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14. 유교를 대체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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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데[Democracy]선생과 싸이[Science] 선생을 옹호해서 많은 일들을 치렀고 많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비로소 이 두 선생이 암흑 속에서 차츰차츰 그들을 구출해 광명한 세계로 이끌어 냈다. 지금 우리는 오직 이 두 선생만 있으면, 정치적·도덕적·학술적·사상적인 모든 암흑에서 중국을 구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천두슈가 <신청년>에 쓴 글 중에서 

5.4 신문화운동은 낡은 전통의 타파를 외치면서 과학과 민주를 기치로 내걸었고, 전국적인 지지를 타고 전통주의자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5.4 운동 이전부터 동도서기 혹은 중체서용을 주장하던 철학자들은, 여전히 중국의 정신을 기틀로 서양의 과학을 도구로만 수용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근대 중국에서 과학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피할 수 없는 폭탄이었다. 서양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 흔들리던 중국의 위상과 새로운 중국을 위한 다양한 이념과 주장들 사이에서 과학은 당당하게 그 논쟁의 중심에 섰다. 5.4 신문화운동이 한창이던 1923년, 새로운 중국을 꿈꾸던 지식인들은 약 1년 동안 과학의 의미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그 결과는 <과학과 인생관>이라는 책으로 발간된다. 흔히 ‘과현논쟁’으로 불리는 이 논쟁의 내용과 그 의미는 근대 중국이 설립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생관은 과학으로 결정할 수 없다

5.4 신문화 운동은 낡은 전통으로 대변되는 공자의 유교와 미신을 타도하자고 외쳤지만, 중국 내에는 여전히 19세기 말부터 동도서기 혹은 중체서용의 입장에서 서구 과학문명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중국의 전통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지식인 집단이 존재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으로 서양문명의 위기를 경고하던 서양 사상가들의 외침은 이들에게 좋은 근거가 되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이들 국수주의적 지식인들에게 중국 전통문명을 재평가할 구호가 됐고,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북경에서 중국 정신문명을 치켜세우자,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1918년 양계초는 지질학자 정문강과 철학자 장군매 등을 이끌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유럽을 시찰했고, 바로 그 시찰을 통해 서구의 몰락을 확신했다. 특히 이들은 더 나아가 ’과학파산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베르그송 등의 반과학적 생명철학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베르그송의 생명철학은 서양 근대를 구분짓는 ‘과학과 이성’주의 사조에 대한 대립으로 인문주의를 강조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기계주의적 공업문명을 반대하면서 창조적 진화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흔히 문화 보수주의라 불리는 이 학파의 저작들은 현학파의 주요 이론틀이 됐고, 장군매는 바로 이 과학파산론의 직계가 되는 철학자였다.

장군매의 글 <인생관>의 핵심은 과학이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지만, 세상 대부분의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인생관처럼 주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군매는 과학파가 주장하는 과학과 대비해서 인생관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주장했다.

1. 과학은 객관적이고 인생은 주관적이다. 

2. 과학은 논리적 방법의 지배를 받지만, 인생관은 직각에 근거한다.

3. 과학은 분석적 방법으로 시작하지만, 인생관은 종합적인 것이다.

4. 과학은 인과율의 지배를 받지만, 인생관은 자유의지에 따른다.

5. 과학은 대상의 동일성에 근거하지만, 인생관은 개성에 근거한다. 


장군매의 논리는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칸트 이후 아주 오래된 인문주의자들의 논리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뉴턴의 고전역학이 근대과학의 시작을 알린 이후, 서양 철학은 자연과학에 대비한 철학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 없이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르그송 같은 철학자들은 세계대전과 기계문명을 계기로 서양철학적 전통 안에서 과학과 대비되는 인본주의의 고유함을 주장했고, 이러한 철학전통은 훗날 프랑스에서 과학전쟁을 야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주관적, 직각적, 종합적, 자유의지적, 개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인생관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인문학의 고유영역이며, 과학과 인생관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라는 고유영역에서 설명력을 지니는 독립적인 학문체계가 된다. 이처럼 과학과 인문학의 영역 고유성을 주장하고 난 뒤, 장군매는 아담 스미스·마르크스·쇼펜하우어·플라톤 등의 사상가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해왔으나, “기나긴 역사의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한 사람은 이들 몇 명뿐이었다”는 주장으로 인생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바야흐로 중국은 신문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사조의 변천은 곧 인생관의 변천이며 따라서 과학은 사조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지질학자의 반박 - 과학적 방법론의 가능성

장군매의 글을 읽은 과학파의 많은 지식인들은 대응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 지질학자이자 사상가였던 과학자 정문강은 장군매의 주장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학은 참으로 무뢰한 귀신이다. 거수에서 2000여년간 빈둥거리다 근래에 이르러 점점 밥 먹고 살 길이 없어지자 홀연히 거짓 간판을 쓰고 새로운 명패를 걸고 어깨를 으쓱이며 중국으로 달려와, 허장성세로 이목을 끌며 사기를 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믿어서는 안된다.”

