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병아리 편집자입니다 :)

어제 『우리들, 킴』의 저자 황은덕 선생님과 함께하는 강연은 무사히 잘 마쳤답니다.

자세한 소식은 사진과 함께 정리한 뒤 포스팅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국제신문에 올라온 『우리들, 킴』 관련 기사를 먼저 보여드릴게요~

***

한인 입양인 오랜 탐색…결국 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더군요
황은덕 소설집 ‘우리들, 킴’ 발간

- 7편 중 4편이 입양인 이야기
- 관련단체서 봉사 등 고민·관찰
- 다양한 시점으로 입양문제 다뤄

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를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름’이라고 오해한 양부모들이 붙여준 이름. 부산 소설가 황은덕이 또다시 한인 입양인의 이야기를 엮어 소설집을 냈다. 2009년 발표한 ‘한국어 수업’부터 이어진, 오래된 탐색이다. ‘우리들, 킴’(산지니)에 실린 7편의 소설 가운데 입양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만 4편이다. 7편 모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출산의 주체라는 이유로 고통을 떠맡는 여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하나로 엮인다.

‘엄마들’의 배경은 미혼모 쉼터다. 10대인 ‘나’는 임신해서 이곳에 들어왔다. 아이 아빠는 같이 피자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정우. 임신 사실을 알고 줄행랑쳤고 나중에 엄마를 데리고 나타나 ‘애를 떼라’고 협박한다.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다가 쉼터로 들어온 ‘나’는 비슷한 처지의 임신부들을 만난다. 마침내 아이를 낳은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아기를 보지 않는다. 보게 되면 키우고 싶어질까 봐.

표제작인 ‘우리들, 킴’은 벨기에 한인 입양인들 이야기다. ‘킴’은 오랜 기다림 끝에 생모를 찾았다. 생모는 생부를 찾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킴은 몰래 수소문해 새로운 사실과 마주한다. 유부남이었던 생부가 엄마와 바람이 나 자신을 낳았다는 것, 생부는 몹쓸 병에 걸리자 본처에게 돌아가 숨을 거뒀다는 것. 벨기에로 돌아간 킴은 말한다. “한국은 여전히 고아를 수출하고 있고, 내 가족은 여전히 가난했다”고. 그리고 벨기에의 킴들은 습관처럼 읊조리며 서로 위로한다. “더 나쁜 경우가 될 수도 있었잖아.”

외국 가면 잘 살 거라며 보내버린 아이들이 어떤 편견과 차별을 견뎌야 하는지를 상상한 ‘글로리아’ 그리고 ‘우리들, 킴’의 외전과도 같은 ‘해변의 여인’까지 작가는 입양 문제를 다양한 시점으로 응시한다. ‘열한 번째 아이’에서는 10대 손자가 낳아온 아이를 떠맡으면서 생애 열한 번째 양육으로 내몰리는 또 다른 여성, 할머니의 삶을 그렸다.

‘불안은 영혼은’에서는 입양 문제와 닿아 있는 불륜을 다룬다. ‘정수는 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시 흐릿해졌다. 이런 순간의 그녀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현실 세계에서 뚜렷이 느껴지지 않는 존재감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녀의 무게였다.’ 불륜 관계에서 많은 남성은 상대 여성의 실재를 부정하고 편리한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파탄의 불안함을 안고 있다. 그 결말에 남겨진 아이. 입양아의 상당수는 그렇게 생겨난다.

입양이라는 주제로 파고들면서도 주제의식만 도드라지거나 작위적이지 않고, 재미도 힘도 있는 훌륭한 소설을 써낸 비결.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체험하는 작가의 용기, 그리고 깊은 진심일 것이다.

“오래전 미국에서 생활할 때 제가 가르치던 한국어 수업반에서 한인 입양인을 알게 됐고 그를 모티브로 소설을 썼죠. 그때부터 부채의식이 생겼다고 할까요. 한국에 돌아온 뒤 입양인 권익단체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해외 입양인들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부모를 찾아 부산에 오는 입양인이 있으면 통역을 해주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입양 이전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미혼모 문제나 조손 가정 육아 문제에도 관심이 갔어요. 더 알고 싶어 쉼터 봉사도 하게 됐고, 그게 또다시 소설이 된 거죠.”

 

국제신문 신귀영 기자

기사 원문 읽기

 

우리들, 킴 - 10점
황은덕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비회원

 

출간 후 많은 언론이 주목했고 그 덕분인지 5월 초판이 나온 후 1달여 만에 2쇄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10월 캠브리지대학으로부터 책의 판권이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은 후 3년여에 걸친 출간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가치 있는 책을 알아봐 준 언론과 독자들이 있어 힘이 납니다.

 

망자들의 세계에는 피아 구분이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으로 생긴 전사자의 개별 무덤, 마을 집단묘지 뿐만 아니라 무명 외지인들의 무덤도 함께 지킨다. 자기 지역에 연고가 없는 민간인은 물론 외국 군인들을 위해서도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다. 망자들의 세계에는 피아 구분이 없다.
(…)
책은 학계에서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던 유령의 의미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

 

베트남전 전몰 영혼을 내편 네편 없이 보듬다

“현대세계의 전쟁과 집단기억을 어떻게 조명할 수 있는 지 보여줬다”는 극찬과 함께 가장 우수한 동남아연구서에 주어지는 제1회‘조지 카힌 상’을 받았다. 무당들이 억울한 혼을 불러내 만나는 과정, 접신의 과정, 사당을 세우고 지전을 불태우면서 유령들을 편히 잠재우는 과정 등 저자의 상세한 취재 기록이 쭉 이어진다.
(…)
무당을 통해 죽은 원혼과 직접 대화해보기도 하고, 집요한 취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일부 지역민과 지방정부의 훼방을 뚫어가며 기록한 것들이다. 그 덕에 이제껏 소개된 저자의 책 가운데 가장 손쉽게 읽히기도 한다.
한국일보

