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 팔월 한 달 동안 산지니 인턴으로 일하게 된 밀키입니다. 닉네임은 편집자님께서 추천해주셨어요. 제가 점심시간마다 밀키스를 사와서 먹는데 '밀키스'가 어떠냐고 추천해주셨습니다. 밀키스를 줄여서 밀키라고 닉네임을 정했답니다. 제가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오영이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입니다.


지금, 당신의 눈 앞에 누군가 놓고 간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읽으실건가요?

 

 

지금, 당신의 눈 앞에 누군가 버린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독일의 국민 프라이팬으로 유명한 '베른데스'사에서 만들었지만 손잡이는 휘어져 있고 바닥 가운데 한쪽은 솟아올라 있고, 알루미늄 마감재는 심하게 스크래치가 나 있습니다. 아, 백화점 진열대에 누워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제품과는 다릅니다. 이 프라이팬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누군가의 손을거쳐 어떤 이의 집으로 가 음식을 익히는 일을 하다가 다시 여기 버려진 것이죠. 그저 쓰레기일수도 있고, 몸체를 분리해 재활용을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 음식을 덮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네? 프라이팬으로써 수명이 다한 것 아니냐고요? 수명이 다한 프라이팬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걸까요? 당신의 말대로 수명이 다한 프라이팬은 청소부의 눈에도 띄지 않아 쓸쓸히 여기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물을게요. 주으실건가요?

 

 

 

오영이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을 읽으면서 스스로 내내 생각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버려진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 의해 스크래치가 나고 버려지고 주워지고 다시 버려지고 주워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프라이팬 말입니다. 그것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분노를 생겨나게도하고, 들뜨는 마음이나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나 자신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타인들의 모습이며 아름다우면서 잔인한 세계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소설집은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황혼의 엘레지」, 「마왕」, 핑크로드」 총 네 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요. 첫 번째 소설집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에서 볼 수 있었던 소외된 약자들의 현실, 폭력적인 세계로부터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이 소설은 공터에 버려져 있는 프라이팬의 독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지금 공터에 버려져 있다. 손잡이는 휘어져 있고 주철로 처리된 바닥 가운데는 한쪽이 솟아올라 있다. 삼중의 주철 위에 벌집무늬를 넣고 그 위에 다시 다이아몬드 코팅을 한 몸체가 계속해서 욱신거린다. (…) 나는 순간 움찔한다. 프라이팬에게 기억이라니. 하지만 내겐 기억이 있다. 매순간을 고스란히 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기억이 있고, 내가 기억하는 사건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p.9-p.10

 

     프라이팬이지만 분명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과거를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요. 그것은 상처이지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채굴된 고급주철은 주방기기를 만드는 공장 현재, 독일의 국민프라이팬으로 유명한 회사 베른데스사에서 '삼중바닥 프라이팬'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기억하나. 성여사와 아들

첫번째 기억은 백화점에서 성여사가 자신을 사서 집으로 데려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성여사는 프라이팬에 장어를 구우며 아들이 의대에 합격하기만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아들은 예능 프로그램도 보지 않고 엄마의 말대로 예의바르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제 공부를 그만 둘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하게 되고 엄마는 아들의 뺨을 때리는 비극까지 일어납니다.

 

"이거 먹고 힘내! 비싼 거야."

순간, 아들은 성여사의 손을 홱 뿌리친다. 그 바람에 장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성 여사는 입을 앙다물고 숨을 고르며 다시 장어를 집어 아들에게 내밀었다. 아들이 다시 한 번 뿌리치는 것과 성 여사의 손이 아들의 뺨을 향해 날아간 것은 동시였다. p.18    

 

  프라이팬에 올려져 있던 장어토막은 이러저리 나뒹굴고 프라이팬은 성여사의 손에 의해 17층 아파트 밖으로 화단 위로 버려지게 됩니다.

 

 기억둘. J와 Y

J와 Y는 캠퍼스커플입니다. 캠퍼스 사람들이 닭살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 사이죠. 하지만 그들에게도 장벽이 있습니다. 경제적 격차라고 해야 할까요, 계급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예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J는 성악을 전공하며 돈이 많고 TV드라마와 뷰티에 빠져사는 여대생입니다. 그에 비해 Y는 학점도 낮고 자격등도 없고 돈이 없어서 등록금도 내지 못할 처지입니다. 그리고 곧 군대에 가게 됩니다.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둘은 더욱더 멀어지게 됩니다. 휴가를 나온 Y와 J가 발견한 것이 바로 버려진 프라이팬입니다. 하지만 J가 복학생 선배와 사귀고 있고,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자 Y는 프라이팬으로 왼쪽다리를 내리칩니다.

 

  다이다몬드로 코팅된 삼중바닥의 내 몸체가 Y의 무릎을 내려칠 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붙잡는다 해서 잡히는 게 아니란 것도 Y는 모른다. Y가 붙잡아야 할 건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모른다. p.33

 

 끔찍한 비극입니다. 프라이팬은 다시 화단에 버려지게 됩니다.

