다. 이런 북투어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다음에 대만에 오는 분들께도 다른 마음, 다른 각도로 여행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번 북투어 참가자들이 『반민성시』의 한국판인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를 다시 본다면 더 어려운 느낌을 받으실 것이다. 이 책을 사전처럼, 가이드북처럼 봐주셨으면 한다.

 

 

김혜림 : 책 속 1~3구역을 돌면서 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배경과 함께 듣게 돼 좋았다. 타이베이가 관광지를 넘어 그 속에 담긴 치열함을 알게 되었다. 대만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앞으로 4~6구역도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대만 이해의 퍼즐조각을 맞춰나가고 싶다.

 

 

 

 

강도희 : 타이베이가 20대 또래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곳이어서 그런 여행인 줄 알았지만 전혀 새로운 여행이었다. 역자께서 북투어 첫 날 ‘실감과 감각’을 얘기하셨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님비 등등. 스린 야시장과 101빌딩의 화려한 야경을 넘어서, 타이베이를 우리와 결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조세현 : 타이베이 북투어 안내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이런 책이 번역되다니. 대학사회에서 대만 연구자는 취직도 잘 안 된다. 연구자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대만사 수업도 전무하다. 기본역사에 대한 소개도 없는데, 타이베이의 속살을 소개하는 책이라니 놀라운 기획이다. 팔릴까 걱정도 했다.(일동 웃음) 예전 타이베이에 몇 달 살아보기도 했다. 여러 곳을 가봤지만 역자들의 생생하고 전문적인 설명에 감탄했다. 용산사도 2~3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그 주변은 처음이었다. 하나하나 실감났다. 우리나라는 대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제시대(친일파, 빨갱이) 질곡을 돌파하는 계기를 대만을 통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만 전문가가 필요하다.

 

(보완사항 : 북투어 예비모임이 필요해 보인다. 책을 사전에 나눠주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어려운 주제일수록, 프로그램 지속 시 필요하다. 대만이 중국이냐 아니냐(중국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는 기성세대가 많다.) 나라이름도 대만인지, 중화민국인지 잘 모르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2.28과 우리의 4.3에 대한 비교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공보름 : 책이 많이 어려웠다. 역사지식도 부족해서 잘 읽히지도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 북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책에서 느끼지 못한 얘기를 들으며 대만의 이면을 알 수 있었고,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다. 왕즈훙 교수와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아무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현정길 : 그동안 사회단체를 통해 쿠바,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많은 여행을 다녔다. 구석구석 사소한 곳까지 보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도 일제 때 근대유산이 많지만 잘 찾지 않는다. 용두산공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왜 타이베이 구석구석을 보고 있나? 이런 의문이 북투어 중에 종종 들었다. 어느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 도시 형성과 개발 과정에는 폭력과 희생, 탐욕이 공존하는 것 같다.

 

(보완사항 : ‘다크 투어’는 차후 ‘타이베이 역사탐방단’ 등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좋겠다. 사람들은 좋은 걸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해설 설명도 있으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가령 청계천 탐방시 전태일 열사의 친구 설명, 지리산 빨치산 참여자의 설명 등이 있듯이. 사전모임도 있었으면 한다. 외국 나가기 전에 가급적 전공자들을 모아 깊이있는 사전 대화(정보와 지식)가 필요해 보인다.)

 

 

이수현 : 이제는 다들 친해져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 느낌이다. 3박4일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대만과 대만인의 시간과 공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책도 어렵고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입력돼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퍼즐을 맞추듯 메모한 것을 토대로 다시 읽고 복기해서 타이베이와 대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

 

 

공병호 :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장소를 보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왕즈훙 교수와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대만은 4년 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름의 의미를 찾기도 했지만 관광 목적이 컸다. 향후 다른 나라를 가더라도 관광보다는 의미가 있는 테마를 찾고 싶다. 이번 타이베이 북투어를 통해 앞으로 한국에서 재충전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권문경 : 4년 전 타이베이 출장을 왔었다. 그 때 묵은 곳이 다안삼림공원 옆 단디호텔이었다. 가까이에 좋은 공원이 있어 산책도 하고 맛집도 찾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장소를 다시 방문해 보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삼림공원 내 관음상에 대한 이야기와 의광교회 자리가 린이슝 일가족 살해사건이 일어난 유서 깊은 장소였다. 아는 만큼 보이나 보다. 화산문화창의공원을 방문하고 책을 다시 읽으니 짧게 요약된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강수걸 : 중국은 자주 가봤지만 타이완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투어 일정 내내 감기몸살로 고전했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다. 밑으로 보는 시각 교정은 최근의 일이다. 국내에 소개된 타이완 관련 책은 예상외로 없다. 우리에게는 균형있는 접근이 필요하고, 교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역자들이 책 제안부터 안내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감사드린다. 향후 이러한 북투어 활성화의 필요성이 높아 보인다.

 

 

 

 

 

>> 12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0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대만판 출간 인터뷰


 

대만·한국, ‘압축·고속’의 닮은 길…이해의 폭 더 넓혀야

타이완의 오픈북(www.openbook.org.tw)은 한국의 출판저널 같은 곳. 오픈북은 『반민성시』(『叛民城市』 대북암흑여지臺北暗黑旅誌, 이하 『반민성시』)의 한국판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에 나선 <산지니 출판사>의 행보에 큰 관심을 표했다. 대만, 타이베이를 제대로 알고자 찾는 이런 북투어는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오픈북측은 2018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방문과 함께 산지니의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대만판 출간 의미와 한국의 (지역)출판에 대해 다양한 물음을 던졌다. 인터뷰는 2월 10일(토) 오후6시 국립 대만대 부근에 자리한 오픈북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편집자 주-

 

<참조> 타이완 오픈북 인터뷰 링크 https://www.openbook.org.tw/article/p-1058

 

 

 

오픈북과 인터뷰 중인 강수걸 산지니 출판사 대표. 

 

대만 유격문화출판사 꿔페이위郭姵妤 대표와 산지니출판사 강수걸 대표가

서로 번역된 책을 들고 양사의 출판교류 우의를 다졌다.

 

 

 

대만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많아져야

 

 

Q1. 산지니는 왜 『반민성시』(한국판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를 출판하고 싶었는가? 어떻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역자의 적극적인 의사타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꽃보다 할배’란 방송 이후 대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젊은이들이 대만을 많이 찾고 있다. 하지만 대만 가이드북, 소설 일부 외에 이렇다 할 대만 책 소개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곽규환 역자가 『반민성시』를 제안했다. 색다른 책이라 느꼈고, 대만 역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책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앞으로도 좀 더 다양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고, 한국과 대만의 상호소통을 원한다.”


곽규환 : 내면을 보는 여행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크 투어리즘이 출판 결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한국독자들에게 어려운 책이다. 의미를 보고 산지니에 제안했다.

 

 

Q2. 산지니 도서목록을 보면 『반민성시』의 맥락과 닿는 부분을 느낄 수 있는데? 판매는 어떤가?

“한국은 88올림픽 때 철거가 많이 이뤄졌다. 부산에서도 철거가 지속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일제시대 건물도 강제 철거되었다. 철거 관련한 책은 거의 나온 게 없다. 다양성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도시빈민에 주목한 책은 있으나 주류 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한국은 IMF이후 급속한 변화 과정 속에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독자들은 음식이나 작은 행복 등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반민성시』의 한국판인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판매량은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Q3. 과거에도 귀사(산지니)는 이번과 같은 북투어 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이번에 왜 타이완에서 이러한 북투어 행사를 진행하는가?


“북투어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을 소개하는 책으로 북투어를 계획하기는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향후 이런 북투어는 계속할 계획이다. 이번 북투어는 책의 발간과 함께 미리 계획했던 것이다. 타이베이 시내 곳곳을 걸으면서 타이베이와 부산의 유사성을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 일본의 흔적이 가장 많은 도시가 부산인데, 도시규모나 발전사도 비슷하다. 한국과 타이완은 비행기로 2시간 거리로 가깝다. 타이완 관련 출판이 더 많아지면 방문도 많아 질 것이다. 타이완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

 

 

Q4. 대만 열풍과 『반민성시』의 상관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은 개발이 단기간에 이뤄진 나라다. 다양한 도시의 모습도 부족하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일본식민지하에서 도시 모습이 갖춰졌다. 해방 후 도시규모가 확장되면서 그 많던 공장이 지금은 사라지면서(외곽 이전) 아파트가 들어섰다. 대부분의 주거공간의 모습이 특이하다고 느낄텐데, 한국은 아파트공화국이다. 이러한 도시를 되돌아보는 작업은 출판의 의무이다. 과거를 잘 되돌아보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에서도 일제시대 건물을 보존하자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런 부분은 타이완에서 배울 부분이다.”


“한국에서 현재 대만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전에는 홍콩이었으나 열기가 조금씩 식었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 대만관계자들이 많이 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타이완의 밤’ 행사가 별도로 있었다. 양국의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산지니에서는 타이완의 밤 행사 사회를 본 정쾅위 저자의 책도 번역중이다. 대만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많아져야 한다. 홍콩처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올 6월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유격문화출판사에서 꼭 오시길 바란다.”

 

 

 

타이베이가 걸어온 길, 호기심과 동질성을 찾아

 


Q5.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성이 비교적 강한 장소들을 탐방하는데, 이 탐방을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


곽규환 : “역자서문에 밝혔듯이 첫째는 호기심이다. 1~3구역은 관광지가 많은데, 독자들이 경험했던 것과 타이베이가 겪었던 부분이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답이 아니라 타이베이에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동질성이다. 강 대표님 말처럼 한국과 타이완은 정치 경제적으로 압축, 고속이라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타이베이가 걸어온 길, 기억하는 방식이 한국 독자들께 동질성과 호기심을 가져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 왕즈훙 교수가 지적했듯 반민은 저항하거나 핍박받는 민중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주류가치와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원한다.”

 

 

Q6. 북투어 참여자 모집은 어떻게 했고, 구성원들은 어떤 분들인가.


“작년 12월 SNS를 통해 참가자 모집을 했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학생, 교수, 시민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군이다. 특이한 참가자는 중국역사를 전공한 교수님이다. 베이징에서 공부했는데, 이번에 타이완을 좀 더 알고 싶어 참여한 경우이다.”

 

 

Q7.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서 출판사의 지역문화발전 기여를 강조하고 있다. 현지 작가들과의 협업/저자-독자와의 만남 외에 귀사에서는 어떤 방식과 활동으로 지역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대표님은 이 작업에 어떤 인원들과 기관/기구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자체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정책제안을 많이 하고 있다. 지역의 책 정책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우선 도서관 예산을 올리고 도서관의 책 구매 예산을 올릴 것을 적극 제안하고 있다. 또 지역출판 코너도 만들어야 한다고.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관련해서는 후보 책에 지역도서를 꼭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부산 원북원에 선정된 산지니 시집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세월호를 다룬 시 한 편 때문이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벌어졌던 나라가 한국이다.”

 

 

 

책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지자체 의존도는 낮아져야

 


Q8. 지역에서 지역출판사의 출판물 판매량을 증가시킬 정부지원 등의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서울 중심으로 출판이 이뤄지고 있다. 중앙집권이 강한 경향 때문이다. 신문은 덜한 편이지만 지역 출판은 유독 어렵다. 지역마다 개성있는 책을 내면 좋은데, 잘 이뤄지지 않는다. 2005년 산지니 초기에 『반송 사람들』 등 부산 관련 책 2권을 냈는데, 언론에서 책 소개 기사가 아닌 부산 지역 출판사 산지니를 소개한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예산 지원은 딱히 없었다. 2012년부터 부산에선 매년 5종을 선정해 종당 1천만 원의 책을 구매해 작은 도서관에 배포하고는 있다.