 

전쟁 트라우마…그들에게 기억은 곧 치유다

전쟁 영웅도, 조상도 아닌 유령을 학술적으로 분석해 베트남전쟁 희생자에 대한 기억이 주는 사회적, 정치 경제적 의미를 조명한다.
(…)
권 교수는 베트남에서 발생한 잔혹한 폭력과 대규모 죽음의 역사를 치밀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미국 등 서구 전쟁의 아픔은 많은 학자와 후손에게 기억됐다. 반면 베트남을 비롯한 비서구 지역의 아픔은 잘 다뤄지지 않았다.
(…)
베트남의 이야기지만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대규모 살상은 6·25전쟁을 겪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 유령 현상에서 관찰되는 화해와 연대의 가능성은 아직도 냉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사회에 의미심장한 윤리적·실천적 교훈을 남긴다”고 강조한다.
한국경제

 

우리는 산 자처럼 싸우지 않는다오” 망자의 음성 듣고, 가족이 되는 이들

때때로 인류학자로서의 학술적 언급이 등장하지만 책은 대부분 ‘발품의 기록’이다. 저자가 만난 베트남인들은 개별 무덤과 집단 묘지를 만들어 유령들을 돌본다. 가족의 연은 물론 연고도 없는 민간인, 외국 군인 모두를 위해 향을 피운다. 구천을 헤매던 유령들은 윤리적 책임감에 따른 산 자들의 행동을 통해 강력한 상징적 변환을 거쳐 고향이 아닌 마을의 터주신이 되고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된다.
경향신문

 

인류학적 성찰 담은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책은 베트남 전쟁 이후 '전쟁유령 의례'에 초점을 맞춘다. 이 현상은 1980년대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된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경제적, 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뉴스1

 

생생한 역사적 증거로 베트남전 유령 조명

런던정경대 냉전연구센터 오드 웨스타드 교수는 이 책에 실은 추천사에서 "권헌익의 책은 탁월하다. 역사학, 인류학, 문학 연구를 아우르는 이 책은 지금까지 어떤 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고 썼다.
국제신문

 

‘유령’ 연구로 다시 읽어낸 베트남, 베트남전

지은이의 연구는 냉전에 대한 유럽 중심적인 인식과 연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유럽에서 냉전은 양극단의 세력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지정학적 경쟁을 펼쳤던 “상상의 전쟁”이라고 봤지만, 비서구 탈식민 지역에서 냉전은 대규모 학살의 경험이었다. 비참하고 폭력적인 경험 속에서도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네트워크가 싹텄다는 것을 포착한 지은이의 연구는, 냉전 연구의 본질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겨레

 

냉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

베트남의 유령 관련 문화가 비합리성이나 무지몽매의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 도덕적 가치, 규범, 삶의 물질적 조건 등과 복잡하게 연동돼 사회적 현실의 중요한
축으로 접근한다.
교수신문

 

 

Posted by 산지니북

얼마 전, 일본 이와나미쇼텐의 <사고의 프런티어> 시리즈 중 5권이 

동시에 번역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님께서 푸른역사에서 나온 이 책들을 소개해주셨는데요. 

<역사/수정주의>, <인종차별주의>, <권력>, <사회>, 그리고 시리즈의 입문서 격인 <사고를 열다> 입니다.

기사 읽기: “일본, 전후 책임 완수가 ‘대일본제국’ 연속성 끊는 길”


기사에서 소개해주신 대로 <사고의 프런티어> 시리즈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급부상한 키워드를 통해 

지식체계와 정치사회적 현실의 상호작용을 분석"합니다. 

"일본에선 1999년부터 지금까지 총 32권이 발간"되었는데요.


국내에 <사고의 프런티어> 시리즈가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저희 출판사에서는 작년에 이 시리즈 중 

정치학자 우에노 나리토시의 『폭력』을 출간했었죠.



2006년에 나온 원서가 산지니를 만나게 된 것은, 

젊은 연구자의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부산에는 '해석과 판단'이라는 젊은 학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2011년, '해석과 판단'의 연구 주제는 '폭력'이었는데요.

이때 모임의 구성원 중 한 명인 정기문 선생님께서 일본에 연수를 가 계셨고,

바로 이 책을 꼭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다고 합니다.

부산으로 돌아와 멤버들에게 이런 생각을 전하고,

저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공식적 번역 경험이 없는 정기문 선생님이셨지만, 저자는

지역, 그리고 젊음이 가질 수 있는 활력과 가능성의 측면에서 

흔쾌히 번역을 승낙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기문 역자의 목소리로 직접 『폭력』이 어떤 책인지,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으셨던 이유는 무엇인 들어볼까요.


주체 내부에 꿈틀거리는 폭력과 주체가 살아가는 외부적 구조가 양산한 폭력의 층위를 고찰하는 『폭력』의 논의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는 폭력적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근대 국민국가라는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비)국민에게 가해지는 폭력, 글로벌한 시대에 일상적 불안을 불러오는 테러, 질서와 폭력, 이성과 폭력, 우정과 적대 등의 논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지금 여기의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라 명명했습니다. 전쟁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전 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의 죽음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20세기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폭력은 인간의 야만적인 행동이 아니라 합리성과 이성이 얽혀 있는 것임을 확인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기문 역자님께서 말하셨듯이, 오늘날의 글로벌 테러, 근대 국민국가의 폭력 등은 21세기에도 폭력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자 우에노 나리토시는 아렌트, 슈미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20세기 전반 독일어권 학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폭력의 근원을 다시 물으며, 폭력과 뒤얽힌 근대, 국가, 전쟁, 정치, 이성 등의 논점을 충실하게 파고듭니다.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폭력 그 자체에 집중해 폭력이 지닌 여러 층위를 고찰하는 것이죠.