 

     기억셋. 일어나지 않는 남편을 돌보는 할멈

 

프라이팬은 화단에서 어느 늙은 할멈에게 주워지게 됩니다. 할멈의 신랑은 이십년이 다 되도록

반신불수로 늙은 할멈은 신랑을 돌보고 생활하기 위해 파지를 주으러 다닙니다. 열악한 위생상태, 비참한 식사, 더러운 싱크대, 악취와 냉기가 올라오는 집에서 프라이팬은 지내게 됩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고단한 삶이 있는걸까. 나도 밤새 노부부를 따라 울었다. p.39

이 지옥 같은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내 모든 기억을 뒤져 행복했었던 순간만 생각한다. p.40

 

 

프라이팬이 따라 우는 장면과 행복했던 순간만 생각하는 장면이 슬프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모르는 곳의 누군가는 늙은 할멈처럼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요. 늙은 할멈을 마지막으로 계란 프라이를 반찬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후 가스 호스를 절단하게 됩니다. 프라이팬은 불행한 일을 겪고 또 공터에 버려지게 되지요.

 

자신의 손잡이를 잡으며 행복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고 기억하는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누군가 잡으면서 소설이 끝나게 됩니다. 스크래치가 나고 휘어진 프라이팬, 불행한 비극만 일어났지만 누군가에게 행복과 위안, 따뜻함을 주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한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아닌가요?

 

 

 

황혼의 엘레지

    

 노인들에게 몸을 만지게 해주는 것의 대가로 박카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안동댁의 이야기입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손자 태주의 도시락에 햄치즈스틱 몇 개라도 넣어주려면 노인들의 손을 탈 수 밖에 없습니다.  박카스를 사러 가는 약국에서 동네사람들이 안동댁의 흉을 보지만 안동댁은 태주를 위해서라면 꿋꿋합니다.

 

안동댁은 짐짓 못 들은 척 약국을 나온다. 하지만 속으로는 독한 말 한마디를 뱉아 낸다. 네 새끼는 안 처먹고도 크더냐. p.60

 

그러던 중 노인들에게 아양을 떨며 쌍화차를 파는 '여우 같은 년'을 만나게 됩니다. 안동댁은 자신이 좋아했던 황 대령이 '여우 같은 년'에게 넘어가고, 공원의 노인들에게 수작을 걸자 머리채를 낚아채며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김노인이 119에 실려가고 '여우 같은 년'이 자신의 박카스가방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안동댁과 여자는 공원에서 같이 담배를 피면서 하늘을 보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처음에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지만 안동댁도 여자도 비슷한 처지라는 걸 알고 싸움이 해소되고, 공원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선 어쩐지 눈언저리가 시큰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왕」

 

그날 처음 그와 함께 간 커피숍에는 슈베르트의 '마왕'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음악 소리를 피해 자꾸만 구석으로 몸을 움츠리는 내게 한때 성악가를 꿈꾸었다는 그가 말했다. 바람을 무서워하는 군요. p.107

 

 

마왕의 화자는 네일아티스트입니다. 그녀는 신상을 무척 좋아하고 조명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의 시선을 오래 받고 싶어하지 않아 칙칙한 치마색을 고르는 여자이죠. 한때 네일숍 배달원으로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해줬던 애인은 혼수상태이고, 여자는 계속 카드와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위해 신장까지 팔았고, 무리해서 일을 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죠. 엄마에게 버림받고 초콜릿으로 얼룩진 치마를 닦던 기억, 남자의 치마가 잘 어울린다는 목소리, 돌이킬 수 없다는 의사의 말소리가 마왕이 되어 여자를 쫓아옵니다. 끝내 여자는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마왕의 바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산대로 향하게 됩니다.

 

 

핑크로드

 

'그녀는 분홍의 화신 같았다.' 그에게 그녀는 분홍색 솜사탕처럼 달고 아늑하고 푹신한 온 몸과 마음을 휘감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촌'이라는 들어서는 안 될 길이었음에도 그는 그녀가 있는 핑크로드를 걷기 시작합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서커스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소녀를 사랑했던 영국장교가 소녀와 함께 끝없이 사랑의 도피를 하던 영화 <알비라 마디건>의 배경음악. (…)

서로 몸을 기대거나 무릎을 베고 누워 행복하게 오후를 보내고 나서 이어지던 갑작스러운 두 발의 총성. 그들이 들어간 숲을 오래 보여주다 영화는 끝이 났다. 나는 지금 그녀가 말하는 음악이 그 영화의 주제곡이었다는 걸 기어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새드 엔딩의 영화는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그랬어? 하며 무심한 척 잔을 부딪힐 뿐이다p.157-p.158

 

장교 식스틴은 이미 결혼한 사람이에요. 그는 줄 타는 소녀 엘비라 마디간과 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집니다. 숲에서 동반 자살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만큼 우울하지만 그 속에는 둘 만의 비밀스런 행복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때 그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는 그녀때문에 아내를 속이고, 회사의 뇌물 수수에 배임, 횡령사건에 휘말리지만 끝까지 그녀를 변호합니다. 내 사랑이 진심이라고 하는 그와 사랑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라고 하는 그녀와의 거리는 사하라 사막의 길이보다 더 멀지 않을까요.

 

이상으로 밀키의 서평이었습니다. ^ㅁ^ 잘 읽으셨나요? 인턴 첫 날 선택했던 한 권의 책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은 제목만큼이나 제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오영이 작가님의 다른 책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도 사서 읽어보았는데요. 청소년인 주인공이 많아서 그런지 주제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면서도 잘 읽혔습니다. 한 주의 시작을 오영이 작가님의 두 권의 소설집으로 시작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자, 지금, 당신의 눈 앞에 누군가 놓고 간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읽으시겠습니까?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 10점
오영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