 

한국에서는 지자체 홍보 물량을 납품하는 지역 출판사도 많다. 그런 출판사들은 전국 판매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산지니와는 다른 방식이다. 책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지자체 의존도는 낮아져야 한다. 지자체나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지원과 그에 대한 의존은 출판사의 자립도를 떨어뜨린다. 제주도에서는 지역출판조례가 곧 통과될 예정이다. 개별 출판사에 대한 지원이 아닌 물류지원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제주도에서 보다 다양한 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출판물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지역민에 많은 도움이 될 책을 지역도서관에서 일정 비율 뽑을 때도 양서가 중요하다. 출판사와 도서관의 연계는 중요한데, 사서에게 지역출판 이야기를 잘 전달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Q9.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서 확인한 바로는 상당수 독자들이 베스트셀러에 편향된 구매경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역 문화를 다룬 특색 있는 책들이 지역 독자에게서 외면받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그 주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부산인구는 350만 명으로 한국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서점 영향력은 전국의 8%이고, 출판은 4%를 차지한다. 지역출판이 약한데, 서점에서는 주로 베스트셀러가 팔린다. 그 갭을 메꿔야 한다. 부산에는 영광도서 같은 큰 서점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초기에 출판사가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산지니는 다른 지역 출판사와 달리 부산에서 전국으로 판매망을 확장하고 있다. 온라인서점 대형서점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 제공해야 한다. 물류회사는 파주에 있는데 물류창고가 점점 휴전선 근처로 이동중이다. 서울 땅값 때문이다. 부산서 책을 받으려면 정말 멀리서 오게 된다. 이 또한 한국적 특수성이다.(일동 웃음)”

 

 

Q10. 『지행출』 대만판이 발간되었다. 대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대만 독자들께서 『지행출』을 좋아해 주셨으면 한다. 이 책은 산지니 출판사의 초기 10년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담은 책이다. 앞으로 10년 뒤, 산지니는 또 다른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오늘 한 인터뷰와 타이베이 북투어도 『지행출2』에 담겨 있을 것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 11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8화

 대만 유학생활을 말하다.

by. 이제만(대만사범대 유학생)


 

 

대만에서의 유학생활

 대만에 건너온 지 벌써 만 5년이 다 되어간다. 그 당시의 대만은 아직 지금만큼 유명한 관광지나 유학 장소도 아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있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 시기, 대만 워킹홀리데이는 선착순이어서 웬만하면 다 올 수 있었다. 여행도 아는 사람만 오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외국이었다고나 할까.

 

 ‘사범대학교 언어중심’(한국의 어학당과 같은 개념)에 가장 많은 외국인들은 일본인이었다. 그 다음이 한국인. 한 반에 두 세 명은 일본인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비율이 워낙 높아서(대략 40% 정도는 일본인이었다.) 한국인들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인들 대부분이 중국어를 배우고는 싶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에 가기는 두렵거나 꺼려하는 사람들이 대만에 오는 경우였다.

 

 이러한 추세가 한방에 바뀌는 계기가 발생한다. 바로 2013년 여름 경에 방송된 ‘꽃보다 할배- 대만편’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용캉가(당시 아르바이트를 한 곳이 용캉가에 위치한 한국식당이었다)의 관광객은 일본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몇몇 팀들이 망고빙수 가게에서 빙수를 즐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꽃보다 할배’ 이후 유학생(어학연수, 교환학생 등)과 관광객들의 수가 증가하였다. ‘사대 언어중심’에서는 한국어판 안내책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언어중심 마지막 학기에는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이렇듯 한국에서 대만이 막 각광받을 시기부터 지금까지 언어중심, 대학원 등의 학교생활을 사범대학교 중심으로 살짝 소개하고자 한다.

 

 대만의 학기는 3월에 시작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9월에 시작한다. 봄에 시작하여 겨울이 되면 한 학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가을에 시작하여 이듬해 여름에 한 학년이 끝나니 처음에는 매우 생소했다. ‘2018년 1학기, 2018년 2학기’와 같은 학기제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간혹 헷갈리기도 했다.  

 

▲ 민국 기년법으로 표기된 영수증

 

 그러나 대만 학교생활에 더욱 헷갈리는 것이 존재했으니 바로 민국(民國) 기년법(紀年法)의 사용이다. 이는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의 건국이 선포된 1912년을 원년으로 하여 표기하는 방식이다. 대만에서 학교나 관공서에서 흔히 사용한다. 예를 들어 올해가 민국 107년인데 107에 11만 더해주면 서기연도가 나와서 일반적으로는 잘 헷갈리지 않는다. ‘민국 몇 년’에 단순히 11만 더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민국 기년법을 사용하여 1학기, 2학기 구분을 짓기 때문에 조금 골치 아프다. 특히 2학기 째가 많이 헷갈리는데 현재 학기는 106년 2학기이지만 서기로는 2018년도이니 조교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잘못 적을 때가 많다.

 

 

▲ 대만 사범대학교 전경

 

 대만사범대학교(이하 사대)의 전신은 대만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이다. 그래서 그런지 캠퍼스 부지 자체는 넓지 않다. 주요 건물 역시 학교 본관과 행정동, 수업 건물 한 동, 강당과 큰 도로를 건너서 위치한 도서관 구역의 건물들을 다 합쳐도 몇 개 되지 않는다. 이후 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학교를 확장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주변 부지에는 마땅히 확장할 공간이 없었다.

 

 따라서 선택한 것이 캠퍼스의 신설이었다. 현재 사대는 ‘어둠 여행단’이 답사했던 본부라고 불리는 곳과 대만대학교 근처의 공관(公館) 캠퍼스, 타이베이 외곽에 위치한 린코우(林口) 캠퍼스 등 총 3개의 캠퍼스가 존재한다. 106년 1학기 기준으로 연구생, 대학생 포함하여 1만 5천명 가량으로 대만대학교의 딱 절반 수준이다. 현재 대만에서는 각 학교끼리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사대 역시 2년 전부터 대만대학교, 대만과기(科技)대학교와 함께 3개 학교가 연맹을 맺어 학생들이 서로 다른 학교의 수업신청을 한다거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등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사대를 다니며 불편한 점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다니는 학교에 대해 불평할 수 있는 것은 재학생만의 특권이 아닐까. 첫 번째로 사대 근처에는 제대로 된 서점이 없다. 하나 있는 서점마저 수업교재를 파는 곳이다. 대학교 근처에 변변한 일반 서점이 없는 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업에 참고할 책을 찾기 위해 대만대까지 가는 수고를 매번 해야 했다.

 

 두 번째로 사대 행정체계의 비효율성이다. 과거에 월급이나 행정비를 신청할 때 회계실, 인사실, 총무실 등의 각 부처를 돌아다니며 도장을 받아야 했다. 회계실 입구에 들어가면서 1명, 회계실에서 3명, 인사실에서 2명, 총무실에서 3명, 대략 10명에 가까운 사람의 도장을 받아야지만 월급을 겨우 수령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매달 같은 날에 수령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혹, 총무실 최종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시 문서가 되돌아와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여기서 가장 화가 났던 것이 왜 그 전 단계의 행정직원들이 꼼꼼하게 확인을 하지 않았느냐다.

 

 마지막으로 열악한 교실 및 도서관 환경이다. 교실 환경에 대해서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강의실에 원래 책상과 의자가 일체형인 나무 책상이 있었다. 그런데 방학 동안 조금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책상과 의자를 분리하여 검은 페인트로 다 칠해놓은 것이었다. 물론 강의실 내 모든 책상이 나무 책상은 아니다. 그나마 교실 환경은 참을 만 했지만 사대 도서관의 열악한 환경은 정말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장서의 수도 적을뿐더러 등록된 도서의 행방불명과 존재하고 있는 도서의 상태불량 등 관리의 소홀함이 너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제 학생들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자. 대만 대학교의 1교시는 8시 10분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보통 등교할 때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사온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먹는다. 솔직히 대만 학교생활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1교시 수업 중에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먹는 것은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한다 치더라도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사서 교실에서 먹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자가 아는 한 교수는 수업시간에 취식을 금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교내 밖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도시락을 사서 교내에서 먹는 것이 훨씬 싸니까 학생들은 도시락을 많이 애용하고 있는 듯하다.

 

 보통 학생들의 점심 비용은 대만 돈 100원(한국 돈 3,800원) 내외로 상당히 저렴하다. 대만 학생들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복장에 관해서도 상당히 수수하고 잘 꾸미지 않는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일반화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만 학생들에게 느껴졌던 부분은 한국 학생들보다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 대만 역시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마음의 여유가 조금 더 느껴진다고 할까.

 

 대만 사회도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같이 ‘22K(대만 돈 2만 2천원으로 한국의 88만원과 비슷하다)’라는 말이 있고 ‘민달팽이 운동’처럼 청년 주거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러나 타이베이 곳곳, 도심에 종종 보이는 공원이나 숨어있는 골목 등지를 날씨가 좋을 때나, 흐릴 때나, 비가 올 때 걷다 보면 없었던 여유가 생겨나는 기분이 들고는 한다. 아마 대만의 대학생들 역시 이러한 곳에서 여유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9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7화 

 대만은 지방인가 국가인가?

by. 조세현(부경대 사학과 교수)

 

 


대만은 중국의 지방일까? 독립적인 국가일까?

 

 

▲ 중국과 대만의 지도

 

 

 오늘날 대만臺灣이라는 지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국가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여기서 중화민국은 청조淸朝의 멸망과 함께 1912년에 건국되어 37년간 중국을 지배하다가 1949년 중국공산당 세력에 패퇴하여 대만으로 옮겨왔다. 오랜 기간 동안 중국대륙의 통치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대만을 통치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과 중화민국은 실질적으로는 중국대륙과 대만 섬을 각각 지배하고 있지만, 명분상으로는 양자가 모두 대륙과 대만을 자국의 영토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지역명칭에 불과했던 대만이란 이름을 국가명과 구분하지 않고 부르고 있다. 어쩌면 국제사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의 국호를 인정하지 않기에 더욱 ‘중국과 대만’이란 구도로 이해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중화민국과 대만사이에는 역사정체성과 관련한 뿌리 깊은 문제가 숨겨져 있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중국일까 아닐까? 우리가 보통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믿는 상식과 달리 요즘 다수의 대만인들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대만인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전환은 이미 소수의 견해가 아니라 국가권력 차원에서 이루어지기에 더욱 놀랍다. 대만사회에서 자신이 대만인이라고 여기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감소하지만, 여전히 중국으로부터 독립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비록 대만사회 내부에서조차 중국과 대만이라는 명칭 갈등상황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대만을 바라볼 때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중국(대륙)이냐 대만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접근하는 태도이다.

 

 

 대만은 중국과의 역사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대만사관련 다양한 해석 가운데 대만사연구자인 이수붕李筱峰의 견해를 빌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중국당국이 항상 대외적으로 “대만은 예로부터 중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사실이 이와 같은지 문제를 제기한다. 대만은 1684년 청 제국의 영토에 편입되면서 비로소 중화제국 통치아래 일부분이 되었다. 그 전에 대만은 중국의 어떤 왕조정권에게도 통치를 받지 않았다. 만약 대만이 예로부터 중국영토의 일부분이었다면 대만역사상 출현한 첫 번째 통치정부는 중국이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며 실제로는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인이 대만통치를 시작할 무렵 당시 명 제국은 이를 동의하였다. 대만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경영하고 있을 때에는 중국영역이 아니었으며, 정성공이 대만에 정권을 수립하면서 비로소 명의 영역에 들어왔고, 다시 청이 대만의 통치권을 빼앗으면서 청의 영토 안으로 들어왔다고 본다.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 시기는 청이 통치하던 211년간이다. 그러나 청 제국이 대만을 병탄했지만 한참동안 이 섬을 정식영토로 보지 않아 봉산금해封山禁海의 정책을 폈다. 1684년부터 100여년 이상 엄격한 해금정책을 폈으며 1875년 이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이민을 개방하였다. 그래서인지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 것은 청대부터 처음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에 대만사가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믿는 것은 상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청조가 대만을 진정한 자신의 영토로 인식한 것은 18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1895년의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은 다시 일본에게 영구 할양되었다.

 

 

▲ 삼국간섭 삽화,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2%BC%EA%B5%AD%EA%B0%84%EC%84%AD)

 

 


  중화민국은 1912년 건국되었는데, 당시의 대만은 일본통치아래 식민지였다. 따라서 대만은 중화민국의 건국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원래 중화민국의 영토에 속하지도 않았다. 1912년부터 1945년까지 중화민국의 범위에는 대만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은 비록 중화민국의 관리아래 놓였으나 실제로는 중화민국정부가 연합국을 대신하여 잠시 관리한 ‘주권이 정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대만과 팽호(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의 작은 섬)의 영토귀속은 반드시 연합국과 일본이 정식 평화조약을 체결해야만 영토의 귀속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1949년 중화민국정부는 중국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철수하였으며, 결국 중화민국의 범주는 대만과 팽호로 축소되었다. 이런 해석에 따라 다수의 대만학자들은 대만은 고대시기에 중국에 속하지 않았고, 청대에도 통치범위가 대만 섬 전체에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역사 거주민 문화 정체성 및 국제법상으로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대만학계가 위와 같은 하나의 역사해석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 내 통일파와 독립파, 혹은 국민당과 민진당 간에 대만사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복잡하게 엉켜있다. 단순화시키자면 어떤 사람들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으로 중국인이 개발했지만, 단지 대만개발이 비교적 늦었고 장기간에 걸친 이민으로 형성된 사회로 대륙과 상이한 경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대만역사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며, 대만사는 중국의 지방사라는 관점을 가진다. 이에 반해 다른 사람들은 대만은 예부터 중국의 영토가 아니며 항상 외래정권의 통치를 받았다고 믿는다. 즉 대만은 이전에 한 번도 대만인 스스로가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해석이 대만의 역사교과서 편찬을 둘러싸고 역사논쟁으로 확대되면서 역사교육에 관심이 있는 교육계와 정치계도 논쟁에 참여했고 언론매체를 통해 일반대중도 광범하게 논쟁에 동참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만정치가들이 대만사 연구 성과를 자의적으로 대만독립(혹은 그 반대)에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이 곤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아졌다.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한편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대륙과 대만의 역사관계를 본격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대만과 팽호를 병칭하여 대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한인 위주의 역사서술을 하면서 대만의 고산족의 기원도 중국 화남지역에서 이주한 고인류로 보고 있다. 정성공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식민주의자를 몰아내 대만을 수복한 민족영웅으로 높이 평가하고, 청대의 대만통치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통해 대만의 중국 귀속여부를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일본식민통치시대 역시 항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연구하며 대륙과 대만동포 간 상호협력을 강조한다. 대륙학계는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분”이라는 관점을 줄곧 유지해 왔으며, 기본적으로 대만사는 중국의 지방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충실하여 논쟁적이기보다는 통일적인 입장을 취하는 특징을 보인다.

