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9.04.25 모바일만 들고 떠나는 『중국 남방도시 여행』- 부경대 이중희 교수 인터뷰 (1)
  2. 2019.04.09 [이뉴스투데이]-[사회]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마르셀로 무스토 초청 강연회 개최
  3. 2019.04.02 [한국일보]-[문화] “마르크스, 정치적으로만 소비… 환경ㆍ여성 등 오늘날 문제에 맞닿아”
  4. 2019.03.20 [국제신문]-[문화]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5. 2019.01.29 한 사람을 들여다본 시간『방마다 문이 열리고』 최시은 작가 인터뷰 (2)
  6. 2018.08.08 [저자 인터뷰]_추상적인 것을 넘어서. 『시인의 공책』저자 구모룡 작가님 인터뷰 (4)
  7. 2018.06.01 [북투어후기] 10화 대만 출판매체 <오픈북>이 주목한 북투어 인터뷰!
  8. 2018.05.10 [마르크스 200주년 기념 인터뷰] 카를 마르크스를 읽자! by. 마르셀로 무스토
  9. 2016.01.26 최은영 작가님『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인터뷰- 글찌의 5번째 인턴일기 (4)
  10. 2016.01.11 조미형 작가님 인터뷰『씽푸춘, 새벽 4시』 - 글찌의 세번째 인턴일기 (7)
  11. 2015.08.25 [저자인터뷰] 『날짜변경선』 유연희 작가와의 만남
  12. 2015.07.21 [저자인터뷰] 『다시 시작하는 끝』 조갑상 소설가와의 만남 (10)
  13. 2015.01.19 『고도경보』김헌일 작가님과의 인터뷰:: 그와 그의 작품 이야기 (4)
  14. 2014.02.06 [저자 인터뷰] 『문학을 탐하다』최학림, 지금 만나러 갑니다 (3)
  15. 2014.01.17 미국 대학의 힘 : 목학수 교수님을 만나다!
  16. 2014.01.10 『치우』의 이규정 선생님을 만나다 (3)
  17. 2012.08.17 답답증과 조급증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 정태규 선생님 <길 위에서> 인터뷰 (4)
  18. 2012.08.02 진정한 바람, 진실한 목적을 향해,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 <나는 나> : 조정민 선생님 인터뷰 (9)
  19. 2011.12.12 11학번 새내기 기자, 86학번 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하다

 

산지니가 펴낸 모바일만 들고 떠나는 『중국 남방도시 여행』의 저자 이중희 교수님의 인터뷰가 공개되었습니다. 부경대에서 제작한 인터뷰 영상는 집필 동기,     오늘날 중국의 모습,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교수님의 흥미롭고 생생한 경험담을 함께 들어 보아요!

 

 

 

(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 시청이 가능합니다, 출처: 부경대학교 PUKYONG NATIONAL UNIVERSITY )

 

 

# 어떻게 여행하셨나요?

앱을 통해서 중국 기차나 고속버스를 예매하고 타고 가면서 숙박할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호텔에 가서는 각종 여행 앱을 통해 일정을 정했습니다. 중국은 전자 지도가 상당히 잘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목표지점을 설정하면 경로가 자세히 소개됩니다. 전철과 대중버스 등 공유 차량 경로들도 전자 지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행 소감을 말해주세요

중국에서 과연 모바일로만 여행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모바일 하나만으로 예약이나 경로 안내가 가능할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가능하다였습니다. 중국은 결제, 숙박, 음식 주문, 호텔 예약, 송금 이 모든 것이 모바일로 가능한 현금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남방도시를 다니며 호텔을 예약하고 음식을 사 먹을 때 어떻게 결제했는지 정리했습니다. 중국이 현금 사회로부터 신용카드 사회라는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모바일 결제 사회로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대부분 도시는 현금을 소지하지 않고도 하루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바일 결제가 상당히 발전되어 있습니다.

 

#어떤 동기로 여행을 하게 되었나요?

중국은 문화, 경제, 역사 모든 차원에서 각 지방마다 특성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을 복합적 국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중국은 굉장히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는 4차 산업혁명, 교통혁명, 소비혁명, 라이프스타일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실제로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남방도시를 선택하셨나요?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의 근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근대 이후에는 남방 출신의 사람들이 상당히 득세하고 시대를 주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쩡궈펀, 리훙장, 쑨원, 마오쩌둥, 주더, 류사오치, 덩샤오핑, 마윈, 마화텅같은 인물도 모두 남방 출신입니다. 앞으로도 중국은 남방 출신들이 득세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현실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동안 여행한다면 이 도시를 추천한다

학생들이 일주일 간 여행을 한다면 저는 선전과 광저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선전은 중국의 현재와 미래이고, 광저우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라고 생각합니다. 선전은 과거에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홍콩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경제규모를 가진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광저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광저우를 보면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남방도시 여행 - 10점
이중희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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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사진=동아대학교>

동아대학교 맑스엥겔스연구소(소장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월 14일 산지니출판사와 공동으로 ‘맑스엥겔스 전집 연구 권위자’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초청 강연회를 최근 부민캠퍼스 사회과학대학에서 개최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신세대 맑스주의 연구자로 알려진 마르셀로 무스토 캐나다 요크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산지니에서 번역 출간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1881-1883년의 지적 여정』, 그리고 『맑스의 Grundrisse-정치경제학비판의 기초, 이후 150년』 등의 저자다.

 

부산에선 유일하게 동아대에서 열린 이날 강연에선 청년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마르크스의 노년기에 주목하며 그의 말년 행적과 지적 사유에 대해 논했다.

저서와 강연을 통해 정본 전집의 중요성을 강조한 무스토 교수는 “기존에 알려진 경직되고 교조화 된 맑스가 아니라 유연하고 다양한 새로운 맑스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을 공동주최한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Institute of Marx Engels Studies)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한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맑스 경제학 권위자인 강신준 교수가 지난 2012년 설립한 곳으로, 올 가을께 맑스엥겔스 정본 전집(MEGA, Marx Engels Gesamtausgabe)을 한국 최초로 론칭할 계획이다.

 

강 교수는 “‘MEGA’ 발간을 계기로 맑스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고, 이번 강연은 그 단초가 될 것”이라며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는 향후 한국에서 새로운 맑스 연구의 중심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호 기자  reporter05@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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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0점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문혜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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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마르크스 문헌 연구 권위자 마르셀로 무스토 요크대 부교수 인터뷰 

 

 

마르크스 문헌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마르셀로 무스토 요크대 부교수는 “자본의 억압이 계속되는 한 마르크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칼 마르크스(1818~1883)는 ‘한 물 간 사상가’로 인식됐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은 지난해 한국 학계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마르크스는 그저 과거 인물에 불과한가.

마르크스의 문헌을 연구해온 마르셀로 무스토(43) 캐나다 요크대 사회학과 부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양극화와 불평등, 갑질, 금융위기 등 자본주의 병폐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마르크스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미공개 초고, 발췌 노트 등을 정리하는 국제적 연구 작업인 ‘마르크스와 앵겔스 전집 프로젝트(MEGA TWO•114권 중 현재 70권 발간)’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연구 업적을 조명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이란 책을 냈다. 경상대 SSK 연구팀의 초청으로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마르크스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20년 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숨죽여왔다. 침묵을 깨운 것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였다. 자본의 위기는 경제를 너머 정치 사회의 모든 분야의 갈등과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다. 유럽과 중남미, 미국에서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우경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마르크스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다. 보수정권이 집권한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한 마르크스 학술대회에는 정원보다 10배 많은 5,000명의 대학생들이 몰려 행사가 진행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구조 관점으로만 사회를 바라봤다.

 

 

“명백한 오해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거듭할 수록 생태계를 위협하고,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 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생산량의 증가가 도시화, 공업화로 이어져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라 우려했다. 특히 가부장제를 역사의 산물이라고 꼬집으며, 한 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는 여성해방이라고 역설했다. 1880년대 쓴 프랑스 사회주의 노동자 강령엔 ‘남녀노동자 모두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을 처음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생태, 환경, 여성 억압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마르크스의 말년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있나.

 

 

“마르크스 연구자들조차 1867년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집필한 이후 죽을 때까지 연구에 손을 놓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말년에 인류학 수학 지리학 등 영역을 확대하며, 자기가 기존에 주장한 이론에 대해 계속 검토하고 의심했다.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이어지는 단계적 사회 발전론에 대해서도 말년에 가선 획일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부정했다. 모순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나는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은 ‘자기비판’이라고 본다.”

 

 

-마르크스의 새로운 면모는 잘 부각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를 정치적으로만 소비하고 이용하는 탓이다. 한쪽에선 신화로, 한쪽에선 금기로 다뤄지고 있다. 지난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에 맞춰 중국은 마르크스를 영웅으로 띄웠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집권 정당성을 위한 선전도구였다. 반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마르크스는 여전히 금기다. 한국도 북한을 의식한 탓인지 연구가 자유롭지 못하다. 마르크스를 교조적 이념 틀에 가두면서 그의 진면목에 대해 알려고 들지 않았다. ”

 

 

-한국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도 심하다. 최저임금도 논란거리다.

 

 

“가난한 자들끼리의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노동자들끼리의 분열은 자본가들의 세력을 더 강화시킨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연대로 노동자들 간의 실제 차별을 없애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 최저임금을 올리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반발에 부딪히면 최저임금이 ‘최대임금’으로 굳어질 수 있고, 자본가들의 착취 또한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투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삶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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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0점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문혜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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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마르크스 재조명 세계적 열풍 … 우리는 ‘진짜 마르크스’를 모르고 있다

 

- 캐나다 요크대 사회학과 교수
- 마르크스 초고·서신 등 모두 담는
- 114권 전집 발간 프로젝트 참여
- 생애 최후 3년 분석 저서도 발간

- “말년에 연구 중단 소문은 오해
- 지적영역 확대하며 치열한 검증
- 식민주의에 관한 자기주장 철회
- 경제적 예정·결정론도 비판

- 불평등 심화·저성장 등 현 위기
- 그를 보면 해결책 찾을 수 있어”

한국에서 지금 마르크스(1818~1883)를 이야기한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누가 못 하게 말려서 그런 게 아니다. ‘별로 인기 없는 일’로 여겨져 그렇다. 체 게바라, 호찌민 같은 혁명가는 재조명되고 인기도 얻는 한국에서 그들의 ‘원조’ 격인 마르크스는 ‘배울 것 별로 없는 한물간’ 사상가쯤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이념 장벽도 여전하다.

그는 세계를 통째로 온전히 파악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대범하고 철저하며 까칠한 태도로 자기 사상을 실천했다. 그런 점에서 맹자, 한비자, 묵자 또는 사마천 등과도 비견할 만한 점이 있지 싶은데, 마르크스를 다루는 인문학 강좌는 좀체 찾기 어렵다.

그런 사이,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 재발견’ ‘마르크스에게로 귀환’이라는 흐름이 폭넓게 형성됐다. 관련 학술대회에 젊은이 수천 명이 몰리고, 언론은 그를 재조명했다. 대학 교육 과정에 채택되고 국제회의에서도 다뤄진다. 저작뿐 아니라 그간 출간되지 않았던 각종 초고와 예비노트, 서신, 발췌문 등을 방대하게 실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모두 114권 출간 계획으로 현재 65권이 나옴) 발간 작업이 국제적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 새롭게 발굴한 자료 폭넓게 연구

왜 이런 걸까? 캐나다 요크대 마르셀로 무스토(43·사회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현재 ‘MEGA’ 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그의 책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이 부산의 산지니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오해로 점철된 마르크스의 인생 말년의 학문·사상·삶을, 그간 묻혀있다시피 했던 초고·서신·발췌문·노트 등을 연구해, 재발견하고 새로 정리하며 기존 해석을 쇄신한다. 현재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돼 있다.

그는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경상대 SSK 연구팀-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정치연구소 대안, 산지니출판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지난 13, 14, 18일 각각 진주, 부산, 서울에서 강연했다. 마르크스는 왜 오늘의 세계로 귀환하는 것일까? 우리가 몰랐던 마르크스의 면모는 어떤 것일까?

무스토 교수는 이 말부터 했다. “마르크스가 말년에 지적 호기심이 줄고, 연구를 그만둔 것으로 오해하는데, 아니다.” 무스토 교수의 책 자체가 마르크스 생애의 마지막 3년에 집중한 책이다. “그는 그 시기 인류학, 수학, 지리 영역 등으로 학문적 관심을 확장합니다. 그러면서 그간 자기가 수행한 연구가 이치와 현실에 맞는지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돌아봅니다.”이런 태도는 학자라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았는데도 ‘말년에 들어 연구를 중단했다’는 식의 오해와 편견에 덮여버린다면 이건 거의 치명타 수준이다. 한 사상가 또는 학자를 총체로서, 제대로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간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마르크스 말년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 해석을 쇄신한 무스토 교수의 주장은 의미가 크다.


■ 30대 마르크스가 전부 아냐

   
대화를 나누는 무스토(오른쪽) 교수와 조봉권 기자. 무스토 교수는 7개 언어를 말하고 쓰면서 국제적인 학술 활동에 힘쓴다.

그는 계속 사례를 들었다. “‘오리엔탈리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1979년 마르크스를 ‘오리엔탈리즘(동양에 관한 서구인의 편견과 왜곡) 주의자’로 규정하는 글을 썼다. 마르크스가 35세 때 쓴 짧은 글(article)을 보고 쓴 것으로 ‘영국의 인도 지배에는 (생산력 발전에서)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말년에 접어들면서 마르크스는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알제리, 이집트 등으로 연구의 지리적 영역을 확대하면서 이를 부정한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파괴적 측면이 더 많은 위기, 가난, 기아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유럽 중심주의자가 아니다.”

사례는 매우 많았다. 몇 개만 더 들어본다. 무스토 교수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와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는 이슈도 여러 가지 있다”고 했다. “이미 그때 마르크스는 생태 이슈에도 관심이 높았다”고 소개했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 생리를 연구한 결과, 자본주의는 착취라는 문제뿐 아니라 생태·환경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도 위협이라고 경고했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성(gender) 평등과 여성해방을 강조했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는 사회를 모색한 점도 말년의 마르크스가 확실히 내보인 특징이다.

그렇다면, 무스토 교수가 ‘진짜(real) 마르크스’라고 표현한 진면목은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왜 마르크스는 경제학만 고수하면서, 경제가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결정주의를 주장했고, 역사는 단선적으로 순서대로 ‘외길’로만 발전한다는 식의 학설을 펼친 것으로 잘못 인식될까? 무스토 교수는 “마르크스에 관한 이해가 소비에트의 교과서와 매뉴얼에 갇혔고, 많은 경우 그의 연구를 제대로 읽지 않고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맥락에 맞춰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는 예정론·결정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역사적’(절대적 존재가 아니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뜻) 실체임을 주장했다. 그는 ‘내 이론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다’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 학술 행사에 젊은이 5000명 몰려

   

이제 ‘오늘의 세계’로 무대를 옮길 차례다. 세계 곳곳에서 최근 일어난다는 ‘마르크스 재발견’ 현상은 왜 등장한 것일까? 그는 이 질문에 진지하게 “불평등은 극심해지고, 합의와 소통에도 위기를 맞은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물론 2008년 닥친 세계 경제위기가 큰 계기가 됐다”고 답했다. “현실적 측면은 있다. 억압적이고 나빴던 현실 사회주의를 실제로 겪은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나라에서 마르크스 재발견은 이야기하기 어렵다. 북한과 대치한 상태에서 프로파간다로서 마르크스를 접했던 한국도 비슷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대안 모색으로서 ‘재발견’ 흐름은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다.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체험담을 들려줬다. “보수 정권이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르크스 관련 콘퍼런스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하고 물었더니 관계자는 ‘지금껏 500~600명이 최대 규모였다’고 답했다. 그런데 당일 젊은이 5000명이 몰려들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 강하게 연계된 한국 또한 고용 증발, 청년실업, 저성장, 포퓰리즘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여기에 관해 무스토 교수는 명쾌했다. “세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라마다, 사회마다 저마다 구체적인 맥락이 있으니 이를 잘 살펴야 한다. 종교처럼 마르크스주의를 대하거나 교조적 독단(dogmatism)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으로, 해결의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는 “마르크스 하면 ‘공산당 선언’을 떠올리는데 그건 그가 30세 때 쓴 글이다. 그 뒤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바뀌었다. 우리 사회 또한 완연히 달라졌다”며 고정관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구체적으로, 새롭게 볼 필요를 강조했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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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0점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문혜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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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지난 목요일 따끈따끈한 첫 소설집을 내신 최시은 작가님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왔습니다. 작가님이 자주 가시는 남포동의 카페로 갔으나, 문을 닫은 바람에 다시 찾은 아늑하고 예쁜 카페로 향했어요. 우연히 간 곳이었지만 너무 포근한 곳이었어요, 마치 그날의 분위기만큼요. 지금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인턴 김민주 이하 김: 첫 소설집을 내시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최시은 작가님 이하 최 : 사람들 반응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다들 보면 쓴소리는 잘 안 하고 좋은 소리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긴 해요. 그래도 쓴소리도 있어요. ‘너무 어둡다’, ‘좀 밝은 얘기를 쓰지, 이런 어두운 얘기를 쓰냐’. 그래서 제가 뭐라고 하나면, 사람이 즐겁고 문제가 없으면 소설 거리는 아니다. 소설이라는 건 결국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 문제가 있고, 그 문제 속에 인간이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소설 속에 가지고 오는 거 같아요. 이렇게 주변 이야기 들으며 지냈습니다.

 

김: 저도 한국어문학과 학생이다 보니 작가님들의 소설 집필 과정에 관심이 많은데요, 소설을 쓰실 때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는지, 주로 작업 방식이 어떻게 되시나요?

 

최 : 소설 소재는 일상에서 가져와요. 누가 이야기하는 거, 주변에서 보이는 거. 제가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거. 모든 주변이 소설 레이더망에 잡혀요. (웃음) 글은 컴퓨터로 쓰는데, 책을 쓰고 있을 때는 가능한 다른 책을 잘 안 읽습니다. 색깔을 읽어버릴 수도 있어요. 그 작품의 톤을 따라가야 하는데, 몰입도가 높은 편이라서 다른 책을 읽으면 혼동하게 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 요즘 시대에 소설을 집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작가님이 소설을 계속해서 집필하게 하는 힘, 나아가서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 ‘문학이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최 :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그냥 내 안에서... 그냥 쓰게 만들어졌어요. 어쩔 수 없어요. 나에게 소설은 견디는 힘을 줘요. 삶을 견디는 힘. 부조리하고 힘든 현실을 살아낸다는 것도 있지만, 살아내는 것과 견디는 것 반 반씩인 거 같아요. 소설이 나를 견디게 해주는데 결국 그게 살아내는 거 같아요.

 

 

: 이번 소설집을 엮으실 때 가장 많이 든 생각과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최: 현실적인 얘기인데 교정하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제 작품을 수도 없이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오탈자가 또 나오더라고요. 그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김: 작품에서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아무래도 작가님의 아이덴티디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지역의 특색이자 소중한 산물인 사투리는 사라지고 표준어만 지향하는 현실 속에서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나온 사투리들에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혹시 따로 꼭 사투리를 써야지 하셔서 쓰신 건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최: 부산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건데, 또 문학에서 사투리가 들어가면 더 사실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생생하게 말이에요. 오히려 어떤 사람은 저보고 사투리 너무 많이 써서 식상하다는 얘기도 하던데, 사투리가 적당하게 들어가면 오히려 더 사는 거 같아요.

 

김: 일곱 편의 단편 모두가 여성의 시각으로 서술되는데 특별히 여성 화자의 이야기를 내놓으신 이유가 있나요?

 

최: 아무래도 제가 여자니까 그렇겠죠. (웃음) 소설을 쓰다 보니 편한 게 여성 시선이고 내가 여자인데 남자가 되어 그 의식으로 들어가는 것도 참 힘든 일이더라고요, 내가 여자라서 아마 여성 화자가 소설을 쓰는데 편한 시선이 되니까 그렇게 썼던 거 같아요.

 

김 : 소설집을 읽으며 제가 알지 못했던 씁쓸한 삶의 이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단편 마다 그들의 현실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때로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서 읽기 힘들었던 부분들도 있었어요. 작가님은 글을 쓰시며 이런 점이 힘드시지는 않으셨나요?

 

최: 당연히 힘들죠. 제 주변 지인들도 읽는데 너무 힘들어해서 제가 읽지 말라고도 말했어요. 저도 마지막 단편 <가까운 곳>은 중편으로 썼던 걸 단편으로 만든 건데, 살인 장면을 쓸 때는 일부러 낮에 도서관에 가서, 사람들 많은 데서 썼어요. 안 그러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살인했던 방법을 보면서 쓰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읽는 독자도 힘든데, 작가도 사실 그 부분을 쓸 때 심리적으로 힘들어요.

 

김 : 저는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잔인한 현실을 자세하게 그려내며 비판하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속에서는 어쩌면 획일화된 젠더 이미지가 보이는 듯해요. 그런 것들이 남성의 입장으로 한 말과 행동이기 때문에 현실을 비꼬는 거라고 저는 생각했는데, 작가님의 진짜의도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최: 소설 속에서 인물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가 사물을 보는 시점이나 말투를 적나라하게 적을 때도 있어요. 그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지, 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 잔인하고 짐승만도 못한 남자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자 장치일 뿐인 거예요. 그저 캐릭터로 바라보지 않고 작가의 의식으로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이 남자 캐릭터는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겨요. 그래서 처음에 소설을 공부할 때는 좀 흐릿하게 표현했는데, 엄청나게 야단맞았어요. 인물을 왜 이렇게 애매하게 그리냐고. 그래서 제가 그런 것들은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말과 행동인데 여자를 비하한다거나 젠더 감수성이 불공평하게 들어가 있는 식으로 본다면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김 : 소설 속에서 제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싶기도 했습니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페미니즘운동과 관련하여 기득권 세력, 즉 가부장제 사회가 부패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룸살롱 장면을 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느냐같은 인권을 다루고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비판도 일고 있는데요, 저도 아직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옳은 것인지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최: 정말 중요한 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 속에 여자가, 남자가 있었던 것뿐이에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비판적인 반응이 독자에게서 온다는 것도 수용해야겠지요. 작가는 이렇게 썼지만, 독자는 다양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작품 속에 세련되지 못한 표현을 비판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는 해요. 그거는 고유한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문학작품은 문학 작품으로 고유하게 비판하는 건 맞고, 그래서 제 작품도 만약 젠더 감수성대 대해서 문제화시킨다면, 남성우월주의나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 물고 늘어질 게 있어요. 그리고 다른 작가들도 엄청나게 많아요. 그거를 문제화하려면 얼마나 많아요. 문학작품에. 하지만 저는 그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려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젠더감수성과 연결하면 안되고. 예를 들어서 현실에 젠더감수성이 떨어지는 남자가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인물을 소설 속에 담아낸다면 그 인물의 행동이나 말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어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건 젠더 감수성과는 또 다른 문제에요. 그걸 그렇게 연결시키면 안 되고, 그러면 밋밋하게 그리면 모든 사람이 표준화된 남녀가 나와요.

 

김: 음 그래서 저는 소설을 읽으며 든 생각이 그런 전형화된 여성과 남성 캐릭터는 이미 너무 많으니까,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많으니까. 나는 좀 더 새로운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 저번에 저자와의 만남 때 평론가님이 '전형화된 인물들이 나온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맞아요. 전형화된 인물에서 현실적으로 여자가 능동적으로 헤쳐나가지 못하는 그래서 제가 이게 전형화된 인물이라면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도 역시 정형화된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거는 그렇게 접근할 게 아니고, 저는 상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상황에 의해서 그 여자가 그렇게 된 걸 그린 거예요. 물론 그 반대쪽 인물도 한번 그려봐야겠지죠.

 

김: 소설 속 하나의 <잔지바르의 아이들>을 읽고 끔찍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인물을 보며,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는데요, 아직도 어떤 판단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작가님도 특정한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물음을 던져주시는데, 혹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최: <잔지바르의 아이들>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는, ‘과연 그런 인간에게 형벌이란 무엇일까에요. 감옥 속에 가면 그 인간은 돈도 벌지 않아도 되고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그 소설을 쓸 때 화두는 과연 죄는 누가 지었고 형벌은 누가 받냐는 거에요. 남겨진 사람들이 벌 받는 거예요. 법리적 해석을 하면 그런 사람을 죗값을 치르고 형을 받아야 하겠지만 정말 이 사람에게 실제적, 현실적으로의 형벌은 남겨진 이들을 위해 힘들게 일해서 다 먹여 살리는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약 제가 그 여자의 캐릭터라면 인연을 끊겠어요.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에요. 결코 변하지 않아요. 심지어 이런 남자라면 생이 거칠고 힘들게 되겠지만 끊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 저는<환불>을 읽고 모성애와 이방인에 대해 사유를 하게 되었어요. 작가님께서 밥 먹고사는 이야기이자 밥 먹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신 것을 봤는데, 거기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의도를 알기 가장 힘들었던 단편인 거 같아요.