///

역사 수정주의를 비롯해, 

근래에는 국민국가가 (비)국민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고의 프런티어> 시리즈의 『폭력』을 통해 이러한 쟁점들을 

그 뿌리부터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관련글 읽기

  • 2014/05/26 『폭력』 읽기 전 준비운동!!
  • 2014/03/27 우리 시대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폭력』(책소개) (1)
  • 2014/03/27 로쟈가 추천한 책


  • 목차

    더보기



    폭력 - 10점
    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표절과 폭력

    출판일기 2015.06.23 15:55

    표절과 폭력

     

    요즘 출판계 이슈가 되고 있는 두 단어입니다.

     

    마침 저희 목록 중에 표절과 폭력을 다루고 있는 책이 있어서 소개해봅니다.

     

     

     

     

     

     

    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

     

    표절의 정의와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의 문제,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차이, 표절과 창조적 모방의 관계 등을 기술하는 책이다. 문학, 학문, 음악, 미술, 영화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표절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 - 10점
    리처드 앨런 포스너 지음, 정해룡 옮김/산지니

     

    1. 2012/09/08 오랫만입니다, 미스터 포스너.
    2. 2009/01/12 표절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

     

     

     

    『폭력

     

    폭력.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폭력은 단순히 인간의 야만성으로만 이뤄진 걸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폭력은 사라질까? 이 책은 정치철학가들의 사상으로 폭력을 다층적으로 사유하고 정리한 책이다.

    폭력 - 10점
    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산지니

     

  • 2014/05/26 『폭력』 읽기 전 준비운동!!
  • 2014/03/27 우리 시대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폭력』(책소개) (1)
  • 2014/03/27 로쟈가 추천한 책


  • Posted by 산지니북


    다들 프랑스의 <샤를리 엡도>지 테러 사건을 언론지상에서 접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는데요.

    저는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과연 프랑스만을 옹호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한참 고민스러워졌습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며칠 전,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사건의 이면을 들 보면, 약자들이 문화권력자인 서구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 '폭력'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테러범들을 옹호한다는 반대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하였고요. 국내에서도 '표현의 자유'냐 혹은 '폭력의 또 다른 옹호'냐 하는 논쟁으로 뜨거웠습니다.


    [이택광의 왜?]‘표현의 자유’라는 상식에 대한 도전

    >>원문보기

    프랑스의 시사만평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성역 없는 풍자’를 날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주간지는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성역’에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종교지도자들도 포함시켰다. ‘성역 없는 풍자’는 근대 이후 계몽된 시민의 권리 중에서도 최상에 속하는 것이다. 일찍이 많은 사상가들이 앞다퉈 요구하고 옹호했던 권리가 바로 ‘표현의 자유’였고, 이 자유를 실현하고 있다는 척도로서 ‘성역 없는 풍자’에 대한 개인이나 사회의 개방성이 거론되곤 했다. 

    이런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는 근대 문명의 원리로 간주되었고, 이를 억압하거나 배척하는 행위는 야만으로 규정되었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난입해서 만화가들을 살해한 알카에다를 자처하는 무장 괴한들의 행위를 야만이라고 부르는 서방 세계의 입장도 이런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모든 무장폭력은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행위다. 이런 의미에서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비판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사망한 만화가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연대의 목소리는 테러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용인하지 못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차이는 미세하게 보이지만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는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가 일어난 그 원인을 드러내는 증상에 가깝다. 정작 이 구호에서 빠져 있는 것은 이번 테러를 촉발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누가 샤를리인가”라는 질문이다. 과연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에 무슬림은 포함될 수 있는가. 무슬림이 “샤를리”이고자 한다면, 그는 세속주의를 용인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내가 샤를리다”라고 주장하는 세속주의자가 무슬림을 “샤를리”로 인정하려면 종교적 신념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샤를리 에브도가 평소에 주장해온 ‘성역 없는 풍자’는 이런 관용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었을까. 표현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이 주간지는 ‘성역’에 대해 세속주의의 관점을 고수하는 입장에 더 가까웠다. 이 세속주의는 근본주의자에게 커다란 위협이었고, 따라서 주간지는 이슬람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무슬림 무장단체들에 ‘눈엣가시’였다. 이런 위협이 현실적이었기에 문제의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샤를리 에브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것이다. 

    내부적인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화는 이주노동자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 결과적으로 공존은 이제 선택 사항이라기보다 필수 사항이다. 이런 조건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근대적 원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모든 이들에게 허락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지만,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는 항상 일어난다. 그 까닭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권력 때문이다. 말하자면, 다 같은 표현의 자유라고 해도 권력의 유무에 따라 결과는 각기 다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권리였다. 권력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피곤한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는 표현할 것이 있더라도 쉽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는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장치였던 셈이다. 독일 철학자 칸트도 이런 맥락에서 이성을 공공적으로 사용하는 것, 쉽게 말해 언론과 학문의 자유는 무한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는 화폐가치처럼 모든 것을 동일한 가치로 나누어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약자의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이다. 이번에 발생한 프랑스의 비극은 오늘날 상식으로 굳어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테러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층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극우주의자들이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혐오감에 근거한 테러 행위를 ‘애국’이라고 치장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프랑스의 비극이 소극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저는 개인적으로 홍세화 선생님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자라며, 프랑스에 대한 좋은 시각으로 성장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한 그의 프랑스 생활을 보며, '똘레랑스'(관용)라는 프랑스인들의 고유한 정신이 무척이나 부럽기도 하였는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신이 훼손되고, 종교적 대립이 극심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저는 이 기회를 계기로 기독교인인 프랑스인들이 먼저 반성하고 성찰한다면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개선되지 않을까 하네요.