 

  대만사가 오랫동안 중국연구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사 가운데 지방사의 하나였지 독립국가의 역사로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중원중심의 국가관을 해양국가관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나, 한족중심의 편견을 버리고 다족군多族群사회라고 보는 것이나, 정권교체가 빈번한 이민사회라고 보는 현상은 결국 새로운 대만사를 건립하려는 목적과 맞물려 있다. 이로 말미암아 전개된 대만의 역사논쟁은 독립파와 통일파 사이의 논쟁은 물론 대만독립파 내부에서도 전선이 형성되었고, 대륙학계 역시 이 논쟁에 가세하여 중국의 대만사학자와 대만의 독립파학자 간에서도 논쟁이 이루어졌다. 대만사회에서 대만사라는 하나의 역사에 복수의 역사학이 공존하며 갈등하는 상황은 중화민국사와 대만사 사이에서 방황하는 대만지식인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 8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6화

 『반민성시』 저자 왕즈훙 교수와

북투어단의 차담회

  

 

 

역사기억의 보존과 도시개발 고민 지점…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원저 『叛民城市』 臺北暗黑旅誌, 이하 반민성시)의 대표저자 왕즈훙王志弘 교수. 그는 현재 타이완대학교 건축과 도농연구소 교수로 재직중이며, 도시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심층을 탐구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산지니 타이베이 북투어단은 2월 9일(금) 오후 4시 30분, 유격문화출판사가 있는 ‘공공책소’에서 저자와 차담회를 가졌다. 왕즈훙 교수의 책 소개와 함께 참가자들의 질의응답을 정리했다. 파란색 글씨는 대만 유격문화출판사 꿔페이위郭姵妤 대표의 답변이다. -편집자 주

 

 

 산지니 타이베이 북투어 일행과 왕즈훙 저자와의 차담회. 왼쪽에서 두번째가 왕즈훙 교수.

 

화려한 도시 이면의 숨겨진 역사를…
 “반민성시의 장소를 직접 탐방하러 멀리서 찾아주어서 고맙다. 이 책은 20년 전 박사과정 때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착안해, 다른 각도에서 타이베이를 보여주고자 기획했다. 노동자, 빈민, 유랑자, 외국인노동자의 역사와 반항 등 여러 장소성을 띤 곳을 취합해 새로운 대안 가이드북으로 엮었다. 일반 대중도 접근할 수 있도록 52개 장소로 압축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중산로는 시민의식이 확대되는 계기로, 권력이란 주제어로 관통된다. 2.28 기념공원에서 타이베이 기차역까지는 동성애자들이 경찰과 싸우는 역사의 기록이다. 타이베이 기차역은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역사 주변에 모여 1층 바닥에 앉아 교류하는 곳이다. 중산북로를 따라 걷다보면 건축물 철거문제와 맞닥뜨린다. 현재의 공원으로 바뀐 모습 속에 과거를 기억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차이루이웨 댄스교습소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차이루이웨는 타이완의 첫 여성운동가로 50~60년대 백색공포 시기에 정치사건의 피해자가 된다. 린선베이루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다다오청이 나온다. 그곳은 청 통치 시기 타이베이의 대표적 상업구역이었다. 그 근방의 원멍로우(기루)는 깊은 인상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가이드가 없으면 화려한 도시 이면의 숨겨진 역사를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러한 엄숙하고 음침함 속에서도 맛있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서민생활 속 희노애락을 잘 느끼셨으면 한다.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산지니 타이베이 북투어 일행

 

Q. 대만 민주화의 역동적 과정이 이 책 속에 잘 담겨져 있다. 동성결혼 허용, 대체복무제 도입, 탈핵 선언 등을 이끈 대만사회의 힘, 저변이 궁금하다.

 “대만과 한국이 앞뒤서는 모습이다. 노동자운동과 옛 건축물 보존에서는 타이완이 앞서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문제를 설명하려면 길어지기에 동성애 부분만 조금 다룬다면 특별한 부분이 있다. 80~90년 초 변화과정에 대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대만대학 등 동성애 관련 동아리가 많이 생겼고, 이들이 졸업 후 관련 NGO에서 동성애 퍼레이드, 인권문제 등 사회적 힘을 싣게 되었다. 작가모임도 있었고, 시장 직선 초기 직선시장은 진보적인 면을 내세우고자 동성애 퍼레이드를 지원하기도 했다. 아래에서 여러 힘들이 모인 부분은 대체복무제, 탈핵도 맥락은 비슷하다.”

 

 

Q. 도시 형성과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폭력적으로 이뤄진다. 부산에서도 빈민들의 저항이 존재했다. 타이베이의 특별한 역사를 소개한다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이완의 도시형성은 일본 식민지하에서 국제무역 관계 속에서 이뤄졌다. 남부도시 타이난은 일본의 교토와 같은 오랜 도시고, 타이베이는 차, 쌀, 장뇌삼 등 농업과 국제무역의 관계 속에서 개발되었다. 일본과 가까운 지역이기에 총독부도 설치되었다. 가까운 지룽은 대만과 일본의 무역을 위해 개발되었다. 홍콩, 상해 등 동아시아 다른 국가의 도시에 비해 타이베이는 느긋하고 편한 패턴으로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이란 인상을 받는다. 4~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들은 독특한 타이베이만의 풍경이다.”

 

 

Q. 살만한, 인간적인 도시의 인상을 얘기하셨다. 타이베이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길 원하는가?

 “세계의 여러 도시를 보며 타이베이가 쾌적하다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지만 다른 요인도 꼽을 수 있다. 편의성, 식사, 야시장 등등. 기후변화 속에 더 좋은 생태도시로 가기 위한 과제와 고민도 있다. 전통과 현대의 결합, 개발과 보존 속에 충돌은 계속된다. 타이베이 시장은 개발에 반대하는 보존세력의 강력한 항쟁에 대해 ‘문화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기도 한다. 역사기억의 보존과 도시개발이란 고민 지점이 있다. 그럼에도 자연과 역사의 공존이 필요하다.”

 

 

Q. 다크투어에서 타이베이의 어두운 면을 보고 가는 한국 독자들에 대한 생각은?

 유격문화출판사 꿔페이위 대표 “타이베이의 화려한 외모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북투어는 특별할 경험일 듯하다. 『반민성시』로 타이베이 여행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픈 마음이다. 여러 언어로 번역해 타이베이를 알리고 싶다. 또 다른 『반민성시』 버전으로 말레이시아도 준비 중이고, 서울도 준비 중이다. 부산 등 다른 나라의 도시도 이 같은 성격의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Q. 불편한 진실에 대한 대만 독자들의 반응과 대만 판매부수는? 지면상 소개 못한 추천지가 있다면?


 유격문화출판사 꿔페이위 대표 “타이베이의 다른 면을 보게 되어 좋아하는 편이다. 이 책은 도심 아닌 주변에 주목하고 있다. 1쇄 2천부가 나가고 2쇄가 판매중이다. 주제가 다소 무겁고 들고 다니기 불편한 점도 있다. 이미 많이 알려졌거나 다른 책에서 소개한 곳은 뺐다. 그래서 60~70곳에서 52곳, 대표성 있는 공간으로 요약했다. 그 52곳을 추천했지만 시간이 괜찮으면 101빌딩 건너편에 남아 있는 권촌(대륙에서 넘어온 군인들의 정착지)인 쓰쓰난춘도 한번 가보시길 권해드린다.”

 

 강연이 끝나고 왕즈훙 교수와 북투어단의 기념사진 촬영.

 

 

 

>> 7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5화

 타이베이를 걷는 새로운 여행

책 속 글과 사진으로 만나는 북투어

 

 


책 속 밑줄 긋고 사진으로 만나는 북투어

 

 

 

 탕부 제당공장 창고와 종류별로 심어놓은 사탕수수.

 

 

 “용산사 지하철 역에서 출발해 다리가大理街를 따라 아이아이원愛愛院을 끼고 돈다. 시끌벅적한 도심 속, 사람의 키보다 높게 자란 사탕수수 숲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탕부糖廍, 제당공장공원과 세 동의 창고 유적이다.”

 

 “설탕 창고가 고적으로 지정된 후 현지의 인문, 역사 관련 활동이 왕성해졌다. 주민들은 구술사, 향토교육, 설탕공예 전승 활동 등을 통해 제당시대의 생활모습을 복원하고 탕부를 향토문화전승의 거점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p20, p22)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해 설립된 런지요양원의 모습.

 

 

 “탕부문화특구에서 몇 걸음 되지 않는 곳, 교통량이 많은 맹갑대로와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삼각형의 녹지. 여기에 1922년 설립된 런지仁濟요양원이 있다. 런지요양원은 타이완 최초로 설립된 정신질환자 전문 수용 요양원이다.”

 

“제1병동 안에는 런지요양원 사진자료와 관련 역사문물을 전시해 타이완 정신질환 의료사의 산 증거로 활용한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 일대를 완화 청초차 거리의 기존 이미지와 연동해 ‘화평청초원’으로 개명했다. 청초차는 아열대 지역에서 즐겨 마시는 차로 해열에 좋다.”

(p23-p24)

 

 

 

랴오슝초등학교와 시간을 멈춘 듯한 보피랴오에서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모습.

 

 

 “1940년대 일본인은 보피랴오를 랴오슝(노송) 공학교(오늘날의 랴오슝초등학교) 부지로 선정했고, 전후 국민당 정부까지 장기간 개발이 금지됐다. 보피랴오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청대와 일제시대의 가옥과 거리를 유지했다.”

 

 “대도정大槄埕의 ‘생생한 보존’과 비교하면 보피랴오는 박제된 표본에 가깝다. 사람들의 생활은 텅 빈 거리 가운데 멈췄다. 가옥은 남았지만 사람은 남지 않았다. 주민들은 떠났고 문화는 가파르게 쇠락했다. (중략) 완화지역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맹갑>이 히트를 쳤다. (중략) 보피랴오에서는 공간을 보존하기 위해 생활하는 주민들을 쫓아냈고, 그 빈 공간에 여러 상업화된 문화창작활동을 채워 넣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참관하는 동시에 정부의 빈곤한 문화적 상상을 추모한다.” 

(p35, p37)

 

 

 설 명절을 앞둔 디화가의 야시장 풍경.

 

 “디화가迪化街를 오갈 때면 코로는 한약 냄새를 맡고, 귀로는 긴 세월을 머금은 거리가 내뱉는 역사의 소리를 듣는다. 기루騎樓를 따라 나 있는 회랑을 걸을 때면 양옆으로 가득 진열된 각종 잡화들이 보인다. 가끔 인파를 피해 큰길 가로 나가 고개를 들면 눈에 담기는 2, 3층의 서양식 건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

 

기루騎樓 : 아열대 지역의 특수한 건축 형태로 건물 1층 바깥으로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아케이드를 말한다. - p29 -

(p48)

 

 

 타이베이 속 작은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작은 인도네시아는 2000년 무렵부터 발전한 구역이다. 인도네시아계 상점은 베이핑서로北平西路 일대로 이전했다. 베이핑서로는 도로망이 분할되면서 발생한 좁다란 공간이다. 이곳에 동남아 잡화점, 가라오케와 결합한 인도네시아식 식당, 은행, 미용원 등이 들어서 있다. 휴일이면 평소 좀처럼 휴식하기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각지에서 이 일대의 상점들로 모여든다.”

(p63)

 

 

야외 벼룩시장, 라이브 음악 감상, 예술영화 소극장 공연, 식당, 카페 등등.

