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이승은입니다

코로나 시대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일상을 보내시고 계신가요?

저는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어

마음 한 켠이 외롭고, 쓸쓸하여 어쩌면 고독한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마치 한줄기의 빛처럼 나타난 책 한 권이 있는데요!

(두둥!)

시성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을 다룬,

박정선 작가님의 비평집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이에요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고,

또 영광스럽게도 저자이신 박정선 작가님과 인터뷰할 기회도 생겼는데요!

인터뷰는 산지니와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되었답니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그리고 제 질문에 즐겁게 답변해주셨던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인터뷰를 함께 보도록해요

 


 

 

Q. 작가님께서는 시, 소설, 비평 등 많은 장르를 아우르고 계시고, 이번에는 마치 변신을 하듯, 새롭게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으로 다시 독자에게 다가갔는데요. 가볍게 출간 소감 한마디만 해주실 수 있나요?

A. 아주 기다렸던 그런 질문 같아요. 질문해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스스로 주요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시조를 시작했구요. 시조란 게 정형시잖아요? 정형시는 몇 년 동안 몰입하면 그 틀에 고정이 돼요. 그래서 다른 장르 하기에 참 어려워요. 자유시를 쓰다가도 저도 모르게 시조를 쓰게 되더군요.

15년 동안 시조를 쓰다가 장르해서 여러 장르를 쓰게 되었어요. 그럼 지금은 시조를 안 쓰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쓰고 있어요. 소설 쓰다가, 시조 쓰다가.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해요.

이번에 비평집을 왜 쓰게 되었냐면, 우연한 계기예요. 종교 시인의 해설 평을 쓰고 있었는데, 종교 시들은 그리 좋은 평을 못 받거든요. 그런데 타고르도 종교 시를 썼거든요? 그로 인해 타고르도 낮게 평가받지 않는가? 하는 불합리한 생각, 이러한 거로 출발하게 되었어요. 마치 독자 여러분께 선물한다는, 그런 마음으로요.

타고르를 소설로 쓰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소설로 쓰면 사실을 밝힐 수 없잖아요. 소설은 픽션의 영역에 존재하기에. 평론처럼 인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 비평집으로 쓰게 되었어요.

 

Q. 제가 예전에 하셨던 인터뷰를 조금 살펴봤는데요. 작가님께서 ‘힐링 서사’를 써오셨던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러한 힐링 서사를, 그 외에 모든 작품을 쓰게 된, 작가님이 ‘문학’에 이끌린 계기가 궁금해요.

A. 사르트르가 말하길, 작가는 사회 모순을 가장 먼저 발견할 줄 알고 사회 모순을 비판할 줄 알며 언어로 행동하는 실천하는 사람(지식인)이라고 해요. 작가는 글로써 사회를 인도해가는 하나의 일종의 인도자인 거죠. 마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처럼 말이에요. 소설은 사실을 예술로 승화해서 인간을 감동으로 설득시키고 인간의 인생 방향을 돌릴 수도 있어요. 교회에는 ‘은혜받다’라는 표현을 써요. 이걸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감동받다’라는 말이 돼요. 작가란 사회에 이러한 감동을 제공하는 사람인 거죠.

작가로서, 내가 누구인가? 나 스스로는 어떤 사람인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져봤어요. 제가 살아온 가정 분위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백조 왕자 같은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 퀴즈 등이요. 선과 악, 또는 지혜 등 수많은 것들을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펼쳤던 거 같아요.

또 저희 집안이 귀양 간 족보더군요. (웃음) 귀양은 정치범들만 가잖아요. 그것과 더불어 시제를 지내면서 여러 가지 전해온 말들을 듣고, 또 물려받은 백자 같은 것들도 보고. 그 탓인지 저도 반골 기질이 있더군요. 할아버지에게 많이 반항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제사를 지내는데, 낭비가 너무 심했거든요. 보여주기 허세가 강하니까 하지 말자고. 길러준 할아버지를 비판하고 나선 거죠, 그래서인지 시대극을 쓰게 된 것 같아요. 관심이 꽂히더군요. 작가는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니까요.

물론, 중요한 건 열정이에요. 정의감이 강하면 열정도 강하더군요. 불합리한 것들, 부당한 것들을 보면 못 견디는 거예요. 어떤 장치를 수단으로 쓰든 표현하고 싶어요. 소설은 참 좋은 게 그런 걸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인물들을 빌려 말할 수 있으니까 좋은 문학인 거 같아요.

