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문화와 글쓰기의 윤리
저자 : 리처드 앨런 포스너(Richard A. Posner)
역자 : 정해룡
쪽수 : 224쪽
판형 : 46판 양장
ISBN : 978-89-92235-54-9 93800
값 : 12,000원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큰 이슈로 등장하는 표절사건
최근 표절은 세계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표절과 관련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편이다.
가장 최근의 표절사건으로는 신인작가 주이란이 “저는 영혼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 신문에 기고하면서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가 동일제목의 자신의 단편소설 『혀』를 표절했다고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현재 이 사건이 문학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제자의 작품 몇 편을 작가를 밝히지 않고 자신의 시집에 임의로 삽입한 마광수 교수 사건, 김병준 총리 지명을 둘러싼 논란, 이필상 총장 사건 등은 본인들의 사과와 사퇴 등을 통해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표절’과 관계된 논란은 수면 아래 일시적으로 잠복해 있는 상태이다.
마틴 루터 킹, 블라드미르 푸틴, 미상원의원 조셉 바이든의
표절 사례
이 책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사 예컨대, 역사적으로 표절의 시비에 휘말렸던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역사가 도리스 굳윈, 상원의원 조셉 바이든뿐만 아니라 문학의 대가로서 존경받고 있는 영국의 풍자작가 조나단 스위프트, 극작가 셰익스피어,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T. S. 엘리어트 등의 사례를 들어 표절을 설명하고 있다.
문학, 학문, 음악, 미술, 영화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표절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표절의 정의와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의 문제,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차이, 표절과 창조적 모방의 관계 등을 기술한다.
표절이란 무엇인가
표절은 원저자로부터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거나 또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무단으로 베끼는 것으로, 저자는 이를 ‘지적사기(intellectual fraud)’로 정의하고 있다. 표절의 핵심은 신뢰의 문제이다. 즉 남을 속인다는 것이다. 자기표절이 문제가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비록 이전에 자기가 쓴 작품이라 하더라도 마치 새로 쓴 작품인 것처럼 내놓는 경우 이는 사기가 되고 표절이 된다. 독자가 읽게 되는 작품이 사실은 옛날 작품을 베낀 것이기 때문이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이 책에서 ‘표절(plagiarism)’과 ‘저작권 침해(copyright infringement)’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서로 중복되기도 하지만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 저작권이 만료되면 저작물은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에 속해 누구든 법률적 책임 없이 복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 영역에 있는 저작물을 복제하더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여전히 표절로 간주될 수 있다. 반대로 저작권을 침해한 경우라 하더라도 명확하게 출처를 밝힌다면 표절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표절자였다? - 표절과 창조적 모방의 관계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제목이나 플롯은 물론이고 대사 가운데 무려 수천 행을 다양한 자료에서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혹은 거의 흡사하게 베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셰익스피어 ‘표절’의 가장 멋진 예를 들자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에서 바지선(船)에 올라 탄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하는 부분이다. 셰익스피어는 토마스 노스가 번역한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관한 부분을 무운시(無韻詩)의 형식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패러프레이즈하고 있다.(본문 76P)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셰익스피어는 표절작가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표절이 아닌 근본적인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우리와는 달리 창의성(creativity)이란 독창성(originality)이라기보다는 개량(improvement)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셰익스피어의 행위를 창조적 모방(creative imitation)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창조적 모방의 예로 저자는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등을 들고 있다.
표절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구 문화사를 통해 표절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옛날에는 표절이 중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셰익스피어에서 램브란트, 코울리지 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예술가들은 순수한 독창성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료를 개작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을 가치 있는 작업으로 여겼다. 당시에는 타인의 어떤 구절이나 플롯을 몽땅 가져와 써도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들이 모두 표절자로 낙인찍힐 수 있겠지만 당시의 관습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표절
미국에서도 고교생과 대학생의 3분의 1이 “리포트 공장”으로부터 리포트를 구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인터넷 강국답게(?) 방학숙제를 인터넷에서 베끼는 학생들이 있고, 누군가 써준 리포트를 제출하는 학생이나 학생의 작품에 슬쩍 이름을 올리는 교수가 있기도 하다.