화산문화창의공원은 일제시대 공장을 재활용해 도심의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화산문화창의공원은 원래 일제 시기의 일본방양주식회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베이 양조장으로 개명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확장 때문에 이 양조장은 점점 중심가의 고층 건물로 포위됐다. 이어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1980년대에 양조장 이전이 결정됐고 기존 공장 부지는 중앙행정합동청사 또는 입법원 기관 부지로 할당됐다. 그 전까진 마을 주민들이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타이완 문화창의산업은 문창文創으로 줄여 부르며 200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어온 단어다. 해당 용어는 1997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집권 당시 제창된 창의산업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이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추진된 문화콘텐츠산업으로 사용된다. 타이완 문창산업은 2002년부터 경기침체를 벗어날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졌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p74 - P75)

 

 

 “타이완은 오로지 타이완이다” 대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대규모 시위.

2014년 태양화 운동 시위대의 모습. (사진 제공: 곽규환) 
 


 “타이완본토의식은 타이완 본토화 운동Taiwanization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이완 고유의 역사, 지리, 문화, 언어, 주체의식을 강조한다. 이는 국민당의 대중국 논리와 반대되는 것으로 타이완독립 주장의 사상적 기반이다.”

(p98)

 

 

▲ 융캉가의 망고빙수 가게 (핫 플레이스)

 

 

 “융캉공원의 기획설계 과정에서 공원일대의 노점상과 부랑자들은 배제됐다. 기획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충안을 찾아내려 했지만 지역사회 다수 주민들은 노점상과 노숙인들을 끝끝내 거부했다. 주민들은 이들이 가급적 빨리 이곳을 떠나길 원했다.”

(p120)

 

 

린이슝 가족 가택살인사건의 현장. 지금은 의광교회가 인수해 사용하고 있다.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다. 당사자인 린이슝과 팡쑤민(아내)이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났고, 요행히 화를 면해 목숨을 부지한 린환쥔(장녀)도 이미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 하지만, 이 비인간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은 타이완 민주화 과정과 배후의 얼룩진 혈흔으로 남겨진 증언이다.”

(p123)

 

 

 

 

>> 6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3화

 대만 현대사의 어둠을 따라가다 

 

 


대만 현대사의 비극 2.28사건, 그 현장 ‘천마다방’

 

 

1947년 2.28 사건의 막이 오른 장소 천마다방.

“그 역사의 무게는 쌍둥이빌딩 벽에 박혀있는 ‘천마다방’ 표기 위에 묵묵히 눌려 있다.”

 

 

 대만의 광복절인 1945년 10월 25일은 공식 국경일이 아니다. 또한 2.28 기념관에는 ‘시대 교대’란 단어가 선명하다. 일제의 패망과 자주독립이란 문구가 아니다. 일치 시대, 시대 교대란 인식의 배경에는 또 다른 정복자가 대륙의 국민당이란 인식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장개석 국민당 정권은 대륙에서 대만으로 쫓겨 와 무슨 일을 벌인 것일까?

 

 실마리는 ‘천마다방’에 있었다. 큰길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 북투어 일행은 우산을 쓰고 대로변 작은 기념석에 새겨진 글을 읽었고, 오가는 차를 피해 원래 천마다방이 있었던 자리에 위치한 쌍둥이빌딩 벽면에 새긴 글씨를 간신히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지식인 살롱 ‘천마다방’은 1947년 2월 28일,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2.28 사건의 막이 오른 장소다. 하루 전날인 27일 천마다방 앞에서 담배 좌판을 깔고 영업하던 린쟝마이라는 여성이 수사원의 개머리판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분노한 민중들은 길가의 돌을 주워 수사원과 군인들을 향해 던졌다. 당시 그녀는 치료를 받고 몸을 피했지만, 역사의 거대한 파도는 걷잡을 수 없었다. 명, 청 시대 대만으로 건너온 본성인들은 일본어와 민남어를 사용했기에 일제 패망 전후 대륙에서 넘어온 외성인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국민당 정부는 외성인들을 중용했고, 본성인들은 또 다른 지배자에 대항했다. 당시 천이 행정장관은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공산당과 싸우고 있던 장제스(장개석)는 2개 사단을 대만에 파견했다. 그들은 본성인에게 무차별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였다. 섬 전체가 초토화됐고 수만 명이 희생당했다고 한다. 제주 4.3 항쟁과 닮은꼴이다.

 

 

국민당 정부는 49년부터 87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계엄령을 지속했다.

암흑의 시기였던 것이다.

 

“그 역사의 무게는 쌍둥이빌딩 벽에 박혀있는 ‘천마다방’ 표기 위에 묵묵히 눌려 있다.”

 

(책 p52)

 

 

 

 2.28 기념공원 한켠에 자리한 2.28 기념관에는 당시 처참했던 살육의 현장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2.28 기념공원 안에 자리한 2.28 기념관에는 당시 처참했던 살육의 현장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기념관 정문 입구에는 대만의 한 원주민 단체가 그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피켓과 현수막을 내걸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있었다.

 

 

빌딩 숲에서 살아남은 차이루이웨(蔡瑞月) 무용학원.

 

 

 2.28 사건 당시 옥고를 치른 차이루이웨(蔡瑞月)는 대만의 최승희 같은 인물이다. 남편인 레이스위 교수는 2.28 사건 당시 공산당 분자란 죄목으로 고발당한 민주투사였다. 차이루이웨도 2년 이상 뤼다오(녹도)에 수감되기도 했다. 수감생활 중에도 다른 수감자들에게 무용을 가르칠 정도로 무용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고 한다. 그녀는 출옥 후에 중산북로 인근 일본인 기숙사를 개조해 무용학원을 차렸다. 오전 10시, 개방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한 북투어 일행은 주변을 돌아봤다. 담장 한 켠, 한 당외(재야)인사를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들이 나무에 걸려있다. 건물 뒤쪽 작은 철문에는 무용수를 형상화한 작품이 인상적이다. 도심 빌딩 숲에 잠식될 위기에 놓였던 이 건물을 지켜낸 많은 이들의 노고가 머릿속에서 뜨거운 몸짓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와 대만 원서 『반민성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대만 원서 제목은 『叛民城市(반민성시)』이다. 영화 <비정성시>와 너무도 닮은 이름이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1989년 작 <비정성시>는 1947년 2.28을 배경으로 임가네 4형제가 겪은 비극을 잔잔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다. 말 못 하는 주인공 ‘문청’(양조위 분)은 기차간에서 몽둥이를 든 ‘대만독립’ 시위대와 직면해, 다급하게 한마디 말을 터뜨린다. “대만인!” 중국, 일본도 아닌 ‘대만인’. 4형제는 결국 비운의 죽음을 맞지만, 영화는 1947년, 그 역사적 기억과 상처를 흔들리지 않는 ‘등’으로 마무리한다.


 『반민성시』는 이러한 역사적 시간과 공간에 담긴 의미와 현실을 곳곳에 포진시키고 있다. 그래서 북투어 여행은 걷기와 함께 읽기가 반복되었다. 역사와 현실 사이에 아로새겨진 시공간을 헤매이며 퍼즐을 맞춰나가듯 그렇게.

 

 

‘박애특구’ 권력의 중추기관 속 중추 ‘중정기념관’

 

 

  장개석의 꿈은 원대하였으나 그 끝은 초라했다. 먹구름에 사로잡힌 중정기념당.

 

 

▲ 융캉공원 장개석 흉상.

 

 

 ‘박애특구’ 중정기념당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노약자, 임산부를 위한 파란색 좌석 ‘박애석’이 눈에 띤다. 아마도 쑨원의 ‘두루 사랑하라’는 박애사상 때문에 박애특구로 불리는 듯 싶었다. 중정기념당은 입법 행정 사법 등 권력의 중추기관들이 밀집한 박애특구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매시 정각, 군인들의 교대식을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장제스(장개석, 본명 중정) 동상 앞에서 장제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에 별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대만인들이 장제스를 보는 시각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쑨원과 함께 부패한 청 왕조를 무너뜨린 애국심과 그의 효심 그리고 대륙에서 가져온 60여 만 점의 문화재, 철권통치를 하면서도 경제발전을 이룬 점 등등.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곳곳에 장제스 동상과 흉상이 건재하다. 민진당은 자유광장으로 현판을 바꿔 달았지만 중정기념당 이름은 바꾸지 못했다. 반발 때문이다. ‘타이완 민주기념관이냐 중정기념당이냐’, 싸움은 끝나지 않아 보였다.

 

 거대한 스케일의 광장과 건물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아니 제압한다고 해야 맞겠다. 대륙통일의 원대한 꿈은 거대한 건물로 형상화되었지만 오늘날 중국인 관광객들은 실소를 머금을 뿐이란 역자의 설명이다. 꿈은 원대하였으나 그 끝은 초라한 몰골이었다. 장개석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정리해 놓은 중정기념당을 나서는 여행자의 마음은 답답했다.

 

텅 빈 광장에 우뚝 솟은 중정기념당 위로는 잿빛 하늘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 4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2화

 도시 곳곳에 남겨진 식민지의 잔재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대만의 눈

 

 

 

일제의 첫 식민지 대만, 건재한 총독부 건물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1971년 유엔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이 유일한 국가로 인정받으면서 대만은 유엔에서 탈퇴한다. 그 뒤 수교를 맺었던 일본, 미국,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 줄줄이 단교한다. 현재 수교국은 20개국으로 줄어들었다. 공식명칭은 ‘중화민국’. 이 글에서는 편의상 대만으로 부르겠다.

 

 대만은 고구마 모양처럼 생긴 섬으로 남한 면적의 1/3정도다. 인구는 2,300만 명 선. 아시아의 4룡으로 불리며 2010년 이전까지는 우리 경제보다 한발 앞섰던 나라. 식민지 개척 시절 포르투갈 선원이 이 섬을 발견하고 포르모사(아름다운 섬)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하멜 표류기』의 하멜도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려다 제주도로 표류한 것이다.

 

 

2.28기념공원 대만 지도. 원주민 언어의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대만은 일제의 첫 식민지가 되었다. 1895년 갑오년, 동아시아 세력 지형이 급격히 바뀐다. 호시탐탐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던 일본은 우리나라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내쳐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대만을 손에 넣는다. 이후 1945년까지 50년 동안 식민지배가 이뤄진다. 식민 초기 20여년 게릴라식 무력저항을 진압한 일본은 대만 원주민을 탄압하고 명·청 출신들(본성인)을 우대하는 유화책을 펼친다. 그리고 대만에 토지개혁, 전기, 수도, 교통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무역중계 거점화를 꾀한다. 수도 타이베이와 외곽 지 룽항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중화민국 총통부 건물로 쓰이고 있는 대만총독부 건물.

 

 

 식민지 잔재, 1919년 완공된 대만총독부 건물은 여전히 건재하다. 총을 든 헌병들, 경계용 철선이 곳곳에 깔려 있다. 가까이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 했더니 헌병들이 막아선다. 현재 중화민국 총통부로 삼엄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로, 차이잉원 총통의 집무공간인 셈이다. 아! 머리가 띵했다. 일제잔재를 없애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우리 정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만총독부는 여전한 셈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왜 이들은 일제의 유산을 보전하고 있는가? 대만인들은 되묻는다. “왜 굳이 허무나?” 대만의 입장에서는 일제의 문화통치가 곳곳에 스며들었다. 멀쩡하고 역사적인 건물에 굳이 분풀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실용주의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여행자의 심정으로는 착잡했지만, 문화는 상대적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타이베이 곳곳의 일본가옥들은 잘 보전되어 공간을 재활용하고 있다.

 

 

 대만사범대 주변 치둥가의 일본인 기숙사는 원형의 보존과 활용이 인상적이었다. 치둥가 일대는 2006년 보존구역 및 마을 풍경 보존 특정 전용구역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본인 기숙사가 대만에 잘 보존되고 있어, 일본인들이 놀라워하며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밖에 차이루이웨 무용학원, 화산문화창의공원(섬유공장), 완화 탕부의 제당공장 등 타이베이 곳곳의 일제 건축물은 잘 보전되어 재활용되고 있었다.