    무차별 시민을 테러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나, 상대주의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논리도 있지만요)

    이번 기회로 프랑스인들이 모두 'Je suis Charilie'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던데, 그들이 외치는 자유는 '프랑스인들만의 자유'인걸까요? 프랑스인들의 자유가 프랑스인들에게 소중한 만큼, 저는 이슬람인들의 종교적 가치도 무슬림들에게 소중하다고 봅니다. 



    계명대 독일러문학과 장희권 교수의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


    이슬람 첨탑 금지 홍보 벽보. 첨탑이 미사일 탄두 모양으로 묘사됨. <바디쉐 짜이퉁>, 2010년 10월 12일. 독일사회의 이슬람 반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려는 게 아닙니다. 기사(링크 참조)에도 나와 있듯 노르웨이인들 또한 무고한 이슬람 교도들을 더 많이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왜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묻혀버렸나 하는 것이죠.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서구언론 위주로 편향적으로 보도된 우리 언론의 문제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하는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습니다. 과연 무슬림들은 총기 난사라는 해결책밖에는 없었던 것일까? 그들이 믿고 있는 신 또한 이런 결말을 바랐던 것일까, 하고 말이죠. 세월호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이 이준석 선장과 유병언 회장에 있듯이요.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근본 원인이 우리 사회구조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듯, 이번 사태의 원인 또한 단순히 무슬림 테러리스트의 잘못만은 아닐 것입니다.

    '펜에는 펜으로 대항하라'라는 논지는 사실 이택광 교수가 지적했듯, 약자인 무슬림들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프랑스인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항할 마땅한 '펜'(문화 권력)이 없기 때문이죠. 그들이 칼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번 더 고찰한다면 글로벌과 전 지구화 사회의 이주현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족 갈등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네요.


    함께 읽어볼만한 책 :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


    글로컬리즘과 독일문화논쟁 - 10점
    장희권 지음/산지니


    *본 포스팅은 엘뤼에르 편집자 개인의 생각으로, 산지니 출판사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59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폭력


    지난 25일 서면 러닝스퀘어에서 우에노 나리토시의 『폭력』을 번역한 정기문 역자와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오늘의문예비평의 주간이신 전성욱 평론가가 대담을 맡았습니다. 이날 대담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전합니다.



    폭력이 화두가 된 시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


    정기문 비평공동체 <해석과 판단>에서 활동하면서 6집을 준비할 때 용산참사, 국가폭력 등이 국가폭력이 대두가 된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주제로 공부하던 시기에 제가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폭력에 대해 이어 공부하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와 저자에게 번역을 하고 싶다고 메일로 보냈습니다. 다행히 우에노 나리토시 선생이 허락해 주었고, <해석과 판단> 6집에 일부를 번역해서 실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와나미 출판사의 프론티사고 시리즈에 하나로, 이 책을 쓴 저자 우에노 나리토시는 푸랑크푸르트 학파에 기저를 두었고 정치 철학을 연구했습니다. 후기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고베 대학에서 폭력이라는 주제로 13회를 걸쳐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전성욱 이 책을 읽으면서 폭력이 인간 실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폭력이 인간 외부의 사건이 아닌 내부에 존재하며, 인간이 이성을 통해서 폭력을 제거하고 없애려고 해도 다시 인간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본질이라는 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가 책 후기에 포스터모더니즘이 유행할 때, 최신 사상가의 사상으로 쓴 전위가 아닌 벤야민, 한나 아렌트, 아도르도 등 옛날 사상가의 사상으로 후위의 위치로 썼다는 게 인상에 남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독일어 인용 등을 포함한 일본어 텍스트를 번역하는 어려움에 번역자에게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려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기문 저자가 쓴 글을 한글 그대로 직역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설명한 책이나, 사상가들의 사상이 한국에 이미 나와 번역되어 있다면 그 책을 찾아 통상적으로 쓰는 어구로 번역했습니다. 특히 본문 기본문헌 안내에 쓰인 책 중 한국에 번역된 책들도 있어 그 부분은 한국에 나와 있는 책의 서지정보를 하나씩 찾아가며 옮겨야 했기에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습니다.






    전성욱 번역을 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기문 참을성(웃음), 한 구절이라도 막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보통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 번역이 쉽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일본어 번역에 있어 한자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똑같은 한자라도 한국에서는 문장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쓰인 경우가 많아 어떤 단어로 번역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전성욱 이 책에서는 바이오런스(Violonce)와 게발트(Gewalt)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 주신다면 어떻게 다른가요?


    정기문 바이런스는 법외적으로 분출하는 폭력이고 게발트는 법에 의해 강제적으로 행사되는 폭력입니다. 이걸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대 로마신 야누스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일상 시에는 문을 지키고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뜨거운 물을 부어 적군을 물리칩니다. 

    바이런스는 주체적으로 되지 않은 힘으로, 방화를 한다거나 갑자기 상대방을 때리는 게발트는 주체를 타자에 의해 통제되는 힘을 말합니다.

