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오월이 왔다
소설 『1980』과 <전라도닷컴>
_인턴 최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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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주간인가보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시작으로, 대표님께 자꾸 이런 책을 받는다. 달력을 보니 수긍이 간다. 오월이니까.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다.
노재열 작가의 『1980』을 읽었다.
소설은 1980년을 전후한 1년여의 이야기를 부산의 시점으로 다루고 있다. 1980년은 광주에서 5.18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해다. 저자는 그보다 한 해 앞선 1979년에 부마항쟁을 이끌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게 쫓기다 수감되었다. 그는 전두환군사정권 8년 동안 수차례 감옥을 들락거리며 사회운동에 힘썼던 사람으로, 현재는 부산에서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1980』이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겠다. 소설은 15P영창에서 주인공 정우가 얼차려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가 수감된 전말과 그 전후 상황을 상세히 들려주며 근현대사의 질곡을 묘사해간다.
작가의 분신으로 이해되는 주인공 '정우'는 독재정권 치하에서 대학 내 지하서클에 가담중이던 '뼛속까지 운동권' 학생이다. 서클 내에서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아끼던 후배를 퇴출시킬 만큼 그에게는 오직 "민중"뿐이다.
'이 엄혹한 시대에 연애 따위를 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 혁명운동에 온몸을 다 바쳐도 모자라지 않느냐, 특히 남녀가 연애를 할 경우 정신이 흩트려지기 쉽다. 서로가 연애감정을 갖는 건 개인적 취향에 따른 것일 뿐, 인류평등의 사상이나 보편적인 인간애와는 동떨어진 부르주아적 관념이다.'
『1980』 中
정우의 이러한 인식은 2010년 후반대에 대학을 다닌 나를 왠지 민망스럽게 하는 구석이 있을정도로 엄중하고 진지하다. 먹고사니즘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부유하는 대학에서, 이제 혁명이란 어디 먼나라 이야기 같기도, 영영 빼앗긴 단어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1~2학년일 때는 술자리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사랑은 감미롭게, 투쟁은 치열하게, 아~ 미운 사람!"
내가 별 생각 없이 주워다 불렀던, 먼 윗대 선배들로부터 내려왔다던 이 노래도 차츰 안부르게 된지 몇 년이 지났는데, 『1980』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예전에 대학생들은 투쟁을 했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설 때 그것을 자신의 의식으로 정립하는 겨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떠한 논리를 편다고 할지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동의를 얻어 내기가 어렵다. 경험이나 확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도.
『1980』 中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고, 심지어 추운 겨울에도 꽁꽁 언 땅을 비집고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 그러므로 꽃피는 봄이 봄이라면 사계절이 모두 봄이어야 했다.그렇다면 봄은 무엇일까? 유난히 봄에 꽃이 많이 피어서 꽃피는 봄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또다른 봄, 꽃피는 봄이 아닌 때에도 꽃이 피는 것은 왜일까? 그 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먼 날들이기 때문일까? 그 기다림이 다하기도 전에 꽃들이 전부 죽어 버릴까봐, 다른 계절에 몇 송이 꽃이라 할지라도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일까?그래서 그 꽃이 민중이라면 민중의 봄을 기다리고자 한다면 그 민중으로 다가가는 억울한 자들이 계절의 꽃이 되는 것인가? 그러므로 꽃피는 봄은 소외된 자의 봄을 딛고 억울하게 갇혀 잊힌 자들의 봄을 딛고 꽃이 만발하는 것인가?『1980』 中
전두환 군사쿠데타세력은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이기 7개월 전에, 이미 부산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였다. 1979년 10월 부산시민의 투쟁과 1980년 5월 광주시민의 투쟁은 연속선상에 있었다. 그 7개월이라는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이었고, 그 속에서 진행되었던 민중들의 투쟁은 점점 커져가는 폭압에 맞서 자신들의 투쟁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1980』 中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참을 수 있다."
살아남은 자의 가장 중한 역할이란 죽은자들에 대한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라고 했다. 오월은 매년 오고, "남이 가슴 아픈 일을 겪으면 꼭 이쪽 일 같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마음을 다잡는다. 남의 슬픔까지도 껴안는 사랑은 감미롭고, 투쟁은 언제까지나 치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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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 노재열 지음/산지니 |
다시 시월 1979 - 10·16부마항쟁연구소 엮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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