 

 

타이베이시 곳곳에 붙은 시의원 포스터에 일본어가 병기된 것은 일본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출처 Marlon Yeh 페이스북)

 

 

 사실 대만인들에게 일제, 일본은 반감보다 호감이 높은 편이다. 식민시기에 도로, 교통, 전기 등 인프라가 구축이 되었고, 식민지배에 큰 저항이 없었기에 일제의 문화통치가 가능했다. 그런데 해방전후 대만으로 들어온 대륙 사람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국민당 정부는 38년 계엄령 하에 폭압을 일삼았다. 그래서일까?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민진당은 ‘일본 친화적’ 입장이다. 타이베이시 곳곳 시의원 후보자들의 선거광고가 눈에 띤다. 한 젊은 시의원 후보자(민진당)의 광고판에 ‘나의 꿈’이란 대만어와 함께 일본어가 병기된 사진이 뉴스를 탔다.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냐는 한탄이 나올 법하다. 이번 화롄지진이 났을 때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구호(대)를 거부하고 일본 구호대만 받은 것은 대만 외교의 현실이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내면의 식민화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역자 곽규환 선생은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들며 ‘정체성의 균열’을 얘기한다. 유색인종이 백인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한 ‘우리’는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안의 식민성과 우리 안의 파시즘을 극복해 새 사회로 나아가는 과제는 만만치 않은 도전인 셈이다. ‘누런 피부, 하얀 가면’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고민은 대만에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3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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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북투어] 타이베이 어둠여행, 이곳은 어디? - 3일차 장소 안내

 

 

정부의 박해와 철거에 대한 항의의 표현을 이뤄진

무용가들의 '우리 집은 공중에 있다' 공연 모습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蔡瑞月舞蹈究社)

 

차이루이웨(蔡瑞月)는 대만의 현대무용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무용의 전파에 힘쓴 대만 현대무용의 어머니이다. 1921년 타이난(台南)에서 태어나 1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현대 무용가인 이시이 바쿠(石井漠) 밑에서 무용의 기초를 배웠다. 배움을 마친 후에는 귀국하여 무용에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현대 무용의 개념을 대만으로 도입하였다. 차이루이웨는 ‘인도(印度)의 노래’, ‘우리는 우리의 대만을 사랑합니다’ 등 500여편의 현대무용을 창작하였다. 또한 발레, 민족무용, 대만 민속무용 등 다원화된 무용을 결합하여 대만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려지게 되었다. 차이루이웨 무용학원은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건물로 일제시대에는 관료 기숙사였다. 당시 타이베이에는 다양한 등급의 기숙사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목조로 지은 일본식 주택형식을 따른 것이었다. 1925년 전후에는 수 십 동을 연결하여 만든 목조 기숙사가 중산북로(中山北路)에 지어졌다. 차이루이웨 무용학원도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그 구조를 보면 일본 판임관(判任官 ; 일제시대 하급관리)의 숙소로 쓰였고 1953년에는 차이루이웨의 집이자 무용창작 및 창작무용 연습교실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후에 무용교실로 바뀌었다. 비록 화재를 겪었으나 1999년에는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곳을 대만 현재무용이 뿌리내린 곳으로 인정하였고, 이에 다시 재건하기로 결정하여 이곳을 개인 소유하려 했던 건설업자들에게서 벗어나 고적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이베이 친다오관의 주요 건물

 

 

▶ 치둥가 일본식 기숙사(齊東街日式宿舍)

 

치둥가(齊東街)는 청대에 산반차오가(三板橋街)로 불리며 맹갑과 석구(錫口 ; 現 송산(松山))를 연결하는 중요한 ‘쌀의 길(米道)’로써 타이베이 성내 지역에 식량과 석탄 및 각종 생필품을 공급했다. 일제시대 타이베이의 개발은 점차 동쪽으로 확장했고 치둥가는 사이와이정(幸町)에 편입됐다. 당시 치둥가 및 치남로(齊南路) 일대에는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지어진 많은 관료 기숙사가 존재하여 ‘사이와이정 관료기숙사촌’으로 불렸다. 이 곳의 기숙사는 총독부의 관리 아래에 있었으며 8개의 등급을 나누어 거주토록 했다. 직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은 기숙사를 배정받게 된 것이다. 치둥가에는 2급 이상의 관료들이 머무는 관사가 있었다. 현재 타이베이 친다오관(臺北琴道)이 있는 건물은 보존 상태가 가장 훌륭하고 규모도 가장 크며 관사의 위계 또한 가장 높았다. 2010년에 타이베이시 문화국에서는 건축가 쑨치롱(孫榕)에게 수리 복원을 맡겼으며 현재 시 지정 고적 및 역사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밖에는 시에서 보호하고 있는 오래된 나무 50여 그루가 서 있고 녹음이 짙어 옛 정취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화산문화창의공원 정면

 

 

▶ 화산문화창의공원(華山1914文化創意業園區)

 

화산문화창의공원은 원래 1914년 일본방양주식회사(日本芳釀株式會社)에서 만든 술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국민당 정부에서 공장을 접수하여 대만성전매국타이베이양조공장(台灣省專賣局台北酒工廠)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식확장으로 인해 주변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환경문제가 대두되자 양조장은 1987년 타오위안(桃園)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술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는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들어서는 입구 3층 벽돌 건물은 쌀로 빚은 곡주를 위한 공간으로 시멘트를 얽어서 짜놓은 모양을 하고 있고 여러 차례 보수되면서 건물마다 높이가 다를 뿐만 아니라 건축 양식도 차이가 있다. 현재 이곳은 타이베이 개발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공업 유적지가 되었으며 지금은 이름을 바꾸고 복합문화창작공간, 예술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단순하게 지어진 공장 건물과 두꺼운 담장, 높이 솟아 있던 창고는 예술작품 전시, 공연, 특색 있는 식당 등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대만 디자이너 주간, 심플라이프 페스티벌, 음악회 등의 행사를 열면서 타이베이 문화예술계의 중요 장소가 되었다

 

 

▶ 박애특구(博愛特區)

 

박애특구(博愛特區)는 타이베이 중정구(中正區) 안의 총통부를 중심으로 하는 구획된 특별지역이다. 이곳에는 총통부, 행정원, 사법원, 외교부, 법무부, 최고법원, 타이베이 지방법원 등 주요 정부기관이 모여있는 곳으로 대만의 정치 중심구역으로 불리는 만큼 대만 계엄령시기부터 군 당국이 구획하여 ‘타이베이시 박애특구 경비구역’으로 특별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항공법 및 건축법 등 많은 규제들이 따른다. 현재 대만 정치의 중심구역인 즉, 일제시대 당시에도 정치 중심구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 아스토리아 카페(明星咖館, Astoria Café)

 

러시아 혁명 이후 황실 군관 Elsne艾斯尼가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동향(同鄕)인 Burlinsky布爾林가 상해에 ‘명성카페(明星咖館)’를 개업한다. 후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올 때 같이 건너와 18세의 졘진주이(簡錦錐)와 나이를 뛰어넘는 우의를 다진다. 그리고 布爾林을 포함한 몇몇 동향인들과 1949년 우창가(武昌街)에 ‘명성 서양과자점(明星西點麵包廠)’을 개업하고 그 2층에 ‘명성카페’의 문을 열었다. ‘명성(明星)’이라는 이름은 ‘Astoria’에서 왔는데 Astoria가 러시아 말로 ‘우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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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북투어] 타이베이 어둠여행, 이곳은 어디? - 2일차 장소 안내

 

 


 

▶ 딘타이펑 鼎泰 (2일차 점심으로 먹을 예정이에요!)

 

1958년 중국 산서성 출신의 양빙이(楊秉彝)가 식용유를 판매하기 위한 기름 도매업으로 시작했다. 샤오롱바오(小籠包)의 판매는 식용유의 매출이 침체되자 1972년에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 후에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는 지역민들에게 인기가 있게 되었고 1980년대에 본업이었던 식용유 판매를 중단하고 샤오롱바오 전문 식당으로 장사를 바꾸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993년 미국 『뉴욕 타임즈』에 소개된 ‘세계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한국에는 2005년에 서울 명동에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린이슝 가택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쌍둥이 량쥔과 팅쥔

 

 

▶ 린이슝 가택 살인사건(林宅血案)

 

1980년 2월 28일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사건의 피해자는 린이슝(林義雄)의 쌍둥이 딸과 모친이다. 당시 린이슝은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에 연루되어 구류된 반체제 인사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중화민국 내외를 경악하게 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현재까지 이 사건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지만 중화민국 사회에서는 이 사건이 국민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의 의지를 꺾고 동요시키기 위해 일으킨 정치적 살인이라는 추측이 많다.

1980년 2월 20일, 메이리다오 사건으로 린이슝은 대만 경비 총사령부(경총)에 의해 반란죄로 기소되고 신디엔(新店) 감옥에 구금된 채 심문을 받았다. 2월 28일 낮, 타이베이시 신이로(信義路)에 소재한 린이슝의 자택에 있던 모친 린요우아메이(林游阿妹)가 13번에 걸쳐 칼에 맞고 지하실 계단에서 숨졌다. 린이슝의 7살 난 쌍둥이 딸인 린량쥔(林亮均)과 린팅쥔(林亭均)도 각각 칼 한번씩을 받고 숨졌고 장녀 린환쥔(林奐均)은 6번에 걸쳐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린이슝의 부인 팡쑤민(方素敏)은 사건이 일어난 당시 린이슝이 갇힌 감옥에 면회를 간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범인은 단도를 피해자에게 찔러 넣고 그대로 가로로 좌우 방향을 바꿔가며 휘두르며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이를 반복하였다. 범행의 수법이 극히 전문적이어서 군사 훈련을 받은 자의 소행으로 여겨졌고 린이슝의 자택이 경찰에게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도 범행이 이루어진 점으로 인해(또한 경찰은 사건 당시는 물론 수사 이후에도 사건의 범인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하였다) 결국 사회 대중들은 이 사건을 정보 기관(혹은 비밀 경찰)에서 일으킨 것으로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3월 2일, 경찰은 린이슝의 자택에 놓인 새 과일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 조사한 끝에 린이슝의 외국인 친구인 브루스 제이콥스(Bruce Jacobs)를 용의자로 의심하였다. 그러나 제이콥스는 자신이 사건과 관련이 없고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타이베이시 경찰국으로 가서 해명하였다. 3월 3일, 치안 당국은 사건의 수사와 해결을 위하여 중화민국 전역의 치안 기관 공동으로 사건 전담 부서를 조직하고 그 아래에 14개의 증거수색팀을 조직하였다. 또한 범인에 대하여 200만 대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후 2009년 3월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린이슝 일가 살인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명령하고 사건 전담 부서를 조직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으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수사 및 감식 기술 부족 등으로 인하여 증인과 물증, 사건 기록 등의 자료가 충분히 남아 있거나 발견되지 않아서, 사건 해결이 매우 힘들다고 밝혔다.

 

린이슝이 투옥된 후 부인 팡쑤민(方素敏)과 장녀 린환쥔(林奐均)은 생활하는 데 곤경에 처하여 사건이 발생한 집을 임대하거나 매각하기로 했다. 결국 타이완 기독 장로교회(台灣基督長老會)가 국내외 신도의 모금을 통해 780만 대만달러에 집을 구입하고 타이완 기독 장로교회 의광교회(義光會)를 건립했다. 의광교회는 매년 2월 28일 오전 9시에 추모 예배를 드리고, 이란(宜蘭)에 소재한 일가 묘지로 가서 추모 행사를 실시한다. 린환쥔은 미국으로 유학하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어 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선교사 조엘 린턴(Joel Linton)과 결혼하여 주디 린턴(Judy Linton)으로 개명하고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린환쥔은 현재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거주하며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 다안삼림공원(大安森林公園)

 

1994년 개장한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생태공원으로 면적이 약 26ha(축구장 크기가 보통 1ha)에 달하며 타이베이 공원 중 가장 크다. 흔히들 타이베이의 폐라고 부르곤 한다. 이 곳을 미리 공원 부지로 선정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타이베이 곳곳에 대형 도시공원을 계획했는데 이 곳이 바로 일본이 선정한 17개 공원 중 제7호 공원 위치이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실현되지 못했으며 빈터로 남아있었던 이 곳을 1949년 국민당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넘어온 군인들이 이 곳에 정착하여 권촌(眷村)을 형성하였고 함께 건너온 외성인, 타이베이로 상경한 본성인 이주민 등의 하층민들이 스스로 집을 지으며 정착하였다. 1980년대 이후 타이베이시는 주민들을 이주시켜 재개발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거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수 차례의 공청회 끝에 결국 도시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이들의 철거사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 참고). 공원 내에는 9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이 있어서 각종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또한 생태호수 여러 수목들이 있고 각종 운동 기구들 또한 갖추고 있어서 타이베이 시민들의 휴식과 운동 공간으로 인기가 좋다.