    20세기는 국가와 국가와의 전쟁이라면, 21세기 항시적인 불안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불안에 대해 이 책은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성이 폭력을 다스릴 수 있느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내 안에 적을 받아들이는 강인한 주체와 내 안에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허약한 주체, 결국 강인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용하면서 정체성을 만드는 게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어떤 주체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책을 읽으면서 사유하면 좋겠네요. 폭력과 얽힌 주체, 이성 등 평소하지 못했던 주제로 사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와주신 모든 독자분께 감사 드립니다:)

     


    *

    폭력 - 10점
    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계간 『오늘의문예비평』과 함께하는 산지니 59회 저자와의 만남은

    『폭력』을 번역한 정기문 역자입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이다’라고 명명했습니다. 세계전쟁, 지역분쟁, 내전 등 전쟁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배경으로 이전 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의 죽음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폭력은 사라졌을까요?


    이 책은 아렌트, 슈미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20세기 전반 독일어권 사상가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야만이라고 생각했던 폭력의 근원을 다시 물으며 폭력에 대한 사유를 다층적으로 접근한 책입니다.


    어느 때보다 화두가 된 폭력, 폭력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자 합니다.


    행사 끝나고 역자와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뒤풀이도 있습니다. 




    일시: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저녁 7시
    장소: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행사는 1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대담: 전성욱(『오늘의문예비평』 편집주간)

    주최: 산지니, 오늘의문예비평






    Posted by 동글동글봄


    안녕하세요. 편집자 Y입니다


    다른 출판사 블로그에 가보면 다들 이렇게 자기소개를 시작하길래 저도 한 번 따라 해봤습니다. 신기하게도 산지니는 편집자들 성이 모두 달라 저희는 성을 별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한때는 우리도 편집자란 호칭 말고 OO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 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런 소중한 의견은 마음속에만 간직하기로 했답니다.


    이제 본론을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조금 쑥스럽네요.




    이렇게 망설이는 이유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격주간 잡지 <기획회의> 368호에 

    산지니 책『폭력』이 실렸습니다만, 아주 조그맣게 실렸기 때문입니다ㅎㅎ

    그러나 무수히 쏟아지는 책 중, 

    정치사회 분야에서폭력』이 소개되었다는 건 의미가 크겠죠^^?


    사실 이렇게 말해도

    어디든 독자와 만날 수 있다면! 


    아! 아직 폭력에 대해 잘 모르신다면!!


    이 책의 저자 우에노 나리토시는 아렌트, 슈미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20세기 전반 독일어권 사상가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야만이라고 생각했던 폭력에 대해 다시 묻습니다. 


    단순히 폭력만을 논한 책이 아닌, 폭력과 뒤얽힌 근대, 국가, 전쟁, 정치, 이성 등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에 입각해 충실하게 논의를 펼친 책입니다. 


    그러니까 저자는 폭력을 논쟁의 인물로 두고 정치사상가들의 증언으로 폭력에 대해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찾아가는 거지요^^






    아무래도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책 속으로 들어가야겠죠ㅎㅎ 


    아직 책에 빠지기 전 준비운동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다가오는 수요일 5월 28일 저녁 7시

    부산 서면 러닝스퀘어에서 열리는 저자와의 만남에 초대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오신 분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산지니 단행본을 선물로 드립니다.


     어떤 책이 선물로 좋을지 저희 역시 고심하고 있답니다. 홍홍


    그럼 이날 뵙겠습니다! 뒤풀이도 있습니다.




    이 궁금하다면


    ■ 행사 정보가 궁금하다면 


    *

    폭력 - 10점
    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안녕하세요, 전복라면입니다.

    마지막 발간일이 올해 3월 21일이었으니 두 달 쉬었네요. 주간 산지니에서 격월간 산지니가 될 위험......은 물론 없습니다. 2주는 기삿거리가 없어 쉬었고 그 이후부터는 아시다시피 세월호 사태가 일어나 '출판계 농담리더의 필독지' 연재를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이제 연재는 재개하지만 여전히 추모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시대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가?『폭력저자와의 만남 정보는 여기로

    http://sanzinibook.tistory.com/1113

    Posted by 비회원

    『폭력』

    우에노 나리토시(上野成利) 지음  

    정기문 옮김




    우리 시대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21세기는 여전히 폭력의 시대다”


    폭력.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폭력은 단순히 인간의 야만성으로만 이뤄진 걸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폭력은 사라질까? 이 책은 정치철학가들의 사상으로 폭력을 다층적으로 사유하고 정리한 책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이다’라고 명명했다. 세계전쟁, 지역분쟁, 내전 등 전쟁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배경으로 이전 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의 죽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폭력의 세기로서 20세기를 되돌아볼 때 주목할 사건은 바로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량 학살 사건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충격을 주었던 건 유럽 전역에서 유럽인을 수용소로 이송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철도 시스템이 인간의 합리성으로 냉철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폭력의 세기로 20세기의 경험은 이제 폭력이 더 이상 인간의 야만적인 행동이 아니라 합리성과 이성이 얽혀 있음을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 처음 저자에게 한국어판 서문을 부탁했는데요, 그때는 힘들다고 하셨는데 책이 발간될 때쯤 바쁜 일이 끝났다고 한국어판 서문을 보내 주셨습니다. 아-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안 된다고 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저자에게 부탁한 정기문 역자의 성실함이 있었습니다:) 




    본문만큼 충실한 기본문헌 안내입니다. 책 이름을 나열한 참고문헌이 아니라 본문에 나오지 않지만 폭력을 이해할 만한 책들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아직 한국에 출판되지 않는 책은 한국어로 번역하고 각주에 원서를 달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습니다. 그래서 역자가 본문만큼 번역하는 것이 힘들었지요^^ 원서에서는 3부로 구성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우에노 나리토시는 아렌트, 슈미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20세기 전반 독일어권 사상가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야만이라고 생각했던 폭력의 근원을 다시 물으며, 폭력과 뒤얽힌 근대, 국가, 전쟁, 정치, 이성 등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에 입각해 충실하게 논의를 펼친다. 이는 어떤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폭력 그 자체에 집중해 폭력이 지닌 여러 층위를 흥미롭게 고찰하게 한다. 저자가 20세기 사상가들의 사상을 주목한 이유는 최근 연구 동향이나 스타일만을 좇지 않고 그 시대에 입각해서 논의를 펼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는 책 기본문헌에 사상가들의 사상이 어떠한 시대 배경 속에서 쓰였는지 충분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일어날 폭력에 대해 조금 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다.