인터넷 상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심지어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운영자들이 다른 사람의 글이나 사진, 음악, 동영상 등을 ‘퍼 나르기’하는 사례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는 우리의 표절불감증이 어디까지 인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의 사용이 증가하고 인터넷을 통한 개인의 활동이 커지는 오늘날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세계와 대중예술계에서도 크고 작은 표절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표절과 관계된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표절의 문제에 보다 합리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를 키운 측면도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정해룡 교수는 그동안 학계가 표절과 자기표절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 표절의 문제를 키운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도 표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범주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절을 저지른 사람을 찾아내고 이를 처벌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은 무엇보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루어질 학생과 연구자 일반의 학문 활동에 있어 올바름과 그릇됨을 가늠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우선적으로 제정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학생들한테 표절의 해악에 대한 교육을 통하여 정직하고 윤리적인 글쓰기가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자는 책의 말미에 보론을 덧붙여 글쓰기 윤리의 위반 사례와 모범적인 글쓰기 사례를 인용하면서 윤리적 글쓰기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정해룡 교수가 제시하는 18가지 연구윤리 지침
다른 이의 글을 인용하거나 요약할 때는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빌려왔을 때에도 출처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인 양 속이는 것은 표절이 된다. 비록 자신이 썼다 하더라도 이전의 자료에 비슷한 성격의 자료를 추가하여 새로운 글을 만드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이미 발표된 논문과 동일하거나 상당 부분이 겹치는 내용을 다시 발표하는 것은 이중게재로서 연구윤리에 위배된다.
하나의 연구로 충분한 자료를 분할하여 복수의 논문에서 활용하는 것은 연구윤리에 위배된다. 읽지 않은 자료나 불완전한 이해에 바탕을 둔 자료를 인용하지 말아야 하고, 재인용을 직접인용으로 표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 역자가 제시하는 18가지 지침(213p)을 숙지한다면 무의식적인 표절의 문화에서 벗어나 정직하고 윤리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 리처드 앨런 포스너(Richard Allen Posner)
193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저명한 법리학자이자 현직판사. 현재 미국 제 7 순회 항소법원 소속의 판사로 재직 중이다. 시카고 법대에서 교수로 있을 때 경제학의 원리를 법학에 접목시킨 ‘법과 경제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도 시카고 법대의 교수 신분으로 남아 있다.
포스너는 실용주의 철학과 자유주의 정치학, 그리고 경제학적 방법론을 통합한 법철학을 꾸준히 개진하고 있는데, 저서로는 『법제의 문제』(The Problems of Jurisprudence), 『성과 이성』(Sex and Reason), 『법, 실용주의, 민주주의』(Law, Pragmatism and Democracy), 『도덕과 법의 이론의 문제』(The Problematics of Moral and Legal Theory)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민감한 정치 및 외교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뉴욕타임스에 의해 “지난 반세기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반독점법 법학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옮긴이 : 정해룡(鄭海龍)
1954년 태어나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Clemson University 문학석사,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부경대 영어영문학부 교수이다. 부경대학교 교수회장, 대학평의회 의장 및 (전)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부산인적자원개발원 원장을 맡고 있다.
책속으로
비스와나탄의 소설 일부 : 1
프리실라는 나와 동갑이었고 두 블록 떨어져 살았다. 내 인생의 첫 15년은 이런 정도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영재아동을 위한 방과후 활동에서 주산에 빠져들었고 그것이 우리를 처음으로 묶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프리실라가 안경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수없이 이어질 남자친구 가운데 첫 번째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의 일이었다.Priscilla was my age and lived two blocks away. For the first fifteen years of my life, those were the only qualifications I needed in a best friend. We had first bonded over our mutual fascination with the abacus in a playgroup for gifted kids. But that was before freshman year, when Priscilla's glasses came off, and the first in a long string of boyfriends got on.
브리짓은 나와 동갑이며 길 건너편에 산다. 내 인생의 첫 12년은 이런 정도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브리짓이 치열교정기를 벗어던지고 첫 번째 남자친구 버크를 만나기 전이자, 7학년 우등반에서 호프와 내가 만나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Bridget is my age and lives across the street. For the first twelve years of my life, these qualifications were all I needed in a best friend. But that was before Bridget's braces came off and her boyfriend Burke got on, before Hope and I met in our seventh-grade honors c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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