 

 

융캉 공원

 

▶ 융캉가(永康街) & 융캉공원(永康公園)

 

청대에만 하더라도 융캉가(永康街)는 류공전(瑠公) 지류가 흘러 풍부한 수원으로 인해 논밭으로 가득했다. 일제시대에는 후쿠주미정(福住町)으로 불렸으며 검은 기와집들은 일본 관원들의 숙소로 제공되었다. 부근에 또한 대만대학교(臺灣大學)의 전신인 타이베이제국대학(台北帝國大學)과 대만사범대학교(臺灣師範大學)의 전신인 대만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臺灣總督府臺北高等學校)가 위치하고 있어서 관원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일본의 패전 후, 이곳은 일본의 관원의 거주지가 아니라 국민당 정부의 관원의 거주지로 거주민만 바뀌었다. 1995년, 당시 타이베이 시장 천수이볜(陳水扁)은 융캉가의 확장, 개발을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따르면 융캉가 내에 위치한 현재의 융캉공원(永康公園)의 부지가 잘려나가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이 계획에 반대해 공원을 지키려 했으며 결국 공원의 보존에 성공하였다(융캉공원 보존운동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 참고). 융캉가는 500m 남짓의 길지 않고 넓지 않은 거리이다. 훑어보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출난 볼거리는 없어도 유명한 먹을거리는 많은 곳이고 숨어있는 골목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대 상권 일대에 놓인 차량 한 대

 

▶ 국립대만사범대학교(國立臺灣師範大學) & 사대 야시장(師大夜市)

 

대만국립사범대학교(國立臺灣師範大學 ; 흔히들 줄여서 스다(師大))의 전신은 1922년 개교한 대만총독부고등학교(臺灣總督府高等學校)이다. 1927년에 대만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臺灣總督府臺北高等學校)로 이름을 바꾼다. 일제시대 대만에 있는 유일한 진학고등학교로 소위 ‘대학예과’였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 총통에 재임한 리덩후이(李登輝)가 졸업한 학교이다. 1955년에 대만성립사범대학교(臺灣省立師範大學)로 그리고 1967년에 현재의 대만국립사범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본관, 강당 등이 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만사범대학 학교 부근에 위치한 사대 야시장은 위치가 대학교 주변인 만큼 학생들이 좋아하는 야시장이다. 원래는 규모가 제법 컸었는데 사대로(師大路) 한곳의 노점을 헐고 공원으로 개조하면서 규모가 이전보다 작아지고 위치도 도로 주변이 아닌 뒷골목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사대야시장은 대학생들의 특별한 젊은 활기 때문인지 다른 야시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범대학은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오는 곳이라 골목마다 한국, 일본, 미국, 인도, 이탈리아, 태국 등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도 많다. 귀엽고 센스 있는 물건부터, 저렴한 의류, 신발과 가방을 쇼핑할 수 있는 가게는 물론, 케이크, 커피나 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카페도 많다. 또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젊은 창의 산업을 보여주는 노점 도한 이 일대의 특색이다.

 

 

▶ 타이베이 101(台北 101)

 

타이베이 101(台北101) 혹은 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臺北國際金融中心)는 중화민국 타이베이에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09m, 101층으로 지은 타이완 섬의 대표적인 마천루로 2010년 1월 3일까지 세계의 고층 빌딩 중에서 제일 높은 고층 빌딩이었다. 원래는 W 모양으로 지었으나, 1/3정도 짓다가 흔들려 W형에서 L형으로 고쳤다. 중국 광둥 출신의 건축가 리쭈위엔(李祖原)의 리쭈위엔건축사사무소(李祖原建築師事務所, C.Y.Lee&Partners)가 1997년에 설계하였으며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시공을 맡았다. 정식 명칭은 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Taipei World Financial Center)이고 과거에는 타이베이 국제금융센터(Taipei International Financial Center)라는 명칭을 사용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약칭인 타이베이 101이 널리 쓰이고 있다.

원래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페트로나스 타워보다 3m가 낮아서 첨탑(Spire)으로 페트로나스 타워보다 더 높게 지어 개막하였다. 현재는 ① UAE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828m), ② 중국 상하이의 상하이 타워(632m), ③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아브라즈 알 바이트 시계탑(601m), ④ 중국 광저우의 핑안금융센터(599m), ⑤ 한국 서울의 롯데타워(554m), ⑥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541m), ⑦ 중국 광저우의 광저우 CTF 금융센터(530m)에 이어 세계 8번째로 높은 마천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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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북투어] 타이베이 어둠여행, 이곳은 어디? - 1일차 장소 안내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1구역을 중심으로 돌아볼 예정이에요!

 

 

▶ 맹갑

 

 

 

맹갑(艋舺, 중국어로 멍지아)은 타이베이의 최초 집거지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 말기 타이베이성, 대도정(大稻埕)과 함께 타이베이 핵심 구역 중 하나다. 또한 ‘맹갑’이란 명칭은 현재 완화(萬華) 구역의 옛 명칭이다. 청나라 시기 대만 원주민들이 한족과 교역을 할 당시 사용하던 통나무 배(카누 獨木舟)를 방카(Bangka)라고 불렀는데 대만어(민남어 閩南語)로 맹갑을 방카(Bangka)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후 맹갑으로 표기하였다. 완화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본이 1920년, 맹갑의 대만어 발음인 방카(Bangka)와 비슷한 반카(萬華)로 명명하면서부터다. ‘영원토록 번화하라(萬年繁華)’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단수이(淡水) 강을 통해 정크선이나 작은 증기선이 오갔지만 단수이 강 수심이 얕아져 운송 기능을 상실하면서 맹갑은 차츰 쇠퇴했다. 하지만 현재 맹갑에는 옛 가옥들과 좁은 길을 따라 형성된 상점가의 면모가 그대로 보존 돼 있어 타이베이 초기 역사를 감상하기 좋다.

 

 

 

▶ 탕부문화구역(糖廍文化園區)

 

 

일제시대의 설탕제조공장으로 1911년에 설립됐다. 식민지 시기 타오위안(桃園) 북쪽에 위치한 유일한 제당소였다. 일본 정부는 ‘공업의 일본, 농업의 대만’ 정책을 실시하면서 개인이 소유한 제당소를 사들여 대형집약경양 방식을 추진하였다(당시 개인 제당소의 규모는 크지 않고 품질 또한 일정치 않았다). 반챠오(板橋) 임가(林家)의 임웅징(林熊徵) 등이 타이베이 제당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전기제당공장을 합병 인수하여 이듬해 공장을 완화(萬華) 지역에 건설하였다. 이후 1916년에 타이베이 제당주식회사는 대만제당주식회사로 합병되며 타이완 제일의 신식 제당공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943년, 태평양전쟁의 긴박한 전황으로 인해 사탕수수와 일손의 공급이 부족해져 타이베이 제당소는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전후에 이르러 남아있는 창고는 대만설탕공사(臺灣糖業公司)에 인수되었지만 머지않아 바로 설탕 제조를 중지하고 저장 창고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징신뉴스(徵信新聞 ; 現, 중국시보(中國時報))가 대만설탕공사의 창고를 인수하여 신문 출판업을 시작하였고, 이는 주변의 인쇄산업의 집약으로 이어졌다. 1970, 80년대부터는 철도운송이 편리해짐에 따라 기성복 도매산업이 다리가(大理街)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산업환경변화와 도시발전 축의 동쪽 이전(現, 신이구(信義區) 일대)으로 완화 지역의 공업 환경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인구가 조밀해지고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후에는 실질적인 환경의 질이 점차 나빠졌고, 공공설비는 주민들의 생활기능에 부합하지 못하여 점점 더 도시발전에서 소외되었다. 이후 다리가 지역주민들은 요양원 설립을 반대하고 마을 공원 설립을 쟁취하였으며 대만 최북단에서 제당구조가 남아있는 타이베이 설탕공장을 보존하였다(다리가 지역 사회의 항쟁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 참고). 수 년 간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타이베이 시정부는 2003년에 남아있는 세 동의 창고와 설탕을 옮기기 위해 사용했던 플랫폼을 고적으로 지정하였고 2011년에 탕부문화구역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완화문화 관광명소를 창조하였다.

 

            

 

맹갑공원 옆의 중고 노점의 모습

 

 

 

▶ 맹갑공원(艋舺公園)

 

 

맹갑공원(艋舺公園)은 용산사(龍山寺) 옆에 있으며, 원래 명칭은 ‘완화12호공원(萬華十二號公園)’으로 타이베이 시정부가 예술을 테마로 개발한 매우 특색 있는 공원이다. 공원 내부에는 문화적 의의를 지닌 디자인이 많다. 동쪽에 있는 용형태의 조소는 중국 풍수 중에 좌청룡의 상서로움을 상징하고 서쪽에 있는 배형태의 조소는 타이완 선조들이 일찍이 강을 건너, 운수, 무역 등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중앙의 연못은 중국 풍수와 접목 시켜 북두칠성 방향에 맞게 설치하였으며 매일 한번 분수쇼를 공연한다. 공원 북측에 있는 사찰 광장(廟埕廣場)은 용산사 사찰과 그 연장선에 있다. 광장 내의 별자리 표시는 중국의 별자리와 서양의 열두 별자리를 결합시켜 디자인한 것으로 총 2천여 개의 작은 별들을 박아 넣어 밤이 되면 각종 다른 빛깔의 빛을 발산한다. 맹갑공원은 시정부의 ‘축선 반전, 서구 재건(翻轉軸線、再造西區)’이라는 구호아래 건축된 중요 공원이다. 이 공원과 그 연장선에 있는 용산사는 타이베이시 역사, 문화와 종교의 중요 관광지로서 서구 도시의 재발전을 기대하고 있으며, 상업의 유동성, 국제 관광 명승지로 재건함으로써 맹갑 200년의 멋스러움을 재현할 것이다.

 

 

 

 

용산사 광장

 

 

 

▶ 용산사(龍山寺)

 

 

정식으로는 맹갑 용산사(艋舺龍山寺)로 부르지만 맹갑의 용산사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흔히들 간단히 용산사로 부른다. 용산사는 맹갑 청수암(艋舺清水巖), 맹갑 청산궁(艋舺青山宮)과 함께 맹갑 3대묘로 불린다. 혹자는 맹갑 신흥궁(艋舺新興宮 ; 現 시먼딩 천후궁(西門町天后宮))까지 포함하여 맹갑 4대묘라 부른다. 또한 용산사는 맹갑 청수암, 대룡동 보안궁(大龍峒 保安宮)과 함께 타이베이 3대 묘로 부르고 있다.

 

 

용산사는 청 건륭(乾隆) 3년(1738년)에 천주 삼읍인(泉州 三邑人)들이 건립한 타이베이 시내 사찰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청 가경(嘉慶) 연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용산사는 큰 피해를 입어 개수하였으며 1867년에 폭우로 인해 다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부 공간을 학교와 군영,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용산사 승려 복지법사(福智法師)가 오랜 시간 훼손된 절을 보고 지방 유력자들에게 기부금을 모아 중건하여 현재와 같은 면모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의 건물은 1957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중국 남방 양식과 대만 전통식 건축의 조화로 화려함을 더했다. 불교와 도교, 유교가 공존하는 사원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본존에는 관세음보살, 본전 뒤에는 마조(媽祖), 관우 등 도교와 민간신앙의 신들을 모셔 놓았다. 본존은 본당에 안치된 관음보살이지만 그 외에도 보현보살, 마조, 관제(關帝), 삼신할머니(誕生娘娘) 등의 신불을 모시고 있다. 특히 관음보살은 전쟁으로 본당이 불에 탔을 때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영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음력 2월 19일 관음보살 탄생일에는 성대한 제전이 열린다.

 

 

 

▶ 보피랴오 역사거리(剝皮寮歷史街區 ; 타이베이시 향토교육중심)

 

 

완화의 옛 거리의 골목을 다니다 보면 보피랴오(剝皮寮)라고 하는 옛 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여전히 백여 년 전 청대의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붉은 색의 벽돌, 무지개형의 기루(騎樓), 꽃을 조각한 창문틀 등이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보피랴오 역사거리는 청대의 거리모습, 청대 전통 가게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데 건축공간이 맹갑 시가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특한 역사문화와 건축특색을 드러낸다. 타이베이시 향토교육센터는 교육과 문화의 이념을 융합하여 향토교육을 진행하는 장소로 발전시켜 왔는데 학교교육과 커뮤니티 문화를 결합시켜 여러 가지 주제와 보피랴오 관련 역사 특별전 등을 열고 있으며 각종 교육 활동도 진행하여 휴가를 겸한 교육이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문맹루 내부 

 

 

 

▶ 문맹루(文萌樓)

 

 

문맹루는 1925년 일본 건설회사 호라이사(蓬萊會社)가 지은 예전 공창관이다. 공창관이 성행하던 시기의 구이수이가(歸綏街)는 사람들의 소리와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주변 역시 역시 각종 장신구, 의복, 화장품을 파는 곳이나 약국 및 정력제를 파는 좌판 장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문맹루 뒤쪽의 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는데 과거 공창제도가 존재할 당시 공창관 손님들간의 분규를 해결하는 등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2006년에 타이베이시는 고적으로 지정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대만에 유일하게 보존된 합법적 성매매 공간이다. 일제시대 대만의 성매매 산업의 역사와 근대 대만 사회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현재 건물 자체는 존재하지만 문맹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 볼레로(波麗路) 레스토랑

 

 

볼레로는 1934년에 영업을 시장하여 대만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레스토랑이다. 볼레로라는 이름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1928년에 작곡한 관현악곡 ‘볼레로(BOLERO)’에서 따왔다. 개업자인 랴오수이라이(廖水來)는 일본인이 개업한 서양 식당에서 요리를 배운 후 창업하였다. ‘향촌카레점’, ‘뛰어난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유명했다. 2006년 타이베이시는 볼레로 레스토랑 본점을 타이베이시 역사 건축물로 지정했다.

