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테러리스트를 꿈꾸어본 적 없으신가요? 여기 한 테러리스트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나! 테러리스트"라고 외치는 분. 바로 희곡작가이자 연출가인 정경환 선생입니다. (인상은 별로 테러리스트 같지 않습니다.^^)


정경환 선생은 1993년 창단 이후 고집스럽게 창작극만을 공연하면서 지금까지 힘들게, 어렵게 극단을 이끌어오고 계시는 부산의 연극인입니다. 그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들을 모은 희곡집『나! 테러리스트』를 얼마 전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을 했더랬지요. 그리고 오늘은 그 책으로 북카페 <백년어서원>에서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나! 테러리스트』에는 모두 여섯 편의 희곡이 실려 있습니다. 「나의 정원」, 「달궁맨션 405호 러브스토리」, 「아름다운 이곳에 살리라」, 「나! 테러리스트」, 「태몽」, 「난난亂亂」 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작인 <달궁맨션>만이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오욕의 역사를 초래한 이들을 단죄하고, 잘못된 역사는 심판하고, 5월광주가 개인에게 미친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등 역사와 개인의 삶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런 진지함은 작가 정경환의 작품세계이고, 삶을 대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대신 표지는 밝고 화사하게 핑크색 계열로 만들었습니다. 너무 여성스럽지 않겠느냐는  저자 선생님의 우려를 뒤로 하고 밀어붙였는데, <백년어서원>의 주인장 김수우 선생님께서도 색깔이 너무 밝고 책이 예쁘게 나왔다고 칭찬을 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동료 연극인들, 여러 선후배들, 그리고 인문학카페 <백년어서원>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들이 시작 전부터 자리를 꽉 메워주셨습니다. 원로선생님들께서는 예약된 식당으로 자리를 비켜주셔야 할 정도였지요.

자리를 함께 해주신 부산연극계 원로 선생님들



1993년 극단을 창단해 창작극만을 해온 고집에 대한 이야기, 힘들었던 극단 이야기,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 어려서부터 가져왔던 두려움과 공포심을 연극으로 극복한 이야기 등 한 연극인의 진솔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에는 이 여섯 작품 외에도 김문홍 선생님께서 해설을 써주셨고, 작가가 작품 후기를 통해 자신의 연극 인생을 반추해보는 대목이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에 겪은 죽음과 얽힌 트라우마, 청년 시절의 방황, 작가의 꿈, 가족에 대한 애증, 이후 연극을 만나고 깊이 간직해왔던 상처를 극복하게 된 과정 등을 작가는 후기를 통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의 편집자인 저는 이 작가후기에 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글을 써오셔서, 쓰긴 썼는데 책에 싣기에는 너무 부끄럽다 하시면서 망설이셨습니다. 전 강력하게 앞에 넣자고 주장했고요. 그렇게 밀고 당기기를 여러번... 결국 후기 형태로 책 뒤로 돌리기고 결정을 했는데, 이 날도 작가는 이렇게 말씀하시는군요.

"그 부분은 읽어보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책에도 쓰지 못한 숨은 이야기까지 들려주십니다.

책에 실린 작품 여섯 편에는 모두 죽음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요, 두 사람이 함께 죽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 죽었다가 살아나는 경우도 있고 참 다양합니다. 정경환 선생께서는 그 사람을 어떻게 죽일 건가 목을 매달 건가, 다리에서 뛰어 내리게 할 건가 고민도 많았답니다. 정말 테러리스트 맞긴 맞네요.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어찌보면 섬뜩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어쨌든 선생께서는 연극에서는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연극을 통해서 자신은 죽음에 대한 상처,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면서 연극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케익을 앞에 둔 사랑스런 가족의 모습입니다. 행복하세요~

Posted by 아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