    * 표지만큼 중요한 뒤표지입니다. 출판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책 뒤에 문구 뽑는 일이 참 재미있어 보였는데요, 막상 편집자가 돼서 책에 어울리는 문구를 뽑으려고 하니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독자에게 어떤 말로 첫 마디를 전해야 할지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폭력 역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제목이 단순해서, 사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지만, 그래도 독자들에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 한나 아렌트가 '20세기는 폭력의 세기다'라고 말한 문장을 변용해서 문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폭력의 어원부터 정치 철학가들의 사상까지

    다양한 담론으로 폭력 고찰


    저자는 폭력의 의미를 독일어 게발트(Gewalt)와 영어 바이오런스(violence)의 어원에서 찾는다. 게발트는 ‘관리, 통제한다’는 의미로 강제력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뜻은 ‘권력’에 가깝다. 반대로 바이오런스는 이러한 함의가 없다. 바이오런스는 어떤 강렬한 힘이 인간의 통제를 넘어 솟구친다는 뜻을 가진다. 이처럼 폭력은 주체의 의지대로 되는 힘과 되지 않는 힘,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책의 저자는 폭력의 이중성을 주목하고 통제된 폭력과 통제되지 않는 폭력 등 폭력의 다양한 층위를 정치철학자들의 논의로 사유하면서 밝히고자 한다.


    Ⅰ부 ‘폭력의 정치학’에서는 게발트로서의 폭력에 집중하여 국민국가와 전쟁이라는 근대정치 현상 속에서 어떠한 폭력이 작동했고, 20세기가 되어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지형도를 제시한다. Ⅱ부 ‘폭력의 변증법’에서는 바이오런스로서의 폭력에 눈을 돌려 통제 불가능한 법외적인 폭력이 어떻게 권력 장치의 내부로 회수되었는가를 묻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을 폭력 그 자체 속에서 탐색한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일련의 고찰에 입각하여 폭력비판의 논리를 어떻게 구상해야 할지 논의한다.








    *『폭력』은 이와나미 서점에서 출간한 '사고의 프론티어(思考のフロンティア)'시리즈 중에 하나로 2006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시리즈 목록을 보면 한 가지 주제를 깊게 사유할 수 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폭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그래서 열혈한(?) 회의 끝에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애독해 주세요^^ 



    사유하는 폭력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 모색


    이 책은 폭력이 근대, 국가, 전쟁, 정치, 이성 등 복잡한 관계들과 우리 사회 곳곳에 어떻게 스며들게 되었는지 다양한 논의를 펼친다. 엎치락뒤치락 펼쳐지는 사상가들의 사상은 폭력에 대한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 폭력 전반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한다.


    벤야민 말에 따르면 사회에 통제되지 않는 질서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법 정립이 필요하고 기존의 질서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에도 폭력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슈미트 논의를 빌려 인간이 철두철미하게 ‘자기보존’을 지향하는 존재이므로 자기보존에 장해가 되는 타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말하는 자기 내부에 뛰어든 타자를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비판적 주체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적대관계를 은폐하지 않고 다원성과 투쟁을 최대한 존중하자는 것이다. 또한 분쟁에 있어서 비폭력적인 방법의 가능성으로 벤야민이 말하는 대화에 방점을 둔다. 무조건적으로 타자를 수용할 수는 없지만, 위험한 대화를 부단히 시도하면서 타자를 수용하는 방법의 타당성을 부단히 밝혀가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기술임을 저자는 이 책에서 변증법적 논법으로 차근히 풀어가고 있다.





    ◎  저자 : 우에노 나리토시(上野成利)

    1963년생.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고베대학 국제문화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분야는 정치사상·사회사상사다. 저서로는 『정치·권력·공공성』(政治·権力·公共性), 『서양정치사상사Ⅱ』(西洋政治思想史Ⅱ), 『변이하는 다위니즘』(変異するダーウィニズ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목소리의 회귀』(声の回帰), 『미학 이데올로기』(美学イデオロギー), 『근대: 상상된 사회 계보』(近代: 想像された社会の系譜) 등이 있다.


    ◎  역자: 정기문

    1981년 부산 출생.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동아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부산의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인 <해석과 판단>과 <젊은 비평가 포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폭력』

    우에노 나리토시(上野成利) 지음  

    정기문 옮김
    정치 사회 | 국판 변형| 208
    쪽 | 17,000원

    2014년 3월 17일 출간 

    ISBN : 978-89-6545-241-6 03300


    이 책의 저자 우에노 나리토시는 아렌트, 슈미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20세기 전반 독일어권 사상가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야만이라고 생각했던 폭력의 근원을 다시 물으며,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에 입각해 충실하게 논의를 펼친다.




