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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투어

[북투어후기] 7화 대만은 지방인가, 국가인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5. 11.

 

[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7화 

 대만은 지방인가 국가인가?

by. 조세현(부경대 사학과 교수)

 

 


대만은 중국의 지방일까? 독립적인 국가일까?

 

 

▲ 중국과 대만의 지도

 

 

 오늘날 대만臺灣이라는 지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국가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여기서 중화민국은 청조淸朝의 멸망과 함께 1912년에 건국되어 37년간 중국을 지배하다가 1949년 중국공산당 세력에 패퇴하여 대만으로 옮겨왔다. 오랜 기간 동안 중국대륙의 통치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대만을 통치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과 중화민국은 실질적으로는 중국대륙과 대만 섬을 각각 지배하고 있지만, 명분상으로는 양자가 모두 대륙과 대만을 자국의 영토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지역명칭에 불과했던 대만이란 이름을 국가명과 구분하지 않고 부르고 있다. 어쩌면 국제사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의 국호를 인정하지 않기에 더욱 ‘중국과 대만’이란 구도로 이해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중화민국과 대만사이에는 역사정체성과 관련한 뿌리 깊은 문제가 숨겨져 있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중국일까 아닐까? 우리가 보통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믿는 상식과 달리 요즘 다수의 대만인들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대만인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전환은 이미 소수의 견해가 아니라 국가권력 차원에서 이루어지기에 더욱 놀랍다. 대만사회에서 자신이 대만인이라고 여기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감소하지만, 여전히 중국으로부터 독립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비록 대만사회 내부에서조차 중국과 대만이라는 명칭 갈등상황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대만을 바라볼 때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중국(대륙)이냐 대만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접근하는 태도이다.

 

 

 대만은 중국과의 역사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대만사관련 다양한 해석 가운데 대만사연구자인 이수붕李筱峰의 견해를 빌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중국당국이 항상 대외적으로 “대만은 예로부터 중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사실이 이와 같은지 문제를 제기한다. 대만은 1684년 청 제국의 영토에 편입되면서 비로소 중화제국 통치아래 일부분이 되었다. 그 전에 대만은 중국의 어떤 왕조정권에게도 통치를 받지 않았다. 만약 대만이 예로부터 중국영토의 일부분이었다면 대만역사상 출현한 첫 번째 통치정부는 중국이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며 실제로는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인이 대만통치를 시작할 무렵 당시 명 제국은 이를 동의하였다. 대만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경영하고 있을 때에는 중국영역이 아니었으며, 정성공이 대만에 정권을 수립하면서 비로소 명의 영역에 들어왔고, 다시 청이 대만의 통치권을 빼앗으면서 청의 영토 안으로 들어왔다고 본다.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 시기는 청이 통치하던 211년간이다. 그러나 청 제국이 대만을 병탄했지만 한참동안 이 섬을 정식영토로 보지 않아 봉산금해封山禁海의 정책을 폈다. 1684년부터 100여년 이상 엄격한 해금정책을 폈으며 1875년 이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이민을 개방하였다. 그래서인지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 것은 청대부터 처음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에 대만사가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믿는 것은 상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청조가 대만을 진정한 자신의 영토로 인식한 것은 18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1895년의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은 다시 일본에게 영구 할양되었다.

 

 

▲ 삼국간섭 삽화,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2%BC%EA%B5%AD%EA%B0%84%EC%84%AD)

 

 


  중화민국은 1912년 건국되었는데, 당시의 대만은 일본통치아래 식민지였다. 따라서 대만은 중화민국의 건국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원래 중화민국의 영토에 속하지도 않았다. 1912년부터 1945년까지 중화민국의 범위에는 대만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은 비록 중화민국의 관리아래 놓였으나 실제로는 중화민국정부가 연합국을 대신하여 잠시 관리한 ‘주권이 정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대만과 팽호(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의 작은 섬)의 영토귀속은 반드시 연합국과 일본이 정식 평화조약을 체결해야만 영토의 귀속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1949년 중화민국정부는 중국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철수하였으며, 결국 중화민국의 범주는 대만과 팽호로 축소되었다. 이런 해석에 따라 다수의 대만학자들은 대만은 고대시기에 중국에 속하지 않았고, 청대에도 통치범위가 대만 섬 전체에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역사 거주민 문화 정체성 및 국제법상으로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대만학계가 위와 같은 하나의 역사해석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 내 통일파와 독립파, 혹은 국민당과 민진당 간에 대만사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복잡하게 엉켜있다. 단순화시키자면 어떤 사람들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으로 중국인이 개발했지만, 단지 대만개발이 비교적 늦었고 장기간에 걸친 이민으로 형성된 사회로 대륙과 상이한 경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대만역사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며, 대만사는 중국의 지방사라는 관점을 가진다. 이에 반해 다른 사람들은 대만은 예부터 중국의 영토가 아니며 항상 외래정권의 통치를 받았다고 믿는다. 즉 대만은 이전에 한 번도 대만인 스스로가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해석이 대만의 역사교과서 편찬을 둘러싸고 역사논쟁으로 확대되면서 역사교육에 관심이 있는 교육계와 정치계도 논쟁에 참여했고 언론매체를 통해 일반대중도 광범하게 논쟁에 동참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만정치가들이 대만사 연구 성과를 자의적으로 대만독립(혹은 그 반대)에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이 곤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아졌다.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한편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대륙과 대만의 역사관계를 본격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대만과 팽호를 병칭하여 대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한인 위주의 역사서술을 하면서 대만의 고산족의 기원도 중국 화남지역에서 이주한 고인류로 보고 있다. 정성공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식민주의자를 몰아내 대만을 수복한 민족영웅으로 높이 평가하고, 청대의 대만통치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통해 대만의 중국 귀속여부를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일본식민통치시대 역시 항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연구하며 대륙과 대만동포 간 상호협력을 강조한다. 대륙학계는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분”이라는 관점을 줄곧 유지해 왔으며, 기본적으로 대만사는 중국의 지방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충실하여 논쟁적이기보다는 통일적인 입장을 취하는 특징을 보인다.

 

  대만사가 오랫동안 중국연구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사 가운데 지방사의 하나였지 독립국가의 역사로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중원중심의 국가관을 해양국가관으로 대체하려는 것이나, 한족중심의 편견을 버리고 다족군多族群사회라고 보는 것이나, 정권교체가 빈번한 이민사회라고 보는 현상은 결국 새로운 대만사를 건립하려는 목적과 맞물려 있다. 이로 말미암아 전개된 대만의 역사논쟁은 독립파와 통일파 사이의 논쟁은 물론 대만독립파 내부에서도 전선이 형성되었고, 대륙학계 역시 이 논쟁에 가세하여 중국의 대만사학자와 대만의 독립파학자 간에서도 논쟁이 이루어졌다. 대만사회에서 대만사라는 하나의 역사에 복수의 역사학이 공존하며 갈등하는 상황은 중화민국사와 대만사 사이에서 방황하는 대만지식인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 8화에서 계속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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