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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서평] 우리가 지나온 풍경을 말하다,『나도 나에게 타인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8. 18.

우리가 지나온 풍경을 말하다,

『나도 나에게 타인이다』

인턴 박도연

 

 

경찰공무원의 에세이’, 나를 소진기 작가의 독자로 만든 한 마디였다. 나는 수필을 잘 읽지 않는다. ‘에세이라고 하면 서점 매대에 잔뜩 쌓인, 뻔하디뻔한 자기계발 에세이밖에는 생각나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다 똑같은 자랑과 따분한 위로에 지쳐갈 무렵 우연히 만난 책이 나도 나에게 타인이다였다.

 

남이 나를 규정짓게 놔두지 말고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파워와 내성이 필요하다. 헐한 자아보다는 든든하고 건강한 자아로 주어진 삶을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도록 살아나기 위한 정신적 방어 장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방어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타인의 사고와 규정의 노예로 사느냐, 주체로서 사느냐, 나의 선택만 남아 있을 뿐이다.

-p.122

 

나도 나에게 타인이다는 총 6부로 구성돼있다. 1시골 경찰서장의 편지에서는 저자의 대학생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경찰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마냥 안정되어 보이고 걱정이 없을 것만 같지만, 저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제복 속에 갇힌 자신의 모습에 울기도 한다. 경찰이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아직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2까칠한 사람에선 자연인으로서의 저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책의 표지에 영화배우 송강호의 추천사가 적혀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배우 송강호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같은 시골마을에서 이십 년 이상을 살았던 죽마고우라고 한다.

저자는 1986년 겨울, 원하지 않던 경찰대학에 합격하고 송강호와 인사 없이 헤어진 그 날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그를 그리워한다. 저자가 해운대 경찰서장이 되어 부산 영화제에서 다시금 조우할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3나도 나에게 타인이다4물을 부어도 새지 않는 사이에서는 아래의 경우처럼, 유독 노래와 시, 서적에서 인용한 구절을 통한 저자의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모난 돌」이라는 시가 있다. (…)

우리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 때문에 모난 돌이 떠돌이들의 이정표와 같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며 제대로 정을 맞으면 훌륭한 조각품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왔다.

이렇듯 삶이라는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조각조각 빛을 머금고 있다.

-p.153

 

5박꽃 피고 기러기 날면에서는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특히 누나와 선친을 향한 애틋함이 잘 드러난다. 평생을 농부로 살다 간 아버지의 삶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옛 시절을 박꽃처럼 그리워하기도 한다. 또한, 자식들이 모두 떠나간 지금, 인생은 한 순간의 등불과 같음을 되새기며, 아직 자신에게 머무는 것들은 보내야 할 때 잘 보내고 돌아서야 한다고 말한다.

 

 

6호모사피엔스의 유치원에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공직자로서의 시각이 담겨 있다. 세상을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을 비판하고, 아무리 풍진 세상이라도 거짓됨이 없이 진실하게 한 번 더 부딪혀 보는 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흔히 쓰이는 헬조선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글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도 나에게 타인이다는 혼란해진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볍게 기분 전환용으로 속독하기보다는 옆에 조그만 노트를 두고 끄적여가면서 정독하는 걸 추천한다저자의 어휘와, 저자가 우리에게 무심하게 던지는 한 마디가 그냥 흘려보낼 수 없게 만든다.

 

세상에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있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다 가지지 못하면 던져버렸고 다 잃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던 청춘의 시절이었다. '조금'이라는 것은 치사하고 시시했다. 그런데 그 '조금'이 지금 나의 토대요 조각조각 진실이었음을 차츰 깨닫는다.

모든 단어에 '조금'을 붙이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

-p.81

 

유독 자신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씌우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에겐 비교적 유하게 대하면서도 스스로에겐 '조금'의 찰나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과도하게 채찍질하고 자책한다. 그 사람들은 때론 허망함에 쌓여 모든 걸 놔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대개 그들의 마음은 상처로 잔뜩 헤져있다. 이렇듯 오늘날 '조금'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허탈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조금'이 지금 나의 토대이고 하나의 진실임을 깨달으라고 조언한다.

 

 

연락이 오면 영화배우가 된 첫사랑을 만나는 것쯤은 아니겠지만 약간 풀이 죽은 정수리 주변머리를 사자갈기처럼 세우고 가능한 멋진 모습으로 첫인상에 강호의 기를 죽여야겠다,

나도 내 인생의 주연배우이니까.

-p.93

 

  '강호'는 우리가 아는 영화배우 '송강호'이다. 사실 처음에 책 표지에 송강호의 추천사가 적혀있어서 놀랐었다. 어떻게 둘이 친구가 되었을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국내 최고의 배우와 경찰서장이 친구라니, 아직도 여전히 신기하긴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참 생각이 많아진다. 최상민 사진작가의 흑백사진과 함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무심코 지나온 풍경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가족 개개인의 일생까지도 말이다. 또한 저자의 문장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사람에게 '편안한 옷 한 벌'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중요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마냥 진지한 에세이같지만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사유와 특유의 문체가 글 속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나팔꽃처럼 아침에 찬란하게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짧은 인생이기에, 우리는 좀 더 자신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생에서 그러기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때론 눈 깜짝하면 흘러가 버리는 시간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존재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책은 하지 말도록 하자. 찬찬히 알아가면 되는 거다, 나도 나에게 타인이니까.

 

 


 

 

나도 나에게 타인이다 - 10점
소진기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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