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합니다. 논도 습지입니다.
2005년 11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열린 제9차 람사르 총회에서 일본 미야기현 다지리 정 가부쿠리늪과 일대 무논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는 획기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연 습지가 아닌 인간이 농사짓는 땅이 습지 목록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가부쿠리늪 일대에는 무논이 21헥타르(7만 평) 정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겨울철에도 물을 채워 놓는 등 500가구가량이 유기농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부쿠리늪 일대 무논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 자원이 절약되며 생물다양성과 자연성도 회복됐습니다. 가을걷이를 한 다음 볏짚과 쌀겨를 뿌리고 물을 채우는 겨울철 무논 농법은 한 번 시작한 사람이라면 쉽게 그만두지 못할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실지렁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실지렁이가 흙 속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질소성분이 들어 있는 배설물을 쏟아내게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잡초와 해충이 줄고 질소 화학 비료를 뿌리거나 써레질을 할 필요도 없어진답니다. 반면 소출은 별로 줄지가 않아서(유기농법으로 바꾸면 보통은 크게 주는데), 여태껏 해온 관행농법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267쪽, <습지와 인간>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하동 악양 평사 마을 들판도 실은 사람들이 개간한 습지입니다. 최참판이 허구인 줄은 잘 아시죠? ⓒ김훤주
논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잘만 보존하면 풍성한 먹을거리와 생물다양성도 절로 실현하는 인공습지라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논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화학비료와 농약(전쟁때 살인 목적으로 쓰이던 화생방 무기가 요놈으로 변신했지요)을 뿌리기 시작하면서 벼 말고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땅이 되었습니다.
농약의 대표주자는 맹독성 제초제인 파라티온인데, 이 제초제는 풀뿐만이 아니라 잠자리와 메뚜기 같은 곤충, 미꾸라지, 개구리 논고둥, 황새, 따오기 등 논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생물들을 날려 버렸습니다. 심지어 사람도 쓰러뜨렸지요.
논은, 인간이 크게 간섭을 한다는 점만 빼면, 다른 습지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야생 동물과 식물의 터전이며 물속 유기물질을 없애는 오염 정화 구실까지도 다 하고, 물을 가둬두는 저수지 구실과 빗물을 땅 밑으로 스며들게 하는 통로 구실도 톡톡하게 합니다.
논에는 벼 말고는 아무것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논도 습지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화학비료와 농약으로부터 논을 해방시켜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훤주 지음 | 신국판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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