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저자의 진심이 전해진다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편집자에게도 열 원고 중 마음에 담지 않는 원고는 없지만, 유독 더 보듬고 싶은 원고는 있다. 나에겐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가 그러하다.
면접을 보고 산지니에 온 첫날, 사무실 한쪽에 빽빽이 꽂혀 있던 책들 중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익숙하지 않은 생경한 그곳, 그곳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연구는 어떤 사명감을 갖고 하게 되는 일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 뒤 운명처럼 그 책의 저자가 쓴 원고를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 원고를 받고 저자 프로필을 보았다. “노용석 교수는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관한 13개 유해발굴을 주도했고, 2011년부터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참여해 한국전쟁기 국가폭력의 진상 파악을 위해 노력했다.” 역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노력해온 저자였다. 원고 속에는 저자가 직접 조사하고 얻은 풍부한 사례와 사진이 있는데, 원고를 편집하면서 하나하나 착잡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가슴 아픈 ‘실제’ 피학살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와 처음 미팅을 할 때 억울한 국가폭력 속 희생된 피학살자들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을 느끼면서, 더욱 원고에 빠져서 진행을 했다. 저자는 인간적으로도 배려가 넘쳤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원고나 그러하지만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편집 일정이 촉박했다. 그런 와중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어 며칠을 쉬게 되었다. 미처 다 보지 못한 교정이지만 기한이 촉박해 저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정지를 들고 직접 학교로 찾아갔다. 무더웠던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나를 보고 저자는 원고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장례식장에 가라고 말하며 역까지 차로 바래다줬다. 그때 그 따뜻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나려는 걸 참느라고 애썼다. 장례식 내내 원고에 있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했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화장을 하는 날, 할아버지의 유해를 보고 원고에 있는 유해 사진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이 원고를 이 시점에 맡게 된 게 정말 필연이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간이 되고 실물 책을 볼 때 기쁘지 않은 책은 없지만, 이 책은 내용 하나하나 허투루 모인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벅찼다. 묘하게도 좋은 의도로 만든 책에 담긴 진실된 마음은 어떻게든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책이 출간되고 한겨레, 한국일보, 연합뉴스와 같은 각종 매체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보도자료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발로 뛴 지식인의 기록. 그 말처럼 저자는 지금도 먼 남아메리카 쿠바에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위해 가 있다. 저자의 열정과, 억울하게 희생된 피학살자들과 그 가족의 눈물이 담긴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저자의 진실된 마음으로 담은 기록들이 분명 전달될 거라고 믿는다. 나에게도 유골, 할아버지, 더웠던 그날, 따뜻했던 저자…. 장면 하나 하나가 마치 사진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고마운 책이다.
글| 이은주 산지니 편집부
*출판저널 507호 2018년 10월+11월에 실린 글입니다.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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