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완두입니다. 두 번째 글을 올리게 됐네요. 춥지만 화창한 어느 겨울, 박정선 작가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탁 트인 송정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요. 겨울 바다를 등 뒤로 하고 진행된 인터뷰는 매우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볕이 잘 드는 창가는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해줬는데요. 그 인터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Q. 다양한 글쓰기를 하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가님은 시조로 등단을 하신 뒤 소설도 쓰시고, 시나 수필, 평론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시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각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마디로 요약해서, “문학은 하나로 통한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국계 프랑스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 젠이 있어요. 가오싱 젠이 다섯 장르를 했어요. 그분 말이 참 재밌어요. “문학은 결국은 한 정점에서, 다 모여든 정점에서 소설로 집약된다.” 제가 시조를 맨 먼저 했어요. 제가 처음 문학정신에서 시조로 등단한 뒤에 아무 것도 안 하고 15년 동안 시조만 했어요. 근데 시조는 정형시이다 보니까, 정형의 리듬을 가지는 것은 습관화되면 벗어나기 힘들어요. 나는 처음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래 쓰다 보니까, 다른 수필이나 소설을 쓰려고 하면 시조를 쓰고 있더라고요. 심각하죠. 근데 그게 잘못됐다라는 거라기보다, 습관화된 리듬성이라는 거죠. 그거를 뛰어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한 쪽으로 굳어진 근육을 이완시키는 게 힘들잖아요. 근데 그게 극복이 되니까 전 장르를 넘어다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소설 쓰다가도 시조 쓰고, 시도 쓰고. 그러다 다시 소설도 쓰고 그래요.
장르 구분이 서양에는 없어요. 우리나라에는 특별히 장르 구분이 있어요. 소설가면 소설만 써야한다 생각해요. 사람들은 나보고 "장르를 넘나들지 말고, 한우물만 파야지." 이런식으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해요. 하지만 한우물이라는 말과 장르라는 것에서는 상당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각각의 장점들을 서로 교류할 수 있고, 시의 장점을 소설에 가져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가수가 배우가 됐다고 생각해봐요. 드라마에서 가수 역할을 한다든지 할 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죠. 이것처럼 문학도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면서 시적인 언어의 조탁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또 소설도 리듬이 있어요. 이 문장을 얼마나 세련되게 할 것인가는 쓰면 쓸수록 고민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시조와 자유시는 리듬이 달라요. 자유시는 개인적 리듬이고 시조는 정형된,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정형된 리듬을 가지고 있지요. 이것들을 적절히 조화시키면 아주 아름다운 문장이 나와요. 그러니까 이것들을 다 소설로 적용시키는 거죠. 수필은 산문이니까 소설과 통하죠. 시와 소설이 가장 특징적인 경계니까 앞에서 시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장르를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좀 문학을 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게 한 우물 파는 거와는 상당히 다른 거예요.
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고자 할 때, 형식은 형식일 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여러 장점들만 모이게 되는 거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겨울 느낌이 물씬 나네요.)
Q. 소설에서 꽃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요. 석환을 보기로 한 아침 승연이 자신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개한 장미로 비유한 것처럼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비유를 탁월하게 하셨는데, 이처럼 꽃을 소설의 주요 소재로 삼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가장 여성을 나타내기 좋은 소재로 꽃을 삼은 거예요. 꽃은 자연과 연결되고 여성성의 상징성이 가장 강하잖아요. 그래서 꽃을 파는 근로 여성, 노동하는 여성에서 꽃꽂이 작가로 신분 상승을 시킨 것으로 미적인 효과를 가장 많이 낼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작품 세계를 표현할 때도 여성이 가지고 있는 심적 표현에 대해서 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Q. 석환과 남편의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예를 들면 목소리가 좋고, 과묵한 편이지요. 하지만 석환은 목소리와 어울리지만 남편은 어울리지 않고, 과묵도 남편은 자신의 삶에 순응적이지만 석환은 카리스마가 있는 편이라는 것처럼요. 두 남자의 성격을 이렇게 설정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능력을 가졌는데 그걸 발휘되지 못한 것이 불행하더라.’ 난 그걸 보여주고 싶었죠. 남편은 아나운서나 성악가가 되면 좋았을텐데 승연이 볼 때는 그건 어떻게 보면 안타까움이에요. 석환은 연구자니까 남 앞에서 브리핑이나 발표를 해야하고, 그랬을 때 좋은 목소리는 설득력이 있어요. 아나운서나 정치가도 좋은 목소리의 덕을 많이 보는 것처럼요. 석환은 자신의 능력을 잘 살린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능력은 거기에 알맞게 직업을 가질 때 최상이 된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죠.