 

최: 안 그래도 사람들이 <환불>뭔 말하려고 그랬어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제목인 환불의 뜻은 이미 지불한 돈을 되돌려줌돈이나 물건을 바꾸어서 지불하는 것두 가지가 있는데, 어느 하나로 정하지 않고 독자가 알아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 물난리가 난 뉴스 인터뷰에서 아침에 밥도 못 먹고 우리가 이 변을 당했다라고 말한 인터뷰를 본 순간 아 밥 먹고 당하는 거 하고, 밥 먹지 않고 당하는 거에는 차이가 있겠구나생각했어요. 그때 밥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라디오에서 낙타가 왜 북미대륙을 떠나서 사막에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로 쓴 거에요.

 

김: 마지막 단편, <가까운 곳>은 나머지 여섯 편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고 저는 느꼈는데요, 어쩌면 장르적인 소설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인간의 본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설정을 하고 오신 건가요?

 

최: 맞아요. 저는 장르로 가는 게 목표거든요. 그게 사이코패스 이야기인데, 생각해보니까 멀리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가까이 있거든요. 예전에 우리 집 근처에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있다고 법원에서 종이가 왔더라고요. 그때 그런 사람들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가까운 곳에 누군가가 있다라고 생각해서 강호순 사건을 가지고 와서 확장해서 썼어요.

 

김: 각 단편 모두 서사가 흥미로워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각각 에피소드의 소재들을 어디서 영감받으셨는지 궁금해요. 그중에서도 누에고치를 키운다는 설정이 인상 깊었는데요, 여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최: <누에>는 제가 들은 이야기들을 소설로 만들어보려고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에서 출발해요. 이것을 어떻게 갖다 붙일 것인가, 소설이라는 건 메타포, 즉 은유의 세계잖아요.

엄마가 아들을 엄청나게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왜곡된 관계를 그리려 했어요. 엄마는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있고, 아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성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즉 콤플렉스가 있는 두 사람이 만나서 엄마 의식 속에는 아들이 성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거예요. 그 거부를 뭐로 가져올지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애벌레를 생각했어요. 엄마는 아들이 자라지 못한 애벌레이기를 원한 거죠. 성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엄마의 무의식 세계를 그리려고 어떤 애벌레가 있을까 생각하다 누에가 나왔어요. 엄마는 누에의 성장 과정에서 오령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 누에를 버리잖아요. 또 새로운 누에를 사고. 결국 아들은 저 누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엄마가 왜 저걸 키우는지도 알고요. 그래서 죽이는 거죠. 어릴 때부터 유리관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나인 걸 아는 거죠.

 

그리고 작가님이 웃으시며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 <누에>에 있다며 알려주셨습니다.

 

최: 아직도 어떻게 써진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문장이 온 거 같아요. (웃음)

 

스스로 분사(憤事)한 주검처럼 죽은 누에들이 오히려 생생하고 또렷하다.

_99<누에> 중에서

 

 

김: 이제 첫 책이 출간되셨는데요, 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최: 지금 쓰고 있는 거는 장편인데, 이미 써 놓은 거를 가지고 새로 이야기를 짜고 있어요. 뼈대를 바꿔서 이야기를 새로 구성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에 있어요. 부산에 많이 있는 냉동 창고를 보며 그 안에 뭐가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한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원래 장르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장르와 정통문학이 만나는 지점을 쓰고 싶어요. 단순히 장르만 있는 게 아니라, 사건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인간이 녹아있어야 해요. 이 인간이 왜 살인을 하고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장르문학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김: 그럼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 제가 체질적으로 상처를 잘 받기도 해서 아픔이 많은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지만, 그걸 크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상처를 많이 받긴 하는데 그래야 사실 또 소설이 되긴 합니다. (웃음) 그것을 치유해준 게 소설이었어요. 내가 누구 작품을 읽고 감동을 하고 내가 치유 되고 행복해진 것처럼 상처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계기가 소설이었거든요. 그 소설 속 인물을 보며 얘는 나구나.’ 내 모습을 보며 안심이 되는 거예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그래서 누군가가 제 소설을 읽고 제가 그때 느꼈던 치유의 감정을 가진다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겠어요.

 

 

 

헤어질 때 작가님께서 "소통이 된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거예요"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소설 속 인물을 넘어 또 한 사람으로서 작가님과 뜻깊은 만남이었다.

 

작가님이 본인을 치유해준 게 소설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문학은 삶의 힘들었던 한 시절을 견디게 해 준 힘이어서 작가님 말씀에 더 반갑고, 깊이 공감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늦게까지 오래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책에 관해 작가님을 인터뷰하는 거였지만, 그 이전에 소설을 먼저 쓰신 선생님을 만난다는 자체가 즐거운 일이고 좋은 경험이었다. 많이 느낀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방마다 문이 열리고 - 10점
최시은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추상적인 것을 넘어서

 

󰡔시인의 공책󰡕

 

저자 인터뷰 - 구모룡 작가 , 산지니 인턴 김민주

 

 

김민주 인턴의 '시인의 공책' 서평 바로가기

 

 

 

 

 

Q.   책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서 작가님께서 <시인의 공책>을 저술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출판하기로 하게 된 배경에 특별한 계기라든가, 사연이 있었을까요?

 

A.    이 책을 목표로 글을 쓴 것은 아니고. 그동안 신문이나 매체에 칼럼으로 썼던 것 또는 에세이로 쓴 글들이 있었는데. 산지니 편집자들이 원고를 모아서 에세이집으로 만드는 걸 제안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내 글이 한 권으로 묶어질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일단 오랫동안 쓴 것들을 모아서, 글의 성격에 따라서 나름대로 편집을 해서 출판사에 보냈어요. 그리고 출판사에 편집자들이 회의를 통해서 책을 내기로한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다시 책의 체제를 새롭게 보완 하고.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형식을 갖춘 책이 되었죠. 편집자의 역할이 큰 책이에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Q.   책을 쓰시다 보면 아무래도 작가님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부분이 생길 것 같습니다. 특히 기록해 놓으신 걸 책으로 옮겨 쓰면서 그 당시의 기억이나 추억 같은 것이 많이 생각나셨을 것 같은데.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으십니까?

 

A.    아무래도 관심사가 문학평론가니까. 그 가운데서도 시나 소설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가지는 존재론적인 의미랄까-그 장르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를 칼럼에서 이야기하려고 했거든요. 두 번째는 지역학에 관심이 있으니까 부산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문학과 지역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것들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워낙 글들이 시차가 있다 보니까. 그걸 어떻게 할까 하다가 출판사에서 글의 발표 년, 월을 밝히기로 했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글과 그 시기를 연관 지을 수 있도록 했죠.

 

     Q.    그럼 그중에서 애착이 가는 부분은 없으신가요?

 

     A.    신문에서는 이 칼럼이 9.5매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이런 글들은 굉장히 압축적이고 그러면서도 읽는 독자들을 굉장히 의식해서 써야 해요. 그러면서도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칼럼들은 다 공을 들여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은 책의 제목에 써놨듯이. 시인과 시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본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시인의 공책이라고 결정했어요.

 

Q.   책 제목은 그럼 바로 정해진 것인가요?

 

A.   편집자와 출판사에서 몇 가지를 놓고 토론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제가 시인의 공책이라는 제목을 결정했습니다. 저자가 결정했고 편집자가 수용한 것이죠. 원래 출판 과정은 저자와 편집자가 소통을 통해서 이뤄지는 겁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Q.    작가님께서 이전에 출간한 저서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학술논문이거나 학술강연, 연구 보고서 등 대체로 에세이와는 거리가 조금 먼 저서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님이 현재 대학교수의 자리에 계시기 때문이겠는데요. 그렇다면 이번 책을 만드는 과정 중에 어려웠던 점이라든지, 에세이라는 장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신 부분이 있을 거 같은데요.

 

A.     논문은 사실 이론과 방법 그리고 자료 분석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쓰는 것이고. 평론은 분석과 해석 그리고 비판입니다. 에세이는 자기 생각을 많이 드러내고, 자신의 정신이 더 많이 개입되어야 하거든요. 논문, 평론, 에세이 이렇게 두고 보면. ‘에세이야말로 나다운 글쓰기를 하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글을 더 많이 쓰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논문보다도. 논문들이 사실 실적 위주지 별로 우리 사회에서 효용이 부족하거든요. 대학 사회에서 실적을 평가하는 데 논문이 많이 이용되는데, 좋은 내용도 있는 논문도 있겠지만, 형식만 갖춘 논문도 많고 일반 대중하고 연계성도 별로 없고요. 평론은 또 문학 하는 사람 위주로 하다 보니까 한계가 있고. 그래서 일반 대중을 생각하면 에세이가 좀 더 낳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에세이는 아무래도 자기 노출이 많은 글쓰기인데요. 그런 점들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A.   그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에세이야 말로 자기 생각을 그것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글도 읽으면서, 애초에 자기 생각을 하나의 집으로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고 보면 우리 전통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훌륭한 글들은 전부 에세이에요. 근대에 와서 논문 중심의 학술 시스템이 되다 보니까 그런데, 원래 유명한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글들은 전부 에세이에요. 논문이라는 형식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정말 살아있는 정신들이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학자들이 논문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특히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에세이 정신으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사실 복귀가 아니고 에세이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많은 경우가. 복귀가 아니고 살려내야 하죠.

 

     Q.  그렇다면 작가님이 에세이집을 발간하신 건 어떤 우연이 아니라.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군요.

 

A.   마음속에는 그런 생각들이 있었는데, 우연히 산지니가 이런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죠. 이 책은 이렇게 그동안 쓴 것들을 묶었지만, 앞으로 쓸 책들(평론집 말고)은 어떤 글을 가지고 에세이 형식으로 써보려고 하는 차에 중간다리가 된 것이죠. 하나의 계기죠, 산지니가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고요. 다음에는 이렇게 발표한 글들을 묶는 것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일 년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글을 써서 책을 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럴 때 그것은 기존의 연구서나 평론집과는 다른 그리고 시인의 공책과도 다른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시인의 공책>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공책이라는 의미가 이전에 생각했던 개념과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마치 언젠가 이뤄내고 싶은 이상향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런 갈망을 풀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도 느껴집니다. 작가님에게 공책혹은 의 공간은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받아들이고 계시나요?

  

A.     원래 요즘은, 공책이 아니라 노트라고 많이 하죠. ‘공책이라는 사물 자체가 매우 많은 것들을 함축해요.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해 비어 있는 것이 공책인데, 나는 이것을 텍스트 현상으로 본 거죠.

 

Q.   ‘텍스트 현상을 조금 더 깊게 설명해주신다면.

 

A.    텍스트 현상, 그러니까 텍스트라는 것은. 예를 들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작품이고, 우리가 읽는 진달래꽃은 텍스트라는 거죠. 텍스트라는 것은 만나서 읽었을 때 만들어지는 겁니다. 읽히지 않은 공책은 텍스트가 아니고, 읽으면 텍스트가 되는 거죠. 그렇지만 읽는다고 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민주 씨(미기후)에게 바로 전달되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는 무수한 거죠. 한 권의 책이을읽는 사람의 수만큼 텍스트가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읽지 않으면 그것은 공책이라는 말이죠. 그런 논점에서 공책이라는 말이 굉장히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그곳에 글을 쓰고 메모도 하는데. 그런 현상과 책을 읽는 현상은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공책이든 책이든 모든 것은 나무로 이루어지는데, 결국은 물질이죠. 그런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설명들이 조금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요.

 

 

      Q.   그렇지만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스스로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A.    그렇죠. 시시콜콜히 설명하지 않았죠. 항상 모든 텍스트는 여백이 있어야 해요. 누군가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 거기서 새로운 의미가 생산되는 것이니까요. 그럴 때 그 글이 의미가 있어지는 거죠. 신문기사 같은 글은 여백이 없잖아요. 여백이 있는 글이 필요해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또 여백이 있는 글을 안 좋아하죠. (웃음) 여백이 없는 글을 읽고 마치 자기 것처럼 말을 하기도 하고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없다는 거죠. 글을 읽고 해석하지 못 하고 여백을 만들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도 텍스트로서 공책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의미를 생산해야 합니다. 그런 사회야 말로 변화가 생겨나고요.

 

     Q.   저 역시도 공책의 여백보다는, 한글 프로그램의 여백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때 느껴지는 점이랑 분명 공책의 느낌은 다를 것 같습니다.

 

A.    굉장히 역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많은 젊은 세대들이 또 문구를 좋아한다.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인터넷 서점들도 웃긴 점이 책을 사면 공책을 끼워준다. (아이러니하네요) 그런 현상들을 보면 공책의 의미들을 조금만 더 부각하면 의미가 되살아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필체를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원래 자기 자신의 필체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데. 요즘 학생들 답안지를 받아보면 자기들만의 필체가 없어요. 필체에 문제가 있더라고요. 컴퓨터에 의존하다 보니까 생긴 현상이죠. 다른 작가님 중에서는 여전히 원고를 펜으로 쓰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의 말씀으로는, 그렇게 쓰면 자신들의 살아 있는 문체를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나도 펜으로 쓰는 것은 힘들더라고요. (웃음) 그 대신 십 년도 더 된 다이어리가 있어요. 그런 정도는 컴퓨터가 발달해도 계속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쓰는 연습을 해야죠. 그런 것 역시 공책과도 연관이 있는 거고요.

 

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헤밍웨이 인 하바나라는 영화를 봤는데, 헤밍웨이를 추적한 기자가 전혀 글을 못 썼다고 해요. 글을 못 쓰는 사람은 기자를 할 수 없으니까. 그 기자는 헤밍웨이의 글을 전부 필사를 하게 되죠. 결국 기자가 되었고, 헤밍웨이를 추적하는 기자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남의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양분이 된다는 거죠. 계속 읽고 써야 합니다.

 

 

 

 

 

Q.    󰡔시인의 공책󰡕을 들여다보면, <시인의 정의>, <장미의 이름으로>, <문화는 진보한다>, <장소의 혼, 장소의 멋>, <부산, 문화의 오아시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책에 담기기에는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내용인데요. 시인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여러 사건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마지막으로 부산이라는 지역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렇게 광범위한 주제를 잡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책의 구도를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그리고 마지막에 지역이라는 큰 범위로 나아가는 것을 의도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A.     저의 전공이 원래는 시론과 비평인데. 90년대 후반에 우리 학과, ‘동아시아학과를 만들면서 지역학 그리고 문화연구 쪽으로 확장을 해왔습니다. 보통 서구에서도 비평을 전공한 사람이 문화연구로 넘어오잖아요. 시론과 비평 그리고 문화연구 그다음에 지역 문화, 지역 문화 정책 쪽으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학과가 지역학과이고 또 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역학문화연구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과 강의하면서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지리학에서 말하자면 스케일이 확장된 거죠. 로컬에서 세계로. 그런데도 나는 내 본래 전공인 에 대한 애착이 여전히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글을 쓰면 시와 관련된 것을 제일 먼저 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새로운 책들이 기대됩니다.

 

A.  (웃음) 이제 이렇게 인터뷰 하고 나면, 발설을 했기 때문에 꼭 지켜야겠네요.

 

 

Q.    1<시인의 정의> 부분을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다른 장보다 작가님의 생각이 더 힘 있게 서술되어 있고,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작가님의 모습 역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다라는 작가님의 말씀과 칠곡 할머니들의 일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스스로가 시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많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칠곡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어쩌면 나도 시인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선한 시정을 마음에 품고 글 쓰는 삶을 이어나가 좀 더 윤택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결국 자기의 문제잖아요 인간은. 자기의 문제를 이해하고 또 남을 이해하는 것이 결국은 인문학인데.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한 개인이 태어나서 청년 시절을 보내고 노년을 맞는, 그런 일련의 과정의 결과가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인 거죠. 자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생각이나 느낌의 출발이 이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쓰기가 현대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고령화 사회 그리고 노년에 대해서 준비가 안 된 사회에서. 각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고, 그와 관련한 책도 읽고. 이런 문화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죠. 그런 점에서 시는 단지 잃어버린 향수나 애착이 아니고. 새로운 삶을 혁신하는데도 굉장히 중요한 장르이자 글쓰기라는 거죠. 이렇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그런 부분이 패터슨같은 영화에서 나타나고요. 누구든지 개인의 삶, 자기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책 혹은 글을 읽고 공책에 써볼 수 있어요. 생각하면서 보내면 삶의 의미도 생기잖아요. 그만큼 자존감도 생기고요. 그런 것이 바탕이 되면서 사회가 제도적으로 복지정책을 통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시와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거죠.

 

 

영화 '패터슨'

 

 

       Q.    많은 장르 중에서 왜 시가 제일 먼저라고 생각하십니까?

      

 

A.     시는 결국 자기표현이에요. 자기를 표현하는 것.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자기 문제를 먼저 들여다보고 그다음 타인을 보고, 세계를 보는 것이죠. 결국 자신의 성찰을 잘할 수 있는 출발이 시라는 겁니다.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소설은 상품이에요. 소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자기 문제를 이야기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시장에 내놓아서 소비되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같은 문학이지만 시와 소설은 경계가 있습니다. 시는 세상의 논리, 자본의 논리보다도 실존의 논리이것이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시 운동이 필요한 거죠. 칠곡 할머니들처럼 누구든지 시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Q.     현대사회의 사람들이 참 책을 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소설이나 에세이를 많이 읽지, 특히 시는 더 소비가 안 되는 소수 장르라고 볼 수 있는데요.

 

A.     시가 굉장히 어려워졌잖아요. 그만큼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삶이 어려우니까, 시인들이 그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난해해졌어요. 그것도 하나의 측면이지만, 우리가 시를 통해서 자신을 너무 나타내려는 자기 현실문화’, ‘나르시시즘 문화라고 할까. 이런 것들이 거꾸로 작용을 해서 시인이 되면 새로운 명예를 얻는 것처럼 잘못 인식이 되다 보니까. 시가 일반화·일상화되고 모든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인식과 멀어진 사회예요. 본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래서 새로운 시 운동이 필요하죠. 누구나 읽고 쓰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운동이 말이에요. 이런 방식의 운동과 모임들이 필요해요. 그런 모임들이 사실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미시적인 것이지. 거시적인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거든요. 미시적으로 안 바뀌면 우리 삶이나 세계도 바뀌지 않아요. 그럴 때 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죠.

 

 

 

 

 

 

Q.    책 제목과 서문을 많이 곱씹어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작가님 스스로의 현재 상태에 대한 진솔하고 솔직한 답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요. 평론가로서의 예리한 눈썰미가 작가님 본인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도 여과 없이 미치는 것 같아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느껴집니다. ‘시인의 공책을 출간하신 이후에 그런 부분에서 나아진 점이 있나요?

 

A.     서문? 다행이네요. (웃음) 서문에서 쓰여 있지만, 두 가지 의미잖아요.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거나, 읽지 않거나.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면, 사실 텅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텍스트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 측면이 하나 있고. 그래서 남과 함께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 하나고. 두 번째는 우리가 글을 쓸 때 사실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의 글에 의존하거든요. 오늘날에는 표절이라는 것이 정확한 경계가 없어요. 결국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해도. 이 주제에 관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견을 읽어보고 쓰게 되어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책에 그냥 자기 생각을 써내지는 못하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 자기의 언어를 발화하고 싶은 열망. 이런 것들을 공책이라고 말할 수 있고. 결국은 책 뒤표지에 사상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라는 게 를 아우르는 말이거든요. ‘이 무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주 잘 쓴 말이죠. ‘은 무와 유의 운동 상태를 말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돼요. ‘도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고, ‘도 완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가 공책이라는 의미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를 공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소통이 일어나면 유가 되고 그렇지 않다면 무가 되는 것처럼. 공책에 글을 쓰면 지만, 남이 읽지 않으면 가 되는 거죠. 패터슨이 시를 쓴 것을 강아지가 다 찢어 버려도 그것은 완전한 무가 아니라 유와 무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게 시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집을 내면 폼을 잡고 있어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라 어쩔 수 없겠지만요. 나 역시 이 책이 팔리기를 바라고요. (웃음)

 

Q.    특히 우리 사회는 책이 출간되거나 읽힐 것들이 나와야 인정해주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A.    맞아요. 현대 사회는 너무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스타 시스템에 맞추어서 모든 영역에 대중들이 인기인들을 도착하는 경향들이 있거든요. 책도 그런 형태로 베스트셀러 현상이 나오는 것이죠. 그것 역시 잘못된 거예요. 밑으로부터 책 읽기, 글쓰기, 독서문화 출판과 독서와 매개되는 활동들이 필요합니다. 출판 따로 독서 따로 저자 따로가 아니고 이런 것들이 네트워크를 형상해야 하는 거죠.

 

Q.    요즘은 또 독립출판, 동네서점이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죠.

 

A.    그런 것도 그렇게 볼 수 있죠. 도서관 역시 이전에 머물면 안 돼요. 작품 전시, 토론회처럼 문화 플랫폼적인 기능을 해야 합니다. 출판 역시 같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산지니 공간을 만든 것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우리 사회가 플랫폼을 갖추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A.    그렇죠. 우리 사회는 아직 여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노동 강도가 높고.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빠르기 때문이죠.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문화적인 충전 활동을 할 텐데.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Q.    작가님이 가지고 계시는 고민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고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본인이 추구하고, 닿고자 하는 이상과 현실에서의 충돌로 인해 계속되는 자기성찰과 검열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렇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웃음) 너무 큰 이야기인데요. 우리는 삶을 이해할 때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뭐든 삶의 목표라든지 그런 것들을 추상적으로 두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돼 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사는 마을, 고장에 대한 이해도 없이 세상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도 웃기지 않나요? 그런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이나 이해도 안 되면서 남을 이야기하기 쉬워요구체적이고 미시적인 것을 섬세하게 파고들면서 이해하고 느끼고 또 거시적인 것도 함께 이해하고. 그런 것들을 극복해 나가면, 우리 사회가 공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담론이 추상적으로 이루어져요.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방법들이 글을 읽고 쓰고 만나 가는 과정이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요.

 

 Q.   글을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추상적인 것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겠네요?

 

 A.   그렇죠. 그런 것 중에 가장 구체적인 것이 시이고요.

 

 Q.   시가 구체적이라는 것은 조금 생소하네요.

 

A.    (웃음) 시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죠. 현대 시를 읽으면 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시인들이 글을 쓸 때는 구체적인 자신의 느낌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Q.    해양문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서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부산과도 연관 지어서 설명해 주셨는데요. ‘부산과 관련된 글 중에 꽤 과거에 작성된 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과는 거리가 먼 시기에 작성된 만큼,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예를 들면 책 속에 기술되어 있는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는 폐업했고, ‘국립중앙박물관 부산 분관은 무산되었습니다. (반면에 부산 현대미술관이 개장을 하기도 했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현재 부산은 해양문학 혹은 문학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부산을 이야기할 때 부산 지역은 우리의 눈으로 우리가 봐야 합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눈으로 부산을 보면 안 되는 거죠.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우리를 봐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보면 부산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많아요. 그런 가운데 해양이 들어가는 것이고요. ‘부산이 문화가 없다는 말은 틀려먹은 말이죠. 그것은 다른 눈으로 보면 없는 것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문화란 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장점으로 살려 나가야 하는 것이 일관된 관점인데. 그걸 내가 방법으로서 부산이라고 했어요. “우리 눈으로 부산을 보자.” 그런데 지역문화를 이야기할 때. ‘문화 발전문화적 발전두 가지 이론이 있거든요. ‘문화 발전은 어떤 특정 영역, 문화 시설의 발전을 말하고. ‘문화적 발전은 지역의 도시 전체가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말해요. 그럼 부산은 그동안 문화 발전에 많은 노력을 쏟았고 여전히 그러는 중이라는 거죠. 그리고 미술관 박물관 이런 것들은 특정 영역에 발전을 야기할 뿐이죠. 진정한 의미의 도시 전체의 발전을 말하는 문화적 발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서 문화 도시라는 것은 문화적 발전을 이룬 것을 말하죠. 서구나 일본의 도시들은 도시 전체가 문화에요. 특정 시설이 문화이지는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부산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냐면, 부산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자원, 우린 이것을 흔히 내발적 발전이라고 하는데. 자기 눈으로 자신을 보면서 발전하는 문화적 발전을 말하죠. 이런 것은 단지 계발이 아니라 재생에 가깝습니다. 그런 시점이 온 것이죠. 정치적 주체가 누가 바뀐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이 책에 그런 생각들이 담겨 있고요.

 

Q.  문화적 발전은 정말 아직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A.   맞아요. 부산은 매우 큰 도시예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열린형태로 문화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큰 시설을 세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요.