 

 

관련 링크 :: https://www.travel.taipei/ko/shop/details/1068

 

 

 

▶ 대도정(大稻埕)

 

 

18세기 말의 대도정은 단수이항이 열린 이후 발전을 하기 시작하여, 상업과 무역이 번영하고 인문이 한데 모이는 곳으로 변했다. 대도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53년에 발생한 주도권 다툼이다. 맹갑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삼읍인(三邑人)과 동안인(同安人)들 사이의 다툼은 결국 삼읍인의 승리로 끝났으며 주도권 싸움에서 진 동안인들은 대도정으로 이동하게 된다. 싸움에서 승리한 삼읍인은 맹갑에 남고 패배한 동안인들은 대도정으로 옮겼으나 이후 번화하고 부귀해진 곳은 맹갑이 아니라 대도정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대도정은 화려한 바로크식 건축물, 전통적인 민남식 단층집, 붉은 벽돌로 지어 올린 밝은 양옥집을 갖추고 있는데 고적건축물, 전통민속 건축물, 차 도매상, 천 도매상, 한약재상 및 현지 맛집 등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모두 고성의 역사궤적을 지니고 있다. 대도정에서 대표적인 곳이 바로 디화가(迪化街)이다. 타청제(塔城街)의 연장인 디화가와 그 주변은 건어물, 한약 등의 도매상 밀집 지역이다. 대만 식문화가 집대성 된 거리로 입구부터 강한 한약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50 곳 정도의 약재상이 있다. 거리 가득 한약재와 진귀한 식품이 진열된 모습도 충분한 구경거리다. 음력설 전에는 식재료를 사러 모인 사람들로 빈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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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조금 불편한 타이베이 여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에는 TV에서 보던 화려한 관광지로서의 타이베이가 없다.

대신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의 힘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화려한 불빛에 가려져 잊히고 있는 이야기.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는

그런 도시의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원서 『반민성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홍 외 지음 | 곽규환 한철민 외 옮김 | 306쪽 | 20,000원 | 2017년 10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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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출간 전 이야기

 

ㄴ▶ 책 소개

 

ㄴ▶언론스크랩①

 

ㄴ▶언론스크랩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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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와 함께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거닐

여행 친구를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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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의 신간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여러 신간들을 소개하는 짧은 기사에 실린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소식을 담았습니다.

 

평소 TV에서 보던 타이베이는 화려한 관광지의 모습이었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의 힘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대만이 관광지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볼거리와 먹거리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화려한 관광지 이면에 숨겨진 진짜 역사와 민중을 만나고 싶다면?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관광지라는 이름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 숨겨진

역사의 현장 52곳을 만나보실까요?

 

***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화려한 관광지로서의 타이베이 대신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의 힘에 맞서는 저항의 도시로서 타이베이를 조명한 책. 정치적 권리를 위한 시위, 강제철거에 대한 저항 등 52곳의 현장을 ‘다크투어리즘’에 기반해 도보로 여행한다.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한철민 외 옮김/산지니·2만원.

 

기사 원문 읽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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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타이베이 빈민들의 저항의 역사.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에 맞서 벌인 52가지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타이베이의 화려함 뒤편, 어두운 풍경을 들춘다. 이야기 말미마다 수록된 지도와 QR코드는 실제 장소와 사건을 따라가도록 돕는다. 왕즈홍 외 9명 지음/곽규환·한철민 등 옮김/산지니/306쪽/2만 원.

 

기사 원문 읽기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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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훙·린구이웨이·홍둥리·쉬잉펑·천리쥔 지음. 곽규환·한철민·이제만 옮김.

 

'타이베이를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저항의 도시로서 타이베이를 조명했다. 타이베이 내 52곳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면서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에 맞서 온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산지니. 306쪽. 2만 원.

기사 원문 읽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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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조금 불편한 타이베이 여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국가권력, 자본주의 등 주류의 힘에 맞선 이들의 흔적을 찾는다. 용산사 민주강연, 중산북로 포위사건 등 타이완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 일어난 52곳을 도보로 찾도록 안내한다.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 산지니. 2만원

 

기사 원문 읽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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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왕즈훙, 산지니, 2만원)=‘타이베이를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저항의 도시로서 타이베이를 조명했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화려한 불빛에 가려져 잊히고 있는 이야기를 조명한다. 타이베이 내 52곳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면서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에 맞서 온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기사 원문 읽기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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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새책]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홍 외 지음/ 곽규한`한철민 외 옮김/ 산지니 펴냄

 

스린 야시장은 대만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이라면 꼭 방문하는 핫플레이스지만 이곳이 과거 제지공장 노동자들의 투쟁 중심지였다는 것을 아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도시 거버넌스를 연구하는 타이완대 건축과 왕즈홍 교수가 타이베이 뒷골목의 묵혀진 이야기, 잊힌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왕즈홍은 아기자기한 맛과 따뜻한 감성으로 사랑받는 여행지, 타이베이의 불편한 사실을 들춰내고 있다. 타이베이 지역을 7곳으로 나누고 이곳에 있었던 52개 이야기를 통해 쉽사리 지나쳤던 이름없는 거리와 건물에서 날것 그대로의 타이베이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은 타이베이가 청나라와 일본 식민지라는 씨줄과 날줄로 얽힌 한 폭의 옷감이라면 이 책은 이 옷감에 행동으로 수놓았던 사람들의 저항에 관한 이야기다.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논란이 가시지 않는 요즘 조금 불편한 여행을 통해 화려한 불빛의 이면에 가려 잊힌 도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303쪽, 2만원.

 

매일신문 이지현 기자

 

기사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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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줄 그림 한 장] 화염 속에서 불타오른 자유의 영혼

 

 

화염 속에서 불타오른 자유의 영혼

정난룽의 분신자살은 타이완 민주화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나는 타이완 독립을 주장한다'는 정난룽의 외침은

이후 민진당의 시민 호소 때마다 등장하는 주요한 문구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현시대에서 타이완의 언론자유와 정보의 농단 문제는 이미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에서 자본가에 의한 통제로 전환된 상태다.

149쪽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가다·왕즈훙 외 지음, 곽규환 한철민 외 옮김·산지니

그림=서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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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불빛들에 가려진

‘저항의 타이베이’ 속으로 들어가다

 

*2016년 타이베이 국제 도서전 ‘올해의 책’ 선정

*2016년 대만 문화부 번역 출판 지원 사업 선정도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홍 외 9인 지음 | 곽규환, 한철민 외 3인 옮김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여행은 누군가에겐 휴식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도시와 문화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후자의 경우에 조금 더 집중해보자. 당신이 만난 새로운 도시의 풍경들은 어떤 모습인가? 미남 배우가 웃고 있는 광고 간판, 질서정연하게 짜인 건물과 도로,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길거리….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지금 눈앞에 반짝이는 그것들은 진짜 그 도시의 이야기일까?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조금 불편한 타이베이 여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에는 TV에서 보던 화려한 관광지로서의 타이베이가 없다. 대신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과 같은 주류의 힘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화려한 불빛에 가려져 잊히고 있는 이야기.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는 그런 도시의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친숙한 도시가 된 대만의 타이베이,

이 책을 통해 그 눈부신 풍경들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저항의 영혼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과 정치가 만든 풍경 속,

저항하는 도시의 반민들에 대하여

 

'반민叛民'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부를 배반하여 반란을 일으킨 백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몇 가지의 물음표를 달아보자. 이들은 왜 정부를 배반해야 했는가? 그리고, 어디까지를 반민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도시의 유행적 개발에 따라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시사史를 수놓은 저항들은 도시의 주류적 풍경에 저촉되고 차별받으며 배척당하는 오명의 집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주류 가치세계는 이들의 목소리를 감추고, 묵히며, 잊히게 함으로서 표면적 평화를 들추어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타이베이의 풍경 구석구석에 반민의 목소리가 있다.

  이 책은 52곳의 역사적 현장을 돌아보고 당시의(혹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와 갈등을 전한다. 타이베이의 낯선 풍광 속에서 일찍이 목격했던 익숙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갈 수 있다. 한국과 대만, 두 공간에서 시민들의 운명은 일제강점기, 전란과 냉전의 대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풍파 속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난 민주화의 과정을 통해 몹시 유사한 구조와 결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용산사 민주강연, 중산북로 포위 사건, 타이완대학교 학생들의 항쟁 등 정치적 권리 운동의 모습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생각나게 한다.

 

 

 

 

아름다운 타이베이는 없다”

먹거리, 볼거리가 없는 불편한 도보 여행 가이드이자

생각거리를 키우는 인문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도보 여행 가이드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시사史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상기시키는 인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이 책을 가지고 도보 여행이 가능할 수 있도록 52곳의 지역들에 대한 지도를 QR코드로 삽입했다. 각 지역의 이야기와 사진들이 끝나는 지점에 주소와 QR코드를 넣어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공간을 찾아가기 쉽도록 구성한 것이다.

 

 

  또한, 화려한 욕망, 그 이면에 자리한 상처들을 짚어나가며 권력과 자본이 필연적으로 잉태하고선 돌보지 않는 사람들과 공간을 들여다본다. 여기서 우리는 지배, 건설, 개발과 함께 따라오는 저항, 파괴, 몰락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타이베이의 속살을 헤집는다.

 

 

 

 

타이베이의 어둠을 걷는다

풍경의 틈새에 박혀 있는 저항을 걷는다

 

  최근 타이베이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여행지가 됐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이 히트를 치면서 대만 방문 한국인의 수가 2014년 50만 명을 돌파했고, 2016년 기준으로 80만 명에 달한다(한국관광공사 통계 참고). 이에 따라 대만 관련 여행 서적도 많이 나왔다. 맛집에서 아기자기한 골목길,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타이베이 근교까지, 아름다운 타이베이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넘친다. 여기에 조금은 다른 타이베이 여행서를 추가한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현재 타이베이가 관광지로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광 그 이면에 대한 여행서다. 타이베이의 52곳에서 일어난 저항의 움직임을 비교적 거시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4편의 칼럼을 통해 항쟁 승勝·성聖지, 정치권리, 강제이주 반대 운동, 역사보존의 내용을 덧붙여 설명한다.

 

 

 

 

여행과 도시, 그리고 저항.

반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색다른 여행지 타이베이로

당신을 초대한다.

 

 

 

 

 

  

저자 /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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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홍 외 9인 지음 | 곽규환, 한철민 외 3인 옮김 | 306쪽| 20,000원 | 

2017년 10월 30일 출간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조금 불편한 타이베이 여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에는 TV에서 보던 화려한 관광지로서의 타이베이가 없다. 대신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과 같은 주류의 힘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화려한 불빛에 가려져 잊히고 있는 이야기.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는 그런 도시의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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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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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지니에 좋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무료이미지)

 

"산지니 출판사와 저희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응모한 문화부 번역 지원 사업에서, 선정 됐어요!

대략 10:1 정도 경쟁률이고, 각 책마다 지원금이 다른 데 선정 16개 팀 중 두 번째로 많은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 번역을 담당해주시는 선생님에게서 온 메일 내용입니다. -

 

 

2017출간 예정인 <저항의 도시, 타이페이를 걷다>

대만 문화부의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 대표 번역자 이름으로 신청했습니다.  

 

 

● 대만 문화부 지원 사업 결과 발표 페이지

>> https://goo.gl/wfZGiE

 

 

그것도 선정 팀 중 두 번째로 많은 지원이지요!!

사실 경쟁률이 높아서 살짝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이 들리다니요. +_+

얼른 한국의 많은 독자 여러분들께 선보이고 싶어요.

 

 

 

<저항의 도시, 타이페이를 걷다>는 어떤 책일까요?

 

우선 '대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여러분, '대만'하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무료이미지)

 

저는 가장 처음 말랑말랑한 대만 영화를 떠올렸고,

다음으로 꽃보다 할배에서 선보인 관광지들이 생각났습니다. 

대만은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여행가는 곳 중 하나니까요. 

 

한국과 대만 간의 교류 역사는 그 범위가 길고 넓은데 비해

깊이와 밀도는 얕고 옅습니다.

 

대만으로 여행가는 한국인들이 매년 늘고 있지만

진짜 대만의 모습을 보고 오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요.

 

아름다운 대만,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중산북로 포위 사건 (본문 이미지/불펌금지)

 

여행지로 유명한 타이베이의 아름다운 표면 너머,

도시 곳곳에는 상처와 저항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요.

 

<저항의 도시, 타이페이를 걷다>는 

타이페이의 자본 권력과 정치 권력이 어떻게 도시를 헤집었고,

지역민들이 그것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시에 남아 있는 타이페이의 반란과

저항의 역사적 기록들을 따라가보는 것이죠.