    더보기



    ◎ 서점과 인터넷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폭력 - 10점
    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지난 주에 새 책 2권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최영철 시인의 따뜻하고 유쾌한 성장 소설 『어중씨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학자 우에노 나리토시의 『폭력』입니다.

     

    『폭력』(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의 원서는 이와나미(岩波) 서점에서 출간된 기획 시리즈 「사고의 프론티어(思考のフロンティア)」중 한 권입니다. 일본에서 2006년 초판이 나왔고 2012년 4판이 발행되어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일본어판 원서는 한국어판보다 약간 작습니다.


    『폭력』은 지난 주말 인터넷 서평가 로쟈의 블로그에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네번째 책은 우에노 나리토시의 <폭력>(산지니, 2014)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에서부터 국가폭력까지 우리 시대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부제. 처음 소개되는 저자이지만 폭력이란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서 골랐다. 일본 학자의 폭력론으로 사카이 다카시의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을 흥미롭게 읽은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 출처 : 로쟈의 저공비행

     

     

    그 덕분인지 나온 지 몇일 안됐는데도 매일 총판과 온라인서점에서 주문이 조금씩 들어 옵니다. 좋은 책을 알아봐주는 시력 좋은 독자님들 덕분이겠죠?^^

     

    『폭력』은 초판 500부를 찍었는데 사실 초판이 다 나가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합니다. 제작담당자를 슬프게 하는 책이죠.

     

    출판이 콘텐츠의 근본인 책을 다루는 문화산업이지만

    한권에서 나오는 수익이 다음 책을 내기 위한 밑바탕이 되므로

    한권 한권의 수익율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책에서 수익을 낼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내야 할 책은 내는 게 출판의 역할이겠죠.

     

     

     

    폭력 - 10점
    우에노 나리토시 지음, 정기문 옮김/산지니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새롭게 업데이트된 <해석과판단> 비평공동체 단체사진.




    지난 22일 금요일, 비평공동체 <해석과판단>의 여섯 번째 비평집 『공존과 충돌』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9명의 저자가 모인 자리라 어느 때보다 자리가 꽉 찼습니다. 저자와의 만남이 있는 이날에도 함께 모여 공부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 열정의 기운이 공간에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공존과 충돌』에서 저자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가 쓴 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자기소개와  <해석과판단>공동체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또 독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폭력에 대해 함께 토의하고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2006년에 결성된 <해석과판단> 비평공동체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평 그룹입니다. 구성원의 대부분은 대학에 시간 강사를 하거나 공부하고 있는 연구자로 경제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학이라는 학연적 위계를 넘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문학 비평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비평가들이 모여 비평적 자의식과 연구자의 고민을 자유롭게 글로 써보자며 시작된 <해석과판단>은 해를 거듭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도 바뀌고, 사회를 보신 윤인로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때론 불화도 있었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느새 비평집 일곱 번째를 준비하는 부산 문단에 하나의 비평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석과판단>에서 발간한 비평집은 1집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2집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3집 『지역이라는 아포리아』, 4집 『7개의 단어로 만든 비평』, 5집 『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으로 문학, 디지털, 지역과 젠더 등 다양한 주제로 비평집을 발간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문학에서 머무르지 않고 정치, 사회, 경제적인 맥락으로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석과판단>은 이것이 어떤 의미일지 모르나 시대를 분석하는 노력을 더 깊이 있게 담아내고자 계속적인 탐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간혹 이런 오해를 아니, 질타를 받기도 한답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 이 결과물에만 <해석과판단>이 매여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그러나 한 권의 비평집을 내기 위해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책 이상에 있다고요. 


    (그 과정에 대해 상상하는 힘이 담당 편집자로서 저 역시 부족했다고 고백하고 싶네요.  어차피 인생에 목적지는 없고 늘 매 순간 과정만 있다는 사실. 이들의 여정에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왼쪽부터 김남영 김태환 정기문 고은미 이희원 손남훈 오선영 




    이번 『공존과 충돌』에도 그 고민이 목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요. 1부,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2부, 이 폭력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용되는지 그리고 3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동체는 가능한지에 대해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곱 번째 비평집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으로, 디스토피아의 폭력사태를 고민하고 극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논의하면서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 각자의 사유를 풀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이날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는데요. 깜짝 독자는 산지니의 『한국시의 이론』의 저자, 신진 선생님도 참석해주셨습니다. 후배들을 격려하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언제나 문학청춘 같으신 선생님!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학생들, 일반 시민분들 참석해주셔서 모두 감사합니다. 이날 저자와의 만남이 또 하나의 즐거운 여정이었길 바랍니다.




    신진 선생님




    다음 저자와의 만남은 어느덧 50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46회 4월 저자와의 만남은 18일 목요일 『장미화분』의 김현 선생님입니다. 소설가의 소설 밖에 소설 이야기. 많이 참석해주세요.


    + 덧붙여! 『공존과 충돌』에 일부 번역해서 실린 우에노나리토시의 『폭력』을 산지니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입니다. 『폭력』은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사고의 프 론티어라는 총서로 출간된 책입니다.이것도 기대해주세요. (깨알 같은 자랑과 홍보:)




    공존과 충돌 - 10점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비평 공동체 <해석과 판단>은 매년 하나의 주제를 정해 당대의 문학과 문화의 화두로 글쓰기를 합니다. 이번 6집 <공존과 충돌>은 현실 문제와 텍스트의 연결을 고민하고 글 쓰는 이의 정치적, 존재론적 입장을 개진하고자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우에노 나리토시(上野成利)의 『폭력(暴力)』 제1장을 처음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영화 <두개의 문> 비평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공존과 충돌>은 사회 참여적인 주제로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는 비평의 문을 독자들에게 생생한 텍스트로 다가갑니다.