 

Q.   그렇다면 앞으로 부산이 그렇게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 그건 모르겠어요. (웃음) 그렇게 되면 좋겠죠. 그런데 워낙 그동안 기초가 되는 문화 예술에 투자를 잘 하지 않았죠. 원 콘텐츠나 기초 예술, 문학, 출판이라든지. 바탕이 되는 것들에 대한 투자가 돼야 하는데 그 이후의 것들을 지원하니까. 굉장히 불완전한 형태로 계발되어 온 것이죠. 이런 형식으로는 문화적 발전은 이뤄지지 않아요. 전시 행정이죠. 스펙터클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Q.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국가적 재난을 넘어서 세계와 지구의 문제로 야기된다는 점과 하나의 인류사적인 사건이 사상을 형성하고 심화시킨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글이 쓰인 시기를 확인하니 2012년으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지금 새 정부가 출범하고 탈원전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탈원전을 공표하고 시행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책 속에 기술된 사상으로서의 3.11’의 영향력으로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A.    그 당시에 후쿠시마가 워낙 큰 재난이었어요. 많은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 사상으로서의 3.11’로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으로 가냐 재난 자본주의로 가느냐. 일본 정부가 그 뒤에 재난 자본주의로 가 버렸어요. 자본주의는 전쟁이나 재난을 오히려 더 자본의 역동성으로 전환시키는 데 뛰어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예를 들면 전쟁 후 패전 국가들은 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잘살고 있죠. 이런 점들을 보면 전쟁이 새로운 근대성을 얻는 데 많은 토대를 제공해 준다는 거죠. 그러니까 성장하는 데는 전쟁과 재난이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이후에 탈원전정책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성장 정책을 체득하고 호황을 맞이하고 있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탈원전정책을 이끌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제일 큰 문제는 개혁이 가장 안 되는 영역이 경제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기존 자본주의의 공고한 시스템으로. 이게 쉽게 바뀌지는 않아요. 그래서 탈원전은 당연한데 지체되고 있죠. 하지만 유럽 같은 경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탈 전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 동아시아 자본주의 국가들은 문제가 많고. 우리 역시 중심에 위치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상으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지 못 한 것이죠. 특히 일본에서 변화하지 못했으니까요.

 

      Q.    그럼 탈원전정책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요?

 

A.     탈원전 정책은 펼쳐야 합니다. 대신 경제 지상주의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거죠. 원전은 경제와 굉장히 맞물려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지금 여름철 전력도 굉장히 불공정한 구조로 이뤄지고 있어요.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원전이 필수라는 거죠. 시스템을 바꾸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니까요.

 

     Q.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가 문제 될 것 같다?

 

 

A.     세계 체제 속에서 혼자 바뀔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특히 분단문제도 있지 않은가. 세계 속에서 맞물려 있는 것들을 풀어 쓴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Q.    끝으로, 이 책의 독자 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어느 책이든, 사람이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쓰고 하는 것이 자기 삶과 함께한다면, 우리 매일매일의 삶이 더 의미 있고 윤택해질 것입니다. 나이가 들기 전에 그런 습관들을 길러 놓으면, 노년에 가서 인생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내용이 책 안에 담겨 있는 거죠. 그런 의미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윤택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게 작가님의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A.   맞습니다.

 

 

<번외 인터뷰>

Q. 공책 들고 다니십니까?

A. (웃음) 오늘은 안 들고 나왔습니다. 날이 너무 더워가지고 (웃음) 그래도 가능하면 들고 다니는 편입니다. 어디 여행을 갈 때나, 공책은 메모를 하는 용도로 많이 들고 다닙니다. 거의 메모의 형식입니다. 기억력이 한계가 있으니까, 나중에는 기억이 나지 않더라. 그래서 메모를 합니다.

 

Q. 그렇다면 공책이랑 일기는 다른 느낌인가요?

A. 다르죠. 공책은 우리로 치면 보행과 같아요. 산책하면서 생각하는 것을 적는 형식이 공책인 거죠. 속도로 치면 공책은 보행과 같습니다. 보행이 몸이라면 공책도 몸이죠. 우리의 몸과 맞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공책

 

구모룡 지음 | 208쪽 | 13,000원 | 2018년 7월 10일

 

저자가 기존에 가졌던 고민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인문적 사색과 통찰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문학, 철학, 사회, 장소, 부산'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은 에세이 형식을 지향하지만 그 이상의 깊이 있는 고뇌와 사유를 보여준다. 저자는 밀도 높은 글들을 통해 때로는 시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때로는 사회를 해부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공명을 흔들어놓는다



시인의 공책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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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0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대만판 출간 인터뷰


 

대만·한국, ‘압축·고속’의 닮은 길…이해의 폭 더 넓혀야

타이완의 오픈북(www.openbook.org.tw)은 한국의 출판저널 같은 곳. 오픈북은 『반민성시』(『叛民城市』 대북암흑여지臺北暗黑旅誌, 이하 『반민성시』)의 한국판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에 나선 <산지니 출판사>의 행보에 큰 관심을 표했다. 대만, 타이베이를 제대로 알고자 찾는 이런 북투어는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오픈북측은 2018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방문과 함께 산지니의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대만판 출간 의미와 한국의 (지역)출판에 대해 다양한 물음을 던졌다. 인터뷰는 2월 10일(토) 오후6시 국립 대만대 부근에 자리한 오픈북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편집자 주-

 

<참조> 타이완 오픈북 인터뷰 링크 https://www.openbook.org.tw/article/p-1058

 

 

 

오픈북과 인터뷰 중인 강수걸 산지니 출판사 대표. 

 

대만 유격문화출판사 꿔페이위郭姵妤 대표와 산지니출판사 강수걸 대표가

서로 번역된 책을 들고 양사의 출판교류 우의를 다졌다.

 

 

 

대만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많아져야

 

 

Q1. 산지니는 왜 『반민성시』(한국판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를 출판하고 싶었는가? 어떻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역자의 적극적인 의사타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꽃보다 할배’란 방송 이후 대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젊은이들이 대만을 많이 찾고 있다. 하지만 대만 가이드북, 소설 일부 외에 이렇다 할 대만 책 소개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곽규환 역자가 『반민성시』를 제안했다. 색다른 책이라 느꼈고, 대만 역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책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앞으로도 좀 더 다양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고, 한국과 대만의 상호소통을 원한다.”


곽규환 : 내면을 보는 여행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크 투어리즘이 출판 결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한국독자들에게 어려운 책이다. 의미를 보고 산지니에 제안했다.

 

 

Q2. 산지니 도서목록을 보면 『반민성시』의 맥락과 닿는 부분을 느낄 수 있는데? 판매는 어떤가?

“한국은 88올림픽 때 철거가 많이 이뤄졌다. 부산에서도 철거가 지속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일제시대 건물도 강제 철거되었다. 철거 관련한 책은 거의 나온 게 없다. 다양성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도시빈민에 주목한 책은 있으나 주류 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한국은 IMF이후 급속한 변화 과정 속에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독자들은 음식이나 작은 행복 등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반민성시』의 한국판인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판매량은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Q3. 과거에도 귀사(산지니)는 이번과 같은 북투어 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이번에 왜 타이완에서 이러한 북투어 행사를 진행하는가?


“북투어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을 소개하는 책으로 북투어를 계획하기는 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향후 이런 북투어는 계속할 계획이다. 이번 북투어는 책의 발간과 함께 미리 계획했던 것이다. 타이베이 시내 곳곳을 걸으면서 타이베이와 부산의 유사성을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 일본의 흔적이 가장 많은 도시가 부산인데, 도시규모나 발전사도 비슷하다. 한국과 타이완은 비행기로 2시간 거리로 가깝다. 타이완 관련 출판이 더 많아지면 방문도 많아 질 것이다. 타이완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

 

 

Q4. 대만 열풍과 『반민성시』의 상관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은 개발이 단기간에 이뤄진 나라다. 다양한 도시의 모습도 부족하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일본식민지하에서 도시 모습이 갖춰졌다. 해방 후 도시규모가 확장되면서 그 많던 공장이 지금은 사라지면서(외곽 이전) 아파트가 들어섰다. 대부분의 주거공간의 모습이 특이하다고 느낄텐데, 한국은 아파트공화국이다. 이러한 도시를 되돌아보는 작업은 출판의 의무이다. 과거를 잘 되돌아보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에서도 일제시대 건물을 보존하자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런 부분은 타이완에서 배울 부분이다.”


“한국에서 현재 대만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전에는 홍콩이었으나 열기가 조금씩 식었다.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 대만관계자들이 많이 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타이완의 밤’ 행사가 별도로 있었다. 양국의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산지니에서는 타이완의 밤 행사 사회를 본 정쾅위 저자의 책도 번역중이다. 대만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많아져야 한다. 홍콩처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올 6월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유격문화출판사에서 꼭 오시길 바란다.”

 

 

 

타이베이가 걸어온 길, 호기심과 동질성을 찾아

 


Q5.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성이 비교적 강한 장소들을 탐방하는데, 이 탐방을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


곽규환 : “역자서문에 밝혔듯이 첫째는 호기심이다. 1~3구역은 관광지가 많은데, 독자들이 경험했던 것과 타이베이가 겪었던 부분이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답이 아니라 타이베이에 질문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동질성이다. 강 대표님 말처럼 한국과 타이완은 정치 경제적으로 압축, 고속이라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타이베이가 걸어온 길, 기억하는 방식이 한국 독자들께 동질성과 호기심을 가져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 왕즈훙 교수가 지적했듯 반민은 저항하거나 핍박받는 민중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주류가치와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원한다.”

 

 

Q6. 북투어 참여자 모집은 어떻게 했고, 구성원들은 어떤 분들인가.


“작년 12월 SNS를 통해 참가자 모집을 했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학생, 교수, 시민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직업군이다. 특이한 참가자는 중국역사를 전공한 교수님이다. 베이징에서 공부했는데, 이번에 타이완을 좀 더 알고 싶어 참여한 경우이다.”

 

 

Q7.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서 출판사의 지역문화발전 기여를 강조하고 있다. 현지 작가들과의 협업/저자-독자와의 만남 외에 귀사에서는 어떤 방식과 활동으로 지역문화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대표님은 이 작업에 어떤 인원들과 기관/기구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자체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하면서 정책제안을 많이 하고 있다. 지역의 책 정책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우선 도서관 예산을 올리고 도서관의 책 구매 예산을 올릴 것을 적극 제안하고 있다. 또 지역출판 코너도 만들어야 한다고.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관련해서는 후보 책에 지역도서를 꼭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부산 원북원에 선정된 산지니 시집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세월호를 다룬 시 한 편 때문이었다. 이런 아이러니가 벌어졌던 나라가 한국이다.”

 

 

 

책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지자체 의존도는 낮아져야

 


Q8. 지역에서 지역출판사의 출판물 판매량을 증가시킬 정부지원 등의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서울 중심으로 출판이 이뤄지고 있다. 중앙집권이 강한 경향 때문이다. 신문은 덜한 편이지만 지역 출판은 유독 어렵다. 지역마다 개성있는 책을 내면 좋은데, 잘 이뤄지지 않는다. 2005년 산지니 초기에 『반송 사람들』 등 부산 관련 책 2권을 냈는데, 언론에서 책 소개 기사가 아닌 부산 지역 출판사 산지니를 소개한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예산 지원은 딱히 없었다. 2012년부터 부산에선 매년 5종을 선정해 종당 1천만 원의 책을 구매해 작은 도서관에 배포하고는 있다.

 

한국에서는 지자체 홍보 물량을 납품하는 지역 출판사도 많다. 그런 출판사들은 전국 판매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산지니와는 다른 방식이다. 책의 다양성이 높아지고 지자체 의존도는 낮아져야 한다. 지자체나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지원과 그에 대한 의존은 출판사의 자립도를 떨어뜨린다. 제주도에서는 지역출판조례가 곧 통과될 예정이다. 개별 출판사에 대한 지원이 아닌 물류지원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제주도에서 보다 다양한 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출판물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지역민에 많은 도움이 될 책을 지역도서관에서 일정 비율 뽑을 때도 양서가 중요하다. 출판사와 도서관의 연계는 중요한데, 사서에게 지역출판 이야기를 잘 전달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Q9.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서 확인한 바로는 상당수 독자들이 베스트셀러에 편향된 구매경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역 문화를 다룬 특색 있는 책들이 지역 독자에게서 외면받는 모순이 발생하는데, 그 주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부산인구는 350만 명으로 한국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서점 영향력은 전국의 8%이고, 출판은 4%를 차지한다. 지역출판이 약한데, 서점에서는 주로 베스트셀러가 팔린다. 그 갭을 메꿔야 한다. 부산에는 영광도서 같은 큰 서점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초기에 출판사가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산지니는 다른 지역 출판사와 달리 부산에서 전국으로 판매망을 확장하고 있다. 온라인서점 대형서점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 제공해야 한다. 물류회사는 파주에 있는데 물류창고가 점점 휴전선 근처로 이동중이다. 서울 땅값 때문이다. 부산서 책을 받으려면 정말 멀리서 오게 된다. 이 또한 한국적 특수성이다.(일동 웃음)”

 

 

Q10. 『지행출』 대만판이 발간되었다. 대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대만 독자들께서 『지행출』을 좋아해 주셨으면 한다. 이 책은 산지니 출판사의 초기 10년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담은 책이다. 앞으로 10년 뒤, 산지니는 또 다른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오늘 한 인터뷰와 타이베이 북투어도 『지행출2』에 담겨 있을 것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 11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Truthout』 Interview, 2018 3월 24일자

카를 마르크스를 읽자!

이매뉴얼 월러스틴과의 대담

 

by. 마르셀로 무스토

 

 

 *

 본 인터뷰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국내에 번역 출간될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 』(2018년 5월, 산지니)의 저자인 마르셀로 무스토의 요청으로 번역되었으며, 번역은 이 책의 역자이신 강성훈, 문혜림 선생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it.ly/2DRNACr

 

 


 

▲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카를 마르크스의 글들은 명쾌하고, 그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몇몇 해석들보다 훨씬 미묘하고 다채롭다고 말한다. (사진: 왈트 잡스코)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는 거의 논란의 여지없이 수용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경제위기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특히 세계의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 그리고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심각한 환경 문제 등은 몇몇 학자들과 경제 분석가들, 정치인들이 다시금 자본주의의 미래와 대안의 필요성에 관한 논쟁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마르크스의 부활”이, 즉 과거에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교조주의와 잘못 연관되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급속히 묵살되었던 한 저자로의 회귀가 일어나고 있다.    
 

  마르크스로의 회귀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동학을 이해하는 데에만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그의 연구는 또한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양식으로 대체하기 위한 이전의 사회경제적 실험들이 왜 실패하였는지를 철저하게 검토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도구를 제공한다. 이러한 실패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오늘날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미국 뉴 헤이븐 예일 대학교의 수석연구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www.iwallerstein.com)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사회학자 중 하나이며, 마르크스의 현재적 타당성을 논의하기에 가장 적합한 학자다. 월러스틴은 마르크스 저작의 오랜 연구자이며, 그의 연구는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난 한 혁명가의 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월러스틴의 저작은 30권이 넘으며, 이 책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1974년부터 2011년까지 4권으로 출간된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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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로 무스토(이하 '무스토') : 월러스틴 교수님. 소위 “현실 사회주의”가 끝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카를 마르크스가 지닌 현재를 설명하는 능력에 대한 토론과 학회가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고, 그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례적인 일일까요? 아니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타당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하 '월러스틴') : 마르크스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지요. 그를 앞문으로 내다버리면 다시 뒷창문으로 몰래 들어온다. 그런 일이 한 번 더 일어난 겁니다. 마르크스가 여전히 말할 것이 많은 문제들을 우리가 다루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주의에 관한 그의 주장이 대부분의 학자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는 현재에도 의미를 갖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칼럼니스트들과 학자들은 마르크스가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989년에 예견된 것과는 달리 그는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죠.

 

무스토 :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사회에 관한 마르크스의 구상과 거의 무관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서 그를 해방시켰습니다. 또 소비에트 연방 붕괴에 따른 정치 지형의 변화는 마르크스에게 부여되었던 국가기구의 명목상의 수장 역할로부터 그가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석은 무엇입니까?

 

월러스틴 : 저는 사람들이 세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해석하면 떠올리는 한 가지 개념이 바로 “계급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를 현재의 이슈 측면에서 읽으면, 저에게 계급투쟁은 세계 우파(수입면에서 세계 인구의 상위 1%를 대표하는)에 대한 세계 좌파(수입면에서 세계 인구의 하위 80%를 대표하는)의 피할 수 없는 투쟁을 의미합니다. 이 투쟁은 양 진영에 속하지 않은 19%의 인구를 좌지우지합니다. 이는 그들을 어떻게 상대편이 아닌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가에 관한 싸움이지요.

  우리는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살아남을 수 없지만, 무엇이 이를 대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첫 번째는 제가 “다보스 정신(Spirit of Davos)”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보스 경제포럼의 목표는 사회계급, 착취,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의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극악한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이 두 번째 가능성인데 분명히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체제가 그것입니다. 계급투쟁은 무엇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인가 하는 미래에 영향을 주려는 근본적 시도입니다. 

 

무스토 : 중간계급에 관한 선생님의 견해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세계 인구의 80%라고 말씀하신 그 대중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어떻게 동기화할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집중되어 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이 심각하게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운동이 이전보다 훨씬 약화된 소위 세계 남반구라 불리는 지역에서 특히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반대가 대개 종교적 근본주의와 외국인 혐오 정당에 대한 지지로 흘러갔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이 유럽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점점 더 자주 목도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바로 “마르크스가 이런 새로운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입니다. 최근 간행된 연구들은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다른 “뒷창문”을 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관한 연구를 다른 영역으로 확장했던 마르크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실 마르크스는 비유럽 사회를 연구하는 데에, 그리고 식민주의가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행한 파괴적 역할을 연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개념을 생산력 발전과 동일시하는 해석과는 달리, 그의 생태학적 관심은 연구 전반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또 마르크스는 학자들이 그에 관해 얘기할 때 대개 무시해온 몇몇 주제들에 관해서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과학기술이 가진 잠재력,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집단적 소유 형태의 모색,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적 자유의 필요성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주제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근본적 문제들입니다. 이런 마르크스의 새로운 면모 외에(이에 대한 연구들은 마르크스의 사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생님이 오늘날 재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마르크스의 가장 뛰어난 견해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월러스틴 : 우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사회를 조직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설명했습니다. 그가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출판한 『철학의 빈곤 The Poverty of Philosophy』에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자연 법칙”이라고 주장한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그들이 봉건제에서 부르주아 사회와 확연히 다른 생산관계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옹호하는 생산양식에는 이런 역사적 발견을 적용시키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처럼” 묘사했죠. 저는 『역사적 자본주의 Historical Capitalism』에서 몇몇 주류 정치경제학자들의 모호하고 불명확한 견해를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역사적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주장했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단순한 것인데, 우리는 이에 대해 마르크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지요. 
  두 번째로는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토대인 농민으로부터의 토지 수탈을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부르주아의 지배를 성립시키는 핵심 과정이라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 초기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가 다룬 “사적 소유와 공산주의”에 관해 숙고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소련에서 형성된 체제에서는, 특히 스탈린 체제 하에서는 국가가 재산을 소유했지만, 이것이 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했죠.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일국 내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그 시대 이전에는 마르크스를 포함한 어느 누구에게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한 가지 가능성입니다. 이는 또한 협동조합식으로 소유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누가 생산하고 누가 잉여가치를 가져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비교해봤을 때 체제가 완전히 재조직되어야 가능합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스토 : 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서 새로운 책들과 영화들이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나오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생애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가 있으십니까?

 

월러스틴 : 마르크스는 매우 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극심한 빈곤과 싸워야 했는데, 이런 가난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동료가 그의 옆에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정서적으로도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의 삶의 역작, 즉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집필하려고 애쓴 끈기는 가히 경탄할 만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자신이 하려는 작업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고대에 대해 설명하거나 미래의 사회주의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의하고 싶어 하지 않았죠. 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에게 부과한 과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를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무스토 : 마르크스는 런던 대영박물관의 책들 속에만 파묻혀 있던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당대 투쟁에 관여했던 전투적인 혁명가였습니다. 이런 정치적 활동 때문에 그는 젊었을 때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에서 추방되었지요. 또 1848년 혁명이 실패했을 때에는 영국으로 망명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신문과 잡지 등을 발간했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항상 노동운동을 지지했습니다. 이후 1864년부터 1872년까지는 최초의 초국가적 노동계급 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1871년에는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실험인 파리코뮌을 옹호한 바 있습니다.

 

월러스틴 : 예, 그렇습니다. 마르크스가 보여준 투쟁성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에 무스토 교수가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Workers Unite!』에서 강조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편리한 의사소통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물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노동자 대중의 조직, 즉 국제노동자협회에서 특별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활동에는 저널리즘도 포함됩니다. 그는 더 많은 청중과 소통하기 위해 신문과 잡지에 계속 글을 썼지요. 수입을 얻기 위해 저널리스트로 일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를 정치활동에 기여하는 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중립적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열성적인 저널리스트였죠.

 

무스토 :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었던 2017년에 일부 학자들은 마르크스와 20세기에 권력을 잡았던 자칭 마르크스의 추종자들을 대조하는 연구를 다시 진행했습니다. 마르크스와 그들의 주요한 차이는 무엇입니까?

 

월러스틴 : 마르크스의 글들은 명쾌하고, 그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몇몇 해석들보다 훨씬 미묘하고 다채롭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분노에 차서 한 말인 “이것이 마르크스주의라면, 확실한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거요”를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르크스는 교조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는 많은 이들과는 다르게 세계의 정세 변화에 대처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주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는 세계가 직면하고 있다고 판단한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그가 여전히 매우 도움이 되고 유용한 안내자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스토 : 마지막으로, 아직 마르크스를 만나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월러스틴 : 제가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은 카를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읽지 말고, 그의 글을 직접 읽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마르크스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지만, 실제로 그의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아담 스미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고전에 대한 2차 문헌만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고전에 대해 요약해놓은 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이는 도리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사람의 글을 읽어야 하는데, 마르크스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가장 흥미로운 학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요. 쓴 글의 양이나 분석의 질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제 메시지는, 마르크스를 발견하는 데에 대단한 가치가 있는 만큼 그의 글을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를 마르크스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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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는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교에서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수많은 책과 논문들은 전 세계에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대표 저작으로는 Karl Marx’s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150 Years Later(2008, Routledge), Marx for Today(2012, Routledge), Workers Unite!: The International 150 Years Later(2014, Bloomsbury), Another Marx: Early Manuscripts to the International(2018, Bloomsbury), The Marx Revival(출간 예정, Cambridge University Press) 등이 있으며, 국내에는 역서『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들을 다시 생각한다』(2013, 한울)가 출간되었다. 그의 저술 목록은 www.marcellomusto.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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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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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5월 출간 예정작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의 지적 여정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 강성훈, 문혜림 옮김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글찌입니다. 저는 어제 부산문화재단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최은영 작가님을 인터뷰하고 왔지요. 인터뷰는 찐빵과 커피, 웃음이 있어 더욱 따뜻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글찌 희곡은 주로 연극의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게 됩니다. 텍스트로 만나는 희곡은 연극으로 만나는 희곡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최은영 작가님  텍스트로 만들어져 있죠.(웃음) 언어라는 개념을 보면 말 또는 글 이런 형태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둘 다 언어적인 형태이긴 한데 텍스트로 된 희곡은 활자화 되어있으니까 변동이 불가능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 하나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연극으로 쓰여 지는 희곡은… 학교에서 배울 때보면 ‘희곡은 연극의 대본이다.’라고 해서, 수단화해서 정의를 내리거든요. 그런걸 보면 확실히 연극으로 상용되면서 그 캐릭터나 연출이나 어떤 무대 장치의 힘에 의해서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라고 얘기 할 수 있겠네요.


글찌 희곡에서는 인물이 큰 역할을 합니다.「무한각체가역반응」에서는 실존했던 문학인들이 등장을 하고,「연애戀愛, 그 오래된」은 작가님께서 강원도여행 중 만난 분의 실화를 모티브로 탄생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인물들은 주로 어떻게 탄생이 되나요?

최은영 작가님 ‘주로’라는 말은 맞지 않고요. 너무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서. 질문처럼 알고 있는 인물들을 재 각색 해내는 경우나, 또는 실존했던 이야기들에 어떤 상상을 가미해서 만들어 내거나, 또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물들, 또는 인물의 형태가 아닌 존재들도 캐릭터화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상상이죠. 상상인데, 그 상상이 이제 자기의 어떤 저변 지식이나 환경, 또는 생활의 역사. 이런데서 나올 수도 있고 뜬금없는 어떤 사고의 전환 속에서 나오기도 해요. 그냥 차를 달리다가 나뭇잎 사이에 햇빛이 비췄는데, 그걸 보고 뜬금없이 옛 장수의 칼날 끝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사극 드라마가 나오면서 검을 쓰는 무인이 등장을 하겠지요. 이렇게 너무 다양해서, ‘어떻게 한다.’라고 하기는 좀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문학이라는 것이 어떤 장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작가가 어떤 생각, 어떤 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배여 나오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게 100프로 투영되지는 않을 거고, 아마 변형되고 바뀌고, 재탄생되어서 다양하게 나오는 게 아닐까 싶네요.

