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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이야기

40계단 콘서트

by 산지니북 2009. 11. 18.

토요일 오후, 동광동 40계단에서 열린 인문학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백년어서원에서 주최한 <40계단, 기억을 더듬다> 라는 콘서트였습니다. 계단과 도로는 객석이 되고 도로 앞 광장은 무대가 되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야외객석은 사람들로 꽉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할 수 없이 계단에 앉아 구경했는데 나중엔 엉덩이가 얼얼해 방석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부산 중구 동광동 40계단 주변은 인쇄 골목으로도 유명합니다. 계단 위아래로 소규모 인쇄관련 업체들이 옥닥옥닥 모여 있습니다.


시와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진 무대는 최원준 시인의 '40계단' 시 낭송을 시작으로, 1950년 평안북도에서 18살에 부산에 피난온 문윤서 할아버지(77)와 영주동에서 태어난 열 살짜리 김기영군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40계단은 6.25 동란 시절 남으로 남으로 쫓겨 내려온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입니다. 계단 중간쯤에는 1953년 지어져 1955년 음반으로 발표된 <경상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있는데, 그시절 삶의 고단함이 가사에 절절하게 나옵니다.

1절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

-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20대 아코디언연주가 조미영씨


"아코디언은 대부분 소리에 반해 시작해요. 중간 음색이 없어요. 애절하거나 밝거나 뚜렷한 음색이 장점이죠.”
“여자 애가 연주를 하니까 다들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세요. 전국으로 연주하러 다녀요.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제일 인기가 좋은 악기죠." (관련내용:탈북자 출신 아코디언 연주자 조미영)

2001년 10월 북에서 가족들과 내려와 아코디언연주가로 활동하고있는 조미영씨가 <타향살이> <굳세어라 금순아> 등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를 연주했습니다. 아코디언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악기가 되어버렸지만 북한에서는 어렸을때부터 많이들 배운다고 하네요. 비록 엄마에게 회초리로 맞아 가면서 배운 아코디언이지만, 이제는 그걸로 꿈을 펼치고 있는 26살 젊은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뭣보다 라이브로 처음 들어보는 아코디언 음색이 정말 색달랐습니다. 흥겨우면서도 구슬프고... 




박태룡씨의 학춤


계단 중간쯤에 갑자기 흰 날개를 펄럭거리며 학 한마리가 날아왔습니다. 학은 계단을 내려와 무대 앞을 두어번 왔다갔다 하더니 훌쩍 무대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몸짓이 어찌나 가벼운지 정말 한 마리의 학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김지혜 씨의 판소리 공연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김지혜 씨가 판소리 <춘향가> 중 한대목인 '사랑가'를 불렀습니다. 흥에 겨웠는지 아저씨 한분이 나오셔서 사랑가 가사에 맞게 즉석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다음 곡인 <진도아리랑>이 끝날때까지 아저씨도 함께 공연했습니다.

비보이 퍼포먼스팀의 힙합 공연


동광동 인쇄골목의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비보이들의 춤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5분 남짓한 짧은 공연. 보는 사람은 그저 흥겨워하면 되지만 무대에 서는 이들은 무척 긴장했을 겁니다. 자신들 차례가 오기 전까지 무대 뒤 차가운 보도블록에서 순서를 맞춰보고 계속 연습을 하더군요. 그런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관중들은 박수도 치고 많이 호응해주었습니다.

첼리스트와 아코디언의 협연


첼로와 아코디언의 협연이 이어졌습니다. 첼로나 아코디언 연주를 라이브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남남북녀 연주자들의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사람에 치이는 대규모 콘서트나 격식있는 음악회가 아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차가운 돌계단에 엉덩이는 시려웠지만, 주최측에서 준비한 따뜻한 식혜 한사발로 언 몸을 녹이며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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