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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 2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5.


『부산을 쓴다』에 실린 김미혜 소설가의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 계속 이어집니다.

앞부분

녀석의 말이 장황하다 싶었는데 택시에 오르니 집에서 몇 분 걸리지도 않았고 설명이 소상해서 찾기도 쉬웠다. 조금 있으려니 녀석이 남자와 아이 하나, 그렇게 셋이서 긴 장대에 녹십자기를 매달아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뜬금없이 웬 깃발씩이나? 하도 웃기는 장면이라 숨기지도 않고 웃고 있는데, 녀석이 정자로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온천천



“일주일에 1시간씩만 온천천에서 의료봉사 한번 해 볼라꼬. 오늘은 헌팅 삼아 나왔네요.”

개업의로 돈도 제법 번 녀석이 간소하나마 의료봉사를 하겠다는 것,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억지소리를 했다.
“요새 환자 없는갑네? 그래서 외롭나?”
“참내, 생각이 그렇게 짧으니 결혼도 몬 했지.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도 명색 의사 아인교. 국민건강을 위하야! 얌마, 인사해라. 우리 사촌 누나다.”

함께 의료봉사를 할 거라는, 옆에 섰던 덩치 큰 남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했고, 달리 할 말도 없어 나무 난간에 앉아 하늘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푸른색으로 빛나는 큰 별 하나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영수야. 저기, 별 좀 봐라. 진짜 크네. 저 별은 색깔도 초록이다야. 저 별 내 꺼.”

녀석은 내가 손가락질하는 곳을 올려다보더니 으흐흐흐, 희한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친구 되는 사람도 도무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흥, 내가 유치하다 그 말씀이지? 이 나이에 별이나 찾는다고? 니들 생각은 참으로 가상하다만, 역시나 속물이로구먼. 사람이 별도 찾고 바람도 느끼고, 그런 게 인지상정 아닌가? 기분이 상한 나는 속으로 속물들을 실컷 비웃었다. 한데 속물 아비와는 달리 아이는 볼수록 귀여워서 볼도 만져 보고 이름도 물어보고. 잠깐이지만 친한 척을 했다.

녀석과 친구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푸른 별이 어쩌고 야광이 어쩌고 하며 지들끼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대다가 10시가 되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긴 장대는 그냥 장대가 아니라 못 쓰게 된 낚싯대라 깃발을 떼어 내고 착착 밀어 넣으니 막대로 변했다. 어떤 속물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기발하긴 했다.

온천천



조금 전, 영수가 전화를 해 왔다. 오늘 밤 온천천 벚나무 밑의 정자에서 정식으로 야간진료소를 개소할 예정이니 부디, 자랑스러운 첫 번째 무료환자 자격으로 참석해 달라고. 막상 나가 보니 별도 볼 수 있고 큰 무리도 아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한데 이어지는 녀석의 말이 참으로 가당찮았다. 지 친구 의사가 나랑 사귀고 싶어한단다. 하이고, 사람을 뭘로 보고.

“야야, 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유부남 진짜 싫어하거덩? 멀쩡히 아들까지 있는 사람이 남의 처녀와 사귀고 싶다니, 지 정신 아이제?”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아직 싱글로 산다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손위인 나를 한껏 비웃었다. 친구는 미혼이고 아이는 아들이 아닌 조카라고. 오잉? 그리고 연거푸 이어지는 녀석의 말. 내가 반색을 했던 온천천 하늘의 주먹만 하던 별은 별이 아니라 낚싯대 위에 달아 논 야광구슬이었다는 것. 허걱! 게다가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노친네가 멍청하게도 야광구슬을 별로 보는 그 순진함이 하도 귀여워 친구가 나랑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더라나? 기가 차서. 그래서 둘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었구나.

“오늘은 쫌 이뿌게 하고 나오소. 참참, 안경알 도수 높이는 것도 잊지 마시고. 크큭.”
민망하기도 하고 할 말도 없어 유구무언으로 있는데, 녀석은 제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뉘앙스가 묘한 웃음과 안경 도수 좀 높이라는 말에 다시 존심에 왕금이 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나도 내 할 말은 다 했다. 온천천 정자에서의 야간진료? 내가 첫 환자 아니라도 고맙고 말고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연하남이 내 무식에 뻑이 갔다고? 그거야말로 좋고 말고다. 하나 아직은 때가 아인 기라. 알았나, 이 사람아! 아무튼, 온천천 기다려! 공짜 진료라니 양잿물이라도 마셔줄 테다. 아니, 너 때문에 넋 나간 남자까지 생겼으니 독약인들 마다하리. 온천천! 넌, 영원한 내 사랑이야.

그랬다, 인생은 내게 하기 싫어한 일도 득으로 돌아오게 하고 몸으로 느낀 고통으로 소중한 인연을 쌓게도 하고. 그러니, 하늘에 뜬 진짜 별아 받아라. 너를 향해 쏜다. 마음속 내 소망을!
내일은 그동안 무심히 지냈던 분들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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