글찌「무한각체가역반응」과「연애의 시대」에서는 ‘감갑남’이 등장을 하는데요, 아버지가 대충 지어 준 이름과 달리 인상 깊고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최은영 작가님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먼저 지어진 것이 「연애의 시대」이지요. 훨씬 먼저 지어졌는데 그때 갑남이는 주인공이었고, 발음이 특이해서 지어 졌다기보다는, 대본 앞부분에 보면 부모가, 옛날 여자 아이들을 들에서 밭 매다가 애기 낳으면 들녘이! 서쪽에서 낳았으면 서쪽이!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원래 한자 어투가 아닌 고유어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또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에 제가 되게 관심 있어 해요. 그래서 인물의 어떤 특징들이나 그 내용의 흐름 등을 상징할 수 있는 이름들을 찾아내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써서 선물을 하는, 글쟁이가 따로 선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름을 많이 만들어내는데, 갑남을녀는 그냥 말대로, 갑남을녀가 가장 일반적으로 의미 없이 내뱉는, ‘그렇고 그런’ 뜻으로 사용 될 때가 많아서, 그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했고, 가장 발음이 어려운 성을 붙이기 위해서 족보들을 좀 뒤졌죠. 그래서 발음이 잘 안 되는 걸로. 구색을 맞추어서 감 씨를 붙인 거였죠. 그런데 작가들은 그런 재미가 있어요. 책을 한편 쓰는 게 아니라 작품을 이걸 쓰고, 또 다음에 쓸 때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장난을 좀 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때의 갑남이를 슬쩍 가져와서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어떻게 보면 시대가 비슷해요. 「연애의 시대」는 20년대이고, 「무학각체가역반응」은 30년대 이렇다보니까. 그 갑남이가 서울에 올라와서 만약에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아마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도로 같이 등장한 것 같아요. 그것 말고도, 글 속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들은 좀 그런 식으로 재미있게 하거나, 사건이나 장소들을 다른 작품에 다시 연계해서 저 나름의 재미는 연작 장면을 만드는 건 있어요. 「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에 나오는 구웅이나, 민영, 또 유근이 이런 아이들은 실제 도자기를 굽는 도예공 가족이 이름이에요. 그 집에서 제가 불 떼면서 글 구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인공 이름을 그렇게 정하게 되었지요.


글찌 저는「그리워할 연戀」에 나오는 '어이금'이란 인물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독특한 말투와 성격뿐만 아니라, 아련한 감정 역시 잘 전달되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께서 가장 애정하시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최은영 작가님 이런 질문들을 되게 많이 하세요. 기자 분들도 오시면, ‘제일 애정이 가는 작품이 뭐냐’, ‘인물이 뭐냐’. 저도 배우 출신이다 보니까 많이 들리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요. 제일 좋은 인물은요. 지금 작업하는 인물이구요. 제일 힘들고 미운 인물은 방금 작업을 끝낸 인물이에요. 그래서 어이금 같은 경우는 추억 속의 인물이지요.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을 ‘고마나루 전국 향토연극제’에 나가서 연기를 할 때 제가 어이금 역할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하다 보니까 그런 친밀도 같은 것은 있어요. 작가인 것을 떠날 수는 없겠지만, 배우로서 감정이입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굉장히 동일시화 되는 부분이 많지요. 사실 어이금은 나이를 알 수 없는, 그리고 이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조금 모호한 상태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도, 굉장히 귀여운데도 불구하고 밉살스럽고, 또 불쌍하기도 하고 그렇죠. 그런데 아마 우리 할머니들이나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나 어른들은 쉽게 봤던 인물이 아닐까. 하면 굉장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해요. 아. 말투는 제가 부산사람인지라 대부분의 희곡에 거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 같아요. 

글찌 굉장히 매력적인 말투였어요. 

최은영 작가님 지금은 부산 출신의 젊은 배우들도 말을 할 때는 억양이나 이런 건 하는데 단어나 전체적인 어감이나 이런 것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글로 써주면 읽기나 그런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한데, 저는 앞으로도 쭉~(웃음) 그것이 우리 감정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말씨는 아마 그런 말투들이 많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글찌「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에서 '사발은 하늘을 담고, 땅을 담고, 아픔을 품고, 바람을 느끼며 … 사람을 보듬고, 삶을 담아 차고 넘쳐 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로 태어'납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이 도자기 하나를 굽더라도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정성스럽게 탄생시켰는지 알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연기나 글에 무엇을 담고 싶으신가요?

최은영 작가님 저는 아무것도 안 담고 싶습니다.(웃음) 이제 글이나 연기는 제가 무엇을 담아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것은 이제 연기가 나왔을 때는 관객들이, 희곡집이 이렇게 나왔을 때는 독자들이 거기에 의미를 담는 것이 맞고, 저는 굳이 제목을 빌자면 사발을 빚어내는 정도이겠죠? 제가 어떤 형태든 제 작품에 목숨을 걸고 영혼을 걸고 그릇을 만들어내면, 의미를 담는 것은, 국수 면발을 담고 싶으신 분은 면발을 담으면 되고, 아이스크림을 담고 싶은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담으면 되고, 그거는 어디까지나 글을 읽고, 연극을 보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저는 되도록 아무것도 안 담고 싶습니다.

글찌「연애의 시대」에 나오는 사랑은 정말로 아이러니합니다. 사랑하지만 용기내지 못하고, 살해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지요. 갑남은 이런 사랑의 형태를 보아왔기 때문에 ‘무엇이 사랑인지 잘 모르겠다.’고 자영에게 이야기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최은영 작가님 사랑이 무엇일까요? 누가 알겠습니까.(웃음) 모르겠어요. 저는 저희 신랑을 사랑하고 우리 아이를 사랑하고 제가 하는 작업이나 식구들을 되게 사랑하고 하기는 하는데, 그것은 아마 음… 신랑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앞으로 연애하시고, 결혼하시겠지만, 연애 처음 만났을 때랑 싸웠을 때랑, 연애가 깊어질 때랑 결혼을 앞두고, 또 신혼 초, 아이를 낳고, 그리고 아직은 겪지 못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 남편과 단 둘이 남았을 때랑, 또 마지막 남은 배우자가 갈 때랑,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 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고 정의한다는 자체가 조금 저한테는 불가능 한 것 같고. 이 「연애시대」. 연애라는 말이 20년대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편국이 개설되고 그러면서 갑자기 생기는 자유연애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정신을 주체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 주체할 수 없는 사랑들이 갑남의 주변에서 일어나게 되고, 갑남이가 자영에게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은 갑남이의 의견도 되겠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아마 전체적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쓸려가는 것 같은? 그리고 우리도 요즘에 뭔가 하나 유행이 되면 너도 나도 의미도 모르고 막 쓸려가는 그런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봉건 사회가 근대로 넘어가면서 굉장히 급변하는 우리나라 역사상 중에 아마 최초의 그런 급변시기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때의 사랑이 던져졌을 때는 아직까지 이성이나 자신의 삶, 환경들이 정립되지 않은 나이의 사람들로써는 자기의 어떤 이성이나 정신을 가다듬고 그 위에, 삶과 시대 위에 서있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갑남이의 얘기는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의 연애라는 감정에 대해서 느끼는 총체적인 느낌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고, 저도 역시 세월은 지났지만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글찌 작품 속 인물들은 남편을 기다리거나, 새로운 시대, 고도 등을 기다립니다. 선생님께서도 무엇인가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최은영 작가님 우리 신랑하고 싸웠을 때, 신랑의 전화를 기다렸지요.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기다림은 다들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기다림이 없으면, 기다림이라는 것은 꼭 어떤 사람이나 시대, 운명, 정의 이런 것을 떠나서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로도, 그게 없으면 인간을 특정 지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직립 보행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라면, 무엇인가를 기다리거나,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자체가 인간이 어쩌면 나도 죽을 때 까지 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 무엇인가 생명이 있는 존재, 생각이 있는 존재라면 당연한 것 같기는 해요. 저도 기다리는 것이 정말로 많지요. 저는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세상을 기다립니다. 사실 이 고도 같은 경우는 2본이 너무나 많아서 우리 배우들이 어느 대본으로 할 건 가요. 이렇게 물어보는데, 첫 번째 대본을 쓸 때는 저는 아마 울면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 절절하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그 단순한 세상이 너무나 그리워서 쓰다가 몇 번 주책스럽게 운 적이 있어요. 그런 것을 좀 기다리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고도 같은 경우는 워낙 원작이 유명한데다가, 원작을 그대로 표현해놓은 연극 같은 것을 보면 대부분 아주 늙은 고고와 디디가 나와서 끊임없이 기다리지요. 아마 그 분위기상 자신이 살아온 그 60년, 70년을 연극하기 이전에 쭉 기다려 왔는데, 연극을 하면서도 쭉 기다리고 있고, 연극이 끝나서 죽어서도 아마 기다릴 것 같은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지금은 20대이니까 군대 간 남자친구가 기다려지는 거고, 그것이 조금 더 확장되거나 변이되거나 하면 다른 것들과 새로 조합이 되어서 기다림이라는 것이 형태만 바뀌는 것이지, 자기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간절해지고, 지나간 시간이 쌓이는 것이 억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만큼 더 쌓여서 그 기다림이 더 커지는 그런 상황이 될 것 같아요.

출처 독서신문i

글찌 사무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선생님께서「고도, 없다!」를 쓰게 되신 계기와, 선생님께서 이 작품에서 특히 강조하시고 싶으신 점이 궁금합니다.

최은영 작가님 저는 극단 바문사 단원인데, 일단 97년도 창단 했구요, 창단할 때 대표님은 제가 아니라 저의 스승님 홍정호 선생님이셨어요. 그 분하고 제가 20대 때 처음 만나서 그 선생님 돌아가시는 해까지 같이 연기를 했지요. 우리 극단에서 가장 많이 했던 작품이 고도였고,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할 때 마다 바꾸었던 작품이 고도였던 것 같아요. 음… 제가 제일 처음에 우리 선생님을 만난 것도 고도 때문이었어요. 제가 처음 연기를 할 당시에 제가 속해있던 팀에서 고도를 원작 그대로 올리고 있었고, 다른 극단에 연출로 있었던 저희 선생님이 거기서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완전히 재해석해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가 총 들고 고도를 오면 쏘겠다. 찾아가보자. 찾아 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서, 그런 전혀 다른, 같은 시기에 공연을 해서 kbs에서 그때 녹화방송을 떴었어요. 두 극단의 고도가 어떻게 다른가. 거기서 다른 극단의 연출 선생님으로 제가 처음 뵀었지요. 그리고 다시 만나서 했던 고도에도 스님이 나오거나, 혹은 임산부가 나오거나 할머니가 나오거나, 한국적이든 어쨌든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서 한국적으로 되게 많이 재해석을 했고, 또 고도의 경우 대본을 읽기가 녹녹치는 않은데, 저한테는 그랬어요. 대본을 한 번 들면 이게 계속 돌고 도는, 쳇바퀴처럼 계속 들어오는 대본이어서 끝이 아니라 끝이 나면 다시 앞으로 가서 다시 읽어야하는, 그래서 계속 읽어야하는 대본 중에 하나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기도하고, 많이 접했고, 제가 제일 처음 한 작품이기도 하고, 우리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이기도하고, 우리 선생님과 가장 많이 한 작품이기도 하고, 저한테 고도는 되게 추억의 작품이지요. 그래서 고도를 하는 것에 있어서 전혀 다른 생각 없이 하겠다. 했었고, 처음 했을 때는 저기 포스터에도 있지만, ‘홍 프로젝트 1탄’으로 해서 프로젝트 공연으로 만들었었어요. 그때 홍이 선생님의 성이고, 우리 선생님이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만들었던 분이라, 그런 의도의 연출력을 키울 수 있는, 연출가를 배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자 해서 처음 시도 되었던 작품인지라, 원작을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테마를 설정해서 나만의 대본으로 만들어보자.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고도 같은 부조리극을 보면, 연극을 좋아하거나 전공으로 한 친구들은 좋아라하는데, 일반관객들이 보면 너무 힘들어해요. 이제 뭐지? 끝나고 가면서 다들 박수도 어정쩡하고, 이게 뭐야. 연극 원래 이래? 이렇게 반응을 하셔서, 이왕이면 쉽게, 사람들에게 쉽게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다가가는 고도를 만들어보자. 그래서 다양한 국가의 특징을 넣고, 언어유희도 쓰고, 또 할머니들 사투리도 쓰고, 등장해서 고도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다양한 볼거리들을 보여주자. 그래서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해요. 이 작품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요. 고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웃음) 제가 이 공연을 할 때 팜플렛에 제발 고도가 누군지 묻지 말아줬으면 한다. 하고 쓰기까지 했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원작은 <고도를 기다리며>이고, 저는 고도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니냐. 너무 단정적인 것 아니냐. 너에게 고도란 뭐냐. 계속 물었어요. 그래서 제발 그 질문을 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작가의 말에 썼던 기억이 나는데, 이 작품을 썼던 당시에는 세상이 어수선 했기에. 고도가 이런 상황이라면, 지금은. 앞에 생략된 말. 지금은. 고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책을 낼 때 책 제목을「고도, 없다!」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글찌 선생님께서는 연기, 기획, 극작, 연출의 분야를 오가며, 현재 극단 <바다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표로도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께서 얼마나 이 장르를 좋아 하시는지 알게 되었는데요. 연극의 매력과 연극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최은영 작가님 음… 그게…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mbc에서도 와서 비슷한 취재를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연극이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생각을 안 해요. 사실은. 그 말은 또 중요하다는 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중요하죠. 사람에 따라서는 사람보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리고 그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연극이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냥 제가 세상에 나서 어… 그나마 재미를 느끼는 놀이 중에 하나인 것이지. 이게 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제가 쓴, 제가 한 모든 작품과 공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연극을 하는 이유는 그것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중요하고, 그런 사람들이 가치롭다. 라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물론 좀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니까 제제가 있기는 한데, 저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근데 만약에 제가 싫어한다면 다른 놀이를 찾았겠지요. 그런데 글쎄요. 우리 선생님 돌아가시면서도 하고 싶어 하신 연극이었고, 저한테도 사명이라는 것이 있고, 제가 해온 활동이 있고, 그 속에서 느끼는 가치나 사상이 지금 저를 만들었으니까. 그것에 대한 부인은 못하겠지요. 연극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팁… 연극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어떤 아이들이 연극을 하고 싶다, 연극을 배우고 싶다. 라고 젊은 친구들이 찾아와요. 그럼 연극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극을 많이 보면 좋겠다. 책으로, 이론으로, 어떤 기술로 이걸 대한다면 예술이 잘 안될 것 같아요. 한 순간의 득도나 자기 나름의 깨침은 도인이 아니어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깨침이 없다면 음… 어떤 예술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무용도 마찬가지이고, 그림도 그렇고, 또 글을 쓰시는 분이니까 잘 아시겠지만, 즐기고 싶다면 전문가가 되지 말고 자기가 그것을 정말로 즐기는 사람. 재미있게 노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을 일이나, 전문적인 식견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인으로 즐기게 되면, 아마 연극이 먼저 그런 사람에게 가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되면 연극과 소통하기가 쉬울 것 같고, 연극이 어떤 예술을 지니는 예술인지도 훨씬 더 잘 알 것 같아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그래요. 극작이나 연출이나 연기자나 할 것 없이 다들, 옆 동네 예술가들도. 여기 창의촌이라 옆 동네 젊은이들이 전부 예술인들인데, 연극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어려운, 그 돈 안 되는, 이런 말들을 누구나 공통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저희는 너무나 돈 되게 잘 살고 있거든요? 안 당해보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을 재려고 하지 말고 좋으면 그냥 빠지는 거? 젊은 친구들은 공부하지 말고 그냥 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수백 편 보게 된다면 어떤 평론가, 연출가 보다 아름다운 연극의 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글찌 저도 사실 연극이나 희곡을 좋아하지만, 연극을 처음 본 것은 대학교 입학해서이거든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그렇게 비싼 값은 아니지만, 영화나 책 등에 비하면 비싼 값이니까 제대로 즐길 줄을 모르더라구요. 그리고 어떤 작품을 보아야하는지도 잘 몰라서. 어떻게 하면 연극을 가까이 접할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알려주세요.

최은영 작가님 제가 아시는 분 중에 한 분이 노총각이신데요. 그냥 연극이 좋았데요. 보통 남자 분들은 연극을 더 잘 안보죠. 그런데 그냥 연극이 좋아서 혼자 연극을 보다가, 동호회를 만들게 되고, 그렇게 해서 단체로 관극을 하다 보니 극작가분과 전화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용기를 내서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되고, 그러나 보니 연극의 속사정을 좀 더 알게 되고, 자기가 마치 연극을 하는, 중심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것은 이제 그 사람의 방식인 것 같아요. 연극은… 영화는 산업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지요. 재정에 있어서 차이나는 부분이 분명히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만화책을 보면서 느끼는 희열. 굉장히 빨리 오잖아요. 그런데 소설을 읽고 나서 느끼는 희열은 굉장히 늦게 오지만 오래가거든요. 그래서 그걸 믿는 분들은 연극을 보시는 것 같아요. 연극은 한 편을 보았는데, 어린 시절 그냥 지나가다가 보았는데 평생 가슴에 남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평생 자신의 자산이 되는 것 같아요. 믿으면 좋은 것 같아요. 연극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중국 도자기 아주 화려하고 예쁜데, 도자기 최고로 치고, 보기를 너무나 원하는데, 그 도자기를 가장 화려하게 만들어내고 가장 잘 만드는 일본인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조선인들이 막 빚어낸 사발이었어요. 사실은 그것이 무늬도 없고, 아주 투박하고, 그냥 지나가면 정말 강아지 밥그릇같이 생겼던 것들이 보면 볼수록 자신의 정신이나 심금을 울리죠. 다시 만들어내는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어쨌든 이것은 예술 활동이라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내가 이것에 대해 믿는 다면 즐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매체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연극협회, 이런 단체에 들어가면 전화번호가 다 있어요. 아무데나 전화를 해서, 용감하니까. 20대니까. 아무데나 전화를 해서, 내가 지금 연극을 하나 보려고 하는데, 당신들의 연극을 한번 추천해주세요. 하고 묻는다면, 거부할 연극인은 단 한명도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작지만 어떤 연극의 소식지 같은 것도 꾸준히 발간되고, 비평지도 나오고, 이런 희곡집도 나오고, 부산연극제나 지역별로 연극제가 많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찾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랑해주시면 좋겠구요. 많이 봐주시면 좋겠구요. 많이 보는게 좋은 것 같아요. 연극 처음 시작했을 때 제가 한 작품을 하루도 안 쉬고 계속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나름대로 매일 매일의 감상평을 썼을 때가 있는데, 그게 저를 키운 아주 큰 거름의 하나인 것 같아요. 자기가 원하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글찌『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라는 희곡집을 통해 독자 분들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 것이 좋을까요?

최은영 작가님 저에게 첫 희곡집인데, 처음에 내고 나면 되게 좋을 줄 알았어요. 광고도 해야 할 것 같고, 책도 팔러 다녀야 할 것 같고. 그랬는데, 사실은 희곡집 내고 나서 너무 부끄러워서, 우리 편집해주신 선생님도 책 한번 보셨어요? 하고 이틀 후엔가 전화가 왔었는데, 못 봤었거든요. 제가 표지만 봤습니다. 했을 정도로, 열어보기가 되게 좀… 부담스럽고 무서웠어요. 저에게. 아까 1번 질문하고도 비슷하기는 한데, 늘 상 현장에서 작업을 하면서 희곡을 쓰다보니까, 배우가 바뀌면 배우에 맞게 다시 언어를 고치고, 장면 바꾸고 다 하는데, 이것은 정해진 하나의 활자로 적었을 때, 이것을 독자 분들이 어떻게 받아드릴까.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까가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저도 이 책을 열어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숨겨놓고, 사람들에게 말도 안하고 그랬었거든요. 이것은 소설이나 시집이 아니기 때문에, 희곡집이라 읽는 분들이 연극을 좋아하는 독자일 수도 있고, 문학으로 희곡을 좋아하시는 독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용언의 기본형으로 생각하시는 게 어떨까. 그냥 하나의 전범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어떨까. 이걸 보고 사발에 많은 것을 담기를 원하는 것처럼, 읽는 분들이, 또 이것을 누군가가 작품을 하게 된다면 작품을 하시는 분들이 다시 자기 나름의 작품으로 바꾸고 색을 입혀주면, 아마 글을 쓴 사람으로써는 제일 좋지 않을까. 그리고 워낙 희곡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면 읽기가 힘든 작품인지라 읽으면서 자기만의 무대, 캐릭터들을 새롭게 만들어가면서 읽으시면, 아마 저랑 읽으시는 분이랑 한자리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글찌 마지막으로 독자(관객) 분들과 글을 쓰는 문청에게 간단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은영 작가님 편견 없이 작품을 자연인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고… 근데 그렇게 편견 없이 보게 되면 의문이 생겨요. 그 의문을 그 글을 쓴 작가, 연출가와 이야기 하듯이 자기를 사색하는 데 사용하면, 아마 희곡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가치가 그대로 독자에게 오롯이 전달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희곡을 쓰는 후배들이 있다면, 술을 사주고 싶어요. 너무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마 써봐서 알겠지만, 저를 버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근데 또 뭐 술술 나갈 때도 있지만, 정말로 지금 당신들이 하는 일이 아름다운 일이고, 멋진 일이고,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희곡으로 표현해나가고 한다면, 나이가 좀 들었을 때, 어떤 자신이 정신적으로 몇 작품을 써내고 나서의 그 성취감은 누구에게도 뺐길 수 없는, 가장 큰 자산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응원하구요. 힘들지만 용기를 내라고, 열심히 쓰시라고, 전화를 하면 꼭 술을 사겠다고, 전화하시라고. 그렇습니다. (웃음)

최은영 작가님고생하셨죠?

글찌아니에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미래의 멋진 작가 글찌님. 멋진 희곡집 기다립니다." 작가님과의 좋은 시간과 함께 좋은 문구도 선물 받은 것 같아 기분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4월에 선생님의 연극이 예정되어있다고하시는데, 꼭 보러 가려구요. 저는 오늘부터 제 사발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야겠어요. 

여러분은 사발에 무엇을 담으실 건가요? 

비어짐을 담은 사발 하나 - 10점
최은영 지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글찌입니다~ 다들 주말동안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 금요일인1월 8일. 저는『씽푸춘, 새벽 4시』의 저자이신 조미형 작가님을 인터뷰하러 다녀왔습니다. 약속장소를 저희 동네에 있는 카페로 정해주신 배려에 더욱 작가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설렘과 기대. 인터뷰는 작가님께서 사주신 커피를 마시며 시작 되었습니다 :) 미소가 아름다우시더라구요~


 첫 소설집이 출간되셨는데, 지인 분들의 반응과 선생님의 기분이 궁금합니다.

조미형 작가님 주변의 분들의 맨 첫 반응은 ‘등단 한지 10년 만에 첫 소설집이 나왔는데 축하한다. 근데 10년 동안 뭐했니. 좀 더 부지런히 써야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들도 하셨구요.

 저는 10년 만에, 사실은 제가 처음 소설 공부를 시작을 할 때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을 했어요. 처음에 수필을 조금 공부하다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우러 다니고 공부를 시작을 했는데, 처음 할 때 주변 선생님들의 말씀이, ‘어렵다’, ‘하기 힘들다’ 이러시길래. ‘그럼 선생님, 저는 주부고, 일도 있고 하니까 한 10년 정도 공부하면 되겠죠?’ 했어요. ‘등단하기까지 10년, 등단하고 나서 뭐 첫 책 내는데 한 10년 하면 되겠죠.’ 이러고 시작을 했어요. 첫 마음에. 근데 정말 말 그대로 10년 공부하고, 등단하고 10년 만에 첫 책이 나왔어요. 다른 주변 선생님들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고 하시지만, 저는 제 목표대로, 계획대로 책이 나왔습니다.

글찌 축하드립니다.

조미형 작가님 고맙습니다. 그래서 많이 뿌듯 하구요. 일단 대충 써내는 것 보다, 하나하나 애정을 가지고 천천히 써서 좀 더 책이 두께감도 있고 무게감도 있고,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에 듭니다.