아, 그 뜻이 석환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았는데 남편은 그러지 못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화원을 하는 것으로 표현된 건가요?
그렇죠. 그래서 전혀 빛이 나지 않고. 그래서 인간은 석환처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그래서 더 프리미엄을 받는 거죠. 그렇게 되어야 해요. 남편의 목소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인간이 지닌 능력들이 자기가 무얼 어떻게, 그리고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빨리 개발을 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숨어져있겠죠. 이렇게 이 소설은 여러 의미를 다 가지고 있어요. 묘한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죠.
Q. 소설 속에 아이러니의 유머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은 매우 무뚝뚝하고 무드 없는 사람인데, 로맨틱함의 대명사인 꽃을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에이런과 알라존을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아이러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이처럼 아이러니의 반복을 통해서 재치를 보여주는데, 아이러니라는 상황을 통해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우리 인간은 나르시시즘에 자꾸 사로잡혀요. 자기 도취에, 자기 세계에 만족해버리는. 어떻게 보면 매너리즘이에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퇴보하게 되죠.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승연이라는 인물이 남편이라는 존재를 상당히 무능한 사람으로 보고, 자기가 완벽하게 속였다고 알고 있죠.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게 아니죠. 이처럼 인간은 자기 스스로에게 자기가 자기를 속이면서 살고 있다는 거죠. 그거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정말 인간은 삶에서 성공할 수 없어요. 현재 정부, 정치인들도 그런 나르시시즘에 젖어있어요. 나르키소스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우물에 빠져 죽었잖아요. 자기의 나르시시즘 때문에, 자기가 자기에게 함몰되는 거예요. 이 작품도 그런 걸 상징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걸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자기를 벗어나려는 사고 없이는 힘들어요. 자기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럼, 승연은 석환을 통해 자기 감정이 깨어났고 그 감정으로 인한 자기 도취에 빠져있다가 마지막의 친구의 전화를 받고 그 도취에서 깨어났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것 보단, 승연은 석환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자기 발견을 하죠. 여성으로서 자기 발견이란 것은 미적 차원, 예술적 차원이라고 보시면 좋을 거예요. 승연은 꽃꽂이 작가인데, 주변에서 무시하면서 얘기하죠. 꽃을 뭘 꽂냐고. 그게 뭐 대수냐고. 하지만 승연은 꽃 자체는 자연이고, 그걸 재료로 하나의 다른 세계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인물입니다. 꽃은 자연이지만 꽃꽂이는 예술인 거예요. 자연과 예술을 구분을 못하는 타인들과는 다르죠. 자연 상태의 승연이라는 존재에서 석환이라는 바람이라는 존재를 만나서 한 여성이 변화되는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바람이라는 게 이중적인 의미네요.
그렇죠. 새로운 자기로 태어나는.
Q. 소설의 주인공이 중년 여성이어서 용기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중년 여성의 가정 외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승연을 통해 이런 사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면요?
제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간통죄라는 것이 있었죠. 간통죄는 남자 때문에 만들어진 거죠. 배우자가 부정행위를 했을 때, 최고 징역형이 8개월인가 살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배우자를 징역을 살게 하려면 이혼을 해야 해요. 그래서 보통은 간통죄를 합의를 하더라고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든지, 그런 식으로 약속을 하고요. 저는 배우자를 혼내가면서 같이 산다는 건 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이면 모를까 어떻게 남편을 혼내가면서 같이 살게 하느냐는 거죠. 이미 가족의 교유가 끊어진 상태니까요.
