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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어중씨 이야기 가사집을 통해 본『어중씨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8. 26.

 

 

 

 

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사 인턴 밀키입니다. 제가 이번에 소개할 책은 최영철 작가님의 성장 소설 『어중씨 이야기』인데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설입니다. 아울러 최영철 작가님과 같이 도요마을에 살고 계시는 이가영 작가님의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들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어중씨 이야기』는 저번달 7월 22~23일 극단 걸판의 음악극 <어중씨 이야기> 로 새롭게 각색되어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었고요. 이번달 초 6일~7일 2016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또한 공연되었습니다. 이 음악극 <어중씨 이야기>의 포스터를 뒤집어보면 짜잔-! 가사집이 나옵니다.

 

 

 

 

이 가사집은 음악극 <어중씨 이야기>에 나오는 노래를 적어 놓은 것인데요. 극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가사가 얼마나 재미나던지요. 최현미 작사가님이 쓰신 곡과 최영철 작가님의 시에 박기태 작곡가님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노래와 같이 『어중씨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줄거리만 줄줄~읊는 것보다 재미난 가사를 함께 보면 더 기억에 오래 남겠죠?

 

 

엉뚱한 매력을 가진 사랑스러운 어중씨가 왔다. 도시에 살던 어중씨가 시골 도야마을로 이사와 마을 사람들과 좌충우돌을 겪다 어느 날 마님의 심부름으로 장터에 가게 된다. 그러나 평소 어중씨 성격대로 여유를 부리다 그만 장터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만다. 외진 시골 마을이라 버스를 타고 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기에 어중씨는 결국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도야마을에서 장터까지 가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님이 부탁한 물건이 무엇인지는 잊어버리고 길에서 학생들, 강아지 길동이, 목사, 순례자 등을 만나며 그 어느 때보다 기묘한 하루가 어중씨에게 펼쳐진다.

 

 

『어중씨 이야기』는 어중씨가 마님의 심부름을 하러 가는 길의 이야기가 중심적입니다. 마님, 그러니까 마누라님이요. 어중씨는 아내를 마누라님이라 부르고 아내는 어중씨를 서님, 그러니까 서방님이라고 부릅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가사집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데요. '서님, 마님' 이라는 제목의 가사입니다.

 

서님, 마님

 

우리 서방님 줄여서 서님 우리 서님 별명은

 

“어중씨에요. 어중씨. 어중간하다고 어중씨!”

 

어중간하게 준비를 하다가

어중간하게 달려가다가

어중간하게 길을 멈춰 서서

어중간하게 버스 놓치고 말지요.

 

어중간하게 길을 걷다보면

어중간한 시간이 되지요.

어중간한 시간에 집에 와서

어중간하게 우리 마님 부르죠.

 

“마님, 우리 마님~~”

“우리 마누라님, 줄여서 마님. 우리 서님은 날 마님이라 불려요. 우리 서님은 시간도 내게 물어 알지요.”

 

마님, 몇 분이에요?

마님, 몇 시에요?

마님, 몇 일이에요?

마님, 몇 월이에요?

 

꽃이 피었네. (개나리 꽃이 폈네)

언제 봄이 왔을까. (함박눈이 날리네)

눈이 날리네 또 언제 겨울이 왔나?

 

봄이 왔으니

우리 마님 원피스 사와야지.

겨울 왔으니

우리 마님 예쁜 털신 사와야겠네.

 

 

하루동안 어중씨가 겪은 일들이 적혀 있는 것이죠. 어중씨는 지구 밖 소혹성 B612호에서 온 어린왕자같기도 합니다. 변화에 발 맞추어 빠르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휴대폰도 필요없다 하고, 이걸 생각하다가 저걸 까먹고, 도시는 시끄럽고 복잡해서 싫다 합니다. 선생님 시절에서는 아이들이 그런 어중씨를 '보바샘','바보샘'으로 부르기도 하고요.어떻게든 느리게 살아보려다 계속 어중간해지는 어중씨입니다.

 

어중씨의 이런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은 가사집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어중어중어중씨'와 '어중씨 이야기'의 가사를 보실까요?

 

어중어중어중씨

 

어중씨 어중씨 어중어중 어중씨 어중간한 어중씨 어수룩한 옷차림으로 얼기설기 걸어오는 저기 저 어중씨

어기적 어기적 어기적 어슬렁 슬렁 슬렁 슬렁 슬렁슬렁 오늘도 어중간한 어중씨

 

어중씨 이야기

 

어중간한 어중씨가,

술에 취해 길을 나섰대.