그는 인생관은 시비진위의 기준이 필요 없다는 장군매의 주장에 대해 시비진위를 따지지 않으면 대체 어디서 기준을 구하느냐고 반박했고, 과학은 바로 그 시비진위를 구하는데 가장 적격의 방법론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이 인생관의 문제를 모두 설명하지 못해도, 논리학적 방법론과 추론을 통해 과학의 재료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마치 고대의 몇몇 사상가들만이 인류의 길을 밝힌 것처럼 주장한 장군매의 발언을 이렇게 받아쳤다.

“과연 그와 같다면 책도 읽을 필요가 없고 학문도 추구할 필요가 없고 인식과 경험 모두 쓸모 없고 단지 ‘자기의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주장하기만’ 하면 만사 그만이니, 인생관이란 ‘모두 양심의 자율에서 비롯되고 결코 그렇지 않은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책을 읽고 학문을 추구하고 인식과 경력을 쌓는 것은 전부 시간 낭비인 셈이다… 따라서 어떤 살인마가 나타나, 그 살인주의를 내세워 “스스로의 양심이 명한 바에 따라 일어나 ‘살인주의’를 천하 후세의 모범으로 삼으라고 주장하더라도”, 우리는 다만 그 사람 역시 쇼펜하우어나 마르크스와 똑같은 대인물임을 인정하고, 또 “기나긴 어둠의 역사 속에서 불을 밝히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니,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들이 각자 제멋대로의 인생관을 들고 나와 ‘일어나 주장할’ 경우, 그것이 어찌 공자, 석가, 묵자, 예수의 인생관보다 고명치 못하다 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런 사회라면 하루라도 살 수 있겠는가?”


정문강 초상화/출처=한국인문고전연구소


즉, 정문강은 장군매의 주장처럼 주관과 직각, 그리고 양심에만 의존하는 현학은 상대주의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장군매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공자와 마르크스 등의 위대한 인물들과 시장에서 오가는 발언들의 차이조차 구별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은 것이다. 특히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과학의 가치를 폄하한 장군매의 궤변에 대해 정문강은 과학의 가치를 이렇게 요약한다.

“과학의 재료는 인류의 모든 심리적 내용이 포함되며, 모든 참된 개념 추론은 과학이 연구할 수 있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과학적 목적은 개인의 주관적 선입견을 물리치고, 사람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진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은 사실의 진위를 변별하고 참된 사실을 추출하여 상세히 분류한 다음 그들 사이의 질서를 찾아 간단명료한 언어로 개괄하는 것이다..”

정문강은 과학의 가치를, 과학이 발견해낸 결과주의에 기대어 주장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장군매가 인생관에 대비해 과학의 초라함을 지적할 때, 과학의 결과주의에 기대어 인생관이 여전히 과학에 의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정문강은 과학의 핵심은 과학적 방법론에 있다는 적확한 논증으로 꼬집고 있다.

“과학은 또한 교육과 수양의 가장 좋은 도구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날마다 진리를 구하고 수시로 선입견을 없애게 하며, 과학을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구하는 능력이 생기게 해 주고, 진리를 사랑하는 참된 마음을 가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만나든 항상 냉정하게 분석 연구하여 복잡한 것들 속에서 간단함을 구하고, 문란한 것들 가운데 질서를 구하여, 논리를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을 훈련하고 상상력을 더욱 늘리고, 경험을 가지고 그의 직각을 이끌게 하여 직각 능력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해주는 것이다… 과학의 만능, 과학의 보편성, 과학의 명확성은 그 재료에 있지 않고 그 방법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제임스의 심리학, 양계초의 역사연구법, 호적의 홍루몽 강의 및 근 300년 경학 대사의 학문연구 방법” 등이 모두 과학이다.”

특히 정문강은 장군매의 논리가 기대고 있는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가, 중국의 정신문명을 추켜세운 버트란드 러셀에 의해서조차 “베르그송은 파리의 패션 부인들 덕에 명성을 얻었을 뿐이다. 그는 철학에 대해 공헌할 것이 거의 없고, 동료 철학자들도 그를 무시한다”고 말한 사실을 거론하며, 서양철학의 겨우 한 유파에 불과한 베르그송 철학에 감화돼, 과학을 공부할 생각도 안하고 다시 송명시대의 철학으로 돌아가자는 낡은 생각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장군매와 정문강 사이에 벌어진 이 첫 논전은 1980년대 서양의 과학전쟁과 한국에서 최근 벌어진 통섭논쟁에서 과학자 측과 인문학자 측이 내세운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이는 중국이 이미 1920년대 중국 문화에서 과학의 위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겪으며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런 논쟁조차 시작하지 못한 한국에 비해 과학의 자리를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어도 중국사회는 이미 100년전 사회변화라는 실천의 가치 속에서 과학의 자리를 고민했고, 그 고민의 흔적은 과현논쟁으로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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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두슈 외 19명 지음, 한성구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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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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