이 많은 것들이 합쳐져 지금의 제가 된 거 같아요. 

 

▲박정선 작가님께선 유머와 재치가 가미된 무게 있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Q. 작가님 인터뷰를 읽으며 작가님께서 철학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작품을 쓰실 때 철학과 사상이 어떻게 영감을 주는지, 철학이 또 작가에게 왜 필요한지가 알고 싶어요.

A. 철학은 특별한 분야가 아니에요. 옛날에는 철학과가 없었어요. 철학과가 좀 늦게 생겼거든요. 철학은 갈래가 아닌 인문학의 바탕이에요. 철학은 사람 이야기이고, 지혜예요. 성경 속 솔로몬의 지혜, 이런 것들이 철학인 거죠. 작품 쓰는데 철학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뼈가 없는 살덩어리 작품이 되죠. 작가는 철학을 바탕으로 글을 써나가야 해요.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상식이 곧 철학이죠. 현재 우리 사회는 상식을 무시하는 일들이 많죠. 쉬운 예로, 현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끼지 않는 그러한 행위들이요. 그와 관련된 많은 사건이 있었죠?  남을 위해, 또 나를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게 상식이잖아요. 이러한 상식, 즉 철학을 통해 자신의 규칙을 세우고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시대를 분석해야만 탄탄한 글이 나오겠죠.

우리가 성경,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성경 구약은 이스라엘 신화고, 신약은 철학과 지혜거든요. 이 안에 비유가 참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우리는 한 몸이란 뜻이죠.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철학을 모르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문학에서는 그러한 비유를 유효적절하게 잘 찾아내야 해요.

 

 Q. 이번엔 타고르에 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책 머리글에 앞서, ‘기탄잘리를 통해 접한 타고르의 정신세계의 신비로운 마력에 대해 언급해주셨는데요작가님께서는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에서 어떠한 점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와, 타고르의 매력 속에 빠지게 되었나요?

A. 타고르의 그의 센티멘탈한(감상적인) 우울과 고독. 거기에 저는 푹 빠졌어요. 타고르는 항상 혼자였어요. 그런데 혼자라는 것, 고독에는 두 가지 양면성이 있어요. 고통을 느끼는 즐기는 고독. 하나는 외로움과 슬픔이 내면에 스며들고, 또 다른 하나는 고독 속에서 내면의 자기 세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게 해줘요.

타고르는 14번째 자식으로 태어났어요. 그 탓에 어머니는 늘 아프고, 형제자매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요. 아버지는 신학자, 교수로서 항상 집을 나가 있었기에 타고르를 돌보는 것은 하인들이 했는데, 타고르는 그게 지독하게 외로웠어요. 하인들은 그를 애칭으로 라비라고 불렀어요. 그 어린 라비를 돌보기 힘드니까 어떨 때는 백묵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나오지 못하게 해요. 나오면 안 된다고. 왜 하필 동그라미냐면, 그 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어요. 라크슈마나 왕자가 시타 공주 주위에 그려 놓은 동그라미를 공주가 넘어가서 벌을 받은 이야기가 있어서, 라비는 그 원을 나오지 못해요. 라비가 이때 어린 마음에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을, 성장해서 반얀나무를 통해 그 시를 풀어내요. 동그라미를 벗어나 그늘로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에도, 꿈을 꿀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요.

고독이 열정을 창조하는 거지요. 고독하지 않으면 열정도 뭣도 없어요.

반얀나무, 출처 pexels


너의 가지에서 얽혀진 뿌리를 내리는

오오 해묵은 반얀나무여

너는 명상에 젖은 구도자처럼

그날이 그날이듯 말없이 서 있다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네 그늘에서 꿈을 즐기고 있던

그 어린아이의 일을,

-『기탄잘리』 발췌-

 