 

어중간하게 비틀대다가

어중간하게 발을 헛디뎌서

어중간하게 굴러 떨어져서

어중간하게 다쳤대.

 

어중간하게 비틀댄 어중씨

어중간하게 헛디딘 어중씨

어중간하게 떨어진 어중씨

어중간하게 다친 어중씨

 

어중간하게 병원에 누워

어중간한 치료를 받았대.

어중간한 어느 날 퇴원을 했는데

몸이 전 같지 않았대.

 

머리를 다쳤는지, 다리를 다쳤는지

걸음도 행동도 생각도 말도 느려졌대.

 

어중간한 어중씨는 더욱더 어중간해졌대

어중씨는 정말 좋았대.

 

 

걸음도 행동도 생각도 말도 느려졌는데 어중씨는 그저 좋기만 합니다. 어중씨는 자신의 건망증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생각이 많아서 수시로 생각들이 들락날락거려서 기억의 창고에 구멍이 났기 때문에 건망증이 생긴거라고요. 그래서 어중씨는 이러한 생각으로 자신의 건망증을 극복합니다. 참 대단한 어중씨입니다.

 

 

 

어중씨는 도야마을로 가는 고개를 넘다가 깜박 잠이 들기도 합니다. 완만하게 구부러진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숲 사이 오솔길을 선택하다가 잠시 쉬어간다는 게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깬 어중씨는 천 살이 넘었다는 세 명의 아저씨들을 만납니다. 백 살도 아니고, 천 살이 넘었다니? 아저씨들은 도깨비인걸까요? 귀신인걸까요? 아저씨들은 어중씨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고 어중씨는 스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가사집에도 스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바보스님 이야기

 

누더기를 몸에 걸친 스님이

한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했대.

 

불쌍하게 여긴 주인이 부엌으로 간 사이

집오리가 옥구슬을 삼켰대.

 

먹을 걸 가져온 집주인은

옥구슬 없어진 걸 알고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하며

스님을 광에다가 가두었대.

 

주인이 재차 닦달해도

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대.

구슬을 내놓지 않으면

스님의 배를 갈라서 확인한대도

스님은 아무 말도 않았대.

 

집오리는 밤새 배를 앓았대.

스님은 밤새 오리 밸 어루만졌지

다음날 오리는 똥을 누었고

거기에서 옥구슬이 나왔대.

 

어딘가 어중씨를 닮지 않았나요? 바보스님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들은 스님을 바보스님 혹은 대단한 아저씨 등으로 칭하며 옥신각신합니다. 어중씨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구요. 그리고 오래된 아저씨들과 친구가 됩니다. 

 

 

아저씨들과 헤어지고 나서 어중씨는 헤어진 자리에서 마님과 길동이를 만나게 됩니다. 위의 그림은 읍내 장에서 산 털신과 오공본드와 갈대 빗자루, 강아지 길동이, 그리고 마님과 도야마을로 향하는 어중씨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잘 가. 오래된 친구들.

  어중씨가 보름달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길동이를 쓰다듬으며 오공본드과 갈대빗자루, 털신을 마님에게 건넵니다.

   (중략)

  촘촘히 보석을 박아 놓은 듯 밤하늘의 별이 반짝입니다. 별들이 모두 일어나 어중씨 부부와 길동이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p.176

 

최영철 작가님의 자전적인 성장소설인만큼 시에서도 느긋하고 여유로운 어중씨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데요.

 

무위_최영철

 

그냥 하는 거 좋다. 고갯마루까지 가보는 거.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피는 거 말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그냥 하는 거 좋다. 마을 어귀까지 가보는 거.

점심 먹은 거 소화시키는 거 말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강물은 좀 불어났나. 건넛마을 소들은 잘 있나.

그런 것들 살피는 거 말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주머니 손 찔러 넣고 건들건들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주머니 손 찔러 넣고 건들건들', '그냥 나갔다 오는 거'라는 구절만 봐도 버스를 놓치고 휴대폰을 물에 빠트리고, 뚜벅뚜벅 걸으며 생각에 잠기는 어중씨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나요? 더운 여름, 바쁜 일은 잠깐 내려놓고 꼬불꼬불 모르는 길들을 어중씨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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