가정의 민감한 문젠데 이게, 유럽에서도 매일 문제였죠. 미래학자 조르주 바타이유는 “금기를 위반한 성적 행위가 창작을 유도할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준다. 성적 에로티시즘은 몸이 아니라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어요. 이게 놀라운 이야긴데, 여성과 남성의 결합은 정신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부부 사이에서도 남성의 원할 때는 언제든지 부인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방적인 관계가 80%래요. 이거 참 기가 막힌 이야기예요. 우리 사회가 조선시대 때부터 여성을 완전히 지배하는, 지배구조였죠. 가부장제니까. 남성이 가문을 잇고, 남성혈통주의로 여성은 순종해야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소속된 소유물이었죠.
하지만 인간은 평등해요.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성은 민주주의 밖이어야 하는 거죠? 성도 민주주의 안으로 들어와야죠. 간통죄가 없어진 것은 여성의 인권 상승이에요. 법에게 ‘나를 지켜 달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게 된 거죠. 과거엔 남성이 경제권을 모두 쥐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여성이 직업을 갖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평준화됐잖아요. 그럼 자연히 성적 문제도 평준화되겠죠. 여성은 남자가 요구할 때, 아내니까 응해줘야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의사 결정에 따라 당당해질 수 있는. 나는 성적 민주주의를 말하고 싶었어요.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비유하자면, 성적 유리천장을 깬다?
그렇죠, 그렇게 볼 수 있죠. 우리는 아직도 지배구조 하에 있어요. 승연이처럼 자아 발견을 했을 때 자신을 만들어가려고 하죠. 가시적인 몸부터 지적 수준까지 만들려고 하잖아요.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려는. 여성들도 나이에 한정되어서 멈춰있지 말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여성다운 면이 있기 전에 인간이잖아요. 여성은 아름다운 곡선과 부드러움을 갖고 있어요. 이것을 여성의 특성으로, 순수한 미로 봐야지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되죠.
여성은 존재하기에 존재할 뿐, 남성을 위한 유흥적 감상 대상이 아니란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어떤 학자도 그랬어요. 여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이게 얼마나 여성에게 모욕적인 언사에요? 그러니까 여성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성적 표현이나 직업 같은, 자신의 표현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요. 남편은 동반자일 뿐이니까요. 여성 스스로가 이 제도에 묶이지 말자.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남성은 여성편력이 심해도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 ‘여자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사회가 오지 않겠나. 오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이죠.
결혼 제도라는 게 참, 여성을 남성 아래로 복속시키려는 장치로써 작용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호주제도 폐지 됐지만 그랬었고. 인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조명 받지 못하는 면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죠. 제도라는 게 참 그러네요.
Q. 애국적인 삶을 살다 간 이회영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나, 독도를 향한 서사시를 쓰시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작품을 많이 쓰셨는데요. 이번 작품은 불륜이라는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이야기 주제로 삼아서 작품을 쓰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나 논란이 되는 소재니까요. 이런 소재를 택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혹은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어려움보다는 걱정스러움이 있었죠. ‘불륜을 미화하려한다’는 오해를 하지 않을까. 동기는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느 여성이 나를 찾아왔는데, 내 동의를 구하려고 왔다가 내가 동의를 해주지 않자 나를 가르치고 가죠. 나는 처음에 굉장히 화가 났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나는 화장실을 갈 때도 휴대폰을 가지고 간다.’라고 말했었어요. 전화가 그 사이에 올까봐. 간절한 기다림이죠. 그 간절한 기다림에 내가 감동했어요. 이 기다림과 떨림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이걸 그냥 흘려보내면 아깝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이런 세계를 파헤쳐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Q. 1월 3일자 국제신문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중년의 사랑을 다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욕망이 없으면 사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근본적 본질인 욕망을 제거하면 인간은 사물화 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곧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한 제도·질서와,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에 자리한 솔직대담한 욕망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사회에서 사라지면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사회의 질서와 인간의 욕망, 이 두 가지 중 작가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회적 질서와 인간의 욕망, 이 둘은 밥과 찬이라고 생각해요. 뭐가 밥이고 뭐가 찬이라고 할 수 없어요. 밥만 먹으면서 살아갈 순 있어요. 하지만 영양을 생각하면 하나만 먹을 순 없죠. 어느 게 더 주가 되어야 한다, 이런 거라기 보단 조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것은 제도를 강력하게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정책을 실현시켰기 때문에 인간이 사물화 되고 표현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러나 자유가 너무나 느슨하게 되면 방임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교육이 필요한 거예요. 자신 스스로를 컨트롤할 능력을 갖추게 해야죠. 욕망은 중요한 거예요. 욕망은 씨앗이 땅을 헤치고 나오려는 에너지로 비유할 수 있어요. 땅을 밟으면 싹은 죽어버리겠죠. 이게 반복되면 땅 위는 삭막하게 될 거예요. 인간의 욕망을 제재하고 막아버린다면 사회는 발전할 수 없어요. 욕망으로 인해서 무언가를 이루니까요. 욕망 속에서는 물론 좋지 않은 것도 있어요. 세상은 부정과 긍정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부정이 있기 때문에 이 부정을 누르기 위해 긍정이 발전하잖아요.