Q.  혹시 책 안에 담지 못해서 아쉬웠던 타고르의 일화, 혹은 그의 문학 작품 등이 있나요?

A. 굉장히 많아요. 그중 타고르의 사랑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요. 타고르, 얼마나 잘생겼습니까? 젊어서 결혼을 막 했을 때 찍은 사진은 또 이지적이고, 성자처럼 생겼죠. 그런 사람이 노벨 문학상도 타고 유명해져서 초청 강연도 다니니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그렇게 강연을 다니다 어느 순간 아프게 되는데, 이때 타고르에게 반했던 한 여성 기자가 하인들을 시켜 타고르를 간호하게 돼요. 그 여성은 엄청 아쉬워해요. 자신이 직접 간호하고 싶었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아쉽죠. 비평집하고 어울리지 않을까 봐 자제를 했어요.
또 타고르는 앤드루라는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이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간디의 숲속 자연학교를 도왔던 사람인데, 이 사람을 보고 타고르는 자기 분신이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보고, 그 사람에게 많은 기독교적 영향을 흡수하게 되죠. 타고르는 기독교적인 풍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조명하지 못한 게 또 아쉽네요.
그 외에도 참 많아요. 가족 문제, 학교 비스바바라티를 세우는 과정에 있었던 일화 등. 그 이야기까지 모두 담으면 비평집이 아니라 타고르 자서전이 될 것 같아 아쉽지만 제외하게 되었어요.

 

Q. 사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므리날리니(바바타리니)와의 결혼은 타고르가 원하던 결혼은 아니었지만 타고르는 그녀가 아플 때 극진하게 간병해주었는데요. 이는 타고르가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타고르는 그녀를 사랑했나요, 아니면 죄책감 등 다른 감정들로 므리날리니를 대면했나요?

A. 사랑하진 않았어요. 나이 차이가 무려 14살이나 나는데, 아버지의 명이니까 따라야 했었죠. 당시 타고르가 영국에 있을 때, 아버지가 그런 타고르를 다시 인도로 불러요. 왜? 영국 여자랑 결혼할까 봐요. 영국 하숙집 딸이 타고르한테 반한 상태여서 편지도 하고. 타고르의 마음이 움직이기도 전에 아버지가 불러들인 거죠. 그러나 타고르가 거부할 수도 있는 결혼이었어요.
타고르의 아내 이름은 당시 촌스러운 이름이어서, 타고르가 새 이름을 지어주기도 해요. 므리날리니라고. 또 부인의 공부도 가르쳐요. 므리날리니는 그렇게 후에 번역도 하게 돼요. 그런 거 보면 타고르는 페미니스트에요. 그런 남편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31살쯤에 일찍 죽어요. 그때부터 타고르에게 고난이 들이닥치게 되죠. 아이들은 5명인데 장남 하나만 살아요. 손자도 죽어서 외손녀 둘만 있지 손자가 없어요. 우리식으로 하면 대가 끊긴 거죠.

 

▲2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Q. 책을 읽는 내내 계속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요, 바로 타고르와 간디의 관계입니다. 두 성인은 상반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어 책을 읽으며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떻게 두 분이 그렇게 서로를 존중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도 책을 쓰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함께 발맞춰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두 사람을 생각해보면, 타고르는 평화주의자고 간디는 무저항주의자에요. 당시 인도에서는 국산품 애용 운동이 지배적이었어요. 영국이 200년 동안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면서 영국이 완전히 영국화가 되어버려요. 간디가 그때 물레 운동을 일으키는데 타고르는 여기에 동의를 안 해요. 타고르는 그걸 퇴보라고 생각한 거죠. 그게 국익을 위한 것도 아니며 그것을 통해 독립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사람이 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간디는 어디에 글을 기고해서 타고르에게 인도 천으로 짠 옷을 입을 것을 권하고, 타고르는 또 그거에 반대하고.
언제는 간디 추종자들이 영국제 천을 파는 가게를 약탈해서 천을 불태우는 장면을 간디와 타고르가 보게 돼요. 타고르는 그 모습을 보고 간디에게 저 모습이 비폭력이고 묻자, 간디는 대답을 못 하죠. 간디는 비폭력적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싶었는데, 간디의 추종자들이 그러지 못한 거예요. 두 사람 참 재미있는 일화가 많아요. 식사하는데도 간디가 타고르더러 그래요. 조금씩 드세요. 하고. 또 서양 빵 드시지 마세요, 우리 것 먹어야죠. 그럽니다. 또 외모도 많이 차이가 나죠. 타고르는 온화한 외모를 가진 반면 간디는
 날카롭죠. 그런 점들에서 차이가 많이 났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스케일은 타고르가 더 커요. 타고르는 왜 간디를 따라 민족운동을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업적도 민족을 위한 것이었죠. 인도를 빛냈잖아요. 타고르의 행적을 보면, 참 놀라운 것들이 많은데, 특히 제국주의자들한테 개의치 않고 비판을 가하는 것이 가장 놀라웠어요. 제국주의 그만하라고. 또 영국이 인도 양민 학살을 저질러요. 마치 우리나라 광주 민주화운동 때처럼요. 그에 타고르가 즉각 기사 작위를 반납해요. 이 기사 작위는 왕이 준 명예에요.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타고르는 민족 운동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근사하게 했다고 볼 수 있죠. 타고르와 간디는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같았던 거예요.