「다시 바다에 서다」는 광안대교가 보이는 부산, 「씽푸춘, 새벽 4시」의 중국 내륙 소도시 통링, 「스노우 트리」의 일본의 북해도 등, 특히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소설의 배경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 선생님께 가장 인상 깊은 장소가 어딘지, 앞으로 소설 배경으로 가져오고 싶은 장소는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조미형 작가님 일단 첫 번째 직업이 주부잖아요. 가정주부. 집에만 있고 부산, 아니면 울산. 이렇게 경남 지역에서만 생활을 하다보니까 익숙한 공간에서는… 뭔가 새롭다던가. 이걸 쓰고 싶다하는 생각이 잘 안 들더라구요.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요. 그런데 여행을 가거나 다른 낯선 도시에 가면, 그때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가장 최근에는 마닐라를 갔다 왔어요. 마닐라가 요즘 시끄럽죠? 살인사건도 많이 나고, 도박 하러도 많이 가고 여행도 많이 가고. 특히 거기 가서 제가 놀란 게.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데리고, 아기 엄마가 애기 둘을 데리고 ‘얘를 영어 공부시켜야겠다.’. 그래서 어학원을 알아보러 온 엄마를 만났어요. 도대체 영어가 뭐 길래. 범죄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이런 도시에. 얘들을 데리고 영어 학원 공부를 하러 가야하는가. 그래서 그게 굉장히 놀랐어요. 우리 여기 안에서 보는 영어공부에 대한 이야기와, 마닐라에서 직접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굉장히 충격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곳에서 사업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이 많이 차이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쪽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라고 일단 메모만 해뒀어요. 그래서 아마. 그 도시가… 마닐라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클락’ 이라고 옛날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도시가 있거든요. 가장 치안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안전하지는 않구요. 옆에 사람들 다 뒷주머니에 칼을 꼽고 다니더라구요. 주머니에 총을 넣고 다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안전해 보이지는 않고… 그 도시이름을 ‘앙핼’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앙핼. ‘앙핼이 뭐지?’하니까 천사의 도시래요. 참…

글찌 어떻게 보면 재미있네요.

조미형 작가님 재미있는 도시 이름이 더라구요. 이렇게 범죄가 판치고, 근데 잘 사는 사람들은 정말 잘 살아요. 그 도시와 도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 하나만 건너면 빈민촌이고, 부촌이에요. 거기 앙핼에도 가면. 날씨가 따뜻하니까 365일 그냥 거적때기 하나만 덮고 생활하고, 낮에는 올라와서 심부를 하고 이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강을 따라서 쭉 있는 거 에요. 판자촌이. 그래서 ‘아. 이 도시도 사람들이 사는 매력적인 도시다. 아 여기를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한 번 더 가야할 것 같아요. (웃음)

글찌 다음 작품에서 그 장소를 만나 볼 수 있겠네요.

조미형 작가님 그렇죠.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스노우 트리」에서 형 대신 ‘나’에게 한 영비의 키스가 특히 그랬지요. 이야기가 재미도 있었지만, 선생님만의 문체로 인물과 상황을 잘 묘사해주셔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제목과 첫 문장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제목과 첫 문장을 쓰실 때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저에게는 특히 「씽푸춘, 새벽 4시」의 첫 부분이 색다르게 다가 왔습니다.

조미형 작가님 첫 문장을 저는 짧게 쓰려고 노력을 합니다. 일단 읽을 때 제가 재미있어야 하니까. 제가 재미있어야 독자도 재미있겠죠? 재미없는 소설은 제 개인적으로 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어서. 서사가 재미있게 진행이 되어야한다고 생각을 하고, 첫 시작을 뭔가 호기심 있고, 궁금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을 많이 고민하고 씁니다.제목도 마찬가지로 주제 이런 걸 떠나서 재미있는 제목에 더 치중을 하고 정하는 편입니다. 「씽푸춘, 새벽 4시」같은 경우는 작품 속에서도 나왔지만, 통링에서 생활을 좀 했어요. 그래서… 정말 맛있습니다. 가면. 맥주도 맛있고, 종류대로 꼬치도 맛있고… 근데 사실은 예전 우리나라 백열전등이 그 거리 전체에 이렇게 전등을 천장에 달아났어요. 노천에, 전봇대 사이사이에 밤에만 걸죠. 새벽되면 걷어서 가고. 거기에 새벽까지 앉아서 맥주를 마셨는데, 그 불빛이나 숯불이나 꼬치구이나, 마주 앉아서 먹는 사람이나. 정말 행복해요. 그 시간은 사실은 돌아서고 나면… 정말 쓸쓸한 도시죠? 여기를 떠나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죠. 퇴근하면 중년의 사내들이 술을 한잔 하면서, 요즘 20대도 치맥을 하면서 돈이 없어서 한 마리 시켜서 여러 명이서 소맥을 먹잖아요? 그 시간은 행복하죠. 그런데 돌아서고 나면, 텅 빈 거리를 걸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잖아요. 그 시간이 정말 쓸쓸하고, 견디기 힘들게 고독하고, 마음이 아픈 시간이잖아요. 다들. 이 「씽푸춘, 새벽 4시」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어요. 새벽 4시는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 보구요. 잠을 자야하는 시간인데 깨어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또 그 시간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데, 아침이 희망일 수도 있고, 어제와 반복되는 고단한 시간일 수 도 있잖아요. 그리고 행복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행복하지도 않은 그 허상이죠. 그 순간을 단순히 넘어가려고 하는. 많은 의미가 있어서 「씽푸춘, 새벽 4시」는 이렇게 정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무거운 작품이지요.



다른 인물들과 달리 「다시 바다에 서다」속 신제민은 자신의 목표를 알고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작품집을 다 읽은 후에는 신제민이란 캐릭터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는데요, 선생님께서 가장 애정하시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조미형 작가님 전체 작품에서 저는 좀 안타깝지만, 애정을 가진 인물이 「우리끼리 안녕」에 나오는 젊은 청춘 3명이구요. 사실은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이. 이전에, 저의 이야기도 깔리긴 했지만… 사실은 정말 이것과 비슷한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애들이. 고등학생들이 장례식장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친구가 죽어서. 얼마 전에도 작은 아들 친구가 뺑소니 사고를 당해서, 페이스 북을 하고 있는데 ‘엄마 친구가 죽었데.’ 이러는 거예요. ‘왜?’ 이랬더니 뺑소니 사고래. 그러면서 애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우르르 장례식장에 가는 거예요. 이 작품 속에 애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실은 둘 다 죽었어요. 어느 날 학생이 오더니만 ‘선생님 저 장례식장 가야해요. 친구가 죽었어요.’… 정말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새벽에, 특히 여름에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요. 미친 듯이 달려가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각의 아픔들이 다 있어요. 근데 각각의 아픔들이 있는데, 나중에 맨 마지막에 걔들이 하는 말은 ‘누가 내 이야기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저도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냥 친구들과 똑같이 어울려서, 저 생활을 하고 싶어요.’ 하는 말들을 해요. 맨 마지막에… 그래서 어른들이 학교에서도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애들 이야기를. 그래서 가장 애정이 갑니다.

앞의 질문과 비슷한 것 같지만… 처음에는 주인공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 두목과 팀장, 기수도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요. 우리와 가장 닮아 있는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조미형 작가님 가장 현실적으로 닮은 인물은「씽푸춘, 새벽 4시」의 ‘나’로 나오는 주인공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쓴 게 10년 전인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썩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지금도 대학이 취업을 목적으로 가잖아요. 근데 대학은 대학 자체로도 학문을 하는 공간이 아니고, 학생을 돈으로 보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학생 한사람 당 얼마. 또 취업을 하고나면, 다 포기하고 취업에만. 그런데 결론적으로 보면 그게 다 돈을 따라 움직이는 거죠. 돈. 그래서 애들이랑, 학생들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선생님. 10억을 받고 감옥에 4년 있다가 나와요. 저한테 1억만 주면 저도 10년 정도 충분히 감옥에 있다가 올 수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우리의 꿈이, 그냥 맨 앞에 돈. 돈이 있는 것 같아요. ‘돈을 잡으면 모든 행복과 성공,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이번에도 학생들이 원서를 쓰면서 ‘선생님 다 필요 없구요. 연봉이 가장 많이 주는 학과가 무슨 과에요?’ 이렇게 질문을 하더라구요. ‘그럴러면, 경영학과를 가서, 주식투자를 한다던가, 펀드 쪽의 일을 해야겠지.’, ‘그럼 저는 그 과를 가겠어요.’ 꿈이 없고 그냥 연봉, 돈을 쫒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행복은 찾아온다고 이야기를 해요. 근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제가 보기에. 근데 이 주인공도 마찬가지겠죠. ‘성공을 하면, 내가 무엇인가를 해주면, 아내도 행복하고, 내가 어떤 부를 이루게 되면 다 행복할 거야’.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그게 아니고, 오늘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차를 마시는 게 행복이에요. 그 다음에, 우리아이가 건강하고, 집을 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그 사람들과 만나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그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쌓이면 ‘정말 괜찮은 삶을 살았다. 돈을 떠나서.’… 돈이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거니까. 목표를 거기에 두지는 말라고 제가 그 학생에게 이야기를 해줬어요. 근데 귀에 안 들어가는 거예요. ‘선생님 저는 졸업하자마자 기본 1억을 받아야겠어요. 그게 제 목표에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씽푸춘, 새벽 4시」에 나오는 인물이 현실과 닮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가장 안타깝기도 합니다. 또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안타깝구요.



책의 표지에도 소개되어 있듯이, 『씽푸춘, 새벽 4시』 속 주현도의 행복은 ‘퇴근길에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숯불에 손 쬐면서 맥주 한 잔에 꼬치 안주’를 먹는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큰 행복이어서 따뜻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정의하신 행복도 주현도와 같은 것인가요?

조미형 작가님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현재에 가장 충실하게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을 해요. 돈은 있다가도 없고, 물론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있다가 없고, 떠나가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생활하는 게,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멀리 있는 것을 쫒지 말고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해라. 멀리 있는 것을 쫒다가 눈앞에 있는 것을 놓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소설집을 보면 ‘가족’의 의미가 크게 다가옵니다. 온전해보이지는 않지만 다들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지요. 선생님께 가족이란 어떤 의미 인가요?

조미형 작가님 저에게 가족은 가장 큰 힘이 되기도 하고, 가장 힘들게 하기도 하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근데 힘들게 하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선택한 가족이고, 물론 부모님은 제가 선택한건 아니지만,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요. 근데 요즘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해체된 가족, 돈을 거래하는 가족, 효도 계약서를 써야한다. 아들만 둘 있으면 효도를 못 받는다. 엄청 이상한 말들이 많지요… 그래서 우리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가족이, 가족이 아니게 되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에 보상심리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너에게 뭘 해줬으니까, 넌 나한테 뭘 해줘야해.’ 부모님은 자식에게 ‘내가 널 키울 때 뭘 해줬으니까. 너도 나한테 뭘 해줘야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안 살려고 노력을 했어요. 우리 애들에게도 ‘너는 너의 인생’. 근데 사실 애들이 고집이 세요. 유치원 가방을 처음 했을 때부터 둘 다 자기 고집을 세우더 라구요. 제 말을 안 들어요. ‘어… 좀 특이하다. 너네.’ 준비한 것을 이야기해주면 선택을 해요. 걔들이. 지금도 각자의 삶을 살아요. 각자 통장관리하고, 각자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여행 스케줄을 잡아서 후루룩 여행을 떠나고, 저에게는 이야기만 하죠. ‘어디 갈 거야.’ ‘응 알았어. 갔다 와.’ 이번에도 일본 다녀왔거든요. 작은 애가 고등학교 이제 1학년인데… 그래서. 가족은… 음… 힘들 때나 좋을 때나 항상 옆에 있잖아요. 가장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맞아요. 그리고 힘들 때 손잡기 제일 편하잖아요. 또 손을 잡아 주는 게 가족이고. 근데 가끔 방해꾼 역할도 하지요. 글을 써야하는데, 뭘 해달라고 한다던가. 마감이 와서 글을 쓰고 있는데 ‘엄마! 아파. 병원을 가야 해.’ 이러면 이거 다 덮어놓고 급한 것부터 처리해야하니까. 애를 데리고 병원을 먼저 가야하지요. 그럴 경우 조금 짜증이 나긴 하는데…(웃음) 어째든, 그런 부분은 생각해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고, 가장 힘이 되고 울타리가 되는 것이 가족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 속에도 많이 나오는데, 가족이 가장 단단하고 튼튼해야만… 제 생각은 그래요. 가장 작은, 기본적인 단위가 가족이잖아요. 사회구성원 중에서. 온전하고 따뜻하고 단단할 때, 사회도 온전하고 튼튼하고 힘이 있는 사회가 된다고 저는 믿어요. 그래서 가족 간의 붕괴가 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그래서 가족이 반듯한 가족이 되면, 우리 사회도 좀 더 반듯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믿어요.

글찌 생각보다 가족의 의미가 더 크네요.

우리끼리 안녕」에서 시연이는 가출 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시연이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결국은‘나’에게 전화를 한 시연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조미형 작가님 복잡한 마음이지요. 시연은 이제 학교에서 나왔으니까. 친구들로부터 그런 놀림을 당하니까. 제가 본 케이스는 두 가지예요. 너무나 당당하게 이 이야기를 해요. 애가. ‘나 너의 아이를 임신했어. 그러니까 너가 책임을 져야해.’ 그런데 남자 쪽 입장에서는 학생이고, 서로 사고를 친 거니까 ‘인정을 못하겠다. 너의 임신한 애가 우리 집 애의 아이인 지도 모르겠다.' 라고 남자 쪽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확인 못하겠다. 일단 애를 낳아봐라. 낳고 유전자 검사를 하든지 말든지.’ 낙태하란 말은 못하겠고… 애도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요. ‘당당하게 난 낳을 거야.’ ‘응. 니가 책임져.’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구요.

한쪽은… 남자 쪽은 너무 당당하게 ‘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다른 애랑도 사귀는데 왜 너만 임신을 하니?’ 고등학생인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나쁘죠. 그러면서 얘를 버리는 거예요. 본 척도 안하고, 다른 애와 데이트를 하고 다녀요. 옆에서 보고 정말 ‘나쁘다. 쟤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되면 이제 시연이처럼 되지요. 얘 혼자 왕따가 되고, 얘 혼자, 나쁜 여자가 되는 거예요. 남자 발목 잡으려고 자기가 임신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왕따가 되고, 끝내 학교를 못 다니게 되지요. 이제 이 아이는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자기 삶을 살 것인지, 애를 낳을 것인지. 애기를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병원을 갈 것인지. 나아서 입양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하잖아요. 시연이는 이 공간을 떠나서, 원래 있던 공간을 떠나서 그런 고민을 하는 거죠. ‘애기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다시 시작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할 때, 현실에서는 뻥! 차버렸지만, …소설 속에 인물은 착하잖아요. 그냥 사고가 아니라 사랑한 거니까. 그래서 연락이 오는 거니까. 시연은 ‘아. 한번 살아봐야겠다. 이것도 내 인생이고, 내 삶에 다가 온 것이니까. 한 번 살아봐야겠다.’ 하고 전화를 한 것이죠. 그런데 이 사회가 그런 선택을 한 미혼모들 있잖아요. 많은 갈등을 하잖아요. 많은 갈등을 하다가 맨 마지막에 ‘아이를 선택을 했어요. 이 아이를 키워보겠어요.’ 안 그래도 애기들이 안 태어나서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어린 아이들 있잖아. 따뜻하게 보고, 좀 제도적으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가장 최근에 쓰셨다는「연지연 꽃이 피면」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어서 전문적인 지식도 많이 필요했을 것 같구요.

조미형 작가님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아라가야 지역이 함안이잖아요. 함안에서 그때 ‘백 년 만에 개화된, 꽃이 핀 연꽃!’ 이래가지고 신문에 크게 난 적이 있었어요. 그걸 스크랩을 해둔 적이 있어가지고, 그 때 마침 공모전도 있었지요. 이걸로 한 번 써봐야겠다. 해서 썼어요. 넣는데 떨어졌지만…(웃음)

사실은 제 본관이 함안입니다. 함안 조씨거든요. 아버지께서 또 유난히 함안 본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계셨어요. ‘본관이 함안이야. 우리는 양반이야.’ 양반이 없어진 시대가 언제인데. 저는 그래서 ‘한번 써봐야겠다. 연꽃이 어떻게 씨앗이 백년 만에 싹이 날 수가 있지?’ 이러면서 시작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다 쓰고 나서, 저는 ‘이제 두 번 다시 이런 소설을 쓰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을 했구요. 왜냐면 정말 어렵더라구요. 그리고 가야시대 자료가 정말 없었어요. 제가 가야시대 문헌, 그 다음에 발표된 박물관 자료. 함안 군청 홈페이지 올려져있는 자료를 프린트 해가지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일단 그 시대 자료가 정말 부족해요. 뭐 의복이라든지, 특히 관등성명 이런 게 거의 없더라구요. 그래서 더 쓰기가 어려웠어요. 정말 전문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 이런 거 구해서 읽었는데 머리 터지는 것 같았어요. 한 10권정도 읽었는데… 아, 도저히 안 되겠다. 다음에는 쓰면 안 되겠다. (웃음)

글찌 그래도 힘들게 쓰신 만큼 보람은 있으실 것 같아요.

조미형 작가님 마음은 뿌듯했어요. ‘이런 장르도 한 번 써 봤구나.’ 그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 인물은… 음… 실존인물 모티브를 그대로 가지고 왔어요. 마지막 함안군청 홈페이지에서 프린트를 한 자료 중에, 이 장면이 있더라구요. 이 전투가 그대로 있었어요. 그 전투에서 역사기록에 의하면 ‘이름은 없는 그냥 장군이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게 한 줄이 딱 있더라구요. 그 한 줄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이 작품을 썼죠. ‘무휘’라는 인물을 만들었지요. 동네이름, 우물, 등 그대로 살려서 쓴 겁니다.

선생님께서 『씽푸춘, 새벽 4시』이라는 소설집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조미형 작가님 따로따로 보면 일곱 편의 작품이 나이 때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고, 다 다르죠? 다른데 저는 크게 보기를 ‘상실’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다 무엇인가를 원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얻지는 못하지요. 그러면 누군가는 그걸 포기를 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한테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제가 느려요. 배우는 게. 배우는 게 좀 느려요. 왜냐면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것도 해봤다가, 저것도 해봤다가 이러니까. 좀 늦는데, 다들 무엇인가를 원하는데 그걸 빨리 잡는 사람도 있고, 그걸 끝내 못 잡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소설을 쓰겠다고 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근데 그렇다고 해서, 자기 삶을 포기하지는 말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가장 큰 것은 그거죠. 이런 삶도 있어. 다들 힘들어해. 다들 힘들어하니까 너만 힘든 것이 아니야. 사실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는 않아요. 각각의 상처가 다르니까. 입장도 다르구요. 또 상실을 느끼는 아픔의 강도도 다르니까. 위로가 되지는 않지만, 이런 삶도 있어. 그렇다고 너의 삶이 힘들지만, 포기하지는 마. 되돌아보면, 너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을거야. 그 행복했던 순간을 아주 작지만, 그것을 잡아서, 그걸 에너지로 삼아서 너는 또 다른 삶을 살수도 있어. 움직여봐.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나비를 보다」에 나오는 인물처럼 움직여 보라는 거예요. 이 공간이 마음에 안 들면, 이 삶이 마음에 안 들면, 일단 본인이 움직여야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고 보이잖아요. 움직여보라고 이야기를 해요. 아프다고 말만 하지 말고, 내가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말을 했으면 행동으로 옮겨봐. 한발자국이라고 옆으로 떼면, 뭔가 다른 게 눈에 보일거야.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프고 힘들지만, 조그만 더 힘을 내서 움직여봐. 그러면 아주 작은 행복이지만 그게 눈에 보이고, 잡을 수 있을 거야. 당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과 글을 쓰는 문청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미형 작가님 제가 싫어하는 게 무엇이냐면, 충고 하는 것. 남에게 충고하는 것도 싫어하고, 충고 받는 것도 싫어해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구요. 무슨 일을 하면 그건 잘못됐어. 이렇게 저렇게 해. 어른들도 마찬가지고, 또래도 마찬가지고, 10대 애들도 어른들에게 마찬가지고, 누구나 충고하고 지적하는 거에 정말 잘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비난 하지 말고 비판할 때 앞에 근거를 좀 이야기 해주면, 상처를 좀 덜 받겠지. 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런 말을 잘 안 해요. 누군가에게. 어떻게 살아라. 뭘 해라. 그런 말 정말 싫어하고, 음…별로 하고 싶지도 않아요. 각각 다 똑똑한 사람들이잖아요. 각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말은 필요 없고, 독자 분들께, 그냥 제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고 나서 재미없었다고 해도 섭섭하지는 않구요. 각자의 취향이 있는거니까.

그리고 글을 쓰는 문청들에게는…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고, 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등단하기까지 10년을, 등단하고 나서 첫 책을 내기까지 10년을 잡아서 천천히 움직였어요. 천천히 움직이면 옆에서 많이 지적을 합니다. ‘왜 그래. 빨리 움직여. 그러다가 세월 다가.’ 그 말 듣지 말고, 그냥 자기 페이스대로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수영과 비슷하다고 말을 했는데, 수영 할 때 자기 페이스를 지키지 않으면, 초반에 확 나갔다가 후반에 힘들어지죠. 그러면 그 물을 다 먹게 되요. 헉헉 거리고, 그럼 물속으로 가라앉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기 페이스를 지켜서, 천천히 가는 사람이 있고, 빨리 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걸 하면 중간에 포기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페이스대로 가면, 포기 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빠른 사람이면 빨리 가고, 난 조금 느려. 하면 목표를 멀리 잡고, 천천히 한발자국씩 가는 거예요. 한발자국씩. 주변 이야기 들으면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리고…(웃음) 천천히 가다보면, 언젠가 자기 앞에 자기가 목표한 것이 딱 형체를 드러내고 있을 테니까. 그때 잡으면 된다고…

글찌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조미형 작가님 아닙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저도 고맙습니다.  




인터뷰는 작가님의 배려로 편안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주신다며 세심하게 신경써주셨지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라는 저에게 글은 꾸준히 쓰면 된다고 응원과 함께 악수도 먼저 해주셨어요. 작가님은 우아하시고 여성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관심도 많으신 분이신 것 같았습니다. 다음 작품은 동화집이 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씽푸춘, 새벽 4시 - 10점
조미형 지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지난 8월 21일, 산지니 출판사가 있는 거제동의 한 카페에서 유연희 작가를 만났습니다. 오전 내내 무섭게 쏟아지던 비는 그녀를 반기기라도 하듯 금세 멎어들었지요. 마도로스와 결혼하는 것이 소싯적의 꿈이었다며 웃는 유연희 작가의 모습은 비 개인 하늘처럼 청정했습니다.

 


 

 

 

  첫 소설집 『무저갱』 이후 4년 만에, 유연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날짜변경선』이 출간되었습니다. 『날짜변경선』에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지요. 지구 표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 인류의 삶에는 언제나 바다가 함께 해왔습니다. 오랜 기간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기원으로서 존재해왔지요. 더구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역사는 바다로 대변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의 가치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연희 작가는 『날짜변경선』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바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책의 표제인 ‘날짜변경선’은 태평양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그어진 가상의 선입니다. 이 선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날짜가 달라지지요. 그러니 이곳의 날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모호한 시간의 경계에 있는 셈입니다. 『날짜변경선』속의 인물들은 모두 이 날짜변경선 위에 놓인 듯 한 사람들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인물들은 바다에서의 체험을 통해, 날짜변경선을 넘어가듯 새로운 날을 맞이하지요. 유연희 작가는 자신 또한 아직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항해에는 언제나 ‘소설’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 덧붙였지요.

 

 

 

 

소설집이 출간되었으니 ‘이제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딸과 터키여행을 다녀왔어요. 딸이 올해 서른 살이라, 결혼을 하기 전에 함께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시집을 가고나면 모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사실 딸에게 아직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핑계를 대고서라도 딸과 여행을 가고 싶었던 거죠.

 

 

이전 소설집인 『무저갱』도 그렇고, 이번 『날짜변경선』도 ‘해양 소설집’입니다. <유령작가>와 <신갈나무 뒤로>를 제외하면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요. 선생님에게 바다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저는 바다가 있었기에 제 인생이 구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결핍이라거나, 내가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삶의 짐 같은 것들이 바다로 인해 구원 받는 느낌? 사실 저에게 바다란 어떠한 것인지를 정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어요. 인생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제 스스로가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해요. 더군다나 제 체구가 많이 왜소한 편이잖아요(웃음). 그런데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런 것들을 위로 받을 수 있어요. 사람에게는 받을 수 없는, 바다만이 줄 수 있는 위로? 바다는 저에게 그런 공간이에요. 큰 힘이 되어주는 곳.

 

 

해양 소설집이 아닌 소설집을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글쎄요. 일반적으로 소설집 한 권 당 단편소설이 8편 정도 실리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중 몇 편 이상은 해양소설을 실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해양과 문학』이라는 잡지의 편집 일도 하고 있다 보니, 잡지에 실릴 해양 소설들도 꾸준히 써야 하거든요.