헤겔의 변증법처럼요? 정반합과 비슷하네요.
그렇죠. 헤겔의 변증법처럼요. 서로 발전시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와 욕망의 조화가 필요하죠.
Q.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면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들이 등장합니다. 철학서를 방불케 하는 방대한 지식이었는데요. 욕망에 대해서 매우 깊게 탐구하신 것 같은데, 이를 보면 작가님이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깊이 말씀하시고 싶으신 바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혀졌으면 하는지 궁금합니다.
차나무 뿌리가 200m 아래로 물을 찾기 위해 바위를 뚫고 내려가는 힘, 그런 진지함. '이런 정신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려고 애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저는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욕망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상적인 욕망을 꿈꾸면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근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이 없을 거예요. 사물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획일화되어 있잖아요. 자기 안에 모두 갇혀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깨고 나오려는, 일종의 부화적인 의미를 지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을의 유머라는 작품의 제목을 짓기 전에 '부화'라는 제목을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Q.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친일을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자. 미래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사고를 청산하자. 이걸 제대로 정립해서 남기자. 이런 의미에서 쓰는 겁니다. 여기에는 위안부 문제도 있고요. 크게 두 축으로 쓰고 있어요. 독립 운동가의 가문은 가난이 대물림되고, 친일파의 가문은 권력이 세습되는 현실에 주목했습니다. 나오면 두 갈래로 반응이 나뉠 것 같아요. 또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있어요.
Q. 최상의 작품을 쓸 것이라고 작가의 말을 마무리하셨는데, 최상의 작품이라면 어떤 작품일까요?
O. 헨리의 작품 마지막 잎새를 보면 노화가 베어맨이 아픈 소녀를 위해 매일 담장에 잎을 그리죠. 베어맨의 인생 최고의 작품인 거잖아요. 한 생명을 살렸으니까. 저도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 그런 생각은 하죠. 작가의 말 마지막에 보면, “최상의 작품을 창작하리라는 욕망이 나를 이끌어 줄 것으로 믿는다”라고 했는데, ‘이 욕망으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그런 말이에요. 저는 그렇습니다. 작품을 끝내고 나면, “아, 오늘도 실패했다.” 이 실패가 나를 채근해요. “빨리 제대로 해 봐.” “진짜 잘 해봐, 한 번.” 이런 채찍이 힘이 되더라고요. 실패가 채근하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 다시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 이런 말을 자주 하죠.
욕망처럼 이루고 나면 최상의 대상이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요?
네. 그것과 비슷하죠.
구체적이고 학문적인 대답이 두 시간 가량 이어져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미흡한 질문에도 매우 성실히 답변해주셔서 감동을 받았었어요. 함께 오신 작가 선생님도 매우 친절하셔서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인터뷰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신 작가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을의 유머 표지/누르면 링크 이동)
이런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품을 읽으면 더욱 흥미롭고, 생각할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이번 주에는 가을의 유머 정독이 어떨까요? 그럼 이만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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