 

Q. 타고르와 간디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습니다. 타고르와 간디 두 분 모두 제자를 양성하고 교육에 힘썼는데요. 비스바바라티에서 타고르는 항상 마름모꼴 사탕, 초콜릿 등을 가지고 다니며 자유분방하게 학생들을 가르친 반면 간디는 학생들에게 점잖고 근면, 성실, 검소를 중점으로 교육했습니다. 그래서 두 선생의 제자들이 만났을 때 분위기가 달랐다는 일화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이번에는 작가가 아닌 한 분의 교육자로서, 두 교육 방침 중 어떤 것을 더 선호(동의)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A. 아까 말했듯이 저는 유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절도, 예의.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요. 저도 이제 아들 두 사람을 키웠는데, 이 사람들이 나중에 하는 말이 ‘어머니는 저희를 군대식으로 가르쳤어요.’라고 하더군요. 근데 나는 아이들 공부하고 노는 데에 크게 간섭 안 했어요. 거리에서 음식 먹지 말라, 밥 먹을 때 너무 머리 숙이지 말라 이 정도만 했지. 뭘 보고 군대식이라고 하는지. (웃음)
아마 제가 할아버지께 교육받으면서, 그때 기억들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할아버지께 문안 드리며 컸거든요. 또 공자의 논어를 들으며.

간디가 그런 식이었죠.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18살에 결혼했는데 너무나도 금욕적이어서 부인하고 첫날밤을 보내지 않았대요. 20살 넘어야 한다고. 마치 자신에게 일종의 형벌을 주는 것 같죠? 그런데 간디는 그렇게 해야지만 만족할 수 있었고, 또 그래야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철학이 있었어요. 그런데 간디도, 타고르랑 똑같이 자연주의자였어요. 두 사람 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방법이 달랐던 거죠.
타고르의 교육 방법은 참 신기해요. 공부하다가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오면 그 선생님한테 뛰어가요. 타고르는 그런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교실도 없었어요. 나무 그늘에서 공부했어요. 옛날 공자처럼요. 앉아있는 사람은 앉아있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사람은 또 비스듬하게 있고. 간디는 그런 걸 절대 허용하지 않았죠. 정자세를 해야 교육이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저는 타고르의 방식에 동의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진짜 교육이죠. 아이들은 어른이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어져 가는 거죠. 자연스럽게.

 

 

Q. 「기탄잘리」는 종교시로서 당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당혹감을 내비치게 했는데요. 제가 기독교인 탓인지 저는 책 속 삽입된 「기탄잘리」의 시를 읽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예수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타고르는 벵골인이기에 힌두교를 많이 접했을 것이며 또한 전 세계를 누비며 힌두교 외 기독교, 천주교, 이어 불교까지 다양한 종교를 접했을 텐데요. 「기탄잘리」 속 언급되는 ‘님’은 타고르가 접한 종교 중 딱 하나의 신을 언급하는 걸까요, 혹은 그들을 초월한 절대적인 누군가를 상징하는 걸까요? 작가님의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A.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어떤 특정한 절대자가 아니고, 자기의 마음속에 정신적인 하나의 중심인 거 같아요. 하지만 기독교적인 요소가 짙다고 봐요. 선교사 앤드루에게 받은 영향으로 기독교를 흡수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못 다뤄서 아쉽네요.
시 「동방의 등불」 있죠? 불교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데. 하지만 가장 기독교적인 것이 크죠. 성경하고 비슷비슷한 내용이 너무나 많아요.

 

Q. 이번에는 비평집을 내셨는데요. 다음 작품으로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인 거로 알고 있어요.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서,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지 조금 귀띔해주실 수 있나요?