 

 

 

 

동명의 시집(이택수/나이테미디어)과 청소년 소설(전삼혜/문학동네), 심지어는 연극(김태수 극본)까지 있는데, 굳이 ‘날짜변경선’을 표제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정말요? 동명의 작품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중 누구나 알만한 대히트 작품은 없었으니 괜찮지 않나요? 저는 정말 유명한 히트작이 그 제목을 고유명사처럼 만들지 않은 이상은 얼마든지 동명의 작품들이 발표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집이 그런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저는 부족한 점이 많아서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그리고 사실 ‘날짜변경선’이 표제가 된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책 날개 귀퉁이에 ‘표지 이미지: 강석철’이라고 적혀 있죠? 제 아들 이름이에요. 아들이 시각디자인과 출신이거든요. 『날짜변경선』의 표지는 아들이 대학생 시절에 만든 디자인이에요. 꼭 아들의 디자인을 표지로 쓰고 싶은데, 여기에 어울릴 만한 제목이 ‘날짜변경선’ 밖에 없었어요. ‘어디선가 새들은’이나 ‘붉은 용골’같은 건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

 

 

책 디자인에 맞춰서 선택된 표제였군요. 저는 수록된 작품들 중 「날짜변경선」이 가장 표제작에 걸맞다고 생각했는데…. 「날짜변경선」의 주인공 선의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바다로 내려가잖아요. 그 장면이 작품집의 전체 정서를 대변하는 장면이라 생각했거든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저는「날짜변경선」보다 「어디선가 새들은」이라거나 「바다보다 깊은」에 더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날짜변경선」은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직접 배를 타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때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에 비해 쉽게 쓰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B급 소설’이라고 하면 될까요.

아, 제가 말하는 B급은 결코 나쁜 의미가 젆니에요. 가수 싸이가 스스로를 B급 가수라고 칭했잖아요. 그 말처럼 싸이의 음악은 싼티나고 저렴해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대중적이에요. 「날짜변경선」도 그래요. 쉽게 쓰였지만, 독자와 소통하기 편한 작품. 문학성이 높은 작품을 A급이라고 본다면, 일반적으로 A급 작품들은 독자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게다가 오늘날에는 대중의 관심이 문학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B급 문학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날짜변경선』이라는 작품집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딱히 작품집 전체에 담아내고자 했던 교훈이나 메시지 같은 건 없어요. 각각의 단편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다른데, 그것들을 굳이 하나로 묶어서 정의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바다에 관한 소설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국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굉장히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비해 해양소설이 굉장히 적어요. 그런데다 우리나라의 해양문학회에서는 ‘배를 타본 경험을 기반으로 현장성이 잘 드러나게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리얼리즘이 없으면 그건 해양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 저는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성이 크다 하더라도, 바다의 존재감과 가치가 잘 드러나 있다면 해양문학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이번 작품집을 통해 말하고 싶었죠. 물론 저도 직접 배를 타보았고, 소설을 쓸 때 그 경험을 참고해서 쓰고 있지만요(웃음). 그런 제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시커호」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시커호」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 ‘정’이 수압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발버둥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그 부분은 좀 더 공들여 쓰고 싶었던 부분인데. 바닷물이 정말 투명하잖아요. 그런데도 심해로 내려갈수록 아주 어둡고 캄캄해지죠. 그걸 ‘투명이 한 없이 쌓여 어둠이 된다’고 표현한 것이거든요. 투명이 점차 모여들어 주위가 어두워지고 수압도 점점 높아져 ‘정’을 압박해오는 장면을 더 몽환적이고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죠.

 

 

 

 

 

해양소설은 아니었지만, 표절 작가에 대한 이야기인「유령작가」도 좋았어요. 얼마 전 한 유명 소설가의 표절 사건으로 인해 문학계가 들썩인 적이 있었잖아요.

 

-사실 그건 운 좋게 요즘 시의와 맞아 떨어진 거예요.「유령작가」는 15년 전쯤에 썼던 작품이거든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에요. 대부분은 10년이 넘은 작품들이죠. 그래도 그 중 가장 최신작이라 할 만한 게 「어디선가 새들은」이에요.

 

 

10여 년 전 소설이라기엔 전혀 촌스럽지 않은데요? 「유령작가」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작중 주인공이 소설가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잖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소설가란 어떤 모습인가요?

 

-소설가는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나’라는 존재는 사실 타인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죠? ‘진짜 나’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소설가는 ‘진짜 나’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에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탐색하고 고찰하면서 그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거예요. 하지만 주변의 것들은 그대로 멈춰있지 않아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죠. 그 변화를 감지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 또한 변화해가는 것이야 말로 소설가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이 너무 어려웠나요?(웃음)

 

 

작가의 말 중에서 “그닥 길지 않은 시간 후에 세 번째 소설집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린다”는 부분이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계획된 건 없어요. 쓰고 있는 단편들이 있기는 한데…….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할 것 같네요(웃음). 저희 세대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일을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굉장히 빨리 빨리 작품을 발표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요즘 트렌드에 맞춰 활발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의 말을 저렇게 적은 거죠.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작품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면서, 해양소설이라는 장르의 발전과 더불어 이 책을 읽게 될 독자 분들이 바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해양 관련 종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기대 같은 게 있었어요.『날짜변경선』을 통해 독자 분들이 조금이라도 바다와 친해질 수 있었으면, 바다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직접 배를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주신다면 더 좋겠지요. ‘누가 나 배 좀 태워줬으면 좋겠다!’하고요.

 

 

 

 


 

 

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정난주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7월 16일 목요일에 있었던, 『다시 시작하는 끝』의 조갑상 작가님 인터뷰를 가지고 왔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의 작가님을 만나 뵙고 온다니 정말 신기하고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저와 함께 그 두근두근한 현장으로 가보실까요.

인터뷰가 진행된 경성대학교 인문관. 오후 두시 작가님의 연구실로 찾아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첫 소설집을 재출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재출간의 감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발표했던 단편 27편 중에 17편을 선정해서 첫 작품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산지니에서 재출간을 할 때 그중에 한편을 빼고 ‘방화’를 넣어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방화’를 독자분들과 함께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에서, 또 지난 작품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6월에 발매가 되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언젠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산지니에서 재출간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 후에 편집자분들이 1990년에 나온 세계일보사 판을 도서관에서 빌려 일일이 컴퓨터로 입력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원본이 원고지 형태라 문서 파일이 없었기에 그런 작업까지 하느라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렸습니다.

또 제목이 '다시 시작하는 끝'이라니, 책의 제목이 자기 운명을 결정한 것인지 묘하게 상황과 맞아떨어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부산에 정착하게 되셨는지, 부산이 작품의 배경으로도 등장할 정도로, 부산에 이렇게나 큰 애착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버지 고향이 의령이셨고, 그 뒤에 마산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부산이라는 도시는 유년기를 보내고, 성장하고, 직장생활도 한 곳입니다.

그래서 의식은 하지 않지만, 부산이 작품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소재에 따라서 특정한 배경을 선택할 수 있지만 대개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 도시, 장소가 저절로 작품의 배경이 되니까요. 부산이 작품적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특별히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동생의 3년」,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 「방화」, 「바다로 가는 시간」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조금 우유부단한 면도 보이고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고 살아갑니다. 특별한 인물보다 보통 혹은 보통보다 더 나약한 인물을 이야기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의도는 없지만, 소설은 한 편 한 편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쓸 때는 그런 걸 생각하지는 않지만, 뒤에 읽어보니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이런 인물이 나온 이유는 강하고 단단한 인물보다는 평범하면서도 나약한, ‘소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로 지난 1960~1980년대의 세상살이를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취향의 문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이런 모습에는 작가님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니까. 어떤 모습의 흔적, 글의 소재, 변형되고 허구화된 주인공 모두 작가의 여러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많이 이입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작품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 속에서 저의 모습을 많이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바다로 가는 시간」에서는 퇴직한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를 연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감정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셨다고 느꼈는데요. 그런 서술의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놔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보다 작가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감정을 많이 이입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 소설집에는 불안 증세를 보이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에서 '남편'은 특히 그 문제가 심각한데요. 남편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내는 남편이 시가 안 써져서, 혹은 승진 때문에 등의 이유로 남편의 불안을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끝내 남편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힌트를 줍니다. 이 소설에서의 힌트는 남편이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 중에 있습니다. 광주 비행장을 필리핀 기술자들이 와서 닦았다, 하는 이야기.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고 난 후의 광주의 모습,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남편은 괴로움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 소설을 읽으면 그 당시를 사진으로 찍어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처럼 최근의 사회상을 나타낼 수 있는 사건이 작가님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거로 이야기하자면, 지금은 선거가 완전히 달라져서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 작품 속 그때와 같은 장면 볼 수는 없지요. 예전의 유세장은 폭력이 존재하고, 격동적이었던 반면 요즘은 별스럽지 않죠. 그 고요함이 뭔가 다 완벽한 것 같지만 사실 허술하고.

이것은 비단 유세장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메르스 사태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대처를 못 해 많은 사람이 불안에 떨기도 하고. 그런 것도 어찌 보면 하창기 씨가 겪은 그런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습만 달리한 폭력에 여전히 어수선하고,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폭력적인 모습은 여전히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텍스트의 영향을 받아오셨을 텐데 특히 어떤 작가, 작품의 영향을 받으셨나요?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며 습작 시절을 보냈는데 그중 토마스 만, 헤세, 포크너, 도스토옙스키가 기억나네요. 현대작품은 김동리, 염상섭, 이청준의 작품도 즐겨 읽었습니다.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계시면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시는데, 방학 기간인 학생들에게 개강 전에 이 책은 꼭 읽어 봐라, 하시는있으신가요?

누가 추천하니 읽어라, 가 아니라 어쨌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읽든 에세이를 읽든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자신이 스스로 찾아서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독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현대소설강독 시간에 읽어야 하니까 읽는 교과서적인 책 읽기보다는 자신이 관심 가는 작품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방학 동안 열흘 정도 파묻혀 전집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가님의 연구실에 있는 난에 꽃이 피었다고 하셨습니다. 난에 꽃 피기 쉽지 않은데,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네, 우선 저부터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기 중에는 학생분들을 매일 만난다 할 정도로 20대와의 접촉(?)이 많은 환경에 계시는 작가님께 더욱 여쭤보고 싶은데요,

아, 그러고 보니 제 소설에는 20대 주인공이 별로 없군요. 병들의 공화국 빼고는. 다 어른들이 나오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닌 그런 애매한 존재인 20대들을 위한 메시지가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TV 프로그램이나 강연 등을 보면 유행이 됐다 싶을 정도인데요. 작가님은 그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별로 탐탁지는 않은데요. 청춘은 원래 괴로운 존재이어 왔는데 그게 요즘 화제의 대상이 되어서 유독 그런 것 같습니다. 세대라는 것은 늘 있어 왔고 반복되며 누구나 20대를 통과하는데, 그것을 지나온 기성세대들이 위로해주는 척. 단순히 흐름, 조류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몇 년 전부터 유독 그 호들갑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듯이, 20대라는 세대가 많은 고민과 불안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찬란한 젊음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그런 입장에서 그들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어쨌든 삶이라는 게 마냥 무난하고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는 것, 힘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좀 더 잘까? 아니면 바로 일어날까?’하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갈등부터 큰 갈등까지 매일 겪으면서 삽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산다는 것은 갈등의 연속이고 마냥 편안한 것이 아니니,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 시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자신의 쪽으로 당겨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여러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20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대나 20대는 힘들어 왔으니, 그 시기를 지나온 20대 선배로서, 본질적으로 답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독자분들은 어디서 작가님을 만날 뵐 수 있나요?

7월 27일 월요일 저녁 7시에 자유바다소극장에서 작가회의에서 진행하는 ‘문학 톡톡’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때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겠네요.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한 안내를 볼 수 있습니다.

(부산 작가회의 홈페이지 : http://www.busanwriters.co.kr/)

 

 

인터뷰가 끝나고 저는 작가님의 싸인도 받았습니다. 히히. 이렇게나 장문의 글을 남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조갑상 작가님은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두서없는 질문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친절히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저의 조갑상 작가님과의 만남이 부러우신 분들은 다가오는 27일 월요일 저녁 7시에 자유바다소극장에서 작가님을 찾아 뵙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요!

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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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 자유바다소극장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돌아온 초코라떼 mj입니다^^ (첫 서평을 올린 이후 친구들은 제 닉네임을 보고 줄여서 '초라'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ㅎㅎ 닉네임이 유치하게 그게 뭐냐며.. 초라하다며.. 하지만 추운 겨울날 따뜻하고 달달한 초코라떼처럼 여러분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주실꺼라 믿습니다!!)

이전에 『고도경보』 서평을 올린 이후 하루라도 빨리 작가인터뷰도 올리고 싶었는데 다른 업무들을 보느라 이제서야 올리게됬네요.

하지만 작가인터뷰를 조금 늦게 올리는 만큼 더~욱 알찬 인터뷰 내용들로 가득가득 채워져있으니까 열심히 봐주세요~

 

제가 김헌일 작가님을 만난 곳은 영광도서 앞이었습니다~! 혹여나 늦을까 희얌90언니와 열심히 뛰어갔는데 다행히 늦지않게 도착을 했습니다!

만나자마자 출출한 저희의 뱃 속 사정을 걱정해주시며 갈비탕을 사주신 김헌일 작가님 그렇게 맛있는 갈비탕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하트3

그리곤 이내 근처에 카페에 가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근황>

Q1.『고도경보』 출간 후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A. 글이라는 것은 창작 에너지가 솟아야 되거든. 『고도경보』를 쓰고 나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랄까, 이런 것들이 많이 솟았어요. 그래서 올해는 작품을 좀 많이 쓰려고 해요. 우선은 얼마 전 행방불명된 말레이시아 항공기 그리고 자바해에 추락한 에어 아시아 항공기 두 이야기를 소재로 장편 항공소설로 만들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벌써 작업을 시작하신 거예요?

구상 중에 있어요. 나는 구상을 좀 철저히 하는 편이거든.

⤷ 구상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세요?

구상만 딱 끊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 1~2달은 걸려요.

구상을 오래 하시는 편이시군요.

김헌일 작가님

 

<집필시기>

Q2. <작가 소개>에 보면 항공사에서 오래 근무하셨다고 되어있는데 소설은 언제부터 쓰시게 된 건가요?

A.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어요. 소설 공부를 시작한 것이 한 1978년도부터였거든. 그때쯤에 작품을 써서 신춘문예에도 내고 그랬지요.

⤷항공사에 들어가시고 나서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신 건가요?

그렇지요. 직장 들어가서. 그때는 넣은 것만으로도 당선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혼자 뿌듯해하곤 했어요.(웃음) 근데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았어. 처음에는 친구와 그림공부를 했는데, 우연히 단편소설을 한 편 적어 공모전에 투고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상당히 평을 좋게 받은 거야. 그래서 그 때 ‘아! 이 길이 내가 갈 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어느 공모전에 작품을 투고하신 거예요?

사내잡지였어요. 작가 소개에 보면 ‘소설에서 길을 발견한 지 30년….’이런 말이 있는데 문청시절을 포함하면 그 기간을 조금 넘기는 셈이지요. 세월을 내 문학적 업적과 비교하면 무능하고 게으른 작가지.

 

 

⤷그렇다면 항공사를 들어가시기 전에도 소설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이군요?

그래요. 문학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책을 많이 읽곤 했거든. 그런데 내가 소설에 정말 관심이 있는지, 내게 소설을 쓸 만한 역량이 있는지,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어요.

⤷그럼 언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되셨나요?

고등학교 때 단편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학교 교지에 투고했는데, 그 내용이 10대 사춘기 학생의 방황, 분노 등을 그린 거거든요. 그러니까 국어선생님께서 부르시더라고. 그리곤 “소설은 참 좋은데, 이것을 교지에 싣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따라할 수도 있다.”이렇게 얘기하셨지. 좀 실망이었죠. 결국 소설쓰기를 놓아버렸어요. 그러다 서른 즈음부터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취미로 쓰시기 시작하신 건가요?

취미보다는….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돈을 벌어야 되니까 항공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다 바쳐도 좋을 일은 되지 못했어요. 그러다 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소설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은퇴를 하신 후의 여러 환경이 소설을 집필하시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나요?

은퇴 전부터 글을 쓰긴 썼는데 많이 쓰지는 못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 거칠고 삭막한 세파와 직접 부딪히게 되는데, 소설은 현실 세상을 넘어선 영역의 것이거든. 소설을 쓰려면 내가 쓰려는 소설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야 하는데 직장에서 한참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글을 쓰려고 하면 모드체인지가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은퇴를 하고 나서는 하루 종일 글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면서 소설가로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고도경보는 은퇴 후에 쓰시게 된 건가요?

직장생활을 할 때 항공과 관련된 내용의 항공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었어요. 공항에서는 온갖 인생사가 집약적으로 일어나거든. 그래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항공소설에 대해 진지하게 구상을 하게 되었죠. 특히 『고도경보』 중 <지상의 낙원 오로 공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썼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쓴 것이예요.

 

<집필동기>

Q3. 소설을 쓰시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A.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 고민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긴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문학에서 찾게 되었고, 그로인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왜냐하면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이고・본질적인 것을 탐구하고 집약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글감>

Q4. 글감은 주로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과거 항공사 근무 경험에서 대다수 찾으시는 편이신가요?

A. 글감은 주로 경험에서 많이 나오는 편이지요. 그리고 인문학 서적 읽기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 편인데 그것도 많은 도움이 됬어요. 이렇게 과거 항공사에서의 경험과 인문학 서적, 전문서적 등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결합하여 글을 쓸 주제를 정하고, 그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하고…… 그렇게 써가고 있죠.

 

<경험>

Q5. 소설에 보면 비행기 조종사, 관제탑에서 교신을 하는 사람, 사무실에서 데이터 분석을 하여 이․착륙을 관리하는 사람, 표를 관리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 데 작가님께서는 항공사에서 근무하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가 궁급합니다.

A. 나는 대한항공, 타이항공 이렇게 두 군데에서 근무를 했어요. 대한항공은 규모가 커서 정해진 일만 주로 했는데, 내가 하던 업무는 카운터에서 승객들의 좌석 배정을 하는 일이였어요. 공항의 가장 대표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타이항공에서는 항공에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모두 다 해야 했어요. 조종사 숙소관련 문제부터, 운항계획, 기상 상황, 항로, 관제, 정비에 관련된 사항까지. 그곳에서 그러한 다양한 일들을 하다 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조종사들을 직접,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예요. 전부가 외국인 조종사들이어서 한계는 있었지만.

 

대한항공

타이항공

⤷저는 책을 보면서 비행기 조종과 관련된 내용이 너무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서 과거에 조종사를 하신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비행기 조종 관련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항공조종에 관련된 것은 내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항공기나 조종학과 관련된 책도 다양하게 읽고, 기상학도 공부하고. 또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라는 게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비행기 조종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에 의해서 조종이 되는 거거든. 이런 시스템을 사서 집에서 연습을 하기도 했지요. 쉽지 않아.(웃음) 아직도 많이 모자란 건 분명하지요. 흉내만 내는 거지. 진짜 조종사들이 내 책을 보면 순 엉터리라고 할 껄?(웃음)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그렇다면 소설 속에서 작가님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어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떠나는 사람들>은 내가 항공사 근무시절에 그와 비슷한 일을 본 적이 있어서 적은 것이고, <기도>는 괌에 추락했던 대한항공 비행기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고, <나비 속에서>는 내가 공항에서 태풍이 부는 날 항공편을 핸드링하면서 느꼈던 것을 적은 것이에요. 소설이라는 것이 원래 작가의 경험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라서 그 외의 다른 작품들에도 내 경험이 조금씩은 다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중편 <붉은 띠>의 경우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 왜냐하면 내가 그 현장에 안 있어봤으니까.

그렇죠. 9.11 테러 때니까.

그래서 자료조사 할 때부터 많은 노력을 해야 했어요. 아랍 말이라든지 그들의 생리, 왜 어떻게 이런 테러를 하게 됐는지 등. 또 당시의 부시 대통령의 기독교 원리주의적인 사상과 정책들 같은 것들도 다 공부를 해야 됐어요.

 

<작품 속 불행한 가정환경>

Q6.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가정사를 보면 모두들 아내 혹은 자신이 이혼을 요구하거나, 불륜을 저지르고, 외도를 하는 등 불행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렇게 상황을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근본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불행과 비극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아픔, 고뇌, 번민과 같은 것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행복한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에 소설의 발상이 문제가 있는 인생, 가정 등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정형남 작가는 문학을, 그 중에서도 소설을 뻘의 문학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어요. 뻘의 문학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뻘은 육지에서 나오는 온갖 오물들을 정화해서 맑은 물을 바다로 흘려보내잖아요. 이와 같이 소설이라는 것이 우리들 인생살이에서 온갖 추하고, 악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다룸으로써 그러한 것들의 해결책 혹은 타개책을 제시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들의 아내들이 남편의 직업이 조종사인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듣거나 보신 적이 많으신가요?

거의 상상이지요. 구체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야. 하지만 소설 내용과 같이 불행한 가정환경들을 마냥 허구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요. 어느 가정에서나 있어날 수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적은 거거든. 비단 비행기 조종사들의 가정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정들이 각자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는 거니까.

 

<신과 종교>

Q7. 소설에서 보면 하늘은 신의 영역이라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종교와 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작가님께서는 종교와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뭐가요?"

"신 말이야. 하나님. 정말 신이라는 게 있는 거야?"

"당연하죠."

"있다면 있겠지. 그런데 도대체 신은 누구편인거야?"

"당연히 인간 편이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신은 우리 편이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후쿠시마 쓰나미. 무섭고 어이가 없었네. 한순간에 도시가 없어지고 그 많은 생명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닷물 속으로 쓸려가도 좋은 것인가? 허리케인, 화산 폭발, 대지진…. 도대체 신의 정체가 뭐야?"

"글쎄요. 아직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 <기도> p.59

 

A.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인간에게 종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인간은 약하니까. 누구나 집에 큰 불행한 일을 당한다든지 죽을 때가 되면 하나님부터 찾게 되요.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곡해되는 경우도 너무 많은 것 같아.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테러, 살상 이런 거지요. 우선 <붉은 띠>에서 내가 그려놓았듯이 종교의 이름으로 많은 살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알카에다, IS의 테러가 가깝고 손쉬운 예지요. 종교라는 것이 인류의 평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 파괴의 원인이 되기도 했거든. 십자군 전쟁 이후로 인류의 전쟁사가 대체로 그래요.

또 자연재난이라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보더라도, 그 참상을 보는 우리도 그렇지만 그것을 직접 당한 사람들은 분명히 손바닥이 닳도록 하나님을 찾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지진을 만들어낸 것이 신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과연 신은 누구 편인가? 도대체 신은 누구인가? 왜 인간들에게 이런 재난과 비극을 주는 것인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지요. 이러한 생각이 불가지론과 흡사하긴 해요. 피상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본질과 실재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 소설 또한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 보고 싶었던 거죠.

⤷신은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항상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진정 신은 누구냐. 이것은 끝도 없는 고민인거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도대체 왜 유다와 같은 세기의 악인, 혹은 거대한 희생양을 만들어 냈느냐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논점을 가지고 예전에 중편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이 『고백』이라는 5.18 후일담 소설이에요.

작가님의 말씀을 듣다보니까 『고백』이라는 책도 곡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비행공포증>

Q8. <불꽃>에서 주인공의 애인이 비행공포증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이러한 공포증을 가지고 계신 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A. 많이 있다고 봐야지요. 나도 비행공포증을 겪었었거든.

⤷그것은 증상이 어떤가요?

비행공포증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불안상태의 일종이에요. 갑자기 온몸에서 땀이 나고 공포감이 들고 그렇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죠?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혹은 밀폐된 공간에 갇혀있을 때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지고, 호흡도 거칠어지고, 식은땀이 나고 그런 것이지요. 한 번은 항공사에서 근무할 때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향해 나가다가 중간에 선 적이 있어요.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급히 직원을 찾길래 가보니까 멀쩡한 산사 한 사람이 툴툴 털고 내려오는 거야. 그 사람이 겪은 증세를 들어보니 딱 비행공포증인 거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은 여행사 사장이었어요. 여행사 사장이라면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다녔을 텐데도 비행공포증을 느끼기도 하더라고. 또 비행기 조종사 중에서도 비행공포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한 연구에서는 미국인의 십분의 일이 비행공포증을 느낀다고 발표하기도 했어요. 요즈음 누구나 마음이 병들어 있잖아. 지쳐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상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소설 속에서는 비행기 조종사가 조종석에서 비행공포증 환자에게 탁 트인 하늘을 보여주고 하니까 그 증상이 해결됐잖아요. 정말 그렇게 완화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럼요.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안심시켜주면 증세가 가라앉을 수도 있어요. 요즘 많은 연예인들이 앓고 있는 공황장애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공황장애 환자들은 넓은 들판에 가서도 숨이 막히는 공포를 느끼기도 해요. 그런데 아마 앞으로 심리적인 불안에서 오는 이러한 병들은 더욱 많아질 거예요. 그런데 감기에 걸리면 당장 병원에 쫒아가면서도 마음의 병은 병원에 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현실이에요. 우울증과 심리적인 병,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쉽게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 마음의 병이 깊어져서 자살을 택하게 되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정확한 치료법이 있다면 치료받길 원하는 이들이 엄청 많이 나타날 거예요.