    ▶ 1부 국가 장치의 폭력 안에서


    정기문 「폭력에 대하여」

    <해석과 판단>으로는 처음으로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글을 부분 번역하여 실었다. 우에노 나리토시(上野成利)의 『폭력(暴力)』 제1장 「삶의 정치와 죽음의 정치-근대국민국가와 폭력」이다. 우에노의 글은 이성과 폭력의 뒤얽힘이라는 근대성 자체에 내재한 역설을 정치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국가폭력을 둘러싼 이론적인 논의의 지형도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입장과도 공감되는 부분이 커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겼다. 더불어 번역자 정기문의 해제도 함께 읽을 수 있다.


    박형준「혁명의 존엄을 위한 서곡」

    거대한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존재의 질서 속에 기입되는 방식의 윤리성을 되묻고 있다. ‘3·15의 마산’, 혹은 ‘김주열’을 증언 (불)가능한 순간과 심미적 (불)가능성을 동시에 사유할 수 있는 역사적 증례로 읽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민주화의 성지’나 ‘의거 주체’의 숭고함을 기술하거나 미학화하기에 앞서, 국가 폭력의 희생자를 국가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분열적인 상황을 재사유화할 것을 요청한다.


    이희원의 「참사 이후의 참사」

    ‘용산 참사’를 다루고 있는 장편 소설들을 통해 폭력적 국가권력이 호모 사케르를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병적 징후를 확인하고 있다. 주원규의 『망루』, 손아람의 『소수의견』, 김현영의 『러브차일드』,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을 통해 폭력적 권력을 절대적 자리에 위치시키고 그것에 범접할 수 없는 맹목적 가치를 두는 사회 장치들과 그것을 용인·강화하는 개인의 의식 구조를 발견하고 있다.





    ▶ 2부 일상의 폭력을 마주할 때


    오선영의 「입 없는 자들의 불온한 몸­김이설론」

    김이설 소설의 여성들에 주목한다. 그 여자들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자들이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여자들의 모습은 이 사회의 자본적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저항의 양상을 띠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생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김이설 소설의 여자들이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장수희의 「도시 생활자, 동시대인, 자존의 기록-김미월론 」

    김미월의 소설을 장치에 등록되지 않는 자들의 기록으로 본다. 장치에 등록되지 않는 자들은 통치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의 삶의 에너지와 삶의 기록들은 김미월 소설 속에서 해체된 언어, 괴물의 형상,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드러난다. 따라서 이 글은 김미월의 소설 속에서 ‘통치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정치적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인로는 「마르크스-보르헤스적 기획으로서의 익명성」

    현대의 네이션은 신성국가적 장치이며 오늘의 화폐장치는 세계의 세속화된 신이라는 생각, 그러므로 네이션-자본은 합성된 신성의 체제라는 생각을 개진한다. 이 글은 그런 신성의 적들과 싸우는 형상을 진정한 신성으로서의 익명성을 통해 묘사하려 했다. 이 익명성의 인간은 시대와 체제 실상에 대한 예민한 관찰자 혹은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남영 「패설의 퍼레이드, 소통의 주파수」- 권혁웅, 『소문들』

    시에 있어 질서 있는 세계에 대한 구상은 어느 정도 주체중심의 차원에서 세계를 동일시하거나 자기 반영성에 머물러온 것이 사실이나 이때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잉여 혹은 찌꺼기처럼 질서에 편입되기를 포기한다. 적의 우의적 형상, 적의 네트워크가 자본주의와 공고히 결합하는 상황에서 파편적인 말들의 복귀가 갖는 의미와 그것의 한계를 따져 묻고 있다.





    ▶ 3부 또 다른 공동체는 가능한가?


    고은미 「사랑의 반복과 그 필연적 실패」

    홍상수를 위시한 몇몇 감독들이 다루는 사랑-관계의 특징에 주목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보이는 익숙한 소재와 내러티브가 현대영화가 수행하는 ‘모더니티적 미학화’ 속에서 변용되면서 가족, 국가와는 다른 유동적이고 새로운 공동체-관계를 규명, 암시하고 있다. 현대영화의 긍정적 가능성, 정치적 혁신성을 사랑이라는 불안정한 잠재태와의 연관하에 고민을 풀었다.


    김태환 「지식공동체는 존재하는가」

    지식공동체의 존재성과 한계를 고찰하며 대상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이다. 지식공동체의 존재방식과 윤리가 지니는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보고자 했다. 유동하는 공동체적 순환계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균열과 균열에 의한 공동체 내의 불안과 불화가 미치는 파급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로 인해 지식공동체의 의미를 실천적으로 모색하고자 했다.


    손남훈 「게임이라는 공동체스러운 것」

    전자게임의 공동체적 가능성을 질문하는 글이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자기-차이화’를 게임 수행의 동기로 삼으면서도, 그 동기가 다른 외적 요인들에 의해 어려워질 때 플레이어들에 의한 공통의 행동유형이 창조될 수는 있다고 본다. 나아가 인터넷 등에 의한 현실의 ‘인터페이스화’는 게임의 참여적 특성이 현실로 용출될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는


    2006년에 결성된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평 그룹이다. 경성대, 동아대, 부경대, 부산대, 부산외대 등에서 연구와 강의에 임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들이 대학이라는 학연적 위계를 넘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문학 비평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비평의 현재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지금-여기의 문제들을 온전히 도출해내고, 그것에 치밀하게 개입함으로써, 단지 ‘부산’지역의 비평이 아닌, 보편적으로 정초 가능한 비평의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공존과 충돌 - 10점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