 

건설, 개발, 지배가 낳은 아름다운 대만을 너머 도시 이면에

저항, 파괴, 몰락의 이야기가 담긴 어두운 대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원서는 2015년 대만 유격출판사에서 출간한 

<반민성시: 타이베이, 어둠의 기록 (叛民城市-台北暗黑旅誌)> 입니다.

 

이제 번역을 마치고,

산지니에서 한국 독자들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작업해서 2017년 봄, 또 다른 대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Posted by 비회원

하루하루를 보내며 날씨의 변화를 체감하고,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전해와 다른 올해를,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마주하며 나이 듦을 실감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매일의 반복되는 습관 같은 거겠죠. 가령 저는 퇴근하면 집에 가서 침대에 앉아 아이돌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 되어버렸어요. 그들의 자연스러운 젊음과 상냥하고 밝은 미소에 하루의 시름을 잊고, 사이좋은 친구들과 교실에서 즐겁게 떠들고 놀던 십대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합니다.


데뷔 전 트와이스 멤버.


하지만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놀아야 할 의무가 있는 십대의 날들부터 혹독한 연습에 내몰려 생활했던 아이돌의 아픔은, 사실 방송에 비춰지지 않는 한 제가 알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무한 경쟁 속에 내몰려 데뷔를 하고, 일상에 지쳐 있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거겠죠. 요즘의 연예가 세태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습생 시절부터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노출되고, 데뷔를 위해 연습생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혹자는 수많은 연습생들의 방송 노출과 데뷔를 향한 경쟁 시스템을 두고 아이돌 비정규직 양산이라며 걱정하는 눈초리를 보이기도 하더군요.)


식스틴 방송 당시 연습생들


작년 JYP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식스틴(SIXTEEN)>도 이러한 흐름에서 기획된 방송입니다. 매번 주어지는 과제에 탈락자가 선정되고 최종 데뷔 멤버를 선정하기까지, 자본주의 시대 속 하나의 상품을 어떻게 하면 잘 판매할 수 있을지, 그 상품을 잘 배치하고 기획하기까지 연예기획사에서 펼쳐지는 기획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씁쓸한 광경이 다소 잔혹하게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상품으로 구성되는 사람은 소속사 연습생입니다. 문제는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여학생으로 대다수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있었어요.)



<식스틴> 방송의 출연진들은 다시 <트와이스>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하고, 데뷔하지 못한 멤버들은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이돌의 꿈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거나, 소속사와의 계약을 종료하는 등 다양한 절차를 밟으며 진로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몇 주 전 대만멤버 쯔위의 국기 논란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리텔 방송(왼쪽)과 중국가수 황안(실제로는 대만출신이라고 합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출연진들이 각자 프로그램의 내용을 구성하여 경쟁하는 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트와이스의 외국인멤버 미사모쯔(미나, 사나, 모모, 쯔위)가 출연하면서 각각 일본국기, 대만국기를 쥐어주며 방송을 진행하게 했던 게 사건의 발단입니다. 중국 가수 황안이 이를 자신의 SNS계정 웨이보에 올리며 쯔위가 대만의 독립운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고요. SNS의 특징상, 이 소식은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때마침, 대만의 총통선거 기간이 겹쳐 대만정치인들은 쯔위의 행동을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 뒤 이를 선거유세에 활용하기도 했고요.


당선자 차이잉원 대만 총통.


하지만, 대체 16세 소녀가 대만과 중국(양안관계) 관계에 대한 어떤 정치·외교적 사상을 품고 대만 국기를 흔들었을까요. 실제로 대만 독립에 대한 사상이 쯔위에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대중들에게 굳이 노출해야 할 권리는 없습니다. 정치사상은 종교사상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할 개인적 자유의 소산이기 때문이지요.

 


, 사건의 일단락은 여기서 끝이 났습니다. 황당했던 것은 소속사의 대응이었습니다. 쯔위를 내세워 중국민들에게 양안은 하나다. 죄송하다. 잘못 판단했다.’는 식의 사과 동영상을 유투브에 게재한 것입니다. 이처럼 연애 자유’, ‘아이돌 복지에 많은 시스템을 구축했던 JYP의 기존 대응과는 다르게 정치 사상은 소속사 연예인들에게 억압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대만 연예시장보다 중국의 연예시장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기획사 측의 판단이 개입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개인이 아니라 수출 상품으로 분류되는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은 개인의 정치적 사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던 점이 크게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IS동영상처럼 우울하게 전개되는 사과동영상에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네요.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의 저자 류영하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의 쟁점은 민족 문화의 동일한 정체성에 동의하지만, 법치제도민주자유에 대해서는 큰 시각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소수는 다수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고, 그것이 국민국가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는 것은 현실임이 분명하다. 티베트나 신장 지역의 경우를 보더라도, 소수는 국민국가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자신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향후 대만의 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중국 내 56개 소수 민족 또는 소수 문화가 각기 개별적으로 존중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민국가의 정치경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것의 영속성을 달가워하지도, 지켜주지도 않는다. 티베트와 중국의 충돌, 신장과 중국의 충돌은 문화적 정체성에서 출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오는 갈등일 뿐이다. 바야흐로 홍콩인은 차국민으로서 중국 내 새로운 소수민족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홍콩 본토주의의 가장 큰 상징인 법치·제도·자유 그리고 민주를 향한 열망은 국민국가라는 막무가내의 당위성 앞에서는 그저 힘겹다. _296-297.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50여 개에 이르는 소수 민족과 한족이라는 다수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그러나 다민족 각자에 이르는 다양성을 존중받기보다, ‘하나의 중국’, ‘하나의 종교’, ‘하나의 사상을 각 민족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입니다. 현재 대만은 자국 통화를 갖고 있고 군대를 보유하면서 정치·경제·행정에서 완벽한 자치를 실현하고 있지만, 이러한 맥락 속에서 대만을 세계 내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측면이 존재합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 당시.


이 책을 집필한 저자 류영하 교수는, 세계사에 깔린 올바르지 않은 민족주의 이념을 걷어내고 중국의 중화주의로 인해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티베트, 신장, 홍콩 등 다양한 민족의 가치를 역사 속에 반영하고자 했습니다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이데올로기에 눌리어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는 대만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홍콩'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정 역사관을 두고 전개된 홍콩 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 <홍콩스토리> 전


저자가 몇 차례에 걸쳐 답사한 홍콩역사박물관의 홍콩 스토리전시 뒤에 깔려 있는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진정한 '민족주의' 사관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데요연예 기획사부터 시작해  결혼 이주여성 등 최근 한국사회가 다문화 사회를 맞이함에 있어 어떤 식으로 민족주의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하는지를 홍콩과 중국, 신장, 대만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쯔위의 사태는 소속사의 발 빠르지 못한 대응으로 아쉽게 결론이 났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쯔위와 같은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대응해야 할 자세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책에 제시된 바대로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민주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공간인 대만과 신장, 홍콩 등을 중국과는 달리, 독립적인 '본토'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들의 문화를 학습하고 함께 공유하는 작업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 10점
류영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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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총서 15



빼앗긴 사람들
아시아 여성과 개발





성장신화가 가져온 디스토피아에서 아시아의 현재를 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률, 최장의 노동 시간, 과로사 같은 문제로 시름을 앓고 있다. 이 같은 디스토피아의 도래에는 오로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경제논리인 ‘개발 지상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 이화여대아시아여성학센터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개발의 모습을 새로이 조명하고자, 새로운 대안을 위한 아시아 지역 교류(ARENA)에서 2004년 출간된 『빼앗긴 사람들(The Disenfranchised)』의 한국어 번역판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생태계 보존의 문제와 여성/젠더의 문제를 동시에 분석하는 한편, 개발도상국 여성이 겪는 풍부한 사례와 함께 개발 이면에 감춰진 문제점들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은 다문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아시아 각국의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을 통해 아시아 각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이처럼 전보다 가까워진 아시아권에서 일어난 개발 이면의 상처와 아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 개발 속 희생된 이들의 숨겨진 목소리


‘왜 당신은 알기를 원하는가, 나의 상처를 헤집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도 그 공허한 시선과 ‘상처’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떠오른다. (…)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오빠와 엄마 그리고 남편을 빼앗아 갔어요. 아들까지 잃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이 세상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지요. 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_「물, 토지, 식량 환경재해」에서


이 책을 편집한 우르와시 부딸리아는 인도의 여성운동가로서, 아레나(ARENA)의 젠더 프로젝트에 관여해왔다. 저자는 세계 경제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흥 개발 국가들에 포함되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의 경제발전 과정의 이면에서부터 이미 개발 궤도에 오른 싱가포르, 대만 그리고 군사화 독재로 아픔을 겪고 있는 버마(미얀마)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초 개발 과정에 있던 6개국의 사례들을 한 권에 엮어냈다. 특히 환경 난민, 인권 유린 등과 같은 개발과정 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는데, 아시아 각국의 여성과 아이들이 개발 한가운데서 어떻게 권리를 빼앗기고 희생당하는지를 사례연구와 통계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가까이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각국의 상황을 다양한 시사적 내용과 더불어 연구조사를 통해 나온 통계와 자료를 통해 알아볼 수 있어, 국제·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나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이들에게 울림이 큰 책이 될 것이다.

아시아 개발의 이면을 비판적 시선으로 고찰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빼앗긴 선주민 공동체의 눈에는, 또 농업 공동체로 살아오다가 토지와 생계 수단을 빼앗긴 자들의 눈에는 ‘개발’ 그 자체가 하나의 전쟁이 아닐까? 또한 전쟁을 포함하는 ‘개발’이 바로 패권 추구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개발 그 자체가 헤게모니 담론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_「책머리에」에서

이 책은 아시아 각국의 학자, 활동가, 풀뿌리 운동 실천가들이 한데 모여 아시아 개발 그 이후를 면밀하게 연구 분석한 결과물이다. 특히 자원 수탈, 주민들의 대규모 이주, 정체성과 역사 말살, 지식과 생명체의 약탈, 상품화, 여성의 착취와 억압 등 개발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편집자 우르와시 부딸리아는 단순히 개발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사람 중심’의 개발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즉, ‘빼앗긴 사람들’의 요구와 희망을 개발의 중심에 놓자고 저자들은 목소리 높인다. 인권을 대가로 경제발전을 이루거나 비민주적 정권, 소수집단의 주변화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불평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서도 참조점을 시사 받을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선진국이라 여겨왔던 싱가포르 사례에서는 성소수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어 개발 이면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게끔 하였다. 진정한 사람 중심의 개발은 무엇인가. 이는 빠르고 양적인 성장이 아닌 저자가 말하듯 덜 착취하고 덜 이익을 취하는 장기적 지속성장이 그 대안이 될 것이다.


빼앗긴 사람들 | 아시아 총서 15

우르와시 부딸리아 편저 | 김선미, 백경흔, 이미경, 정규리, 최형미, 홍선희 옮김 | 사회 | 신국판 | 507쪽 | 30,000원

2015년 7월 15일 출간 | ISBN : 978-89-6545-294-2 93300

아시아 각국의 학자, 활동가, 풀뿌리 운동 실천가들이 한데 모여 아시아 개발 그 이후를 면밀하게 연구 분석한 결과물이다. 특히 자원 수탈, 주민들의 대규모 이주, 정체성과 역사 말살, 지식과 생명체의 약탈, 상품화, 여성의 착취와 억압 등 개발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편집자 우르와시 부딸리아는 단순히 개발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사람 중심’의 개발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편저: 우르와시 부딸리아(Urvashi Butalia)
인도 최초의 페미니즘 출판사인 ‘여성을 위한 칼리(Kali for Women)’의 공동 설립자로, 칼리의 자회사 ‘주반(Zubaan)’을 새롭게 설립했다. 헌신적인 여성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인 그녀는 여성, 매체, 소통 및 공동체 의식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 정기적으로 글을 쓴다. 그녀가 집필한 수많은 출판물 중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산지니)는 특히 많은 찬사를 받으며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포함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아레나(ARENA)의 젠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등 아레나에서 다년간 함께 활동했다.

기획: 아시아여성학센터(Asian Center for Women’s Studies)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는 이화의 130여 년 여성교육의 역사와 30여 년 여성학 교육을 바탕으로 1995년 설립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아시아의 여성학 발전과 제도화를 목적으로 아시아여성학 커리큘럼 개발 및 교재 발간,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 영문학술지 발간, 국제 여성학자 학술 교류 및 차세대 여성학자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해왔다. 2012년부터는 아시아-아프리카 여성활동가 역량강화 및 차세대 여성리더 양성을 목적으로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프로그램(EGEP)을 주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여성학 이론과 실천, 연구와 현장, 네트워크와 연대를 통합하는 새로운 여성학 지식생산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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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사람들 - 10점
우르와쉬 부딸리아 엮음, 아시아여성학센터/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