 

 

 

 

 

<비행사고>

Q9. <지상의 낙원, 오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도>, <불꽃>, <붉은 띠>와 같이 비행사고를 다룬 소설들이 많은데 항공사 근무시절 비행사고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A. 그런 적은 없었어요. 사실 비행기는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이니까.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행기 사고 자체만이 아니에요. 만약 사고만을 다룬다면 흥미위주의 장르소설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 사건 이면의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거든. 예를 들어 <불꽃>의 경우 불륜을 이야기 한 것이지, 단순한 비행기 사고를 그린 것은 아니죠. 불륜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을 하는 거잖아.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성에 대한 사랑, 열정, 그리움과 같은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결혼을 했든 안했든 무관하게 살아있기 때문이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에요. ‘그렇다면 불륜의 속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추적을 하고 소설화 해 본 것이지요. 사랑해선 안 될 상대를 사랑한 남자와 고장 난 비행기를 모는 조종사. 이 둘은 매우 닮아있어요. 불륜 관계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당당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정한 사랑에의 갈구가 존재하기도 하죠. 고장 난 비행기를 몰고 안전한 기착지까지 몰고 가는 것도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둘 다 소설적인 스릴도 있는 거고. 그러한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나는 비록 불륜이기는 하지만 그 같은 사랑이 하나에서 열까지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행기가 아름다운 불꽃을 일으키면서 폭발하잖아. 그것은 부정한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날 수는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지요.

⤷그렇다면 주인공은 비행기가 폭발할 것을 알면서도 비행을 한 것인가요?

그건 아니지요. 비행기 응급조치는 마쳤지. 그런데 공중에 올라가서 사고로 폭발을 하게 된 거죠.

⤷그럼 비행기가 폭발을 안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결국은 폭발을 하는 것으로 결말을 지으신 것이잖아요. 그렇게 결말을 설정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렇지. 소위 불륜이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예요. 불륜은 만나면서부터 이별을 예상하고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붉은 띠>

Q10. <붉은 띠> 소설의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A. ‘붉은 띠’는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대상을 향한 적대감, 증오심, 적개심을 의미하는 거예요. 소설 속 주인공에겐 구체적으로는 세상을 대한 증오, 아버지를 향한 원망 같은 게 있어요. 주인공은 어머니가 일찍 죽고, 가난과 소외 속에서 버려진 자식같이 세상을 살아왔어요. 그러다보니까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만 남아있는 거죠. 그런데 죽음의 일보 직전에서 자신의 그 마음을 돌아보는 거지. ‘아버지를 철저히 증오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냐.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과 사랑은 진정 없었던 것이냐.’

또 작품 속에서 테러범이 머리에 두르고 있던 것도 ‘붉은 띠’잖아요. 제대로 된 세상에서 태어났으면 평범하게 살았을 아이가 전쟁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살다보니 서방세계, 기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에 사무쳐 무자비한 테러범 되고 만 것이지요. 그래서 그 상징으로 붉은 띠를 맨 것이고. 즉 이 두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는 ‘붉은 띠’의 의미는 증오, 적대감, 파괴, 이런 것들이에요. 주인공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마음 속에 있는 ‘붉은 띠’를 풀어헤치고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게 되죠.

난 이 소설에서 신의 이름으로 무참한 파괴와 살상을 일삼은 테러집단 등 거대 조직과 국제사회의 실상을 죽어가면서도 사랑을 고백하는 작은 인간들의 모습을 비교 대조해 보이고 싶었어요. 무엇이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애(愛)작>

Q11. 여러 단편 소설 중 특별히 공들여서 쓴 작품 혹은 쓰기 힘들었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붉은 띠>가 가장 공도 많이 들였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그 작품은 세계를 무대로 했을 뿐더러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신과 인간의 이야기 등 내 나름대로 시야를 크게 보고 시작한 작품이라서 마음이 많이 갑니다.

⤷수정도 많이 하셨어요?

수정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니까.

⤷쓰고 난 지금도 애착이 제일 많이 가시나요?

그렇지, 지금도.

⤷그래서 소설 순서 배치도 제일 마지막에 하신 건가요?

그건 분량이 제일 많아서. 분량 상 그렇게 배치한 거지요.(웃음)

 

<독자>

Q12.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혹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수용했으면 하시나요?

A. 일단 이 소설을 흥미 위주의 소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행기가 악천후 속에서 혹은 고장이 났을 때,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지 하는 것만을 다이나믹하게 그려낸 그런 활극은 아니거든. 소재는 그거였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사회를 향한 내 나름대로의 의식과 인생관, 세계관을 녹아냈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런 것들을 찾아가면서 이 소설을 읽어줬으면 해요. 소설이라는 것은 재미와 의미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창작을 함에 있어서도 이 점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어요. 재미만 강조하는 이야기는 자칫 통속적이 되기 쉽고, 의미만 추구하는 소설은 위선적이기도 하고 지루해질 수 있거든.

<지상의 낙원, 오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의 경우 ‘잘못된 권력자와 오도된 대중들이 영합한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가.’ 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어요. 눈앞의 영달만을 쫒는 권력자와 지극히 이기적인 대중들이 모이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 되고 위험한가 하는 것을 악천후 속을 나는 비행기를 통해 증명해 보이려 했던 거죠. 소설 속에서 보면 그 상황에선 비행기가 자칫 추락할 수도 있었잖아요. 아마 정말로 추락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비행기 추락은 정의가 깨지는 것을 의미하거든. 그래서 나는 추락은 못 시켰어요. 정말 못 시키겠더라고. 추락으로써 결말을 짓는다는 것은 ‘이러한 경우에는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작가가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작품 속에서도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

Q13.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A. 써야 될 작품이 많아요. 많은 건 아니지만 나이도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고도 생각이 안 들어서 부지런히 글을 쓰려고 해요. 희망이 있다면 ‘내가 이 작품을 썼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거지요.

⤷소설도 열심히 쓰셨는데, 여행 계획은 없으세요?

여행을 가더라도 소설을 위해서 가게 되겠지.(웃음)

 

<여담(餘談)>

혹시 소설 중 실화가 있나요?

실화는 없어요. 실화는 없고, 내가 이것저것 참조를 하지.

<지상의 낙원, 오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에서 기장의 딸 이름이 티티야였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의 다른 소설집 제목 중에서도 ‘티티야를 위하여’라는 것이 있더라구요. 특별히 그 이름을 좋아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원래 <지상의 낙원, 오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의 작품 이름은 ‘티티야를 위하여’ 였어요. 그 이름을 좋아하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쁘고 귀여워 사랑스런 어린아이를 나타내기에 적합한 것 같아서 쓴 것이죠. 그 아이는 우리 모두가 보호해야 할 가치, 다시 말해서 고귀함, 정의, 진리, 아름다움 같은 것의 상징이죠. 참고로 원래 태국의 어린아이 이름이에요.

오로공항은 실제로 있는 항공사인가요?

실제로 그런 공항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지역은 있어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열심히 인터뷰 중

 

 

Posted by 비회원

『문학을 탐하다』최학림,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안녕하세요, 마하입니다. 부산일보 앞. 오늘은 『문학을 탐하다』의 저자이신 최학림 논설위원을 만나러 부산일보에 왔습니다. 너무 너무 추운 날씨였어요.☠

 

 

짜잔. 여기가 부산일보입니다. 저는 거제동에서 출발, 부산진역에 도착하여 부산일보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어떻게 타야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에 다른 분이 올라가는 걸 보고 같이 타봅니다. 훗. ⦿▽⦿ㆀ

 

 

최학림 논설위원과 약속된 5층. 10분 일찍 도착해서 문자를 보내봅니다.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려서 두근두근하고 있는 와중에 발소리가 끊기고, 최학림 논설위원과 만났습니다. 최학림 논설위원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카페로 갔습니다. 애매한 시간이라 카페 안이 조용하네요. 인터뷰를 위해 카페를 통째로 빌린 느낌이었어요.♥o♥

자, 그럼 마하와 함께하는 저자 인터뷰 시작합니다. Go Woo- Go Woo-!

 

 

마하  안녕하세요, 선생님! 빠르고 신속하게 오늘 인터뷰 진행해보겠습니다. 취조받으시는 느낌도 드실거예요!

최학림  (웃음)

마하  머리말에 보면 책이 한권이라 다 담지 못한 문인들이 꽤 있다고 하셨고, 기사 인터뷰에서도 앞으로 두세 권은 더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에 담지 못해 아쉬웠던 작가가 있다면 누가 있는지, 또 다음 책이 나온다면 맨 먼저 담고 싶은 작가는 누구인지 듣고 싶어요.

최학림  이 책에는 18명이 들어있는데, 처음에는 25명 정도 기획했거든요. 근데 이게 시기를 맞춰야하는 책이다 보니 쓰는 것이 지체되어 18명까지 썼죠. 처음 계획은 25명이었고 많은 문인들 중에 25명을 추려내는 것도 어려웠어요.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는데…. 정말 앞으로 두세 권은 더 낼 수 있을 정도로요.

마하  부산·경남권 안에서요?

최학림  네. 부산·경남권 안에서만요.

마하  그 일곱 분이 누구예요? 처음에 빠지신 분들.

최학림  제가 서문에 언급한 허만하 선생 있죠, 그 분 대단한 분입니다. 그 다음엔 강은교 선생님. 그 두 분은 처음에 넣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뺐습니다.) 이 두 분이 굉장히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될 분들이고 상대적으로 전국적인 지명도가 두터운 분들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본인 한 사람으로 책을 낼 수도 있는 분들이에요. 김규태 선생이라고 여든 정도 되는 연세인데, 그 분도 시 정말 잘 써요. 그 다음엔 동길산 시인이라고 있는데 이 분은 부산-경남을 왔다갔다 하시는 분이고, 정형남 소설가는 부산에서 몇 십 년 살다가 지금은 전남 보성에 가 있어요. 또 서규정 시인. 서규정 시인은 내가 문학 취재하면서 최고 친했던 시인이에요. 내가 꼭 써야하는 작가죠. 그 사람 작품을 제가 굉장히 좋아하고, 서로 감정선이 통하니까. 또 이상개 시인이라고 부산의 문학 출판사 중에서 빛남 출판사가 있었어요. 빛남 출판사 사장이었거든요. 1988년에 만들어져서 2010년까지 부산에 있었어요. 시 전문 출판사였는데, 내가 문학 기자를 하면서 그 출판사에 거의 출퇴근을 했죠. 근데 이 분이 말이 많지는 않으신데 묵묵히 보여주시는 분이에요. 부산에서는 우유부단파라고 하는데, 저는 이상개 선생님을 보면서 ‘시인이 저런 거구나’하고 스스로 느낀게 있거든요. 여기까지만 여섯 분이고요. 이와 함께 유병근, 김성종, 박청륭, 강영환, 오정환, 김형술, 김하기, 정익진, 공재동, 배익천 선생 등등을 언급할 수 있어요.

 

- 이 책에서 아쉽게 빠지신 일곱 분을 정리하자면 허만하 시인, 강은교 시인, 김규태 시인, 동길산 시인, 정형남 소설가, 서규정 시인, 이상개 시인이 있으시네요.

 

마하  그래도 아는 이름 하나는 있어서 반갑네요. 강은교 교수님. 학점은 잘 못 받았지만…. (웃음) 이복구 소설가 보면 『맨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선생님은 맨밥같은 삶을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최학림  참 어려운 질문인데. 거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담백한 삶이에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말이죠. 우리가 굉장히 많은 책을 읽고 때론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면서 삶은 헛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옛날 어머니들을 보면 폐부를 찌르는 말을 능히 하잖습니까. 수식을 하거나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삶 자체로서 공감할 수 있게 담백하게 보여주는게 맨밥같은 것이 아닐까 싶군요. 이반 까르마조프라고 철학적이고 굉장히 지적인 사람인데 도스토예프스키가 미래형의 인간이라 설정한게 종교적인 인간형. 뭔가 설명하기보다는 몸에서 우러나고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 그런 것이 맨밥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마하  김언희 시인 시가 굉장히 자극적이잖아요. 선생님께선 시를 허무하고 어둡고 자기파괴적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눈에 더 들어오지 않나 싶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실 때 김언희 시인의 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뭔가요.

최학림  많은 시들이 그랬죠. 하지만 <홍도야>가 입에 아주 잘 달라붙어서 기억나네요. 이 시만 봤을 때 의미가 잘 안 오는데 리듬이 있으니까 의미의 서걱거림을 리듬으로 흡수시켜주잖아요. 리듬이 자유스러우면 노래를 잘 몰라도 리듬을 흥얼거리듯, 시도 그런 것 같아요. 김언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굉장히 쎄요. 책에도 적어놨지만 통화를 할 때 호흡을 가다듬고 하는데 좀 떨리더라고요. 뭐 때문에 시를 이렇게 쓰지? 의문이었는데 가서보니까 시인의 이미지가 시와 전혀 다르고 본인도 너무 힘들어하면서 짊어지고 가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됐죠. 결국은 시안에 들어가 보면 표현되는 생경한 언어들, 생경한 구절은 하나의 형식일 뿐이죠. 근데 사람들은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니까. 내용 위주로 읽으면 좀 더 높게 평가받을 건데….

마하  일반인들은 서정시를 좋아하고, 잘 읽히는 걸 좋아하니까….

최학림  그렇죠.

마하  최영철 시인의 <늦은 봄에 쓰는 편지>를 보고 선생님은 정말 읽고 싶은 편지는 뭔지, 쓰고 싶은 편지는 뭔지, 보내고 싶은 편지는 뭔지 차근차근 생각할 것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 중에 생각해본 편지의 내용이 있으신가요?

최학림  시라는게 ‘삶은 이거다’고 정의해주지 않고,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잖아요. 그 시가 고양이가 죽은 거, 새가 죽은 거, 꽃이 늦게 지는 거 하고는 상관이 없었지만 뭔가 연관이 있는 듯한 느낌. 사람이 쓰는 언어 너머에 뭔가 연결되어있는 듯한,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말할 수는 없고. 말을 해버리면 싱거워질 수도 있지만 더러는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거. 그런 걸 생각하게 하는 거죠. 모든 걸 다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안되는 영역도 있고, 그런 영역을 갖다가 공감을 하는 거죠.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말 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된다.’고 말하죠. 최영철 시인의 그 편지가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뭔가 있는 것 같은 걸 일깨워주고 알려주는 거죠.

마하  유홍준 시인이 구사하는 상징과 비유를 보고 선생님께서 감탄하셨다는데 특히나 이 표현은 정말 기억에 남는다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학림  나도 시골에서 생활을 좀 했었거든요. 방학때마다 시골에 가서 살았어요, 집은 6살 때 부산에 왔었는데. 밤에 연못에 달이 떠있는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있어요. 근데 그 달을 갖다가 붕어가 툭툭 치고 나가면서 갖고 논다, 이런 발상이 대단한 거예요. 유홍준 시인도 산청의 촌놈이거든요. 상징의 보고를 가지고 있는 시인인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람보고 '도둑놈'이라고 하는데, 유홍준 시인이 자연 속에 있는 걸 잘 빼 와요. 정말 상징 같은 걸 잘 구사하는 시인이죠. 놀라운 건 이 시인이 대학도 안 나오고 고등학교 때 가출도 했다는 것이죠. 강원도에서 온갖 일, 함바집 일도 하고 진주에서 종이공장 다니다가 뒤늦게 시를 썼죠. 그래서인지 가식이 별로 없죠. 인정머리도 없고. (하핫 농담) 표면적으로는 없죠. 근데 친해지면 있겠지. 글 쓰는 사람 그 동네에서는 격의 없이 잘 지내지요.

마하  김곰치 소설가의 필명 얘기에 대해 재밌게 읽었는데, 혹시 선생님께서 알고있는 또 다른 작가의 필명과 그 필명이 탄생하게 된 비화가 있을까요?

최학림  부산에 박향이라는 소설가가 있거든요. 그 양반은 작년에 문학상을 두 개나 받았어요. 세계일보에서 하는 세계문학상이 있는데 그게 고료가 1억원이래요. 현진건 문학상이라고 또 받았고. 그 분 이름이 향자거든요. 근데 박향 하니까, 글의 향기도 떠오르고, 그러죠? 곰치처럼 특이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별명 관련해서 재밌는 건 있지만 곰치처럼 특이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복구라는 촌스러운 이름도 좋고…. 이 책의 문인들은 다 본명이에요. 김곰치만 필명이고. 정영선도 원래 정생인가, 하여튼 다른 이름이었는데 본명으로 돌아왔어요. 곰치는 자기가 지향하는 소설 세계와 필명을 일치시키려고 한거고. 근데 이 친구는 시적인 감수성이 예민하거든요. 글도 아주 샤프하고. 페이스북 같은데도 짧은 산문들을 잘 쓰고. 곰치라는 느낌이 둔탁한 느낌이지만 그 밑에 보면 예리한 느낌이 있어요. 근데 예리함만 있으면 소설가 하기 힘든데, 그 예리함을 넓게 확대시키려는 그런 의지도 있고. 악기를 예로 들면 바이올린이 예민해서 특히 조심하는 게 있는데, 그걸 다루는 사람은 자기가 더 힘들고 그렇죠. 그에 반해 첼로하는 사람들은 감정선이 넓고 둥글고 안정되어있는 면이 있고요. 소설 쓰기에는 날카로운 면도 중요하지만 안정되고 안착된 느낌도 중요하니까.

마하  엄국현 시인은 신라 향가나 고려 속요 같은 ‘우리나라’ 냄새나는 걸 좋아하고 향가를 비롯한 옛 시 전공자라고 하잖아요. 선생님이 생각한 향가의 매력은 뭘까요?

최학림  그냥 좋죠. 그죠? 우리 시가의 원형이 들어있고. 이두 표기로 돼 있는데 가랑이가 넷이도다(-처용가處容歌) 이런 표현들. 사상도 여러 가지 있지마는 이두로 표기된 옛스러운 리듬이 멋있는 것 같아요. 제망매가(祭亡妹家) 월명사의 시 보면 달을 움직이는 구절이 있고. 천지조화를 갖다 움직이는 시의 힘. 그런 근엄한 모습뿐 아니라 노인이 수로부인 희롱하는 거(-헌화가獻花歌) 있잖아요. 보면 인간의 모습이 다 들어있거든요. 신라 문화보면 토기나 토우 같은 데 사람 몸의 표현이 가감없이 다 드러나 있잖아요. 향가의 세계에도 가감없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요. 삼국유사 삼국사기하고 연결시켜보면 원형적인 것에 대해서 잘 느낄 수 있게. 엄국현 선생은 한자 문화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감성'을 많이 잊어먹었다고 하는데 그런 감성의 원형이 향가에 잘 나와 있지요. 내가 철학과 나왔는데 따로 향가를 공부한 적이 있어요. 정화되는 느낌도 있고. 평론가들이 고대시가 평한 거 보면 김현같은 분은 제망매가를 최고로 치고, 또 북한에 간 국어학자 홍기문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최고로 치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조금 다른 게 있는데, 그것도 보면 신기하고, 풍부한 세계란 생각이 들죠. 이성복 시인이 풍요의 한자 구절을 그대로 옮겨와 시집을 냈어요. 사람이 굉장히 다양하게 느끼는 그 원형은 초기에 불렀던 그 노래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제망매가나 안민가(安民歌)나 누구를 사랑하는 찬기파랑가. 다 그 원형인 것 같아요.

 

- 여기서 잠깐,  위 말에서 언급된 향가를 찾아보고 갑시다.

처용가處容歌 : 처용 자신 아내 역신() 동침하는 보고 부른 노래.

제망매가祭亡妹家 :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추모하며 지은 노래.

헌화가獻花歌 :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인이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신라시대의 화랑이었던 기파랑의 높은 인격을 사모한 충담사가 그의 인물됨을 상징성을 띤 자연물에 빗대어 찬양한 노래.

안민가安民歌 : 경덕왕이 충담사를 만나 백성을 편안하게 할 노래를 지어달라 부탁하여 탄생한 노래.

 

 

 

마하  조갑상 소설가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를 빗대어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무엇을 저마다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의 평행선 너머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최학림  자기가 가지고 있는 현실은 자기한테 착착 붙어 원만하게 조화롭게 되는 게 아니에요. 현실이라는 건 자기하고는 잘 안 맞거든요. 우리가 적응하려고해도 딱 맞춰서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하고 평행선을 그을 수 밖에 없죠. 왜냐하면 세계와 내가 일치되어서 갈 수 없으니까. 일치되려고 노력은 하지만 흔적만 남을 뿐이고 결국 현실은 현실대로 있고 우리 삶은 우리 삶대로 있고. 그게 평행선이죠. ‘그 너머에 뭔가는 분명히 있다.’ 그건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마하  저는 구체적인 답변을 바랐는데…. 근데 괜찮아요. 비슷한 질문 뒤에 또 있으니까. 또 다시 할거예요. (하핫) 성선경 시인의 몽유도원은 목욕탕이 아닐까하셨는데 선생님의 유토피아, 몽유도원은 어디인가요?

최학림  여기라고도 할 수 있고, 저기라고도 할 수 있고. 소설 시 많이 읽을 때는 거기일 수도 있고 음악 듣고 할 적에는, 음악이 사람을 굉장히 고양시킬 수도 있거든요. 그 언저리일수도 있고. 책을 읽을 적에 어떤 구절들이 확 번지면서 올 때가 있는데 그런 걸 만나는 순간일 수도 있고….

마하  박태일 시인의 시의 뿌리는 ‘지명’이라고 하셨고, 장소를 말하는 것은 결국 사라져 없어질 사람의 삶, 쓰이지 않은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셨는데 기자도 이와 비슷한 글쓰기를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뿌리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최학림  나는 대학 다닐 때 철학을 공부했거든요. 학교 졸업하면서 철학을 조금 쉬었다하자, 그러다가 일년에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하자 그랬었는데 결국 못했죠. 요즘 다시 옛날에 생각했던 큰 주제들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대학에 배웠던 것에서 많이 형성이 되는 거죠. 철학이 자꾸만 꿈틀거리니까. 하지만 철학을 날 것으로 펼쳐놓으면 별로 재미없거든요. 철학이 삶을 접목시키면 문학이 될 수 있는데, 생각의 뿌리는 철학에 있는 것 같고 그걸 펼치는 데는 문학의 틀을 빌려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마하  강동수 소설가는 기자이면서 소설가라고 하셨잖아요. 선생님도 문학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혹시 시나 소설을 쓰실 생각 있으세요?

최학림  저는 신문 글 쓰죠. (문학작품을) 언젠가는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없어요. 옛날에 어릴 때는 좀 썼는데.

마하  정태규 소설가는 인간에 대해서 끊임없이 회의한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인간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최학림  정의할 순 없지만, 지금 생각엔 나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인간의 모습을) 10대 때는 10퍼센트 정도 알고 20대는 20퍼센트 정도 알고 50대는 50퍼센트 정도 아는 것. 분명히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인 것 같아요. 도덕, 예술, 종교, 진선미 그와 연관된. 영락없이 삶과 시간 속에서 흔들리는게 인간이고. 신뢰가 안가지만 신뢰할 수밖에 없고 뻔한 거 같으면서도 뻔하지 않은, 여지가 있는. 80퍼센트까지 보는 게 인간인데 나머지 20퍼센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작은 가치를 갖다가 잃지 않으려고 끝까지 나아가려는 존재. 힘들지만 나아가려는, 좌절도 하고. 좌절이 80퍼센트, 딛고 나가는 게 20퍼센트 정도.

마하  근데 그 퍼센트 논리가 맞는 것 같아요. 저도 10대 때 (손 동그라미) 이만큼 보였다면 20대 때는 그 것보다 더 보이는 것 같거든요.

최학림  (농담) 120살까지 살면 120퍼센트를 볼 수 있겠죠.

마하  장수해야되겠네요.. (하핫) 선생님께서 박권숙 시인을 생각하면 배롱나무와 천마도가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타인이 선생님을 볼 때 어떤 이미지를 연상했으면 하고 바라세요?

최학림  남들이 나를 학림거사로 부르는데, 새 학 자에 수풀 림 자인데 사람들이 배울 학 자에 수풀 림 자로 생각해요. 학림이라는 게 절이라던지 철학관 이런 느낌이 없지않아 있으니까.

마하  어리셨을 땐 그런 별명 아니셨을 것 같은데.

최학림  초등학교 때 나는 최하리라고. 애들이 장난친다고 내 이름에 받침 빼서 불렀죠. 내 고향에 학림리라는 곳이 있거든요. 작은 마을 두 개 세 개를 하나로 합쳐서 리 인데, 학동이고 임포라고 있는데 학동의 학 자하고 임포의 임자 합쳐서 학림리라고 해요. 이름을 한자로 풀면 소나무 숲이 위에 학이 앉아 있는 모양이에요. 그림은 되죠.

마하  멋있어요. 옛날 수묵화 화폭이 연상돼요.

최학림  나는 어릴 때 이 이름을 안 좋아했어요. 중 2때 윤리선생님이 출석부 부르면서 이름이 여학생 같다, 나는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봐서. 학림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좋다고 생각해본 적 없고 이상하고 그랬는데, 고3때 이름 좋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어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거든요.

