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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전재산을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기부한 동화작가

by 산지니북 2009. 9. 9.

여름 휴가에 북부경북 일대를 둘렀다. 첫 목적지는 안동의 도산서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안동 톨게이트로 들어가 5분쯤 달렸을까. 뭐라고 뭐라고 쓰인 갈색 표지판이 휘익 지나갔다. 갈색은 문화유적지임을 표시하는 도로 표지판인데... 뭐였지?
우리의 첫 목적지는 도산서원이었지만... 좀 늦게 가면 어떠리. 원래 여행의 묘미는 이런 계획하지 않은 의외의 만남에 있다. 차를 돌려 <조탑동 5층 전탑> <권정생 선생 살던 집>이 있는 조탑동으로 향했다.

 

조탑동 오층전탑. 나즈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이 오층전탑은 전탑의 고장 안동의 상징이라고 한다.


마을 어귀를 들어서
5분쯤 가니 멀리 서있는 5층전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탑 주변이 사과과수원이어서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사과밭은 없어지고 관람객을 위한 배려인지 주변을 연꽃밭으로 꾸며 놓았다. 아직 출입금지 울타리 같은 것도 없어 탑 가까이 가볼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벽돌로 쌓아올려진 이 오층전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는 전국에 화강암 삼층석탑이 대유행이었고 다른 형태의 탑들은 버린 자식 취급했는데, 북부 경북에서는 오히려 전탑을 발전시켜 우리나라 탑 역사에서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마을 이름까지 조탑동이라고 불렸을 정도면 이 지역이 얼마나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
 

당초무늬 전돌과 민짜 전돌


몸돌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고
, 1층 지붕돌부터는 길이 27cm, 두께 5.5cm의 벽돌을 어긋나게 쌓아올렸는데 벽돌 하나하나에 예쁘고 섬세한 당초무늬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1917년 이후 여러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보수용 전돌은 민짜로 했으니 이 전탑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탑 윗부분은 모두 없어져 멀리서 탑신을 보면 뭉툭해 보이는데, 가까이서 위를 올려다보면 웅장해 보인다. 수많은 벽돌을 어쩜 이렇게 쌓아 올렸는지 무척이나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조탑동 오층전탑의 인왕상


조탑동 오층전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1층 몸돌의 감실을 지키고 있는 두 분의 인왕상 모습이다. 법계를 수호하는 경호실장급의 이 신상 두 분은 무서운 통방울눈에 태권도의 공격과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공격하는 분은 입을 벌리고 방어하는 분은 입을 다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이른바 아상과 음상이라고 하는데, (중략) 조탑동 오층전탑의 인왕상은 무섭지도 위엄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귀엽기 짝이 없다. 사람을 겁주거나 놀라게 하기는커녕 꿀밤 한 대 먹이지도 못할 애기주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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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3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님
5층전탑을 뒤로 하고 권정생 선생님 집을 찾아 나섰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 권정생 할아버지 집이 어디냐고 여쭸더니 '오두막 한 채 있는데 별로 볼 것도 없다'고 하시며 길을 가르켜주셨다. "그 집 보러 많이 온다. 하루에 관광버스가 3~4대씩 올 때도 있다"고 덧붙이셨다. 마을 끄트머리에 정말 대문도 없는 허름한 오두막이 우리를 반겼다. 주인 없음을 하소연이라도 하는듯 마당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우리에겐 <몽실언니>로 잘 알려져 있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글을 쓰고 텃밭일도 하면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신 곳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동네에 있는 일직교회에서 종지기로 일하기도 하셨단다. '그 망할 놈의 전자 차임벨이 나와' 실직하기 전까지 말이다.

권정생 할아버지 살던 집


평생을 얼마나 검소하게 사셨는지 집을 보니 느껴졌다. 재작년에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 동네 사람들은 두 번 놀랬다고 한다. 성치않은 몸으로 종지기나 하면서 쓸쓸하게 사는 노인이거니 했는데,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문상객들때문에 한번 놀랐고, 고인이 남긴 거액의 유산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셨으니 인세 수입만 해도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돌아가시기 한참 전에 유언장을 미리 준비해놓았는데, 전재산을 북한 어린이와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데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결혼을 안하고 평생을 혼자 사셨지만 형제 자매등 가족들은 있었을텐데, 유족들이 유산으로 고민하지 않도록 생전에 깔끔하게 정리를 다 해놓으셨던 거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보려고 하루에도 관광차가 3~4대씩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번 주말엔 <몽실언니>를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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