 A. 작년 12월부터 집필에 들어가서 오늘(인터뷰 당일) 표지 시안이 내려왔어요. 『순국』이라는 제목인데. 표지가 마음에 들어요. 『순국』은 늦어도 8월 10일까지는 출간될 거 같아요. 상하권 두 권으로, 한 권 당 약 450페이지 차지하는, 굉장히 두꺼운 책이에요.
무슨 작품인가 하면, 독립 운동가 이석영 선생에 관한 내용이에요. 올해 8월의 인물로 선정되었는데. 내용을 좀 더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가 국권침탈이 될 당시 주인공이 영의정의 양아들이에요.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만석이라는 재산을 다 물려받아요. 조선 3대 부자인 셈이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불행하게도 나라의 국권을 뺏기게 되지요. 그 재산을 다 처분해서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지어요. 자기는 거지가 돼요. 자식 아들 둘이 있는데 둘 다 독립운동하다가 죽고 주인공은 79세에 얻어먹다가 굶어 죽어가요.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순 없죠. 그거를 쓰는 소설이에요. 이 정도로 해둘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제 주변에 시인, 소설가 등 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데 선배 작가로서 후배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마디만 해주실 수 있나요?

A. ‘모든 걸 걸어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가라는 것은 끝이 없어요. 저는 제 작품 끝에 항상 이런 말을 뒤에 붙여요. ‘또 실패했다.’ 정말 걸작을 쓰고 싶었는데 또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를 채근하는 또 다른 항해를 떠난다. 오늘 쓴 작품에서 자기가 만족하고 취하면 더 이상의 어떠한 성장은 없어요. 히딩크가 했던, ‘나는 아직 배고프다’와 같은 말이죠.
그리고 상상을 하세요. 상상은 하면 할수록 개발이 되고 향상이 돼요.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이란 무엇인가』란 책이 있어요. 그 사람을 제2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러요. 당시엔 이성주의 시대여서 상상력 이야기를 하면 바보 취급을 받았는데, 그걸 정립했잖아요. 상상력이 인류에 이바지한 공이 대단합니다. 우린 그걸 공부해야 해요. 또 다치바나 다카시의 글도 읽어보세요. 참 좋답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독자를 위한 어떠한 헌신이에요. 묘한 것은, 작가 또한 일차적으로 자신의 독자가 된다는 거지요. 자신이 먼저 즐기고 나머지를 독자에게 선물하는 거예요. 

글을 쓰다보면 잘 쓰려고 해도 마음대로 잘 안 되죠? 지금은 습작기니까. 그럴 땐 무조건 써야 해요. 쓰다 보면 길이 보여요. 통과의례에요. 고민하고 몸부림을 쳐야 무언가가 나와요. 마치 아이를 출산할 때 가지는 산고처럼, 산고를 견뎌야 출산할 수 있으니까요. 창작의 세계는 그걸 감내해야만 하는 거죠. 오로지 상상력 하나만 믿고 가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취향을 연구하세요. 내 취향에 맞는 소설, 그리고 작품. 수긍가고 이해 가는 그런 작품을 읽어야지, 단순히 훌륭하다는 이유로 읽으면 감동이 없어요.
마지막으로, 시를 읽으세요. 문장이 유기적일 때 독자들은 작품을 읽기 시작해요. 시를 공부한 사람들은, 문장을 참 예쁘게 잘 써요. 시를 읽고 소설을 쓰면, 어딘가 달라요. 우리말에는 음수율이란 게 있으니까, 입으로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문장을 어디를 풀어야 할지 등등 그런 게 보여요. 그러면 위 문장과 아래 문장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착착 맞아떨어지거든요. 그래야 독자가 매끄럽게 읽어요.

 


 

타고르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듯,

작가님 말씀 하나하나에 허우적거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특히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들을 명쾌하게 답변해주셔서,

코로나로 우울했던 기분까지 싹 날아가 버린 것 같아요.

저는 타고르를 읽으며 '사랑'하는 법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그의 문학과 사상은 마치 무겁고 가까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 타고르'를 알게 되어 좀 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답니다.

 

여러분에게 타고르는 어떤 사람인가요?

지금까지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 박정선 작가님과 인터뷰였습니다! 

 

타고르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혁명성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Posted by 이승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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