마하  이상섭 소설가를 부산 문단에서 알아주는 ‘구라’라고 표현하셨는데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이상섭 소설가와 견줄만한 부산 문단의 숨겨진 입담꾼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최학림  형식적으로는 그 양반이 최고 구라죠. 근데 소설가들 시인들 이런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하면 남한테 안 지거든요. 소설가들이 되게 말을 안 져요. 말이 어눌한 것 같지만 은근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 많고 소설가들이 한 가닥씩 다해요. 술자리 하다보면 처음부터 알알이 꿰면서 기억의 세밀한 복원을 하는 소설가들도 있고 어느 정도 지나면서부터 좌중을 압도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마하  정영태 시인의 ‘눈을 쓸자’라는 말에 감명 받아 ‘눈을 쓸만한’ 문인들의 이름을 자꾸 불러야 한다고 평소 생각하시고 지역 문인들을 호명하는 기사도 쓰셨다고 했는데 이 책의 기획의도와 맞닿아 있는 생각인 것 같아요. 언제부터 이 책을 기획하셨어요?

최학림  3-4년전인가 기획을 했는데 그 때는 바쁘기도 했었고, 중요한 건 내 이야기가 아니고 부산의 지역 문단을 지키는 많은 작가들을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죠. 일반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좀 더 상세하게 지역 문인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은 옛날부터 하고 있었죠. 4-5년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저술 지원에 선정이 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심사 방식을 바꿔 결국 선정이 누락된 적이 있어요. 이건 조금 더 있다가 쓰라고 하는 거다 생각했죠. 기획만 해 놓고 안 썼죠. 재작년에 기술지원 신청해서 가지고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죠.

마하  가벼운 질문 하나 할게요. 최원준 시인의 둥글한 얼굴과 성격 때문에 ‘동방신기’식 사자성어 별명으로 ‘원만원준’이라고 불린다고 하셨는데 선생님도 이런 별명으로 불리셨나요?

최학림  몇 명 어울리는 사람들 5-6명 사이에서 난 ‘안다학림’이었어요. 아는 체를 많이 한다고. (농담) 그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원만하게 하는데, 나는 말을 잘 못하니까 정색을 하고 말해요. 그걸 아는 체한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또 동길산 시인이라고 있는데 그는 ‘야동길산’이라고. 야동을 본다 길산. 이 뜻도 있는데 누군가 호명할 때하는 야- 동길산. 이 뜻도 있죠. 예민한 감성의 ‘감성태성’. 뭐 이렇게들 있었죠.

마하  마지막으로 <문학을 탐하다>를 읽게 될, 혹은 읽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최학림  내가 이 책을 쓸 때는 할 수 있는 최선의 한도 내에서 (부산-경남 문학을) 드러내겠다. 우리 지역작가들이 뭘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정말 나보다는 고군분투하는 지역 작가들이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 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썼거든요. 이분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직업도 없이 전업으로 하는 거 쉽지 않잖아요. 물론 따로 직업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글쓰기에 생을 걸은 사람들이니까. 독자들이 지역 문인들의 글을 더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지역 작가들에 대한 발견이면서, 지역 문화에 대한 발견이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일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문학을 탐하다』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정갈하게 쓰인 글씨. 멋있죠?

 

부산일보 앞까지 선생님을 배웅해드리고, 다시 출판사로 돌아오는 길.

선생님이 사주신 커피 향기가 은은하게 맴도는 느낌이라 훈훈한 기분이였어요. 선생님 말씀에 배운 것도 많고, 부산 문학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o⁌⁂

 

 


 

 

문학을 탐하다 - 10점
최학림 지음/산지니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2014 원북원도서 올해의 책 투표하러 가기>> http://www.siminlib.go.kr/onebookone2/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여실지입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종반부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네요.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마무리 잘하고 싶어요. ㅋㅋ 

 

 

두번째 포스팅 내용은 첫번째 포스팅의 주인공인 미국 대학의 힘의 저자이신 목학수교수님과의 인터뷰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대학을 사랑하는 저는 이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요. 저자 분을 직접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인터뷰 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 반, 설렘 반의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부산대로 향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부랴부랴 달려왔어요~

 

인터뷰가 진행될 장소는 부산대학교 내에 있는 교수님의 연구실입니다. 물론 순환버스를 타고 가면 편리하고 빠르긴 하지만,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찾는 곳이니만큼 기분 좋은 설렘을 가지고 주변 풍경을 맛보고 싶었습니당 ^^

 

부산대학교 정문입니다 ^^  정문 앞에 걸려있는 현판이에요

 

자주 오기는 하지만, 막상 학교까지는 들어갈 기회가 없었고,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부산대학교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사소하게나마 부산대의 힘이 될 수 있는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죠.

 

운동장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입니다.

 

학교는 전체적으로 오르막길이 많아서 몸이 불편한 학우들이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 속의 장소는 정문 앞에 있는 운동장인데요. 학교에서는 몸이 불편하거나 많은 오르막길을 걸어다니느라 힘든 학생들을 위해서 스탠드 옆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식으로 그들을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사소한 것이지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운동장 옆에 있는 간의탈의실이었어요. 보통 운동하는 학생들 같은 경우에 옷을 갈아입을 일이 있으면, 멀리 있는 화장실까지 가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없을 때 그냥 운동장에서 갈아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운동장 바로 옆에 소박하게 설치되어 있는 탈의실을 보고, '저게 무슨 탈의실이냐?' 라고 하겠지만, 운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시설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을 보면서 정말 부러워 했습니다. 간단하게 돌아보고 난 뒤, 이제 정말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갔고, 교수님은 처음 마주하는데도 불구하고,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질문내용 외의 말은 편의상 저는 여실지의 '여'를 썼구요. 목학수 교수님은 '목'이라 표기했습니다.)

 

교수님이 재직중이신 부산대 산업공학과 건물입니다. 특성화공학관이라고 하네요.

 

저자이신 목학수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어요;;

Q. 보통 교수님들은 연구년때 학문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활동하시는데, '대학'이라는 요소 자체만을 보고다양한 방면에서 연구를 하신 것이 놀라웠습니다. 대학에 주안점을 두고 책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책을 낼 생각이 없었어요. 그 생각으로 조사를 했다면, 부담이 되어서 못했을 거예요. 저는 과연 학생들의 프라이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를 도와주기 위한 바람직한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어요. 즉, 대학의 사이드 이펙트적인 요소를 파악하고,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제대로 알고 바람직한 대학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펜을 든 것이죠. 대학이 교수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줌으로써 교수는 신이 나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학습능력도 증진되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도 가집니다. 즉, 교수와 학생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발판삼아 대학의 힘, 경쟁력은 갖춰진다고 생각해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Q. 책의 내용을 보면 교수,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소개되고 있었는데요. 그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각각 말씀해주세요.

 

A. 전부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뽑으라고 한다면, 저는 교수들을 위한 문서교정 서비스신임교수채용에 대한 내용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논문 등을 교정할 수 있는 서비스가 대학 내에서 갖추어져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를 도입하게 되면, 더욱 세련된 논문이 될 것이고, 양질의 내용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신임교수 모시기'라는 표현을 썼듯이, 유능한 교수들을 채용하기 위해 지원을 마다하지 않아요. 그리고, 대학에 제출해야 할 서류도 우리나라에 비해서 간편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고, 그 지원자들 중에서 유능한 사람을 교수를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 중에서는 도서관에 대해 많이 부러웠어요. 우리나라 대학은 단순히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와 시험공부, 자격증공부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이렇게 정적인 우리나라 도서관과는 달리 도서관 중앙에 퍼즐판이 설치되어 있고, 텀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 있어요. 즉, 도서관이 훨씬 활동적인 공간으로서 활용되는 것이죠. 바람직한 도서관은 이런 환경 속에서 운영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미국의 학사경고시스템이 다른 적성을 찾아보고, 그에 맞는 장래를 위해 공부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교수님 연구실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책입니다~

 

- 책을 전체적으로 다 재밌게 보았지만, 아무래도 저는 학생 신분이다보니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 파트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문서 교정 서비스 'The Writing Center'의 운영이었습니다. 글쓰기라고 하는 것은 교육의 시작과 동시에 배운 것이고, 현재도 가장 폭넓게 사용되고 있으며, 미래를 살아가는데도 언제나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이에 대한 교육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로 인해 시험을 칠 때도, 앞으로 취업원서를 쓸 때도 학생들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 맞아요. 우리나라 대학은 글쓰기 교육이 너무 부족해요. 현재 대학생들은 글쓰기라고 하는 것을 시험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고, 텀 프로젝트, 리포트에 대한 교정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글쓰기는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아주 기초적인 방법인데 그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를 대학에서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비단 대학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쓰는 것이 경쟁력있는 것인지 생각해서 그에 대한 다양한 교육을 전개해야 합니다. 도서관에서 이러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책 외적으로 질문드릴 것이 있는데, 다른 대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산대만의 특성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자랑해주세요.

 

A. 부산대학교는 지방거점대학으로서 훌륭한 인재들을 키워내서 창원, 울산, 포항 등 동남권 지역에 우수인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적으로 중요한 대학들은 각각의 특성을 살려서 인재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는데, 부산대는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산업에 크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는 학점과 성과라는 객관적 지표에만 치우친 나머지 학생들이 서슴없이 컨닝을 하고, 교수들은 논문을 표절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등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약하게나마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A. 갈수록 컨닝이나 표절의 건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그런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상당부분 결여된 것 같아요. 해외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대학처럼 '하지 말자'는 캠페인만 벌이는 것과 달리 필요 부서에서 사례중심으로 강하게 처벌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문제는 대학 만의 문제가 아니고, 여태까지 본인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적 의식으로 인한 거예요. 행위에 대한 책임이 대학에만 있지는 않다는 말이죠.

 

Q. 대학의 총장 제도 등의 인사제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온정주의와는 너무 달라서 약간의 괴리감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와 미국 대학의 제도를 모두 보신 교수님은 이 둘 중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미국 대학 총장의 기본적인 임무는  펀드라이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많은 기금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총장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대학 내의 일은 잘 못보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Provost, 즉 부총장 급에 해당하는 교부처장이 대학 내의 업무를 봅니다. 그로 인해 총장은 자유롭게 대외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총장이 대학 내의 업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이사회는 이러한 총장의 공약(펀드라이징 마련)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에 따라 사임을 결정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은 모든 결재라인이 총장에게로 가고, 총장을 서포트해줄 수 있는 직위에 대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말 효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미국 대학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바라봐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전반적으로 책은 미국 대학의 장점을 서술하고 있지만, 우리가 여태껏 겪었던 시스템과의 괴리로 인해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독자들이 어떠한 시각을 바탕으로 독서하기를 원하십니까?

 

A. 물론 지금은 텍스트에 소개된 여러 제도들을 받아들이기에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생각해서 한 두 가지씩 차차 바꾸어간다면, 더욱 발전된 대학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더 대학을 사랑하면서 쳐다보는 것,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건물 하나도 길이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대학은 그냥 건물과 공간만 있어요. 구성원들이 설계할 때 보기 좋은 건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학생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상대평가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학점 인플레이션' 등의 이야기가 많지만, 교수가 자율적으로 학생들이 다 잘하면 성적을 잘 주고, 다 못한다면 안 주고... 이러한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장 기본적으로 학생이나 교수나 각자 다니고 있는 대학을 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좋겠습니다. 학교를 정말 사랑하는가? 학생들을 제 자식같이 사랑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책을 본다면 바람직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정말 알고 싶었던 부분을 교수님께서 하나하나씩 다 긁어주셨어요. 그리고, 제 개인적인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공감해주시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 생각을 바로 고쳐주셨습니다. 물론 대학생이라는 것이 본격적인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서, 그것에 대한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대학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끔은 대학 자체를 사랑하는 일도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대학을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이후에 대학과 함께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남지 않은 대학생활이지만, 다니고 있는 대학을 정말로 사랑할 것입니다.

 

미국 대학의 힘 - 10점
목학수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치우』의 이규정 선생님을 만나다

 

산지니 출판사 인턴을 하면서 평소에 가보지 못한 곳을 많이 가보는 것 같아요. 출판사가 있는 거제역, 법원 근처도 처음이었거든요. 이번에 가는 곳은 치우의 작가, 이규정 선생님의 자택이 있는 망미역입니다. 평생 1, 2호선만 탔는데 요즘 따라 3호선만 타는 것 같아요.       

                                                  

사진출처                                         사진출처

 

인터뷰 장소는 바로바로 선생님의 집. 고심해서 산 녹차 롤 케이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지도를 부여잡고 찾아간 선생님의 집은 덕문여고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대학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신 선생님은 학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일까요?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해봅니다. 처음 뵙는 분과 처음 해보는 인터뷰라니. 너무 떨렸어요.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혼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올라갔는데,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를 보자 마자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선생님의 아늑한 작업실에서 따스한 오전의 햇살을 받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손때 묻은 질문지와 함께 시작된 인터뷰.

 

 

Q.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후유증이 심하셨다고 들었는데,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A. 지금도 흉터가 있어. 교통사고가 나고 엉뚱하게도 몸 전체 면연력이 떨어지고 감기가 잘 걸린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후유증 때문에 지금도 고생하고 있지. 지금은 체력이 떨어지니까 소화가 안 돼서 좀 고생을 하고 있지.

(빨리 건강을 되찾으셨으면 좋겠네요.ㅠㅠ)

Q. 선생님께서 글을 쓰신지 올해로 38년이 되셨어요.

A. 내가 1977년에 나왔으니 38년이 되었지. 나이는 마흔한 살 때 늦깎이로 나왔는데, 등단한 다음에는 글을 많이 쓴 셈이야.

Q.처음 글을 쓰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쓸 계획이 있었는데, 그때 집안이 어려워서 서울까지 갈 수도 없었어. 우리 집이 경남 마산이었는데 마산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에서 제일 싸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더니 경북 사범대학이더라고. 거기에 입학하면 등록금도 영 싸고, 또 졸업하면 바로 취직도 되고 해서 입학을 했지. 내가 영 어리고 무식해서 그때만 해도 문학을 하려면 국어국문학과가 아니면 문학이 안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서 보니까 우리 국어과에는 문학하는 교수가 아무도 없는 거야. 전부 어학 같은 분야만 하고. 그래서 혼자 공부했지. 마침 2학년 때 김춘수 교수님이 오셔서 그분 강의를 늘 가서 듣고는 했지. 오시자 마자 내가 항상 소설을 써서 보이고 지도를 받곤 했어. 3학년 2학기 때 김춘수 교수님이 황순원 선생님께 소개와 추천으로 편지와 함께 내 습작품을 보내셨는데 소식이 없더라고.(웃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때의 문예지 추천이 사람을 먼저 보고 그 인성을 확인한 뒤에 작품을 보는 건데, 김춘수 교수님께서 그런 지도를 안 해주셨지. 작품 한 편 보내놓고 추천되어 나올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지. 그 뒤에도 자꾸 자꾸 보내고 해야 했는데 나도 바빠서 못했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고등학교 교사로 서면서 늘 진학반을 맡아가지고 고생을 하고 그러니 이렇게 늦어버렸어. 그래도 각 신문사 신춘문예에 늘 투고를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 운수가 없어서도 그렇지만 실력도 모자랐고. 어쨌든 잘 안 되서 애를 먹었지. 그러다가 부산에서 남부문학이라는 책이 나와서 그 남부문학이라는 책의 동인에 소설을 써내고 그 책을 전국에 다 보내고는 했어. 그때 작품 제목이 부처님의 멀미였는데, 시문학이라는 잡지사에서 이 부처님의 멀미를 시문학에 한 번 더 실어도 되겠냐고 연락이 와서 좋다고 했지. 해서 그것을 명색이 데뷔작, 등단작으로 삼아서 활동을 하고 있어. 그때가 1977년도였지.

Q. 요즘 젊은 사람들은 조총련’, ‘민단이나 보도연맹같은 단체와 당시의 상황, 분위기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책을 읽다가 따로 찾아보곤 했어요. 치우속 임상태가 허동식에게 돈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허동식은 국가의 감시와 조사를 받으며 고생을 했는데요, 이렇게 조총련에 관해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일화나 사건이 있나요?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A.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고,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었지. 큰 피해는 아니지만 나도 일종의 피해를 본 사람이고, 아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 내 뒤를 늘 형사가 따라다니는 형편이었으니까.

형사가 선생님의 뒤를 계속 따라다녔다고요?

형사가 따라다닌다는 것이 뭐냐면, 자주 와서 내 근황을 살피고 묻고 그러는 거야. 아주 기분이 안 좋았지.

 Q.치우가 선생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고 작품 속 임상태라는 친구도 실존인물이라고 들었어요.

A. 표제작 치우를 포함해서, 치우라고 하는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대개 내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거기에 픽션을 많이 가미 했지. 단편 치우의 임상태라는 사람은 실제 내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일본에 살고 있어. 책에서는 죽은 걸로 했는데 잘살고 있지.

선생님의 작품을 보시고 친구 분의 반응이 어떠셨나요?

읽고 나서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느낌이 어땠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 최근에 해가 바뀌었으니까 한 번 전화를 해서 내가 니를 죽은 걸로 했는데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봐야지.(웃음)

Q. 작품 속에 종교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A. 내가 천주교신자이다 보니까, 여기도 모시고 있고 (선생님은 책장 위에 올려져 있는 마리아상을 가리키셨다.). 부산 천주교 평신도 대표를 했고 지금도 천주교에 열심히 나가고 관심도 많아서 작품에 그런 것이 조금씩 조금씩 많이 묻어나오지.

Q. 신앙을 가지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 그게 80년이니까 내가 마흔네, 다섯 살 때쯤 되어서였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이 전부다 성당에 나가라하셨거든. 그래서 할머니 유언에 따라서 아버지께서 제일 먼저 입교 하셨고 가족이 다 입교하면서 나는 제일 늦게 입교했지.

  Q. 작은 촛불 하나에서 준호는 힘겨운 현실을 종교의 힘으로 버텨나갑니다. 선생님께서도 신앙심으로 힘든 순간을 이겨내신 적이 있나요?

A. 가정살이를 해보다 보면 여러 가지 남이 모르는 고민, 걱정거리가 항상 생길 수가 있어. 오늘도 화장실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고치고 있지(실제로 나를 맨 처음 맞아준 사람은 수도꼭지를 고치러 오신 아저씨였다).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일이 많은데 대부분 경우에 스스로 참기도 하지만, 참기 힘든 일은 하느님에 의지해서 극복해 나가고는 하지.

Q. 희망의 땅에서 필곤이 형을 찾아 떠난 나라는 캄보디아였습니다. 상황묘사와 설정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 글을 읽고 있으니 캄보디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실제로 선생님께서 캄보디아에 가보신 적이 있나요?

A. 캄보디아에 가서 한 일주일 봉사활동을 하고 왔어. 의사가 몇 분가서 의료봉사를 하는 팀에 끼어서 따라갔지. 나는 의사도 아니니까 의료봉사는 못하고 다만 어려운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어린이 에이즈 환자 병원에 가서 놀이기구도 고쳐주고 페인트칠도 하는 봉사를 했지. 한 일주일 가까이 했는데, 소설가는 항상 어딜 가든지 소설 쓸 욕심으로 여러 가지 취재를 하거든. 거기서 나도 다른 사람 모르게 취재도 많이 하고 자료도 많이 구해 와서 집에 와 분석을 하고 쓴 거야.

학살박물관도 직접 가보신 건가요?

, 가봤지. 안 가보면 안 되지. 또 바탐방이라는 먼 곳에도 가서 피가레도 주교님도 만나보고, 한국 원불교에서 파견된 원불교 교단에도 가보고 다 만나보고 했지. 그래서 앙코르와트라고 하는 관광지에는 전혀 못 가봤지.

 

 

-햇살을 받으시며 사진 한 컷.

 

Q. 치우라는 소설집에서는 유독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저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 친구의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죽음은 언제나 무겁기만 한 주제인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A. 지금 내 나이가 일흔여덟 살인데, 나도 나이가 더 들기 전에는 죽음을 대단히 두려워했고 또 죽음을 어찌됐든 피해야 된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이제 죽음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죽음을 긍정하고,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두려워할 거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었어. 그야말로 지금은 어떻게 죽나 하는 준비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지.(웃음)

 Q. 저는 아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작은 촛불 하나와 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부부의 마음이 잘 드러난 풀꽂 화분처럼 가족의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A. 풀꽃 화분은 거의 실제 이야기야. 실제로 아내가 아파서 입원을 했는데, 내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고생을 했지. 사람 하나 놓치기 쉽다 하는 염려 때문에 고생을 했어.

ㅠㅠ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이제 그 병은 완전히 치유가 됐는데, 지금은 무릎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

 Q.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어떤 것인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흔히 작가와 작품을 두고 볼 때, 작품은 자식들, 작가는 부모라고 비유를 많이 하지. 모든 자녀들은 부모에게는 다 귀한 자녀이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다 아끼고 애착 가는 작품이니까, 나도 치우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을 다 아끼지. 그래도 표제작으로 내세운 치우가 조금 더 애착이 간다고 할 수 있어. 왜냐면 치우라는 소설집 전체가 우수 문학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그전에 그 작품이 다른 곳에서 우수 문학 작품으로 선정돼서 돈을 좀 받았거든. 그래서 잘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저도 치우를 제일 많이 읽어본 것 같아요.(웃음)

Q.치우를 보기 전까지 저는 옛날의 허동식과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만약 제게 허동식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임상태를 뜯어 말렸을 겁니다. 그런데 치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죽음만 겨우 면할 수 있는 극도의 가난 앞에서 사상을 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나 혼자만의 고통이 아닌 가족 전체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사상을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았어요. 아마 저 같이 생각이 바뀐 독자가 많을 것 같아요.

A. 그때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나이가 서른이 되기도 전이고 반공교육이 철저히 머리에 박혀가지고 살 때니까 친구를 말렸지. 나이가 들고 생각의 폭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의 문제, , 우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살아가는 문제지,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지. 그 소설처럼 나이가 더 들면서, 그때 굶다가 굶다가 더는 못 굶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도망치다시피 가는 친구를 내가 이해를 못하고 끝까지 말리려고 했던 것을, 실제로 말렸고, 많이 후회하고 뉘우쳤지. 사실은 지금도 걸핏하면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서 비판만 하면 종북, 친북 이렇게 몰아붙이는데 사실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우리가 전부다 북한을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종북, 친북 이런 식으로 말하면 기분이 나쁘지.

Q.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치우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작품인가요?

A. 우선 이번 소설집이 가장 품위 있게, 맵시 있게 책이 나왔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고, 그래서 출판사 쪽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또 다들 책 표지도 잘 되었다고 무게 있게 잘했다고 해서 출판사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 적도 있지. 이런 저런 의미에서 치우는 의미 있고 뜻 깊은 책이고 더군다나 이제 우수 문학 도서에 선정되어서 그런 혜택도 받으니까 마음이 좋지.

 

<인터뷰를 마치고>

준비했던 질문이 다 끝나자 선생님은 인삼차를 끓여 오시겠다며 나가셨어요. 혼자 선생님 작업실에 있으면서 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눈에 띄는 건 단연 수많은 책들이었습니다.


 마셔요.

감사합니다. (하트)

설탕 말고 꿀을 좀 넣었어.

정말 맛있어요!


손수 끓여주신 인삼차는 달달하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바로 홀짝인 거 있죠.(눈물) 따뜻한 인삼차에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약간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듯 했습니다.


책이 굉장히 많네요.

그래, 책이 많지. 여기가 내 작업실이거든. 책 한번 구경해요.


 

그러고 나가셔서 저는 구경하실 시간을 주시는 건가, 하고 혼자 작업실의 책을 구경했죠. 그런데 선생님이 나와 보라고 하시더군요. 쫄래쫄래 나가보니 웬걸, 집 전체 여기저기에 책이 있었습니다. 거실을 비롯해서 어떤 방에는 벽이 안 보일 정도로 사방이 책이었어요. 게다가 이중으로 꽂혀 있어 그 수를 짐작하기 더 어려웠지요.


 우와. 그럼 책이 다 몇 권정도 인가요?

만 권정도 되려나. 평생을 모아온 책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지금 이 책을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이야. 요즘 대학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문학관을 지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야.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은 늘 바쁘지. 매일 글을 쓰고 있어. 어제 저녁에도 서울 문예지에서 소설을 써달라는 연락이 왔고, 지금 다른 문예지에도 글 써야 할게 있고, 늘 글을 쓰고 있지.

장편도 준비하시고 있다고 들었어요.

장편도 금년에는 책을 내야 하는데 어디서 내야 하느냐 고민이야. 워낙 요새 책이 안 팔리고 책을 내줄 출판사도 쉽지 않고 고민하고 있지.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했어요.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인터뷰 해주셨으니까 글 정말 잘 써볼게요!

그래, 잘 써 봐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가려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질문 좀 더 준비해갈걸. 말을 좀 더 잘 해볼걸.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주신 선생님과 악수를 마지막으로 내려왔는데, 노트북을 놔두고 왔지 뭐예요. 다시 허겁지겁 올라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노트북을 가지고 나왔어요. 웃으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한참 어리고 서투른 저에게 귀한 시간 내주시고, 손녀처럼, 제자처럼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